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488화
488화. 전설로 가는(27)
방영 직후.
커뮤니티는 당연히 다시 불타올랐다.
-이야, 여기서 화약을 꺼낸다고?
-어쩐지, 화약도 없는 완전 옛날 시대를 배경으로 했다 했다ㅋㅋㅋ
-그렇지 ㅋㅋ 화약이 없는 시대에 저런 폭탄이 등장하면, 그건 완전 개사기짘ㅋㅋㅋ
-어쩐지 저번 주에 호수랑 협곡을 자세히 보여준다했다 ㅎㅎ
-근데, 나의 무사님에 총 안 나왔음?
-ㅇㅇ 안 나왔어요, 단 한 번도. 완전 옛날 시대 배경이라 아주 기본적인 무기가 전부였어요. 그런데 그걸 이제와서 이렇게 써먹네요 ㅎㅎ
-거기에 동방의 신비한 나라 ㅋㅋㅋ 이거 누가 봐도 한반도 아님?
-무조건이죸ㅋㅋㅋ
화약은 신의 한 수로 칭찬받았다.
나의 무사님의 시대 배경은 정말 옛날이다. 고려보다도 이전 시대로, 화약이란 게 아예 존재도 하지 않는 시대였다. 지극히 원시적이어서, 무기는 도검을 포함해 창칼 방패, 활 같은 게 전부였다.
그런 시대에, 이제 막 개발되었다는 설정으로 화약을 등장시켰다.
-사실 커뮤니티 돌아다니다 보면, 현재 판세를 뒤집을 유일한 조건으로 뽑은 게 ‘총’이었음요. 그런데 이 총이라는 게, 일단 화약이 먼저 필요하잖아요.
-맞아요. 폭발력을 이용하는 건데, 그 개념이 먼저 생기려면 확실히 ‘폭발’을 알 필요가 있죠. 그런데 그 개념이 없으니 총기가 나오려면 진짜 한세월이라 포기한 거고.
-그런데 그건 제국뿐이었죠ㅋ 근데 동방의 신비한 나라라는 개념이 있음?
-시즌2인가 보면 있어요. 그때 그래픽으로 지도 보여주는데, 이족의 영역 뒤로 ‘東方’이란 단어가 얼핏 보였음요.
-아, 그러네. 누가 그거 찾아서 링크 올려놨는데, 보니까 끄트머리에 살짝 걸치게 해놨네요. ‘방’자도 반쯤 잘라 놓았고.
-그때부터 써먹으려고 저걸 넣었다고? 와, 대단하네요, 연출 진짜.
-연출도 연출이지만, 저건 작가의 의도가 미쳤다고 볼 수밖에 없음요. 일부로 처음부터 총이 없는 시대로 세계관을 만들고, 거기에 동방의 ‘발명’이란 이름으로 화약을 등장시킨 거니까.
-보통 작가는 저 정도는 계산해야 하나요? ㄷㄷ
-저건 팀 단위로 해야 가능한 수준인데, 정은정 작가는 보조 작가도 안 두는 사람임…….
-헐…… 진짜요?
-ㅇㅇ 전형적인 천재 과……. 혼자 다함요. 자료조사부터 집필까지. 그래서 천재라는 거임. 아니, 진짜 생각해보니까 미쳤네? ㅋㅋ 저 방대한 세계를 어떻게 혼자 다 짜지?
-천재는 이해하려고 하는 거 아님.
-X발ㅋㅋㅋ
극의 끝에 도달했을 때 가장 칭찬받는 건 역시 정은정 작가였다. 비장의 한 수. 혹은 신의 한 수. 그런 얘기가 돌았다. 크게 틀린 말도 아니었다. 사실 화약이란 것 자체가 특별한 건 아니었다.
우리나라 역사만 봐도, 화약은 매우 중요한 지분을 차지한다.
