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457화
457화. 왕관의 무게와 책임(22)
“음?”
분명 살롱은 5층인데, 엘리베이터는 4층까지가 전부다. 5층까지는 직접적으로 운행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는, 그만큼 은밀하다는 뜻이다. 이것만 봐도 이곳이 그리 제대로 된 곳은 아니라는 감이 팍 왔다.
하지만 올라가면 된다.
5층은 존재하고, 4층에서 분명 어딘가로 올라갈 수 있을 테니까. 4층에 도착해 문이 열리자 앞에 떡대 둘이 서 있는 게 보였다. 그런데 살만 찌운 게 아니라 제대로 운동한 게 분명한 덩치다. 거기에 얼굴에 깊은 칼자국과 화상 흉터가 각각 있어서 길 가다 마주치면 일반인은 열이면 열 고개를 푹 숙일 게 분명할 만큼 험악했다.
“형님께 연락받았습니다. 모시겠습니다.”
꾸벅.
그러나 그런 야쿠자 둘은 후미코에게 굉장히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까지 하고, 안내하겠다고 밝혔다. 신기했다. 얼굴과 몸 전체에서 천하의 개쓰레기가 분명한 야쿠자 냄새가 진동하는데, 눈빛은 또 이상하게 맑다.
아까 마른 멸치와는 질이 달랐다.
그놈은 독기를 줄줄 흘렸지만, 딱 그 정도였다. 동네 양아치. 인생의 밑바닥에서 살아남았지만, 그래봐야 거기서 거기인 놈. 그런 놈한테는 막 경찰이 된 애기들이나 움찔하지, 짬이 삼사 년만 돼도 웃으면서 싸대기를 갈길 수 있다. 그러나 이놈들은 아니었다. 겐조가 직접 관리하는 조직원들 특징이기도 했다.
5층의 입구는 그냥 문이었다. 열자 회전계단이 나왔다. 그리고 여기부터 고급 인테리어가 시작됐다.
계단을 올라가자, 옷을 멋지게 빼입은 버틀러가 나와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성별은 여성이었다. 30대 초중반. 제대로 교육을 받은 게 분명한 느낌이 팍팍 났다. 그녀는 후미코를 보더니 부드럽게 웃었다.
“겐조 상에서 연락받았습니다. 오늘 안내를 책임질 안입니다.”
“어머, 그러니. 후후, 그래. 그럼 부탁하자꾸나.”
“네, 후미코 님.”
이름도 미리 언질을 받은 것 같았다. 이제 자기가 하는 행사는 마녀 후미코의 행사가 된다. 아까 통화한 겐조는 오늘 이곳에 마녀를 각인시킬 생각이었다. 분명 소란은 벌어진다. 그리고 그 소란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이미 충분히 예상했으니, 야쿠자 계에 전설로만 떠도는 마녀의 이야기를 이곳에 강림시켜, 경계와 경고를 동시에 하겠다는 뜻이었다.
나름 머리를 굴린 겐조의 행동에 후미코는 그저 후후, 웃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정말로 돈을 처바른 게 대놓고 티가 나는 공간이 나왔다. 크게 넓지는 않았다. 하지만 은은한 조명에 곳곳에 설치된 공기청정기 덕분에 곳곳에서 담배를 태우는 게 보이는데도 오히려 향긋한 냄새가 났다.
“킁, 킁.”
후미코는 집사 안을 따라가며 공간의 냄새를 맡았다.
대마 특유의 냄새는 없었다. 미리 정리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겐조는 마약을 굴리진 않는다. 물론 야쿠자가 마약에 손을 안 댄다는 얘기는 지나가는 개새끼도 믿지 않는다. 그냥 그건 야마구치구미에서도 다른 계열에서 하는 일이다. 겐조는 이런 쪽으로 고급 살롱을 관리할 뿐이고.
사교장이면서 어떤 은밀한 대화가 오가는 곳.
안은 후미코를 비어 있는 자리로 안내했다. 자리에 앉은 후미코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 안에게 말했다.
“닷사이 있니?”
“물론입니다. 어떤 걸로 드릴까요?”
“23으로 주렴.”
“예.”
안이 물러갔다.
후미코는 그사이 주변을 다시 둘러봤다. 살롱 안에 있는 사람은 10명 정도. 그중 넷은 아주 젊은 여성들이었다. 앉아 있는 모양새와 표정 등을 보면 잘 쳐줘야 접대부였다. 그렇게 말하면 거품을 물겠지만, 고용된 아가씨다. 몸을 팔지 안 팔지는 몰라도, 적어도 미소는 파는 사람들이다.
진짜 있는 아가씨들은 애초에 저렇게 달라붙어서 아양과 교태를 부리지도 않는다.
‘세상 도도하게 앉아서, 오히려 사내의 추파를 비웃지.’
그럼 다른 쪽은?
비즈니스를 하러 온 사람들이다.
진지한 표정과 눈앞의 상대를 가늠하느라 머리가 팽팽 도는 게 그냥 봐도 느껴진다. 이러한 곳을 보면서 후미코는 깨달았다.
“여기가 전부는 아니겠네.”
