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431화
431화. 마지막, 재(22)
한국에 첫눈이 내렸다.
11월 중순, 이른 첫눈이었다.
첫눈은 사람을 들뜨게 한다. 여기에 여러 가지 연예계 소식이 강타하면서, 사람들은 더욱 기대감에 휩싸였다.
나의 무사님 시즌3의 메이킹 필름이 풀린 것과 캐릭터 예고편이 줄줄이 풀리면서 기대감이 점차 증폭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을 기자들이 그냥 두고 볼 리가 없었다.
기자들은 즉시 영상을 토대로 기사를 작성했고, 게시판이 나의 무사님 기사로 도배되기 시작하자 팬카페에도 사람들이 몰려들어 작품에 관한 얘기로 이야기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들이 당연히 다시 2차 기사로 나갔다.
그런 판에 1, 2화가 내부 시사회를 앞두고 있다는 소식에 팬들의 기대감은 더욱 증폭됐다.
그렇게 한껏 올라온 기대심에, 공식 방영 일자 또한 정해졌다.
12월 첫 주의 금요일과 토요일이었다.
이제 2주가 좀 더 남은 상황. 팬들의 기대심은 가히 폭발 직전까지 올라갔다.
제작사와 방송사는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인간들이 아니었다. 따로 30분 분량의 특집을 편성해 배우들의 인터뷰와 촬영 영상을 부족하지 않은 선에서 선보이며, 기대감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런 특집에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건 포드였다.
포드의 대대적인 후원.
포드가 이번 작품에 어느 정도로 신경 써서 후원했는지, 그게 알려지면서 자연스럽게 가장 큰 마케팅 효과를 봤다.
특히 미군이 쓰는 방한 내복과 방한 슈트, 신발 등의 지원은 아주 당연히 큰 이슈를 끌었다.
성인이 된 순간부터 근 2년을 의무 복무해야 하는 한국의 특성상, 미군의 장비는 당연히 이슈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은 사계절이 매우 뚜렷하지만, 경기도 북쪽과 강원도 북쪽은 당연히 더럽게 추웠다. 지금도 심심찮게 동상에 걸려 의가사 제대에 관한 기사가 나올 정도로 열악한 게 한국의 군대였다.
미군은 저런 최신 장비를 쓰는데, 한국은 뭐하냐는 성토가 이어졌고, 국회와 군대에 불똥이 튀었다.
기술력 문제?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예산 문제?
그건 있을 수 없었다.
대한민국은 나라 면적에 비해 압도적인 군비를 쓰는 나라다. 그런데 그런 나라에서 군비가 부족해서 전방의 혹독한 추위에 시달리는 장병에게 장비 지원을 하는 게 불가능하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장관이 이 문제 때문에 괜히 나서서 예산이 부족해서 힘들다는 얘기를 했다가 미치도록 까였고, 다음 대선이고 총선이고 이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면 무조건 당선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엉뚱한 곳으로 불이 튀어 난장판이 됐지만, 그쪽이 그렇게 되건 말건 나의 무사님에 관한 기대는 더욱더 높아져만 갔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 미국발 기사 하나가 다시 한국을 강타했다.
속보)- 오스카 감독상 수상자 다니엘 화이트! 지영과 만났다?
속보)- 다니엘 화이트 감독! 레인 스튜디오와 계약!
속보)- 레인 스튜디오! 무신 척위준 프리 프로덕션 돌입 SNS로 공식 발표!
속보)- 강지영이 무신 척위준? 드디어 한국산 히어로 탄생하나!
속보)- 레인 스튜디오의 무신 척위준! 단행본 매진! 한국 팬이 집단 구매! 증판 예매도 5차까지 완판!
레인 스튜디오와 다니엘 화이트의 SNS를 통해, 강지영이 무신 척위준 연출을 맡은 다니엘 화이트 감독과 만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국의 팬들은 정말 난리가 났다. 그간 한국 배우가 히어로 작품에 출연한 전적이 없는 건 아니었다.
