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458화 (458/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458화

458화. 왕관의 무게와 책임(23)

돈의 위력.

강한결은 새삼 돈의 위력을 실감했다. 고작 하루였다. 의뢰를 넣고 고작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벌써 범인으로 예상되는 이들의 뒷모습 사진을 손에 넣었고, 다시 하루가 지났을 때, 가짜 범인을 세운 브로커를 잡았다는 연락이 왔다.

마녀 탐정 사무소.

스스로를 후미코라 소개한 여성은 브로커를 잡았으니, 만나자고 연락을 해왔다.

-저는 확신합니다만, 또 모르는 법이니까요? 참인지 거짓인지는 의뢰인께서 확인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후미코란 여성의 말에 강한결은 잠시 고민했다.

만나는 거야 어렵지 않았다. 도쿄에서 잡았다고 했지만, 이곳으로 데리고 오겠다는 말을 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리는 문제가 아니었다. 만나는 건 어렵지 않으나, 만나기 곤란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은 연예인이었다. 그리고 셀럽이기도 했다.

한일 양국은 물론 아시아 전체에 자신을 모르는 사람이 드물고, 세계로 따져도 자신의 인지도는 낮지 않았다. 적당히 관리하는 SNS 팔로워 수도 수고, 올림픽 금메달 이후 스포츠를 즐기는 이들이 대대적으로 몰려들어 적지 않은 팬덤이 형성되어 있었다.

거기에 더해, 자신은 지금도 세계 전체에서 가장 높은 수의 기사를 생산 중인 강지영의 친구였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얼굴이 알려지는 건 곤란해진다. 직접 만나는 게 기사로도 나간다면, 이는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었다. 그런 사진이 있는 기사와 있지 않은 기사의 차이는 당연히 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활동의 본진이라 할 수 있는 한국의 국민은 남의 뒤를, 혹은 내 뒤를 캐는 것에 대해 상당히 거부감이 있었다. 흥신소가 불법인 이유고, 흥신소를 좀 경멸하는 이유도 그래서였다.

이런 인과를 생각하면, 만나지 않는 게 맞다.

하지만 좀 전에 후미코란 여자가 한 말도 맞았다. 정보의 진실을 파악하는 건 어디까지나 강한결 본인이어야 했다. 저 사람이 증거를 내밀어도, 그게 진짜라는 보증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니 직접 보고, 직접 판단해야 했다. 이건 꼭 필요한 확인 작업이었다.

그래서 잠시 고민 끝에.

“그러도록 하죠. 도쿄는 멀어서 안 되고, 교토에 조용한 장소를 정해주세요.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후후, 잘 생각했어요. 장소는 10분 안에 보내겠습니다. 아, 걱정하지 말아요. 저는 이 정보의 진위를 확인하는 것 외엔 어떤 관심도 없으니까요.

그렇게 말했지만, 강한결은 말한 당사자도 사실 그렇게 믿기 힘들 거란 기색을 느꼈다. 말하지 않느니만 못한 말. 하지만 강한결은 그래도 믿기로 했다. 전화를 끊은 강한결은 임효중을 불렀다.

“어, 왜?”

“나 누구 좀 만나고 올게. 너는 성진이랑 여기 지키고 있어. 할 수 있지?”

“누구? 탐정?”

“응, 정보 확인해야지.”

“정보? 헐, 벌써 알아냈대?”

“그런 것 같더라.”

“와…….”

임효중은 진심으로 감탄했는지, 선한 얼굴에 정말 놀란 기색이 담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건 강한결도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돈지랄로 경쟁을 붙이면서도, 그래도 일주일은 걸릴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고작 이틀이다.

의뢰를 넣고 하루 만에 사진을 받았다. 그때 강한결은 이 사진의 진위를 파악하지도 않고 그냥 오백만 엔을 입금했다. 미련한 짓인데, 왜 그랬냐고? 그래야 경쟁에 불이 붙을 것 같아서였다.

솔직히 그 사진의 진위 여부를 파악하는 건 어려웠다.

그래서 대신 오천만 원을 날린다는 각오를 하고, 돈을 지불한 다음 그 사진을 다른 선수들에게 보냈다. 계좌 이체한 사진도 캡처하고, 수령자는 모자이크 처리한 다음에. 이는 선수들의 경쟁 심리를 자극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해서 이 악물고 사건을 처리하려 달려들어 주면 그걸로 족할 것 같아서였다.

애초에 이번 사건은 돈지랄로 해결하기로 마음먹은 마당이었다.

