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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470화 (470/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470화

470화. 전설로 가는(9)

이 아이구나.

양유진은 엄마가 안아주자 울음을 터뜨린 언니의 옆에 있는 소녀를 가만히 바라봤다. 근래, 가장 기사에 많이 이름이 올라가는 사람인 연인 강지영과 항상 함께 거론되던 아이. 화가 많이 났던 연인이 한 일본인 기자에게 쏟아냈던 폭언의 유탄에 가장 크게 상처받은 아이.

‘사토 레미.’

이 아이는 모르겠지만, 지금 한국 언론은 난리였다.

당장 본인도 회사에 나가면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거기에 더해 출근, 퇴근 시간에는 항상 스무 명 정도의 기자가 회사 정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지영이 사토 레미를 데리고 입국했는데, 왜 같이 입국했는지에 대해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혹시 연인인 자기는 알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많은 기자가 회사 앞에 진을 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일에 대해서는 양유진도 지영에게 제대로 들은 게 없었다. 평소에는 자잘한 것도 전부 설명해주지만, 이번 일은 설명을 많이 해주지 않았다. 양유진은 그게 서운하진 않았다. 다만 왜? 라는 고민을 많이 했었다. 그리고 오늘 그 궁금증을 품고 여기까지 왔고, 소녀를 보는 순간 양유진은 알 것 같았다.

‘내가 판단해 주길 원하는 거구나.’

지영은 분명히 소개할 때 동생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영이 동생이라고 소개한다고 해서, 정말 바로 동생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건 당연히 아니었다. 강지영을 믿는다. 정말 한 올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만큼 정을 줌에 있어 빈틈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것과 이건 별개였다.

그가 믿는다고 해서, 양유진이나 엄마까지 바로 믿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지영은 말을 아꼈다.

이곳에서 직접 보고, 직접 판단해주기를 바라면서. 양유진은 그게 지영의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는 언니는 두고, 소녀만 봤다. 아니, 소녀만 보였다. 소녀는 눈에 띄게 당황한 표정이었다. 너무 빤히 자기를 보는 유진 때문이기도 했고, 모두가 울음을 터뜨린 엄마를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양유진은 그런 소녀의 앞으로 좀 더 다가갔다.

키가 큰 사토 레미. 그녀는 이미 양유진보단 조금 더 컸다. 그런데 사토 레미는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런 소녀의 반응에 양유진은 다가가려던 걸 멈췄다. 겁을 먹지 않은 것 같은데, 당황한 건 맞았다. 예전에 지영의 시합을 보러 갔다가, 엄마를 처음 만났을 때 자기도 그랬었다. 그걸 가지고 동생이 아직도 놀리기 때문에 잊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양유진은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아, 말이라도 통했으면…….’

그럼 어떻게든 다가갈 수 있겠는데, 양유진은 일본어를 전혀 하지 못했다. 초급 일본어책을 좀 보긴 했는데, 아쉽게도 양유진에게는 손으로 하는 ‘공예’에는 재능이 있어도, 공부 머리는 없었다. 그래서 몇 가지 간단한 단어 빼고는 아무것도 익히지 못했다.

‘히잉…….’

그래서 저도 모르게 지영을 바라봤다. 자기가 지영을 보자, 소녀도 지영을 바라봤다. 그런데 지영은 그런 두 사람의 시선을 받았으면서도,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 그런 지영의 행동에 양유진은 확신했다. 지영은 자기가 레미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판단하고, 그런 다음 받아들일지 내칠지를 정했으면 하고 있었다.

그래서 입술을 꾹 깨문 양유진은 다시 소녀를 보며 어렵게 입을 뗐다.

“하, 하이…….”

“아, 아. 그, 사토 레미예요.”

“야, 양유진입니다!”

이름이 들렸다.

자기의 인사에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해서, 양유진도 얼른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러나 대화는 다시 끊겼다. 이 이상 대화를 이어나갈 언어 실력이 두 사람에게는 전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국 이민을 결정하며 사토 레미도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지만, 한국어가 아무리 대단해도 고작 몇 주 만에 대화가 통할 정도로 익히기란 불가능했다.

그래서 이도 저도 못 하고,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구세주가 등장했다.

“늦었습니다!”

차에서 내려 꾸벅 인사하는 소녀. 아니, 이젠 어엿한 숙녀.

이시카와 사오리. 조부모님이 한국에 있을 때 성이 강 씨여서, 이제는 유진이란 이름을 받은 숙녀가 등장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동생도 같이 내렸다. 원래 이름은 이시카와 유리코. 강유정이란 이름으로 사는 꼬마 소녀에서, 이젠 어엿한 소녀로 성장한 강유정이었다.

꾸벅꾸벅, 잘도 인사한 강유진은 레미를 보더니 곧장 달려왔다.

“언니, 안녕!”

“응, 안녕! 살 빠진 거 봐. 요즘 또 감량해?”

양유진은 강유진이 반가웠다.