너무 평범했다.
이 정도는 긴자에 가도 널리고 널렸다. 조직 자체에서 운영하는, 간판까지 내리고 영업하는 것치곤 지나치게 평범했다. 어떤 퇴폐적인 느낌도 없고, 그렇다고 비즈니스 사교를 위한 공간도 아니었다. 이것저것 섞어놓은 잡탕? 인테리어가 고급이라고 모두 고급 살롱이 되는 건 아니다.
특별한, 이곳을 찾는 이들의 기대감을 맞춰줄 뭔가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선 그런 게 보이지 않았다.
그때, 허락받지 않은 사내가 앞에 앉았다.
마중을 나왔던 덩치 둘은 그 사내를 제지하지 않았다.
“흠, 처음 보는 얼굴인데? 누님은 뉘슈?”
20대 후반? 많으면 30대 초반. 건너편 테이블에서 옆에 앉은 아가씨를 주무르던 놈이다.
고급 시계, 구두, 정장을 걸친 놈이다. 대충 봐도 수백만 엔은 호가하는 명품들. 그러니 있는 집 자식이다. 좀 전까지 같이 있던 작부가 불편한 시선으로 자기를 노려보는 걸 본 후미코는 빙긋 웃었다.
“후후, 아줌마라 부르지 않은 건 고맙구나. 그런데 내 이름을 알고 싶으면, 네 소개부터 하는 게 먼저 아니겠니? 그 정도 예의는 배웠잖니.”
“아? 하하! 이거 웃기는 아줌마네? 여기서 나이 따지시게? 이봐? 뭐야! 여기 회원 관리를 뭐 이렇게 해!”
근처에 서 있던 덩치는 철없는 애송이의 말에 아예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교육을 잘 받았구나란 생각과 함께, 이 아이가 지금 자기 무덤을 파고 있다는 걸 알기는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저런 눈빛을 한 놈들과 아주 거칠게 푸닥거리를 한 적이 많았다.
눈에 안광이 번뜩이는 놈들보다 저렇게 착 가라앉아 있는 것들이 수십 배는 무섭다. 왜? 산전수전 다 겪으며,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분명, 살인까지 가봤을 놈들. 그러나 저 애송이는 그걸 모른다.
상대할 가치가 없는 놈이다.
“누님은 지금 바쁘니까, 가서 네 파트너랑 놀지 않겠니?”
“뭐? 이게 진……!”
손님.
어느새 다가와 목소리를 착 까는 덩치.
“이곳에서 소란은 금지입니다. 회칙 위반 시의 페널티를 알고 계신다면, 여기서 멈추기를 권고드립니다.”
말투는 정중한데, 내용은 별로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페널티가 제법 센지, 사내는 움찔하더니 이를 뿌득 갈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페널티가 뭔지 모르지만, 아마 술기운이 올라와 개념을 말아먹었는데도 정신이 도로 돌아오게 하는 걸 보면, 강력한 제재가 뒤따른다고 봐야 할 것 같았다.
잠시 뒤, 안이 주문한 술을 가져왔다.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안주도 몇 개 가져와 입이 심심하진 않았다. 그런 후미코를 가만히 ‘감시’하는 덩치 둘. 후미코는 딱 세잔만 마시고 덩치들을 불렀다. 잠시 눈치를 보던 두 사람이 다가왔다.
“않으렴.”
“…….”
너무나 자연스러운 하대에 두 사람이 서로 잠시 눈치를 보다가 앞에 앉자, 후미코는 술병을 들었다. 그러자 안이 잽싸게 잔 두 개를 더 가져왔다. 쪼르륵, 쪼르륵. 두 사람의 잔에 가득 잔을 따라준 후미코는 병을 내려놓으며 말문을 열었다.
“겐조를 따르고 있니?”
“……그렇습니다.”
“그래. 그럼 내 얘기는 들었겠구나?”
“위명과 악명이 자자하다 하셨습니다.”
둘 중 칼자국의 말에, 후미코는 가볍게 웃었다. 겐조는 사람을 잘 본다. 아무래도 활동 영역이 영역이다 보니까 돌아다니다 보면 가끔 겐조를 볼 때도 있었다. 그때 같이 움직이는 애들을 보면 적어도 그 바닥의 악의에 잔뜩 찌든 느낌은 아니었다. 진짜 진성 야쿠자는 그냥 존재 자체가 민폐다. 법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어서 시민 위협은 그냥 애교다.
진짜 진성 야쿠자는 무법자처럼 군다.
그래도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는 건, 보복이 두려워서다. 그냥 협박이 아니라, 진짜 실체가 있는 보복이라 야쿠자의 패악질은 이 악물고 견뎌야 한다. 그래서 이런 놈들은 엮이지만 않으면 별 관심이 없는 후미코도 싹 잡아넣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그러나 앞에 둘은 그런 놈들과 질적으로 달랐다.
낭만 건달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정도가 있는 놈들.
물론 그래봐야 지들만의 정도겠지만.
“그럼 얘기가 쉽겠네. 나는 여기를 뒤집으러 온 건 아니야. 하나. 다케시 그 아이만 넘겨줬으면 해. 원하는 얘기만 들으면, 조용히 나갈게.”