미블 스튜디오의 어벤져스에도 한국인 배우가 출연했고, 캐릭터를 구축해 차기작에도 틈틈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조연이었지, 주연은 아니었다.
단독 주연?
주인공의 동료로 나간 적은 있다. 빌런으로 출연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단독 주연은 없었다. 메인 히어로. 독립 시리즈이긴 하지만, 당연히 메인 시리즈에도 출연한다. 어떻게? 미블의 마법사 캐릭터가 구축하는 세계관과 비슷한 방식을 통해서다.
평행세계.
그걸 통해 무신 척위준도 메인 시나리오에 이미 등장한 상태였다. 물론 코믹스에서 말이다. 이 때문에, 국산 히어로가 나오냐는 기대심리가 어마어마하게 따라붙었다.
-대박이다, 진짜……. 한국 배우가 메인 히어로라니 와, 와아…….
-근데 찰떡이지 않나요? 무신 척위준 보면 지금 재 캐릭터와 조금 비슷하잖아요? 다른 게 있다면 싸우는 방법? 그 차이고.
-ㅇㅇ 척위준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히어로가 되는 케이스고, 재는 그냥 그런 게 아무것도 없는 현실 싸움 위주이니 차이점이 있긴 한데, 캐릭터 외형 자체는 일단 싱크로가 대박 높아 보임요.
-더 중요한 건 연출이 다니엘 화이트임. 디렉팅의 마법사란 별명이 있을 정도로 캐릭터 하나는 기가 막히게 뽑는 양반임.
-맞아요. 그런 감독이 척위준을 연출한다? 진짜 미친 작품이 나올 듯 ㅎㅎ
-ㅋㅋ일본 벌써 난리났음요 ㅋㅋㅋㅋ
-그 새끼들은 왜? 아아, 731부대?
-네 ㅋㅋ 설정 자체가 척위준의 조부가 독립운동하다가 731부대에 끌려가고, 거기서 유전자 조작을 통해 히어로 첫 세대가 된다는 게 프롤 내용이잖아요? 그러니 당연히 731이 나오는데 이게 또 일본 애들 발작 버튼 거하게 누름 ㅋㅋ
-개X끼들ㅋㅋㅋㅋㅋ 이번에 어디 세계적으로 까여봐라 ㅋㅋ
-근데 님들, 접촉만 한 거 아님? 계약했다는 내용은 없는데?
-원래 처음엔 그렇게 시작하는 거임. 레인 스튜디오가 살짝 강지영 압박할 생각인 것도 같고.
-어, 그건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닌데? 우리 지영이는 그런 외압 진짜 극혐하잖아요.
-그렇긴 하네요. 음, 이건 좀 걱정되는데요? 지영이 또 빡쳐서 날려버리면 어떡하지?
팬들은 지영의 성향을 당연히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억압이란 것 자체를 극도로 싫어해서, 그렇게 압박해오면 반드시 계약을 박살 내버리고도 남는 게 그들이 아는 강지영이란 인간이었다. 그래서 첫 국산 히어로가 나올 기회가 날아가는 상황을 팬들은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엌ㅋㅋㅋ 다니엘 화이트 공식 성명 또 발표함 ㅋㅋ
-뭐라고요?
-지영이 아니면 척위준 안 찍는대요 ㅋㅋ 자기 머릿속엔 척위준은 오로지 지영이다! 이러면서요 ㅋㅋ
-헐ㅋㅋㅋㅋ 진짜요?
-네. 아예 인터뷰 영상이에요 ㅋㅋ 척위준 지영이 고사하면 다른 배우한테는 스크립트 보낼 생각조차 없대요 ㅋㅋ
-대박 러브콜이네요 ㅎㅎ
-크, 헐리웃에서도 인정받는 우리 지영이 ㅠㅠ 우리 지영이 이제 진짜 꽃길만 걷자! ㅎㅎ
-와…… 지영이 몸값 추정 기사 떴는데, 천억…….
-헐…….
