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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427화 (427/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427화

427화. 마지막, 재(18)

컷!

컷 사인이 나자 이연두는 눈밭을 후두둑 구르며 옷과 머리, 얼굴에 묻은 눈을 쓸었다. 매니저가 없는 이연두라, 김진우의 액션 배우 팀의 여배우가 수건과 담요, 따뜻한 물을 들고 얼른 그녀에게 달려갔다.

지영도 감정을 정리하고, 이연두에게 다가갔다.

“선배님, 괜찮으세요?”

지영의 물음에 이연두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안 괜찮다는 걸 안다. 아까 밀어 차기를 할 때, 원래는 어깨에 맞아야 했다. 하지만 눈밭에서 중심축이 살짝 무너지며 밀어 차기의 각도가 조금 위로 올라갔다.

코앞에서 차는 액션이다.

지영이 아차 하는 기색을 느끼는 순간, 역시 몸 쓰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이연두는 곧장 반응했다. 어깨가 아닌 얼굴에 맞을 것 같단 생각이 반사적으로 들었는지, 턱을 돌려 당기며 얼굴 정면이 아닌 턱 아래에 살짝 맞을 정도로 피했다. 코앞에서 펼쳐진 발차기를 그 순간 피한 것이다. 대단하다고밖에 할 수는 없는 반사신경이지만, 그 이전에 지영은 그게 너무 미안했다.

추위 때문이 아니라, 지영이 신은 가죽신 때문에 이연두의 턱 아래가 살짝 붉게 쓸려 있었다. 거칠게 쓸린 자국. 신발 밑창 때문이었다.

“안 괜찮으신데요, 뭐. 선배님. 의료 센터부터 가세요. 신 확인은 이따 하고요.”

“아니에요. 후배님. 신부터 볼게요. 얼떨결에 이런 자리를 잡았으면, 그래도 최선을 다해야죠.”

“아니, 그래도…….”

“괜찮다니까요.”

이연두는 그렇게 말하고는 일어나 홍진아 감독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얼굴을 본 홍진아 감독도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센터부터 찾으라고 했지만, 당연히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리고 신을 확인한 뒤, 홍진아가 오케이 사인을 내고 나서야 액션 배우팀의 안내를 받아 근처의 의료 센터를 찾았다.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보던 홍진아가 지영을 보며 물었다.

“지영 씨. 운동하는 사람들은 원래 지영 씨나 연두 씨처럼 전부 독해요?”

“설마요. 당연히 다 그러진 않아요.”

“근데 두 사람이 왜 이렇게 똑같아요? 난 남맨 줄.”

“하하, 그게 아니라 연두 선배님이 그러던데요. 우연히 시작하게 되었지만, 시작한 이상 폐가 되긴 싫다고.”

“……고맙네요. 너무 고마운데, 그만큼 부담도 되네요. 아휴.”

“그럼 저희 선배님 그림 잘 뽑아주세요.”

“어머, 지영 씨가 이런 말 하는 거 처음 보네? 연두 씨랑 친해졌어요?”

“아니요. 조금도요.”

관계는 계속 거기서 거기였다.

그런데도 지영이 이런 말을 하는 건, 이연두에게 고마웠기 때문이었다. 사성에서 주최한 더 챌린저의 초반 흥행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이연두였다. 숏커트에 차가운 마스크. 신장은 작지만 아주 다부진 체형에, 은퇴한 지 수년이나 지났는데도 현역을 포함한 국대급 선수들을 모조리 격파하며 올라가자, 자연스럽게 사성은 그녀를 중심으로 마케팅을 펼쳤다.

그렇게 대회 첫날부터 성공 가도에 올라탈 수 있던 것은 이연두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게 인기를 얻자 상금도 풍성해졌고, 유도라는 종목에 기여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지금의 유도가 아니라 예전의 파이팅 넘치는 유도였지만, 그래도 지영은 그 자체로도 이연두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거기에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말은 안 했지만, 전에 액션 팀과 회식하면서 살짝 술에 취했을 때 홍진아 감독의 제안을 수락한 이유를 말했던 적이 있었다고 했다.