싱긋 웃으며 나온 마녀의 말에, 둘은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겐조가 미리 전달했을 것이다. 게다가 딴 주머니를 차고 있어서 어차피 손봐줘야 하는 대상이 된 상태이기도 하고.
“데리고 오겠습니다.”
“그래. 고맙구나.”
푸근한 마녀의 말에 칼자국은 크게 동요 없이 일어나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뒤, 다케시와 함께 나왔다. 냉혈한. 혈관에 푸른 피가 도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진짜 싸늘한 인상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속도 겉과 같은지는 일단 좀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이 여자야?”
“네.”
힐끔 후미코를 본 냉혈한 다케시가 앞에 앉았다.
다케시를 보는 순간, 마녀의 육감이 발동했다. 그녀도 설명할 수 없는 능력이다. 보는 순간, 정말 딱 보는 순간 느낌이 왔다. 이놈이다. 그냥 설명할 수도 없는 이 직감을 이제 그녀는 확고하게 믿는다.
‘하지만 그래도 확인 작업은 거쳐야 하니까.’
씩 웃은 후미코가 푸근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려는 찰나.
“뭐야, 당신. 나 알아? 처음 보는 얼굴인데?”
“맞아. 처음 보는 거란다. 우리는. 하지만 궁금한 게 있어서 찾아왔어. 마른 멸치. 네가 중개해 줬지?”
“마른 멸…… 이런! 썅!”
욕을 내뱉는 순간, 이미 확인이 끝난 후미코가 움직였다.
어느새 뻗었는지 모를 손이 냉혈한의 머리를 깊게 잡았고, 그대로 아래로 찍어 눌렀다.
쾅!
원목 테이블이라 깨지진 않았다. 대신 소리가 매우 크게 났다.
“큭……! 칙쇼!”
욕지기를 내뱉더니 주머니를 뒤지는 냉혈한. 후미코는 그냥 싱긋 웃었다. 휘이익! 머리를 놓는 순간 그 위로 칼이 쭉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고개를 드는 냉혈한의 뺨을.
쫘-악!
후미코의 손바닥이 후려치고 지나갔다. 컥! 고개가 홱 젖혀지며 단방에 눈빛이 풀렸다. 마녀의 근력은 웬만한 성인에 버금간다. 그런데 그걸 배구에서 스파이크를 때릴 때처럼 휘둘렀으니, 건장한 성인의 정신도 아득해지는 게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역시 한방으로 기절시키는 건 무리다. 소파 등에 부딪혔다가 다시 튕겨 나올 때쯤 정신을 차린 냉혈한. 놈의 눈빛에 시퍼런 살기가 스며들었다. 독한 눈빛이었다. 사람의 목숨은 아랑곳하지 않는 비정한 눈빛이었다. 이런 눈빛? 그녀는 정말이지…… 질리게 보았다. 그녀가 잡았던 연쇄살인범들은 거의 저런 눈빛이었다.
타인의 아픔과 고통에 아주 조금도 공감하지 못하는 소시오패스가 보통 저런 눈빛이다. 그래서 마녀의 눈빛에 처음으로 차가운 기운이 스며 들어갔다.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는. 그런 상태로 전환되는 순간 놈이 몸을 앞으로 날렸다. 대놓고 달려들어 힘으로 찍어누르겠다는 뜻. 하지만 그건 매우 무모한 행동이었다.
경시청 형사들, SP의 실전 무술 전문가들, 자위대의 특수부대와도 팽팽한 접전을 치르는 그녀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일하는 인텔리전트가 아니라, 현장을 직접 뛰는 행동파였다. 정신 차리고 처음 싸대기 한 방에 얼마만큼의 힘이 실렸는지 몸소 겪었다면, 다른 것도 잘한다고 봐야 했다. 하지만 딱 봐도 이놈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옆의 칼자국과 화상 자국과는 결이 다른, 두뇌파 쪽이다.
이걸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은.
처맞아도 할 말이 없다는 뜻이었다.
물론, 그녀 기준에서.
덮쳐오는 놈의 멱살을 잡아 휙 돌렸다. 붕 떠 있던 몸이 여자치고는 너무나 센 힘에 홱 돌아서, 그녀의 옆으로 홱 끌려왔다. 그사이 몸을 반쯤 세운 마녀의 주먹이 날았다.
빠악!
빡!
턱에 딱 두 방.
냉혈한의 동공이 풀리기에는 차다 못해 넘쳤다.
눈빛이 풀려 소파에 털썩 널브러진 냉혈한을 잠시 보던, 후미코는 몸을 돌려 칼자국과 화상 자국을 향해 세상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디, 조용한 곳 있니?”
“……안내하겠습니다.”
“고맙구나. 아, 재도 좀 들어주렴.”
“……예.”
냉혈한은 화상 자국에게 옥상으로 끌려갔고, 1시간 뒤 마녀는 홀가분한 표정으로 살롱을 떠났다. 그리고 그날 자정이 되기 10분 전. 3과 7의 보너스 스테이지가 종료됐다.
고작, 하루 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