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430화 (430/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430화

430화. 마지막, 재(21)

“얘, 얘! 네 남친 또 기사 났다!”

“네?”

이른 아침, 출근하기 무섭게 평소 자신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재무팀의 장해원이 일이 없으면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는 현장까지 찾아와 폰을 흔들며 자신을 놀려댔다. 얼굴에 비꼬는 기색이 가득했는데, 그 모습에 양유진은 하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발끈하는 장해원.

“넌 이런 기사가 났는데 뭐가 좋아서 그런 남자를 만나니?”

“괜찮아요. 지영 씨한테 연락받았어요.”

“뭐? 뭐라고 했는데?”

“음, 제가 그걸 왜 얘기해야 해요?”

양유진이 눈을 끔뻑이며 천진하게 되묻자, 장해원의 얼굴이 빨갛게 익었다.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개인의 사생활을 예의 없이 물은 거니까. 잠시 얼굴이 벌게져서 씩씩거린 장해원이 작업장에서 나가자, 새로 반장이 된 성주 언니가 다가왔다.

“쟤 또 와서 지랄 떠니? 어? 저걸 진짜 확!”

“하루 이틀인가요? 괜찮아요. 언니.”

“괜찮기는! 저런 건 아주 혼쭐을 내야지!”

“에이, 그럼 지영 씨 안티만 늘어요.”

“그게 중…… 너는 지영이 그 사람만 중요해? 너는 안 중요하고?”

성주 언니의 말에 양유진은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 그런 말 마세요. 제가 이렇게 조금이라도 여유 있게, 사람답게 살게 해준 게 지영 씨예요. 지영 씨 재단에서 동생 후원해 주는 덕분에 제가 언니랑 저녁도 맛있는 거 먹고 그러잖아요. 헤헤. 회식도 참여하고.”

“아휴, 진짜. 너도 너다. 얘. 그럴 거면 아예 강지영 그 사람한테 지원을 더 팍팍 해달라고 해?”

“에이, 아니에요. 저 요즘 저금도 해서 여유로워요.”

양유진의 말에 장성주 반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의 상식에서 이렇게 순진한 양유진이 이해가 잘 가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완전히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이 공장으로 옮기고 3년 가까이 지켜본 양유진은 세상 순둥이였다.

요즘 애들의 영악함?

그런 건 일절 없었고, 바보처럼 순진하기만 했다. 가끔 단호한 모습을 보여줄 때가 있는데 그때가 바로 좀 전처럼 자기 남자친구나, 동생에 관한 험담을 할 때였다. 장성주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양유진은 굳이 공장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용돈 받으라는 얘기가 아니다.

세간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둘이 정말 결혼할 거라면, 조금은 의지해도 될 것 같단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양유진은 조금도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가만히 서서 불량을 솎아내야 하는 일을 그녀는 그만둘 생각이 조금도 없어 보였다.

남자를 잘 만나는 것도 복이라 생각하는 그녀였다.

그런 자기의 생각에 의하면, 양유진은 천운을 얻었다. 하늘이 도왔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연예인을 만나면서, 조금도 그 덕을 보려 하지 않는 고집이 그녀의 기준에선 오히려 이상해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 이상 간섭하는 건 당연히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세상에는 양유진 같은 아이가 있으면, 질투에 휩싸여 건수만 생기면 내려와 시비를 걸고 가는 장해원 같은 아이도 있게 마련이다.

장성주 반장은 그 정도는 당연히 아는 나이였고, 삶을 살았다.

“그래그래. 싫다는 얘를 내가 뭐라고 해서 뭐하겠니. 슬슬 준비하자. 부반장.”

“네, 반장 언니.”

양유진은 씩 웃으며 장성주를 따라 졸졸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기계가 돌기 전에 잠시 몸을 푸는 시간. 목과 발목, 무릎, 어깨를 풀며 양유진은 작게 미소 지었다. 그녀가 미소 지은 이유는 연락을 미리 받았기 때문이다.