‘받은 만큼 갚아야겠단 생각이 들어서 수락했어요…….’

이게 김진우가 전해준 전문이었다.

그걸 생각하면, 더 챌린지란 대회를 통해 자신이 한을 풀게 도와준 황금세대에게 은혜를 갚는다는 뜻으로 볼 수 있었다. 성공 가도로 올린 건 이연두의 덕이 맞지만, 나머지 전체는 황금세대의 힘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지영의 몫이 가장 지대했고.

그런 지영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수락한 연기. 대사는 많이 없지만 이런 혹독한 추위에서 구르고 구르는 연기를 계속해야 한다. 그래서 그녀는 계약서에 사인한 다음 날부터 김진우의 스쿨을 찾았고, 여기 오기 전까지 수련을 계속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눈밭에서 지영과 함께 액션 호흡을 계속 맞춰갈 것이다.

그러니 지영은 그녀가 조금 더 맑고 밝게, 더 멋지게 나왔으면 했다. 그게 자신이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의 전부란 생각도 했다.

“안 그래도 연기 보면서, 아 이 사람은 진짜구나란 생각에 편집 때 힘 좀 더 주기로 했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네, 감사합니다.”

“자! 지영 씨도 얼른 가서 쉬어요. 다음 신 준비되면 스태프 보낼 테니까.”

“네.”

꾸벅, 가볍게 인사한 지영은 곧장 대기실로 돌아왔다. 한밤에 내린 눈 때문에 발이 푹푹 빠지는 길을 걸어 컨테이너 대기실로 들어온 지영은 후끈하게 달려드는 열기에 이제야 살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오늘 새벽은 추웠다.

간밤에 몰아친 눈 폭풍도 눈 폭풍인데, 기온이 며칠 전보다 더 떨어졌다. 보온성이 끝내주는 내복을 입고 의상을 입었지만, 목 아래로 스며드는 바람이나 손발 끝, 그리고 얼굴로 부는 바람은 진짜…… 치가 떨렸다.

몸이라도 따뜻하지 않았으면 이러다 얼어 죽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임은진이 가져다준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마시자 얼었던 몸이 조금은 녹는 것 같았다.

“힘들지?”

“네, 조금 힘드네요.”

체력이 부족한 건 아니다.

몸 관리는 끔찍이 하는 지영이고, 체력도 컨디션 관리에 들어가 절대로 몸이 퍼질 정도로 에너지를 쓰지 않았다. 완전히 방전되면 회복하는 데 더 오래 걸리기 때문이었다. 이런 관리는 시합 때 빛을 발한다.

지영의 특기인 시합 운용에 전부 들어가 있는데, 가끔은 체력으로 상대를 압도할 때도 있는 지영이라, 힘들긴 힘들어도 체력이 방전될 일은 없었다. 그리고 지영은 이런 추위에서 야외 활동을 하는 것에 익숙했다.

“그래도 겨울에 새벽 운동하는 정도랑 비슷해서 참을 만해요.”

“그래?”

“네, 저흰 눈이 무지막지하게 오지 않는 이상 보통 트랙에서 하거든요. 이런 추위에서도.”

“으으, 하긴, 그렇겠다.”

겨울에 하는 새벽 트랙 운동은, 진짜 천하의 지영이나 황금세대 전체가 이를 악물 정도였다. 살을 아리게 할 정도의 추위가 와도 임대성 코치는 답답한 체육관 공기를 마시며 운동하는 것과 시원하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운동하는 것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자연 강풍을 뚫는 대시가 대미의 장식이며, 꼭 맞바람을 맞으며 대시를 시키곤 했다. 그럼 바람에 정통으로 얻어맞은 얼굴이 찢어질 것처럼 따가운 경우도 있었다. 마스크를 쓰고 하기도 하지만, 인터벌을 시작하면 답답해서 대부분이 마스크를 벗는다. 그럼 바람과 추위에 정면으로 노출되는 거다. 그런 훈련을 중1 때부터 해온 지영이었다.

