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91화
391화. 천상계(6)
오, 곱다, 고와!
지영이 지나치는 회사 직원들과 마주칠 때마다 들은 얘기였다. 전체적으로 그런 얘기를 들을 만한 변신이었지만, 지영의 몸과 함께 전체적으로 보면 그게 꼭 완전히 여성 같은 변화는 아니었다. 평소의 지영은 중성적 이미지가 강해도, 성별을 착각하진 않는다. 그렇기에 이런 변신에 곱단 얘기를 하지만, 그래도 남성적 이미지는 분명히 있었다.
지영의 눈매와 콧대, 입술 등을 포함한 얼굴 특징들은 그래도 여성보단 남성에 좀 더 가깝기 때문이었다. 그걸 메이크업으로 중성적으로 바꾸어 놓은 거고.
애초에 너무 여자 같기만 했으면, 오히려 지영이 수긍했을 리가 없었다. 여성스러운 연출인데, 그래도 남성미가 기괴하지 않고 선을 잘 유지한 채 스며들어 있었다. 음, 사극을 보면 머리를 붙여 길게 기른 캐릭터와 같았다. 아니, 그냥 재가 머리를 좀 단정히 하고 사극 복장 대신 현대복을 입은 모습에 가까웠다.
그리고 괜찮다, 괜찮다. 팬들이 보고 싶은 모습이다. 하며 마인드 컨트롤을 하다 보니 금방 적응되어버렸다.
다들 준비를 마치자 짐을 챙겨 차에 올랐다. 펜션은 휴식 장소지, 촬영지는 아니었다. 촬영지는 이곳에서 20분 정도 더 북으로 올라가야 했다. 그럼 계곡물이 바다로 흐르는 곳에 있는 펜션이 하나 있었다.
일종의 풀빌라 형태의 펜션인데, 마침 성수기가 딱 끝나고, 촬영일이 평일이라 통째로 예약이 가능했다고 들었다.
도착해서 보니까.
“좋긴 좋네.”
뷰 자체는 정말 끝내줬다.
이국의 정취가 아니라, 토종 정취가 있었다. 그림 같은 이질감 대신, 편안한 느낌이 아주 진하게 났다. 물론 그곳에 위치한 펜션을 보는 순간 편안한 느낌은 산산이 조각났다. 그러나 조각났다고 해서 또 나쁜 건 아니다.
엉성하고 어설픈 구조물이었다면 그렇겠지만, 펜션은 어디 내놔도 빼어나다 소리를 들을 정도로 상당한 건축미를 자랑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곳이 오늘의 촬영지다.
주차장부터 이미 촬영 준비가 한창이었다. 이미 MC이자, 메인 멤버인 장세리와 한유진, 김지인과 정지인이 도착해서 PD 작가들과 상의에 들어간 모습이 보였다. 시간을 확인하니 6시 30분이 막 지나고 있었다. 아직 제법 시간이 있어서 지영은 잠시 차에서 내리기로 했다.
“어, 내려도 괜찮아? 우리 걸리면 안 되지 않나?”
퇴폐미 물씬 풍기는 메이크업을 한 이성진의 질문에, 지영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까 너 메이크업 받을 때 우리 기사 올라갔어. 오늘 노는 언니들 촬영하는 거.”
“아 진짜?”
“응.”
3일간 입단속 후, 오늘 풀렸다.
사실 어차피 이건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 없었다. 촬영이 시작되기 전이라면 반드시 문제가 생길 걸 염두에 두고 이틀간은 그래도 잘 숨겼다. 사실 신경 쓰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미팅 이후 터진 지영의 훈장 수여 건 때문에 안 그래도 정신이 없었을 테니까. 그런 상황을 주시하다가, 오늘 새벽에 기사를 올리기로 했다.
이는 제작진 측에서도 당연한 결정이었다.