3일 쉬는 시간이 생겼고, 이틀째 이연 언니와 이연 언니의 매니저, 그리고 은진 언니와 함께 앵커리지에 나가서 시간을 보낼 생각이라고. 근데 분명 누군가는 알아보고 사진을 찍을 거고, 분명 어떤 언론은 그 사진 가지고 또 수작을 부릴 거라고.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고. 지영뿐만이 아니라, 이연 언니도 먼저 전화해서 허락을 맡았다. 그래서 그래도 된다고 그녀는 당연히 허락했다.

그렇게 미리 얘기해 줬다.

왜?

역시나 이렇게 생길 문제에 자기가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먼저 해줬기 때문이다. 그건 배려였다. 양유진은 지영의 그런 배려가 너무 좋고, 감사했다. 그의 위치에서는 그냥 마음대로 막 해도 사실 자신은 불평불만을 가질 생각이 없었다.

이미 한없이 감사한 사람이었다.

몇 년 전부터 계속 대두되는 ‘Work-life balance’를 자신에게 안겨준 사람이었다. 지영을 만나기 전에 그녀는 일과 삶의 균형이란 단어는 아예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비용이 많이 나가는 종목을 하는 동생 때문이었다.

재능이 있는 동생을 어떻게든 건사하기 위해 자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공장일에 편의점 일을 병행했다. 그렇게 해도 부족했다. 허리띠를 졸라매는 정도로는 부족할 정도로. 그래서 그녀는 언제나 돈에 쫓겼고, 돈에 시달렸다. 그래서 그녀는 일과 삶의 균형 같은 허울 좋은 말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영을 만나며, 동생이 연희 스포츠 재단의 지원을 받기 시작하며 모든 게 달라졌다. 국내에서의 개인 훈련비를 제외하면 코치, 안무, 의상, 스케이트화의 비용을 연희 스포츠에서 지원해 주며 갑자기 삶이 급반전됐다.

어디서 줄여야 할까.

어떻게 모아야 할까. 같은 고민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물론 지원이 취소될 수도 있고, 1년만 될 수도 있어서 갑작스럽게 소비를 늘리진 않았다. 모으고 또 모았다. 갑자기 지원이 취소되어도 동생의 훈련에 지장이 안 가도록, 그녀는 악착같이 모았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지영과 연인이 되고,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자연스럽게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게 됐다. 정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그렇게 된 이유를 언젠가 그녀는 고민해본 적이 있었는데, 답은 정말 금방 나왔다.

지영 때문이었다.

자기가 지영을 온전히, 온 마음으로 믿게 되면서 씀씀이가 조금씩 늘어났다. 평소에는 비싸서 정육점에서 유통기한이 간당간당한 걸 사다가 먹곤 했었는데, 싱싱한 걸 사다 먹거나 아니면 가끔 소고기도 사다가 구워 먹곤 했다.

처음 살 땐 정말 손이 부르르 떨릴 정도였다.

그러나 그녀는 요즘엔 한 달에 한두 번은 소고기를 사다 먹어도 될 정도로 여유로워졌다. 처음이 힘들다고, 한 번 어렵던 난관을 넘자 너무 좋아하는 동생의 모습 때문에라도 더 자연스럽게 사게 됐다.

그 모든 게 지영 덕분이었다.

지영이 아니었다면, 후원받더라도 나중을 위해서 그녀는 계속 전과 같은 삶을 살았을 게 분명했다.

그런 사람이라서, 그녀는 믿을 수 있었다.

‘고마운 사람…….’

그런 고마운 사람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언제나 한결같이 믿어주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변하지 않을 사람이란 믿음이 있지만, 세상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걸 그녀는 자신이 겪어서 정말 잘 알고 있었다.

‘나중에 나를 더는 사랑하지 않아서 그만 만나자고 할 때까지는…… 계속 믿어드려야지.’

안 그래도 적이 많은 사람이다.

그를 음해하려는 세력도 있고, 그런 사람들에게 자신은 그를 공격하기 위해 정말 좋은 수단이었다. 자기가 흔들리고, 그를 믿지 못해 의심하면 그 사람은 분명 슬퍼할 것이다. 이미 그런 언론 공작? 공격? 그런 게 몇 번이나 있었다.

스캔들이 터졌을 때도 그랬고, 그 이후로도 심심하면 자신과 그 사람을 의심하는 기사가 올라오곤 했다.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고, 화사한 사람. 그런 사람에게 나는…… 맞아. 어울리지 않아.’