이름이 같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강유진은 정말 씩씩했다. 그리고 싹싹했다. 붙임성이 정말 좋아서 양유진을 처음 봤을 때도 찰싹 붙어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대해줬다. 거기에 한국어도 제법 수준급이어서 대화를 나누는 데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넵! 시합 하나 있어요! 코리아 오픈!”

“아, 맞다. 그랬지? 유정이도 안녕?”

“언니, 안녕하세요.”

꾸벅.

손을 모아 조신하게 인사하는 강유정은 정말 귀여웠다. 언니가 짧은 머리의 스포츠 캐릭터라면, 강유정은 정말 여리여리한 느낌이 강했다. 희고 고운 피부에, 적당히 긴 머리카락. 이지적으로 빛나는 눈빛이…….

‘닮았네?’

누구랑?

옆의 사토 레미랑.

알려진 바로는 두 사람의 캐릭터가 거의 판박이였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레미를 바라보자, 레미의 눈빛이 매우 반짝이는 게 보였다.

“아…….”

말이 통하는 사람.

생각해 보니 유정이는 몰라도, 강유진은 정말 유명했다. 지영이 나서서 귀화하게 했고, 수술과 재활을 끝낸 강유진은 정말, 여자 유도계의 생태계 교란종이 되어가고 있다 했다. 남자친구가 유도선수라 양유진은 이제 유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았다. 넘어가는 모습만 봐도 절반인지, 한판인지 분간할 눈을 가지게 된 것이다.

물론 아직은 어설펐다.

하지만 그런 어설픈 시선으로 봐도 강유진은 정말 잘했다.

‘특히 굳히기? 막 누르고 꺾는 건 정말…….’

최고였다.

막 서로 끌어안고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어느 순간 딱 보면, 강유진이 상대를 누르고 있거나 조르고, 꺾고 있었다. 굳히기? 그거로 가면 저 순둥한 스포츠 소녀는 정말 나찰처럼 무서워졌다. 그런 강유진은 당연히 유명했다. 아직 고등학생인데도, 벌써 더 챌린지 1회 우승, 그리고 얼마 전 11월에 있었던 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실력이 대단했다.

그런 유명세는 당연히 일본에서도 비슷했다.

일본이 놓친 유도 천재. 혹은 한국이 강탈해간 일본 유도의 미래! 이런 느낌으로 기사가 많이 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사토 레미가 강유진을 모를 리가 없었다.

“레미? 안녕?”

강유진이 레미의 앞에 가서 바로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언니, 그렇게 하니까 겁먹잖아. 안녕하세요. 강유정이예요. 음, 일본에서 이름은 이시카와 유리코예요. 반가워요.”

“아……. 사토 레미예요.”

두 소녀가 서로 인사했다.

강유진은 그런 동생과 사토 레미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유정아. 너 레미랑 동갑 아니야?”

“그럴걸?”

“그럼 말 편하게 해? 왜 서로 존대해?”

“처음 봤잖아. 바보야.”

“뭐? 바보? 이게!”

“아! 아야! 아파! 아프다고!”

강유정의 머리를 옆구리에 넣고 주먹으로 꾹꾹이를 해주자,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는 강유정을 보며 근처에 있던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 이런 모임은 자주 가지는 편은 아니다. 오늘처럼 전부가 모이는 일은 드물지만, 강유진과 강유정은 시간이 나면 가족 간의 모음에 정말 자주 나갔다.

부모님이 연희 스포츠에서 일하고 계셔서, 회식 같은 게 있으면 거의 빠지지 않았다.

그럴 때 둘은 정말이지, 분위기메이커였다. 얼음공주처럼 조용한 강유정도 강유진이 자리에 있으면 개그 캐릭터가 되는 마법이 펼쳐지니, 이 자매를 보는 재미가 정말 쏠쏠했다. 그리고 여기서도 그런 마법은 효과를 발했다.

사토 레미가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어, 웃었네? 이래야지 웃다니. 레미 넌 정말 내 동생이랑 판박이다. 그런데 더 조신하고, 더 참해. 음, 유정이랑 바꾸…… 악!”

“이 씨!”

“아 왜 꼬집어!”

“동생을 바꾸자니, 그게 할 말이냐! 이 망할 언니야!”

“그럼 좀 귀엽게 굴든가!”

“네가 너한테 왜!”

“거봐, 그러니까 바꾸고…… 악!”

콩! 콩!

결국 두 사람의 마법은 선을 넘기 전에 개입한 지영으로 인해 멈췄다.

“아, 오빠! 안녕하세요!”

“그래, 근데 이제 인사하냐. 유정이도 안녕?”

“네, 오빠 안녕하세요.”

“눈 오니까 저기 안에 들어가서 얘기해. 감기 걸리겠다. 저기 쉼터 안은 난로 틀어놔서 훈훈하다니까.”

“넵!”

가자!

거침없는 강유진은 레미의 손을 홱 낚아채더니 지영이 가리킨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 뒤를 따라서 강유정이 따라갔고, 양유진인 셋을 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안 되는데, 나도…….