선수촌의 훈련은?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았다. 그런 빡센 훈련의 경험이 그래도 이런 혹한의 환경에 적응을 금방 해주게 하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됐다. 주머니 속에서 폰을 꺼내 메시지를 확인한 임은진이 지영을 불렀다.

“지영아.”

“네?”

“눈보라 또 분대. 신 딜레이니까 한숨 잘래?”

“어, 진짜요?”

“응. 여기는 기본 30분은 몰아치니까 1시간은 잘 수 있겠는데?”

“어, 그럼 좀 잘게요.”

새벽에 일어나서 안 그래도 피곤하긴 했다.

1시간의 잠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1시간의 잠이면 체력을 제대로 회복할 수 있다. 훈련 스케줄을 봐도 자는 시간은 1시간인데, 그때 선수들은 체력을 회복한다. 물론 자는 것 이전에 충분한 연료가 필요했다.

지영은 챙겨 온 아침을 먹었다.

이제 군살은 다 빠져서, 따로 샐러드와 닭가슴살로 식단을 할 필요가 없어서 기본식으로 배를 채우고, 지영은 간이침대에 누웠다.

배가 차자, 잠이 솔솔 왔다.

* * *

눈을 뚫고 재는 제선을 이끌고 몸을 쉬게 할 곳을 찾았다. 새벽 대련이 끝나자 예고도 없이 갑자기 몰아치기 시작한 눈보라를 피할 곳이 필요했다. 그래도 다행히 상서성으로 가기 전에 봐둔 곳이 있어서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었다.

눈길을 뚫고 한참을 걸음을 옮겨 동굴 근처에 도착한 재는, 걸음을 멈췄다.

쿵.

고개를 푹 숙이고 재를 쫓던 제선은 재가 멈춘 것을 보지 못하고 그의 등에 머리를 박은 뒤 멈춰 섰다. 눈을 동그랗게 뜨며 왜 재가 멈춰선지 알아채지 못해 말문을 열려는 순간, 재가 몸을 돌림 손가락을 세워 입가에 댔다.

그에 얼른 합, 입을 다문 제선.

재는 제선이 입을 다물자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그 손가락을 따라 아래를 본 제선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희미하지만, 발자국이다. 그런 발자국이 눈에 보인 곳 빼고 몇 개가 더 있었다.

중구난방으로 찍힌 발자국.

이건 곧 한 사람의 발자국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그건 곧 다른 발자국은 눈에 지워진 거고, 이것만 깊게 새겨져 그나마 남아 있는 거란 뜻이었다. 제선은 천천히 손을 허리춤으로 가져갔다.

칼자루를 쥐자, 재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곤 눈밭에 글을 썼다.

[나서지 마. 이번엔 혼자 처리할게.]

제선은 그 글에 바로 고개를 저었지만, 재의 눈빛이 엄해지는 결과만 낳았다.

[명령이야. 따르지 않을 생각이면 돌아가.]

“…….”

재차 쓴 그 글에 제선은 입술을 꾹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따르기 싫었지만, 이미 새벽의 대련으로 기가 꺾인 제선이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재는 몸을 돌려 천천히 저 멀리 보이는 동굴을 향해 납작 엎드려 이동했다. 제선을 뒤에 두고 동굴에 들어선 재는 벽에 대고 귀를 기울였다.

깡, 까앙.

동굴 안에서 쇠와 쇠가 부딪쳐 나오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병장기 소리다. 그건 곧 안에서 교전이 벌어졌다는 뜻이었다.

‘한쪽은 제국군일 테고, 다른 한쪽은? 이족인가? 그런데 이곳은 이족의 영향권이 아닐 텐데?’

교전이 벌어지는 초소는 이곳에서 며칠 더 가야 했다.

물론 더 멀리 정찰을 나왔을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교전이 벌어진 건 이상했다.