그런 기사를 읽었을 때 그녀는 이해했고, 인정했다.

강지영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처음 만나고, 그가 연락해 줬을 때 그를 향해 자기가 불렀던 호칭인 연예인님에서, 이제는 더 대단한 사람이 됐다. 그런데도 그는 변하지 않았다. 언제나 한결같이 자신을 생각해줬다.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나 연락해서 자신을 안심시켜 줬다.

‘자기도 힘들 텐데…….’

그런 공격에 지치고, 마음이 쓰일 텐데. 그는 언제나 자신이 먼저였다. 그러니 이번엔 자신이 믿어줘야 할 때였다. 그가 이별을 고할 때까지.

“맹목적으로…….”

그의 입에서 이제 헤어지잔 말이 나올 때까지.

그때까지 그녀는 변함없는 믿음을 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이 다짐은 오늘 하는 다짐이 아니었다. 이미 한참 된 다짐이었다. 자기 전에도, 생각날 때마다, 이런 기사가 나면 항상 하는, 그런 다짐이었다.

삐이-!

번쩍!

기계가 곧 돈다는 벨 소리에, 그녀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짝! 그리고 뺨을 세게 때려 정신이 번쩍 들게 했다. 그녀가 하는 일인 불량품 솎아내는 일이 위험한 작업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이 정신을 못 차리면 불량품이 통과되어 거래처에 납품되고, 그렇게 되면 언제나 자기의 편의를 봐주는 공장장님과 사장님에게 못 할 짓을 하는 거였다.

그래서 그녀는 뺨에 손자국이 나도록 뺨을 쳤고, 이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불량품을 솎아내기 시작했다.

일과 삶의 균형.

지금은 일의 균형을 맞출 때였다.

* * *

“감사합니다!”

꾸벅!

고등학생? 대학생?

나이가 많아 보이지 않는 남매에게 사인도 해주고, 사진도 같이 찍어준 지영은 두 사람이 떠나자 이연이 내민 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역시, 우리 스캔들 또 났다. 하아.”

“거봐요. 같이 나오면 분명 난다고 했죠?”

으이씨.

이연의 말에 대답한 건 지영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임은진도 아니었다. 바로 이연의 매니저였다. 이연의 새로운 헤드 매니저가 된 정성철의 말에 이연은 어깨를 으쓱, 어쩌라고 하는 시선으로 무시해 버렸다.

“누나!”

“아 왜? 지영이도 가만히 있는데 왜 너가 그래?”

“……저 누나 헤드 매니저입니다만?”

“누가 모르니? 그 나이에 헤드 매니저가 된 게 누구 덕분인지는 근데 생각 안 하니?”

“합니다! 하니까 또 제가 사장님한테 된통 깨지고 온 거 아닙니까!”

“벌써? 그럼 뭐 다 끝났네. 고생했어.”

“……누나. 지영 씨 생각은 안 하세요? 지영 씨 연인분 생각은요?”

정성철의 말에 이연은 훗, 하고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어제 유진이한테 전화해서 허락 맡았거든? 지영이 하루만 빌린다고?”

“……지영 씨가 무슨 물건이에요? 빌리긴 뭘 빌려요? 그리고 그것도 사람 앞에서. 아 진짜 누나, 말 좀…….”

“왜, 가려서 하라고? 지영아, 나 말 가려서 해? 우리 그런 사이야? 그것밖에 안 돼?”

“……하아.”

지영한테 이연이 하는 걸 본 정성철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지영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에 지영은 웃으며 괜찮다고 그를 일으켜 세웠다.

“저 누나 저러는 게 어디 한두 번인가요?”

“그래도…… 정말 죄송합니다. 아후…….”

“그럼 갚아줄까요, 우리?”

“네?”

뭔 소린가 싶어서 눈을 끔뻑이는 정성철에게, 지영은 시범을 보여줬다.

“누님, 괜찮아요. 뭐, 누님이 하자는 대로 따라가야죠. 이 동생은.”

“……야.”

“왜요, 누님. 동생은 그냥 따라가면 되는 거 아닌가요?”

“…….”

“누님, 이제 슬슬 일어나시죠? 점심 먹으러 가야죠.”