그래서 소속사는 일본에서 가장 비싼 로펌인 니시노 하루히와 계약했고, 자신은 임은진에게 부탁해 돈이면 무슨 일이든 해주는 탐정 사무소를 소개받아 고용했다. 착수금까지 생각하면 벌써 수천만 원이 깨진 상태였다. 여기서 돈이 아까워 일을 지지부진하게 처리한다? 그건 오히려 이 일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그가 생각하기에 이 일은 길게 끌고 가면 반드시 범인은 꼬리를 감출 것 같았다. 그러니 어? 어떡하지? 아아, 이거 걸리는 거 아니야? 이런 심리상태일 때 빠르게 잡아채서 수갑을 채우는 게 최선 같았다.

그래서 시작한 돈지랄인데…… 효과가 죽였다.

고작 이틀 만에 진범 말고, 진범을 추정할 수 있는 증거에 걸어둔 포상금의 주인이 나타났다. 아직은 주장이지만, 강한결은 어째 돈만 노리고 쇼를 하는 것 같진 않았다. 일단 일본의 사정을 정말 잘 아는 임은진이 한 번의 실수 후, 정말 고심 끝에 보낸 업체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래서 믿음이 있었다.

절대로 거짓 증거, 조작 증거를 가지고 오진 않을 거란.

그런데 그걸 따져도 이건 너무 빨랐다.

고작 이틀 만에 이 정도 증거가 나온다는 게, 믿기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강한결은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진범이 너무 조급하게 움직인 거지. 그래서 증거를 못 지운 거야.”

“그러네. 그리고 거기에 더해 우리가 너무 빨리 움직인 거고.”

“응. 아마 이렇게 움직일 거란 계산은 못 했을걸? 세상 편하게 살아온 놈들이잖아. 그러니 대낮에 그런 미친 짓을 저지른 거지.”

“후우. 레미에게는 안타까운 일이네. 그러면서도…… 잘된 일이고.”

“…….”

임효중의 말에 강한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생각이 없는 쓰레기들에게…… 걸린 거다. 이건 곧, 조금만 조심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는 뜻도 됐다. 그래서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반대로 이런 머저리 새끼들이기 때문에 억울함의 끝은 보지 않아도 될 상황이다. 이 나라가 어느 정도로 썩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강한결은 사회적으로는 확실하게 파멸시켜 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건 자신이 아닌, 니시노 하루히와 이 나라의 탐정들이 알아서 해줄 것이다. 레미가 바라는 것도 딱 그 정도다.

진범이 잊히지 않는 것.

진범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

모두가 진범을 아는 것.

그렇게 됨으로써, 자신이 끼를 부려 화를 자초한 게 아니라는 것을, 만천하에 알리는 것.

레미의 목적은 그거였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

‘비난받을 용기를 냈지. 아, 내가 너무 안일했구나.’

강한결은 그걸 깨달으며, 반성했다.

이걸 깨닫자, 얼굴이 드러나는 것을 걱정했던 자기 자신이 순간적으로 미워질 정도였다. 그리고 침착함에 있어서는 지영이나 자기 자신과 비교해도 조금도 부족하지 않은 임효중도 상당히 진지한 얼굴이었다.

“얼굴을 드러내는 일은…… 감수해야겠네.”

역시, 이 친구와는 이래서 대화하기가 편하다. 하나를 보는 눈이, 같이 해서 그런지 자신과 상당히 비슷했기 때문이다.

“맞아. 나도 처음엔 지영이 이름 때문에 좀 꺼려졌는데, 레미 생각하니까 마음이 변했어. 미움받을 용기와 비난받을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야.”

“우리가 욕을 먹더라도 사건을 빠르게 해결해야 한다, 이 말이지?”

“그렇지.”

상대는 이 나라 권력자의 자식일 가능성이 지극히 컸다. 이런 상황에 그 용기가 나지 않아 시간을 끄는 것은 정말 하책이었다.

“맞네. 돈은 돈대로 쓰고, 권력? 그런 것에 막혀 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얻지 못할 수도 있어.”

“그러니까. 그래서 오늘부터 난 전면에 나설 생각이야. 니시노 하루히에게만 맡기지 않을 거고, 정보 공개도 대놓고 할 생각이고.”

“근데 그걸 이 나라 언론이 받아들일까?”

“이 나라 언론은 니시노 하루히에 맡기면 돼. 우린 우리대로 좋은 쪽이 있잖아?”

“응? 아, 해외 언론?”

“응. 거기 플러스 SNS. 지금 우리 사건, 외신도 꽤 주목하는 모양이더라고.”

“좋네. 이용할 수 있는 건 다 이용해야지.”

그렇게 말하며 씩 웃는 임효중.

강한결도 그런 임효중과 비슷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 뭔가, 악당 된 거 같은데?”

“된 거 같긴? 우린 제대로 움직였을 때부터 이미 악당이었어. 세계관을 파괴하는.”

“하하, 하긴.”