-어, 얼마요?
-천억이요…….
-미친……. 지영이 그 정도는 안 된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만큼 레인 스튜디오가 진심이란 소리겠죠? 와, 근데 천억이라니…… 이건 진짜 생각도 못했네요 ㄷㄷ
-아연맨 아재가 1500억까지 찍지 않았어요? 그거에 비하면 그래도 적긴 한데?
-아이고 님아 ㅋㅋ 지영이는 헐리웃에서 커리어가 없잖아요ㅋㅋ 아연맨 아재는 미블 스튜디오를 아예 먹여 살렸고.
-맞아요. 심지어 동양인임. 아무리 요즘 대세가 위아더월드라고 해도, 아직 동양인 편견은 있어요 ㅎㅎ
-임윤옥 선생님이 오스카 조연상 타시고 나서도 크게 개선되진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아직 그쪽은 동양 배우한테 짜요.
-그런데 1000억임. 무려…… 100,000,000,000…….
-돌았네 진짜 ㄷㄷ
-그만큼 우리 지영이가 대단하단 뜻이죠!
-아닠ㅋㅋ 그건 알죠ㅋㅋ 여기서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요 ㅎㅎ 근데 그냥 너무 놀랍고, 뭐랄까…… 아! 실감이 안 나서 그래요 ㅋㅋ
-지영이는 그 돈으로 뭐할까요? 만약 받으면?
-후원 재단에 때려 박는다에 한 표…….
-ㅇㅇ 저도 그럴 것 같음……. 애가 물욕이 없잖아요.
-이미 부자기도 하고요…….
-진짜, 역사에서나 볼 캐릭터…….
-ㅎㅎ 지영이가 꼭 했으면 좋겠네요 ㅎㅎ
기대심이 폭발했다.
나의 무사님도 나의 무사님이지만, 레인 스튜디오의 작품에 합류한다는 소식에 팬들의 기대감이 더욱더 증폭되기 시작했다.
거기에 몸값 추정이 무려 천억이다.
이건 추정이다.
그런데 레인 스튜디오 내부에서 나온 정보라는 꼬리표가 붙어서, 거의 기정사실이 됐다. 그리고 이는 거의 세계적으로 이슈를 끌었다.
그리고 당연히 이런 소식은, 앵커리지에 있는 나의 무사님 세트장도 강타했다.
* * *
기사가 났다는 소식에 지영은 임은진에게 태블릿을 받아 전문을 확인하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레인이 작정했나 본데?”
“그러게요. 이거 종종 한국에서도 쓰이는 방법이죠?”
“응, 먼저 침 발라놓는 것도 있고, 언론 플레이로 압박하는 거기도 하고. 웬만한 탑에겐 안 먹히지만 애매한 배우들은 이런 식으로 먼저 던져버리면 답 없지. 까면 욕은 욕대로 먹고, 또 대차게 찍힐 테니까.”
“……좋은 건 아니네요, 그럼?”
“그렇게만 보기도 힘든 게, 그만큼 진심이란 뜻이기도 한 거야. 미국은 이런 마음을 드러내는 데 솔직한 동네잖아? 그러니 나는 이만큼 진심이다. 이렇게 생각해도 돼.”
“음…….”
지영은 그때 만났던 다니엘 화이트를 생각해 봤다.
그는 솔직했다.
어설픈 수작보단, 직접 만났을 때도 얼마나 자기가 지영을 원하는지, 그걸 솔직하게 오픈하고 갔다. 그런 그가 압박 용도로 이런 기사를 내고 저런 인터뷰를 하진 않았을 거다. 물론 속이 다를 수도 있다.
그럴 수 있지만, 지영은 나탈리 포드가 그런 인물과 오랫동안 친구 관계를 유지하진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다니엘 화이트에 대한 믿음은, 나탈리 포드로부터 기인했다. 그래서 지영은 이번 문제에 기분 나빠하지 않기로 했다.
좋은 게 좋은 거다.
그렇게 마음먹는 중인데…….