화약 자체가 얼마나 많이 지구를 바꾸었는지 말하는 것도 입 아플 정도다. 그래서 애초에 ‘총’을 생각한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정은정 작가는 화약을 이용한 폭탄이었다. 세계관과 너무 동떨어진 거 아니냐고? 절대로 그렇지 않다. 과학의 발전은 절대로 공평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 지구만 봐도 개발도상국, 아프리카, 중동의 나라들과 비교해 미국. 아니, 미국까지 갈 것도 없이 한국만 놓고 비교해도 하늘과 땅 차이다. 과학의 발전으로 손에 넣은 문명의 이기는 절대로 쉽게 나누지 않는다는 소리다. 즉, 나의 무사님 속 제국과 이족엔 화약이 없어도, 그 주변의 다른 나라에는 있을 수 있다는 소리였다. 그걸 공유하지 않고 있다가, 마지막에 어떤 방법으로 공유했다. 이렇게 써먹은 것이다.
그런 소리에, 또 다른 떡밥이 맞물렸다.
-야, 시3 초반부에 재가 제학 선생 만나러 갔을 때, 그때 시장통 신 보면 확실히 떡밥 풀려 있다.
-뭔데?
-봐라. 재가 선고에게 줄 선물을 하나 사주려고 두리번거리다가 머리핀 같은 거 보고 그거 사잖아. 그런데 그게, 딱 봐도 혼자 반짝반짝거리잖아. 그래서 재가 신기하게 보니까 좌파 주인이 이렇게 말해. 그거 동방에서 들여온 거라고.
-오! 그러네! 지금 찾아봤는데 좌판 물건이랑 확실히 태가 다르네.
-이 간단한 거로 이미 ‘공예’도 레벨이 다르다는 걸 보여준 거야. 아주 간단한 신 하나로.
-대박…… 개소름; ㄷㄷ
-그거 말고도 꽤 나와요. 시2에도 그런 장면 몇 번 있었어요.
-공예 레벨이 다르다는 건, 확실히 화약을 한참 먼저 만들만한 기틀이 마련된 거지 ㅋㅋ
-이야…… 진짜 대단하네 ㅋㅋ
-진짜 이걸 어떻게 전부 넣을 생각을 했지? 팀도 아닌 개인이;;
-천재라니까요 ㅋㅋ
-ㅇㅇ 천재는 이해하는 거 아님;;
그렇게 되면서, 극찬이 이어졌다.
이런 흐름을 보면서, 마지막을 준비하는 제작진 측은 안도했다. 이 노림수가 먹히지 않았으면, 욕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복수자들에서 별의별 힘을 담은 돌이 다 모으면, 우주의 생명체 절반을 날려버릴 수 있단 설정을 써먹기 위해, 그 이전부터 아주 꾸준하게 떡밥을 던져 빌드업을 쌓았다.
그래서 돌을 다 모은 빌런이 한방에 생명체 절반을 날렸을 때, 아 다 모았으니까…… 하면서 수긍하게 된 것이다. 아무런 빌드업도 없이 그냥 돌 모아와서 다 죽어라! 하고 생명체 절반을 날렸으면 아무리 최고의 인기를 얻던 시리즈라고 해도 욕을 거하게 얻어먹을 것이다. 그 욕을 막아준 게 바로 빌드업이다. 각 캐릭터 시리즈와 이전 시리즈를 통해 계속해서 쌓아온 빌드업이 생명체 말살이란 설정도 먹혀들어 가게 만든 것이다.
정은정 작가가 그랬다.
아주 간단한 신으로 ‘동방’의 기술력이 뛰어남을 보여줬고, 화약을 등장시켰을 때의 후폭풍을 거의 완벽하게 지워 버렸다.
드라마는 작가놀음이란 속설을 그녀는 그렇게, 완벽하게 증명해 버렸다.
* * *
지영은 놀랐다.
정말이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걸…… 무너뜨린다고?”
허허.
이전에 보여준 협곡 신은 강원도의 한 폐광인데, 이미 폐업한 지 제법 되는 광산이었다. 그런데 그 광산의 협곡을…… 이 미친 작가는 진짜로 터뜨리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 미친 생각은 실제로…… 통과됐다.