‘같이 가야 하는데!’

근데 일본어를 못 하니까, 대화에 못 낄 것 같았다. 거기에 자기는 나이도 많고……. 이런 고민 탓에 갈팡질팡하는 중에 지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나. 눈치 보지 말고 가봐요. 유진이랑 유정이 있으니까, 서로 대화 나눌 수 있을 거예요.”

“그, 그래도 될까요?”

“그럼요. 레미, 잘 부탁할게요.”

“아…….”

지영의 말에 양유진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영이 이러는 모습을 처음 봤기 때문이었다. 이런 모습을 처음 본다고 질투가 나거나 그러진 않았다. 그리기엔 지영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너무 컸다. 그래서 양유진은 환하게 웃었다.

지영이 동생이라고 했다.

그럼 자기한테도 레미는, 가족이었다.

“네!”

총총! 맑은 웃음으로 답한 양유진은 세 사람을 따라갔다. 그리고 지영은 그런 양유진의 뒤로 고마워하는 지영의 눈빛이 따라갔다.

* * *

레미가 텐션이 높은 자매에게 납치되듯이 끌려갔을 때, 이치카 씨는 지영의 어머니 손에 잡혀 펜션 안으로 들어갔다. 굉장히 넓은 펜션의 거실은 앉을 곳이 넉넉했다. 한옥 펜션 콘센트를 살려 전통적 느낌이 물씬 나는 소파가 사각 형태로 이어져 있었다. 물론 그래도 전원이 안는 건 힘들었지만, 바닥에 몇 명이 앉자 그 넓은 거실이 꽉 찼다.

“이치카 씨? 굉장히 젊어 보이는데 나이가 어떻게 되나요?”

지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중년 부인의 말에 이치카 씨는 잠시 자기 나이가 몇이었는지 생각해 봤다.

아이를 품었을 때는 아직 몰랐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며 진짜 엄마가 되면서, 그녀는 사실 나이를 잊었다. 아이를 케어하는 건 매우 힘들었다. 커서 이제는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가기 시작할 때는 서운했다. 그러다가 사고가 나고, 오늘까지 그녀는 사실 자기 나이를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이 나이에 이런 인생이 맞는 건지, 그런 것도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정말 오랜만에 내 나이가 몇인지를 떠올려 봤다.

조금의 생각 끝에 자기의 나이가 떠올랐다.

“올해 서른일곱이에요.”

그녀의 대답을 정신없는 자매의 부모님이 통역해 줬다.

“서른일곱? 아이고. 엄청 젊네?”

“그럼 레미를 몇 살에 낳은 겨?”

“일본이 우리보다 아마 학교를 1년인가 먼저 가니까, 레미 나이가 지금 열넷 정도겠네요. 많아도 열다섯. 그럼 스물하나나 둘에 낳았겠네요.”

“아이고, 결혼을 엄청 일찍 했네. 좋은 시절을 전부 아이만 보고 살았겠어.”

“그러니까요.”

스물 초반에 결혼하는 게 이상한 건 아니다.

부모님 세대다. 그때는 빨리 결혼해 가정을 꾸리는 게 오히려 당연했던 시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결혼적령기 허들 자체가 매우 올라갔다. 그리고 그걸 보며 살아온 어른들도 자연스럽게 스물 초반에 결혼한 이치카 씨를 조금은 안쓰럽게 볼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이치카 씨는 묘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가 아는 ‘정’이 듬뿍 느껴지는 눈빛은 그녀도 알긴 알지만, 조금 생소했다.

도쿄의 고급 맨션에서 살 때는, 저런 눈빛을 가진 주민을 거의 찾기 힘들다. 앞에서는 정말 하하 호호 웃어도, 속으로는 남편의 직업과 직급, 자식의 성적을 따져보며 우위를 점하려고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온전히 마음을 열기 힘들었다.

같이 모여 커피를 마셔도, 같이 점심을 먹어도 이상하게 서열이 존재했다. 대기업, 직급, 자식의 성적, 이런 것들은 그 자체로 엄마의 권력이었다. 그런 곳은 정말 지쳤다. 그래도 남편과 딸을 생각해 버텼지만, 사실 지칠 수밖에 없었다.

교토로 내려와서, 위자료로 받은 돈으로 작은 집을 얻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주변 주민은 결코 그녀와 딸을 반기지 않았다. 오히려 배척했다. 그게 정말 그녀를 지치게 했다.

이지메.

일본의 모든 곳에 존재하는 이지메는 정말 치가 떨렸다. 하지만 지금 이 사람들이 보여주는 눈빛엔 분명 ‘정’이 있었다. 그녀가 임신과 동시에 결혼해 여관을 떠나게 되었을 때, 가족과 같던 종업원분들이 보여주던 그 눈빛이었다. 너의 안녕과 미래를 기원하고, 걱정하는 그런 눈빛이었다. 그래서 다시 눈에서,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이 주는 정 때문에.

그간의 서러움이, 그 눈물에 섞여 조금씩 흩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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