일단 촬영이 끝나면 최대한 빠르게 편집해서, 기존 편성 분량을 뒤로 밀어내고 바로 편성되기로 했다. 편성 문제도 말이 있었는데, 어제 훈장 건으로 여론이 반전되면서 윗선에서도 허락이 떨어졌다고 했다. 즉, 다음 주에 바로 방송이다.
그러니 홍보가 필요했다.
방송사 자체가 tvM처럼 큰 방송사가 아니다 보니, 예고편 등으로 광고하는 건 한계가 있었다. 그러니 기사가 직빵이었다.
앞으로 일주일간, 장작을 신나게 던질 생각이었다.
그 첫 탄이 좀 전에 올라왔다. 이제 출근을 준비하거나, 이른 출근을 하는 사람들은 지영을 포함한 황금세대가 예능에 출연한다는 사실을 접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밖에 돌아다니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밖으로 나오니 선선한 바닷바람이 불어왔다. 시원하면서도 아주 미묘하게 찝찝한, 그런 바람이었다.
멀리 나가지는 않고, 주차장 아래 벤치까지만 갔다.
“아 좀 추운데?”
복장이 가벼워서 그런지 지영도 제법 쌀쌀함을 느꼈다. 그늘이라서 더욱 쌀쌀하게 느껴졌다. 차로 가 패딩을 입고, 다시 벤치로 내려와 옹기종기 붙어 앉아 멍하니 바다를 봤다.
“오늘 일정 어떻게 된다고 했지?”
“가볍게 토크, 아침, 그리고 따로 움직인다고 했을걸? 3시쯤 점심이고, 다시 개별활동, 그리고 저녁은 바비큐 파티하면서 토크. 아마 이런 순서라고 했어.”
“음, 별거 없네?”
“게임이나 이런 거 굳이 넣지 말고, 휴가를 즐기는 모습만 담겠다고 했대.”
“아, 아아.”
이성진의 대답에 다들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실 예능 플롯치고는 매우 빈약했다. 아니, 이런 플롯은 애초에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게스트, 혹은 호스트에게 알아서 놀라고 하면, 그림으로 쓸 만한 게 잘 건져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애매하게 두느니, 작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그 주의 프로그램을 전부 짠다.
드라마만 작가 놀음이 아니다.
예능도 작가 놀음이었다. 왜 작가 놀음이냐고?
드라마도 메인 작가와 서브 작가가 있다. 많으면 셋에서 네 명 정도.
그럼 예능은?
노는 언니들의 경우는 작가만 무려 8명이었다. 메인, 서브 PD가 있고, 왕고 작가 아래 7명이나 더 있었다. 그리고 그녀들이 프로그램에 관한 모든 것을 조율하고, 조정했다. 큰 줄거리와 흐름을 PD가 담당한다면, 그 아래 세부적인 사항은 전부 작가의 손길이 닿는다고 봐도 무방했다.
심지어 대사까지 컨트롤할 때도 있었다.
이것도 전부 이성진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이성진은 더 런닝은 작가만 무려 11명이라고 했다. 거긴 아예 메인 작가가 있었고, 그 아래 10명이나 더 있다고 했다. 그리고 거기서 한 회의 모든 것이 나온다고도 했다.
그런 작가들은, 게스트나 호스트를 절대 그냥 두지 않았다.
어떻게든 그림을 만들어야 편집으로 예쁘게 완성본을 만들 수 있는데, 출연자들에게만 맡기면 그림이 사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냥 두는 건, 작가들이 정말 싫어하는 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노는 언니들 작가진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그냥 먹고 놀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힘들게 훈련했으니, 와서 보상받으면 된다고 했다. 예능을 잘 모르는 친구들은 간략한 대본집을 각자 확인하면서도 반신반의했다.
“성진아. 진짜 그렇게 해도 돼?”
임효중의 물음에 이성진은 음…… 하고 대답을 아꼈다. 그러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닐 것 같은데? 이렇게 모으기 힘든 인원을 모아서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솔직히 아깝지 않아?”