이유는 간단했다. 원래도 여길 메워서 그 위로 길을 만들 계획이 지자체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굳이 협곡을 메우려는 이유는, 지반이 불안정해 큰비가 오면 무너질 수도 있어서 아예 협곡을 무너뜨려 메울 생각이었다. 본래의 계획은 그랬다. 그게 또 딱, 올해 진행될 지자체 공사였다.
그런데 그게 문의하기 무섭게, 이틀 만에 오케이 사인이 났다. 화약부터 시작해 이것저것 돈이 많이 들어가는데, 그걸 제작진 측에서 댄다고 하니 지자체 입장에서는 나쁠 게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허락이 떨어졌고, 진짜 폭파 신 촬영이 시작됐다. 지영은 현장에 가진 못했다. 워낙 위험해서 절대로 안 된다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신 현장 스태프가 채널 하나를 열어서 생중계하기로 했다. 일사천리로 진행된 폭파 준비를 보면서 지영은 정말 정은정 작가의 집념을 넘어선 광기에 솔직히 좀 질려버렸다.
폭파 준비가 한창인 협곡.
사실 이미 필요한 신은 전부 찍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 신을 찍을 때 지영도 저곳에 있었다. 그리고 다 찍자마자 서울로 올라왔다. 현장엔 홍진아 감독, 정은정 작가를 비롯해 필요한 인원만 남아 있었다.
그리고 폭파 준비가 한창인 지금은 현장에서 전부 떠난 상태였다. 괜히 주변에서 서성거리다가 유탄에 맞으면 억,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질 것이다. 그러니 전문가들을 제외하고, 카메라 몇 대 날려 먹을 각오하고 사방에 세팅되어 있었다. 실시간으로 클라우드 서버에 영상이 저장되니, 카메라가 돌에 맞아 맛이 가도 그전까지 찍은 영상은 남게 해놨다. 그렇게까지…… 한다.
진짜 이 정도면 집착도 집념도 아닌 광기 그 자체였다.
“진짜 별걸 다 한다. 이야…….”
시간이 남아 회사로 온 강한결이 한 말에 지영은 그냥 조금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작가님이 이젠 좀 무서워.”
“천하의 강지영이 무서운 사람이 생겼어?”
“응. 야, 나도 좀 많아. 일단 너랑 어머니랑 선영 누나랑 이제 정은정 작가님 추가됐어.”
“나는 왜?”
“몰라서 묻냐?”
“모르니까 묻지, 아는데 묻겠어?”
“응, 넌 알아.”
뻔뻔한 강한결의 말에 지영은 그렇게 말하며 그냥 피식 웃고 말았다.
그래서 화제를 돌렸다.
“지원이는?”
“컨디션 좋아. 음, 금메달 딸 것 같아.”
“그거 다행이네. 자신감도 좀 찼지?”
“응. 예전에 네가 캠핑 때 해줬던 말이 많이 도움이 된 것 같아.”
“…….”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양지원은 황금세대가 아니었다. 운동에 관한 재능 자체는 진짜다. 그건 그 종목에 한하면 황금세대와 동급이라고 봐도 좋았다. 하지만 멘탈 부분은 확실히 부족했다. 언니의 희생으로 운동을 해왔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래도 스포츠에 멘탈은 어마어마하게 중요했다.
그런 양지원은 한 달 연기되어 3월에 열리는 밀라노 동계 올림픽에 출전한다.
지금은 현지에서 적응 훈련 중이고, 지영은 양지원의 노력을 잘 알고 있었다. 시간을 많이 내지는 못하는 지영이지만, 양지원의 훈련은 영상으로도 보고 있었고, 직접 가서 몇 번이나 봤다. 그 추운 링크장에서 훈련복이 흠뻑 젖을 정도로 독하게 연습하는 게 양지원이었다.
그녀의 목표는 명확했다.
올림픽 금메달.
그 금메달을 언니 양유진의 목에 걸어주는 거.
오직 그것 하나만을 보고 달려왔다.