그래도 이족일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니, 재는 전투에 개입하기로 했다. 다행히 동굴은 어두웠다. 불을 피웠는데 교전 중 꺼졌거나, 아니면 피기도 전에 교전이 시작됐거나, 둘 중 하나일 거로 생각하며 재는 안으로 진입했다.

깡! 까앙!

퍽! 퍼억!

날붙이 소리와 몸에 뭔가가 박히는 타격음이 연달아 퍼졌다. 재는 좀 더 빠르게 이동했다. 맞는 게 제국군이면 좋겠는데, 이족일 가능성도 있어서였다. 그럼 빨리 개입하는 게 나았다. 스르릉. 최대한 소리를 죽여 칼을 뽑은 재는 자세를 낮추고 내달렸다.

이미 소리로 위치는 가늠이 끝난 상태여서 그의 돌진은 거침이 없었다.

쉬이이익!

푹! 푸욱!

두 번의 날카로운 파열음이 났을 때 재의 칼이 바람처럼 그어졌다.

깡! 번쩍!

상대는 재의 기습을 반사적으로 막아냈다. 그러나 재는 놀라지 않았다. 살아남은 최후의 일인이다. 그럼 그건 곧 교전을 벌인 무리 중에 가장 강하다는 뜻이었다.

쉭!

쉬익!

연이어서 들어온 반격.

칼날이 노리는 위치를 보면 이족의 전투법은 아니다. 재는 이족에게 근접전을 가르친 스승이나 마찬가지였고, 재에게 배운 이족이 다시 어린 전사들을 가르쳤다. 재는 기습이든 반격이든, 상체를 공격시키지 않았다.

일단은 하체다.

몇 번의 하체 공격을 통해 적이 하체에 집중하게 만들어, 상체에 대한 틈을 만들었다. 이건 백적파의 전투법이기도 했다. 몇 번의 하체 공격을 받다 보면, 다음 일격이나 반격 또한 하체겠구나. 이렇게 반사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이자는 거침없이 상체, 그것도 목을 노렸다. 거리감이 아주 정확해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어둠인데도, 칼의 부딪침을 통해서 자기의 목이 어디에 있는지를 가늠했다는 뜻이다. 그 한 번의 부딪침으로. 물론 재도 파악은 했다.

슥, 반보 물러난 재.

그러자 감각적으로 반보 다가서는 적.

‘반응이 제법인데?’

감각이 살아 있는 자다.

연습으로는 절대 만들어질 수 없는, 수없이 많은 교전을 통해 몸에 체득되는 실전 감각이 날카롭게 바로 서 있는 적이다. 이런 적은 긴장해야 한다. 재는 칼을 좀 더 단단하게 쥐고, 온몸의 감각을 날카롭게 벼렸다.

스윽, 스윽.

이런 어둠을 앞에 두고도, 재와 적은 서로의 거리를 신이 바닥을 쓰는 소리를 바탕으로 가늠하고는 거침없이 달려들었다.

쉬익!

어둠이 꿀렁! 요동쳤다.

날카로운 찌르기다. 노리는 곳은 어깨.

재는 그걸 검을 뒤집어 툭 쳐올렸다.

깡!

그그극!

적의 칼이 재가 받친 순간 뒤집히며, 날을 타고 달려들었다. 검면타기라는 수법으로, 재도 자주 이용했던 수법이다. 하지만 그런 검면타기는 칼날이 중간에서 재가 힘으로 슬쩍 쳐올리려는 찰나 멈춘 적의 칼.

이유는 간단했다.

칼날끼리 부딪치며 짧게 튄 불똥이, 서로 지척에서 터졌기에 아주 잠깐이지만 상대의 얼굴을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아주 짧은 순간, 서로는 서로를 알아봤다. 아주 찰나지만, 절대 잊을 수 없는 얼굴을 재는 봤다.

그래서 먼저 물었다.

“관영?”

재의 입이 열리기 무섭게.

“……재?”

상대의. 아니, 관영의 입도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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