벌컥! 대기실 문이 열리고 시즌3 연의 고정 의상이 된 붉은 의복을 갖춘 이연이 들어왔다. 표정을 보니 기사를 본 게 분명했다. 들어온 이연은 지영의 앞에 앉아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진짜야?”
“만난 건 진짜긴 해요. 몇 주 전에 나탈리 씨랑 찾아와서 잠깐 만나서 얘기 나눴거든요.”
“척위준 그거는?”
“제안은 받았어요.”
“천억에?”
“그건 아니에요. 제안만 받았지, 아직 세부 사항은 논의조차 하지 않았으니까요.”
이건 사실이다.
몸값 추정 기사가 뜨긴 했는데, 이건 지영도 금시초문이었다. 아직 비즈 엔터 내부적으로 지영이 이걸 해야 하는지, 아니면 고사를 해야 하는지에 관한 얘기도 제대로 나누지 않았다. 왜? 지영의 스케줄 때문이었다. 당장은 나의 무사님에 집중할 생각이라서, 한국에 돌아가서 얘기를 나누기로 정한 상태였다.
그러니 계약금에 관한 그 어떤 기사도, 사실이 아니었다.
“왜? 안 하게?”
이연의 물음에 지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회사랑 얘기도 안 나눴어요. 당장은 지금에 집중하려고요. 그러니 누나가 하는 걱정은 안 해도 되는 걱정입니다?”
“왜? 바로 한다고 해야지! 나 무신 척위준 팬이란 말야!”
“…….”
영화는 나오지도 않았으니 코믹스 팬인가 보다.
“그래도 회사랑 얘기해야죠. 저 내년엔 시합 스케줄로 바빠요. 당장 이거 촬영 끝나면 바로 2차 선발 준비해야 하고.”
진짜다.
이미 1차 선발전이 끝났다.
지영을 포함한 황금세대 전체가 시합에 불참했고, 같이 2차 선발전과 3차 선발에 집중할 생각이었다.
“아니, 그래도…….”
“누나, 그만. 좋은 기회인 건 저도 아니까 그만요.”
“아, 아하하. 내가 좀 흥분했지? 아니, 너무 좋아서 그래.”
“좋아서요?”
지영이 반문하자, 이연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이것저것 다 보는 편이거든. 미블이나 DG 작품도 좋아해. 레인 스튜디오 작품도 좋아하고. 근데 그거 보면서 항상 아쉬웠거든. 한국 배우가 없어서.”
“아…….”
이성진이랑 똑같은 이유였다.
이성진도 항상 저 이유로 투덜거렸다.
“그런데 너한테 단독! 무려 메인 주인공을 제안했다고 하니까, 걱정돼서. 그래서 막 달려왔지. 흐흐.”
“제가 거절할까 봐요?”
“그럼! 너 이런 거 싫어하잖아?”
피식.
이연도 역시 지영의 성격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요. 저도 요즘 무신 척위준 정주행 중이니까.”
“아, 진짜? 진짜지?”
“네. 진짜요. 하하. 그리고 누나 말고도, 제가 이거 거절하면 죽인다고 알레스카로 날아올 놈이…….”
지잉, 지잉.
이것 봐라.
“있거든요.”
“어? 누구?”
“얘요.”
지영은 이성진이란 이름이 뜬 폰을 들어 그녀에게 보여줬고, 이연은 왜인지 아아…… 하면서 수긍했다. 방송에서도 몇 번이나 밝혔을 정도로 히어로 시리즈의 광팬이 이성진이었고, 그녀도 아는 것 같았다.
“오키! 그럼 믿고 간다!”
“네.”
뭘 믿고 간다는 건지.
‘아직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는데.’
팬들이 들었으면 기겁했을 속마음을 지영은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고, 이성진의 전화를 받았다.
“어, 성진아.”
-해라.
“응?”
-해, 무조건! 거절하면 절교야!
“…….”
그리고 30분간, 이성진의 협박과 설득을 들은 지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