그리고 이번이 마지막 기회였다.
양지원은 이제 스물을 갓 넘었다. 하지만 워낙에 안 좋은 장비를 차고 훈련을 이어와서, 몸이 많이 망가졌다. 허리, 무릎, 발목. 발가락까지. 그런데도 국내에서 순위권에 든 건, 오롯이 그 천재성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마지막이었다. 그녀의 전문의는 4년 뒤에 있을 올림픽은 불가능할 거란 확실한 선언을 내렸다. 훈련을 버티지 못하는 상태까지 육체 내구성이 떨어졌다면서 말이다. 양지원 본인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그래서 지영은 부디, 양지원이 목표를 이루기를 바랐다.
그래서 불쑥 말을 꺼냈다.
“잘할 거야.”
“응, 잘할 거야.”
강한결이 웃으며 말을 받기 무섭게, 콰앙-! 협곡이 무너졌다. 벽에 박아 넣은 다이너마이트가 터지며 거대한 바위가 우르르 쏟아져 내렸다. 불꽃은 크게 튀지 않았지만, 그건 극 중에서는 CG로 커버할 것이다. 희뿌연 먼지가 뭉게구름처럼 올라왔다.
“진짜 터뜨리네.”
“…….”
화면엔 이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먼지가 올라와 시야를 완벽히 가렸기 때문이었다. 지영은 채널에서 나왔다. 그러자 강한결이 곧장 다른 채널에 들어갔다.
[2026년 가노컵 생중계.]
오늘은 가노컵을 하는 날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스케줄이 있어 못 왔고, 이제 다시 복귀 준비하기 전이라 강한결이 서울까지 와서 생중계를 같이 보기로 했다.
채널에 접속하기 무섭게, 익숙한 얼굴이 떴다.
지금은 새신랑인 미야모토 신지였다. 신지는 머리를 조금 길렀다. 그러나 지영처럼 운동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런 외형적인 모습 말고, 눈빛이 변했다.
신지는 전형적인 천재다.
그것도.
오만한 천재였다. 그는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선수였다. 같은 체급의 거의 모든 선수와 붙어본 지영이 느끼기에, 신지만 자기의 뒤에 바짝 붙어 있었다. 이렇게 생각하는 지영도 오만하긴 하지만, 그러는 이유는 있었다.
정상급 선수의 실력은 절대로 쉽게 올라가지 않는다.
아니, 올라가는 걸 목표로 훈련하기보단, 그때부턴 하락하는 걸 막는 걸 목표로 훈련한다. 절정의 피지컬이 지나면, 결국에 실력은 떨어진다. 힘, 민첩성, 반사신경 등등이 계속해서 하락하는데, 이걸 악착같이 막는 선수만 절정의 기량을 유지하는 거다.
이는 지영이나 신지나 마찬가지였다.
둘은 절정의 기량이었다.
이 절정에서 지영이 아주 미세하게 앞서고 있었고, 그건 회귀자란 특별함이 앞서가는 이유였다. 누구보다 여유롭게 시합에 임할 수 있다는 것, 본능보다는 이성을 더 강하게 유지할 수 있는 것, 그것 하나가 강지영과 미야모토 신지의 격차를 만들었다.
그런데도 그 차이는 미약하다.
아마, 어쩌면.
‘지금은 따라 잡혔을 수도 있겠지.’
화면 속의 신지는 상대를 가지고 노는 나쁜 버릇을 고쳤다. 대신, 그 자리를 또 다른 여유와 각오가 차지한 느낌이었다. 그게 뭘까? 하고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화면이 관중석을 비추더니 한 여인을 비췄다.
안자이 히카리.
“아…….”
가족.
지영은 신기하게도, 신지의 마음이 어떻게 변했는지 안자이 히카리를 비춰주는 카메라 덕분에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가장.
신지의 모습에서 지영은 가장의 모습을 느꼈다.
그에 지영의 입가에 미소가 맺혀졌다. 아주 순수하게, 신지의 변화를 좋은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유도복이, 입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