“항복, 잘못했다.”

이연이 두 손을 들며 항복 선언을 하자, 눈을 반짝인 정성철이 대번에 끼어들었다.

“누님! 잘 생각하셨…… 악!”

짜악!

근데 끼어들었다가 등짝에 떨어진 스매싱에 펄쩍 뛰었다.

악악거리며 몸을 비트는 정성철의 등짝에 스매싱을 계속해서 먹이는 이연. 배구 선수도 아닌데, 소리가 아주 찰지다.

“아! 악! 누님!”

“이게 진짜! 너 누나가 배구 영화 촬영했던 거 모르지? 오늘 죽어봐라!”

짜악!

으아악!

정성철은 결국 도망쳤다.

그리고 그런 정성철을 씩씩거리며 쫓아가려던 이연이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했는지, 도로 자리에 앉았다.

“아, 스트레스 풀려. 고마워, 성철이 자극해 줘서.”

“……누나는 진짜, 와…….”

“넘어가, 넘어가. 뭐 하루 이틀이래?”

“그래서요. 사람 진짜 안 변한다 싶어서요.”

“흐흐. 변하면 죽을 때랬다. 아, 기사 또 떴네? 이번엔 미국발이다.”

“네?”

슥 밀어준 폰을 봤는데, 진짜 미국발 기사가 떠 있었다. 기사 내용은, 촬영 중 휴가를 즐기는 강지영은 ‘포드’를 탄다. 이런 제목이 달려 있었다.

“포드 드디어 움직였네?”

임은진이 그 기사를 보더니 눈을 반짝이곤 태블릿을 꺼내 기사를 검색했다. 기사 내용은 사실 별거 없었다. 지영이 촬영 중 휴가를 얻었고, 앵커리지로 이동해 시내 관광을 즐기는데 포드를 탄다. 이 정도였다.

하지만 이는 생각보다 효과가 좋았다.

이연은 아예 화물선에 제작팀이 짐을 보낼 때, 지영을 통해 먼저 공급받은 포드의 차를 보냈다. 그리고 그녀는 당연하게도 혼자 그 차를 끌고 따로 왔다. 매니저도 따로 오고. 그럼 지영은?

당연히 그렇게까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탈리 포드는 지영이 움직일 때 탔으면 해서 당연히 차를 준비해 놓았고, 그건 당연히 포드의 데스티니였다. 이게 계약 조건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영은 그 차를 타고 오늘 호텔에서 앵커리지로 왔다. 옆에 탄 임은진과 함께. 지영이 직접 운전하는 게 효과가 당연히 좋아서, 이번엔 운전도 양보해 준 그녀였다.

그렇게 지영이 포드의 데스티니를 타고 다니는 모습은 이미 앵커리지에 사는 시민과 관광객에게 찍혀 SNS를 탔다.

이게 포드가 택한 후원 방식이었다.

포드는 애초에 작품에 제품을 노출하는 게 불가능했다. 총도 등장하지 않는 시대다. 그래서 이런 시대극엔 후원이 잘 붙지 않는다. 제품 노출이 쉽지 않으니, 마케팅 효과가 없기 때문이었다.

현대극이면 청소기, 밥솥, 전자레인지, 차, 옷 등등, 전부 넣을 수 있지만, 시대극은 그게 불가능했다.

하물며 포드는 차를 생산하는 회사다.

그런데도 후원을 대대적으로 넣은 건, 작품 외적으로 마케팅할 자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지금 같은 상황을 이용해서 말이다.

작품의 주연이라 할 수 있는 이연과 강지영이 포드의 데스티니를 타고 이렇게 돌아다녀 주는 것만으로도, 마케팅 효과는 확실했다. 그리고 이건 사실 이미 사전에 얘기가 끝난 사항이었다. 주말에 지영이 작품 때문에 많이 안 돌아다녀서 그렇지, 이연은 자기 차를 타고 제법 앵커리지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지영도 오늘은 이렇게 나왔고.

포드도 후원의 결실을 이렇게 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한국에선 나의 무사님 1, 2화 편집이 끝났다. 그렇게 수백 명이 고생해 가며 키워낸 나무에서, 과실이 성대하게 맺히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