아마 이를 갈았을 것이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황금세대. 그 시작은 유도판이었다. 이미 고등부 전체를 압살하고, 전지훈련을 통해 검증해 본바, 대학부 에이스들도 털어버리는 압도적인 실력을 지녔음에도 세계무대는 도전하지 않았던 천재들은, 일련의 사건을 겪은 이후 성인 무대에 데뷔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가히 압도적인 전적을 자랑하는 금자탑을 쌓았다.

초기에 이성진이 당한 카운터 1패, 그리고 더러운 공작으로 인한 기권패 하나를 제외하면 모조리 승리다. 거기엔 아시아 선수권과 올림픽이 있었고, 그랜드 슬램에 필요한 세계 선수권과 아시안 게임을 제외하면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사실 이런 황금세대의 행보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국의 유도 관계자들도 황금세대가 차세대 국가대표 유망주란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이미 고등부 전체를 씹어 드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인 무대 데뷔 후, 이렇게까지 생태계를 파괴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원망을 많이 받았다.

스포츠는 경쟁이다. 경쟁에서 재미가 나오고, 그 재미로 인해 돈이 흐른다. 유도는 비인기 종목에 가까워 그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같이 유도를 하는 이들의 의지마저 꺾는 건 문제가 된다.

10개의 팀이 있는데, 3개의 팀이 너무 압도적이라 지들끼리 1등부터 3등까지 다 한다고 치자. 어떻게 해도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 느낄 정도의 실력 차가 난다고 선수가 느끼기 시작하면, 거기서부터 의지는 급감하게 된다.

전부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최소 삼분에 일은 그렇게 될 것이다.

스포츠를 포함한 모든 경쟁에는 의지가 필수다. 목표로 삼은 선수를 넘어선다는 의지. 그러나 거기에 거대한 벽이 있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넘을 수 없을 정도의 차이를 인지하면? 의지는 나락으로 처박힌다.

당장 한국 유도계가 그랬다.

황금세대의 등장 이후, 그 압도적인 실력에 절망한 선수들의 은퇴 러시가 줄을 이었었다. 20대 중후반의 선수 중 상당수가 은퇴했고, 황금세대와 동시대를 사는 선수들은 더 많이 은퇴했다. 그게 이해가 가는 것도, 축구처럼 리그가 있는 경기가 아니다. 소수의 선수만이 실업팀에 픽업 되는데, 고작 그것만 노리고 운동을 계속하기엔 동기가 약하다. 그러니 목표는 국가대표로 잡아야 한다. 그런데 그게 불가능한 거라, 그냥 결정되어 버렸다면? 여기서 의지가 꺼지는 거다.

천재의 등장은, 이런 안 좋은 영향도 끼친다.

그리고 그런 생태계 교란종은 결국 욕을 얻어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국민이야 황금세대에게 환호해도, 유도계 전체로 보면 그렇게 좋은 평을 얻긴 힘들었다. 오히려 악명이 더 높았다.

시기와 질투.

스포츠계 공기에 타고 도는 이 기운 때문이었다. 그래서 황금세대는 이런 일에 익숙했다. 애초에 언론과도 척지며 곤란한 적이 한두 번도 아니었다. 비난? 그것도 어차피 일상까진 아니어도, 매우 익숙했다. 그런데 일본에서의 비난? 그건 그냥 무시해도 된다.

각오가 서자, 마음이 편해졌다.

잠시 뒤, 숙소에서 씻고 옷을 갈아입고 온 이성진과 황석이 돌아왔다. 강한결은 둘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레미와 이치카 씨에게도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한 두 사람을 두고, 임효중과 함께 집을 나섰다. 원래는 황석과 가려고 했는데, 황석은 일본어가 되지 않아 이성진과 함께 집에 남겼다. 집을 나선 강한결은 니시노 하루히가 고용한 가드의 도움을 받아 기자와 시위대를 뚫고 목적지로 향했다. 물론 기자가 따라붙었다. 하지만 가드들은 능숙하게 기자의 추적을 따돌리고, 목적지로 이동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길가에 덩그러니 혼자 서 있는 올드한 느낌의 찻집이 보였다. 마치 초가집을 연상케 하는 찻집이었다.

딸랑.

풍경소리를 뒤로하고 임효중, 그리고 가드 한 명과 함께 찻집으로 들어가자 찻집에는 딱 한 명만 있었다. 깔끔한 정장 차림에, 나이를 짐작하기 힘든 여인 한 명. 그 여인이 자신에게 전화를 건 후미코라는 것은 굳이 고민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으음.”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의 향을 음미하던 그녀는 짧게 한 모금 마시고 눈을 떴다. 새까만, 흑요석처럼 빛나는 눈빛. 단지 눈을 떴을 뿐인데 깊이를 가늠하기 힘든 아우라가 환상처럼 퍼져 나왔다. 한 분야의 대가에 이른 장세리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아우라였다.

그런 그녀가 일어났다.

그녀가 일어나는 순간 강한결이 받은 느낌은, ‘위압’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