“음, 그렇지, 아깝지. 많이 아깝지.”
음음.
임효중은 지영을 힐끔 보며 바로 수긍했다.
“아니, 생각해 봐. 지영이 혼자만 나온 것도 아니고 우리도 전부 나왔잖아? 방송가에서 그렇게 잡으려고 했, 었, 던! 뭐 훈장 건 때문에 쫑났지만? 그런데 우릴 빼더라도 면면이 되게 화려해. 골프 박세인 선수만 해도 아직 아무런 예능도 안 나갔다고 했어. 장세리 대표님 은혜 갚겠다고. 그리고 여자 배구도 한유진 선배한테 의리 갚겠다면서 베스트 멤버 전부 오셨잖아. 그치?”
“어…… 그렇지?”
확실히 그랬다.
박세인만 해도, 현재 잡으려고 난리가 난 선수였다. 박세인의 나이는 무려…… 올해 스물이다. 그런데 올림픽 금메달을 거머쥔 거다. 박세인은 이미 몇 년 전부터 골프계에선 유명했다. 타고난 피지컬도 피지컬인데, 재능까지 타고났다. 그러나 가정 형편은 타고나지 못했다. 본래는 연희 스포츠에서 후원하려다가, 장세리가 직접 하겠다고 해서 비즈와 계약한 선수였다.
그렇게 되며 레전드의 코칭 아래, 박세인은 고1 때 국내를 평정했다.
그리고 올해 LPGA컵을 두 번이나 우승했고,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굉장한 선수였다. 솔직히 올림픽 때 지영이 보여줬던 임팩트가 너무 세서 그렇지,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개인으로는 박세인이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을 게 분명했다.
그런 천재 중의 천재를 모셨다.
그런데 거기에 여자 배구 역사를 새롭게 쓴 베스트 멤버가 넷이나 왔다. 대표팀의 정신적 지주로 버텨줬던 양효선과 김이진 등등이 전부 왔다. 이것만 해도 그림이 진짜 대박인 거다. 그런데 여기에 황금세대까지.
“작가님들이 이 그림을 놓치고 싶을까? 이 멤버 구성을? 최고잖아? 올림픽 특수 때 그 어느 예능도 이 정도 게스트는 섭외 못 했는데.”
“하긴, 성진이 네 말 들으니까 뭐가 있긴 있겠다.”
강한결도 결코 오늘 그림이 그렇게만 흘러가지 않을 것이라 동감했다. 그리고 그건 지영도 마찬가지였다. 좀 낯 뜨겁지만.
‘나 하나만 데려다 놨어도 그냥 평범하게는 안 갔겠지.’
PD들이 시청률을 위해 영혼을 판다는 얘기가 있다면, 작가들은 그림을 만들기 위해 영혼을 판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 오늘 뭐가 있어도 있을 거로 보는 게 맞을 것 같았다.
“음, 긴장 좀 타고 있어야 하나?”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닐걸? 다들 너무 이름값이 대단하잖아? 막 무리한 거 시키고 그러진 않을 거야. 해봐야 그냥 가벼운 게임 정도?”
“야, 게임도 어떤 게임인지에 따라 확 다르잖아.”
“음…… 그렇지.”
“뭐, 경험해 보면 알 거야.”
후, 하아.
임효중과 이성진의 대화를 듣고 난 황석이 크게 심호흡을 했다. 카메라 앞에서 가장 긴장하는 편인 황석의 모습에 다들 피식 웃는데, 임은진의 목소리가 위에서 들려왔다.
“얘들아! 스탠바이 준비!”
“네! 갈게요!”
강한결이 크게 대답하고 일어나자 지영도 따라 일어나서 위로 올라갔다. 올라가니 막 오프닝을 시작하고 있었다. 오프닝을 시작해서 크게 소리를 내면 안 되니, 미리 나와서 대기 중이던 양효선과 김이진 등이 지영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지영은 선배들에게 꾸벅 인사했다.
한껏 멋들을 내고 온 스포츠 스타들.
그 스타들을 사진작가는 쉬지 않고 찍기 바빴다. 대기 중인 모습도 이렇게 찍는 걸 보면, 나중에 앨범을 만들어도 한두 개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오프닝이 거의 끝나고 선수들이 입장했다. 먼저 여자 골프가 들어가고, 그다음은 여자 배구였다. 지영을 포함한 친구들은 가장 늦게 들어갔다.
와아-!
열렬한 환영.
스태프들이 물개박수를 치며 입장하는 지영과 친구들을 반겨줬다. 박수와 환영을 받으며 입장해 친구들과 함께 나란히 서 앞을 보자, 와. 역시 달랐다.
‘카메라가 뭔…….’
드라마 촬영 때와는 또 완전히 달랐다. 드라마는 연출이 원하는 구도가 확실하기에 정면에 저렇게 대놓고 거치하지 않는다. 원하는 각도, 구도에서만 따라붙어서 움직인다. 그런데 여긴 정면에 대놓고 수십 대가 있었다.
카메라가 하도 많아서 뭔가 좀 어질어질했다. 나란히 앉은 작가님 몇 명과 파이팅이 넘치는 장미 PD.
“자, 그럼 우리 유도팀도 소개 좀 들어볼까요? 먼저 우리 리더부터!”
장세리의 자연스러운 진행에 강한결부터 소개를 시작했다. 줄줄 이어서 가장 끝에 서 있던 지영도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강지영입니다.”
와아…….
실물 대박…….
지영이 메이크업 뭔데……?
소곤소곤.
그러다가 한 선수가.
“헐, 지영이 헤어랑 메이크업 왜 저래요? 이잉, 언니. 지영이가 저보다 예쁘지 않아요?”
하고 양효선에게 투정 부린 게 오디오가 빈 순간 딱 타이밍 맞게 나와버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훅 쏠렸다. 시선이 몰리자 얼굴이 빨갛게 익어 얼른 양효선의 뒤로 숨는 배구의 정지은 선수 때문에 잠시 웃음이 터졌다.
“지영 선수. 다리는 괜찮아요?”
한유진의 얼른 분위기를 다른 곳으로 토스시켰다.
지영은 고개를 얼른 크게, 과장되게 끄덕였다. 정지은 선수의 민망함을 덜어주기 위해서였다.
“네, 많이 좋아졌어요. 사실 그냥 걸어도 되는데 혹시 몰라서, 조심하자는 생각에 깁스를 착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다행이네요. 올림픽 이후에는 그럼, 어떻게 지내셨나요?”
“올림픽 끝나고요?”
“네. 궁금해하실 분이 많으셔서. 호호.”
사실 한유진은 다 알고 있었다.
이미 사적으로 만나 밥을 먹은 적이 있어서, 지영이 뭘 하고 지냈는지 아주 잘 알고 있으면서도 저렇게 모른 척 시치미를 떼며 질문을 한다.
‘그래, 이게 방송이지.’
그리고 저게 전부, 장미 PD 옆으로 앉아 있는 작가들이 의도한 진행이었다.
“어, 음……. 정말 별로 한 게 없어요. 드라마 준비해야 해서, 대본이랑 액션 숙지했고요. 몸 상태 올리느라 치료, 재활, 휴식에 매진한 정도? 죄송해요. 딱히 특별한 게 없네요.”
“아이고, 좀 놀고 싶으셨을 텐데. 아쉽겠어요.”
“네, 뭐. 그렇기도 한데…….”
순간적으로 든 생각에.
“근데 누난 제가 어떻게 지냈는지 다 알면서 왜 물어요? 한국 오자마자 밥도 먹었는데?”
“어, 어어?”
“왜 오늘 처음 본 것처럼 그래요?”
“야, 야아! 이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하하하!”
당황한 한유진의 모습에 지영을 포함해 선수, 스태프까지 전원이 웃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