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78화
378화. 라이벌(9)
대혈투.
그레이트 게임.
강지영과 미야모토 신지의 결승전은 전 세계를 달궜다. 시간대가 맞는 유럽은 어느 순간부터 모든 중계를 유도 경기로 돌렸고, 그대로 중계했다. 시청률은 말할 것도 없었고, 인터넷은 폭발했다.
이런 경기는 유명인이 아니어도 사실 충분히 화제가 된다. 그런데 당사자가 지영이다. 올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인물이었고, 화제성으로 따지면 독보적인 원탑인 강지영의 결승전이라 안 그래도 초미의 관심이 몰린 경기였다.
그런 결승전이 무려 25분이 넘는 대혈투로 이어졌고, 끝끝내 지영의 승리로 대미의 장식이 맺어졌다.
순수 경기 시간만 무려 25분. 그렇다는 건 그쳐까지 합치면 거의 30분을 훌쩍 넘긴 경기를 거쳤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정규 경기 4분이 스타트 되는 시점부터 한판 선언이 나올 때까지를 보니, 무려 34분이나 걸렸다.
대단한 경기였다.
하지만 단순히 오래 싸웠다고 해서 대단하다고 하는 게 아니었다. 경기 내용이 더 화제를 이끌었다. 지루하지 않은, 34분 내내 가슴 졸이고 봐야 했던 명경기였다. 경기는 계속 박진감이 넘쳤고, 나중엔 비장함과 처절함마저 느껴졌다.
예전에는 카메라 몇 대가 동원되어 찍는 정도였으나, 요즘은 달라졌다. 선수의 표정이 아주 잘 보일 정도로 근접해서 샷을 따기도 해서, 당시 지영의 어떤 모습이었는지가 정말 잘 나왔다.
아픈 다리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투지를 불태우는 모습은 정말이지…… 엄청났다. 상대 또한 마찬가지였다.
팬들은 지영만 칭찬하고, 칭송하지 않았다.
그의 상대인 미야모토 신지에게도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가 갔다. 그런 이유는 역시 경기 내용 때문이었다.
미야모토 신지.
일본이 낳은 불세출의 유도 천재.
그는 스포츠맨십이 뭔지 아는, 참 선수였다. 예시예종. 예로 시작하여 예로 끝난다는 유도의 슬로건처럼 신지는 강지영이란 상대에게 예를 다했고, 최선도 다했다. 그렇기에 대단한 경기가 나왔다. 그런 신지에게도 찬사가 이어졌다. 결승전이 끝나고 30분 뒤 이어진 시상식에서 두 선수에게 쏟아진 박수갈채가 비슷했던 걸 보면, 장내에 있던 전부가 두 선수를 존중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랬던 경기는 당연히 즉시 대서특필됐다.
강지영 때문에 안 그래도 화제가 몰렸던 유도 경기가 그날 하루의 모든 화제를 모조리 잡아먹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강지영을 보며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게, 지영은 그런 대혈투를 승리로 장식하고 나서도 끝끝내 마이크 앞에 서지 않았다.
대쪽 같은 성품.
보통은 믹스트존(mixed zone)에서 당연히 인터뷰한다. 1회전에서 탈락해도 인터뷰는 한다. 그게 방송에 나가든, 나가지 않든, 하긴 한다. 하지만 지영은 그레이트 게임의 승자가 됐으면서도 마이크 앞에 서지 않았다.
거의 난동 수준으로 인터뷰를 요청하는 기자들을 경기진행요원과 병원 측에서 고용해 서로 상호 협조하기로 끝난 가드들이 막았다. 그리고 그 사이로 절룩이는 걸음으로 걸어서, 지친 기색이 완연한 얼굴로 퇴장했다.
그리고 깁스와 목발을 한 채 시상식에 올랐다.
태극기가 올라갈 때.
거의 모든 카메라가 지영의 얼굴을 잡았다.
아련한. 혹은, 애틋한.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는 지영도 역시 특별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이런 모든 것들이 화제가 됐다. 한국은 정말 난리가 났다. 지영의 경기는 한국 시각으로는 새벽이었다. 그래서 사실 시청한 사람보다 시청하지 못한 사람이 더 많았다.
그래서 이른 아침부터 거의 모든 채널에서 강지영의 경기가 송출됐다. 송출권이 없는 곳은 짧게 슬라이드 형식으로라도 내보냈고, 특집을 만들어 방송에 내보내기 바빴다. 화제의 중심. 아니, 화제 그 자체.
지영은 천상계에서, 더 높은 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 * *
시상식을 끝낸 지영이 향한 곳은 당연히 병원이었다. 병원에 도착하기 무섭게 정밀검사가 시작됐다. 몸에 열이 빠져나가고 나서 지영은 솔직히…… 걷기도 힘들었다. 근 30분 동안 경고를 계속 날려대던 걸 무시했던 대가를 뼈저리게 느껴야 하는 시간이 된 거다.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은 두말없이 곧장 반깁스를 채웠다. 준비성이 철저했다. 깁스를 받으면서 지영은 준비성이 참 대단하단 실없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결승전 이후 스케줄을 마치고, 병원으로 돌아온 지영은 수많은 검사를 받고 병실로 올라가 침대에 누웠다.
뇌가 빈 것처럼, 정말 텅 빈 것처럼 느껴졌다.
너무 에너지를 써서, 뇌가 활동을 정지한 것처럼 느껴졌다. 정말 거짓말처럼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완벽한 방전 상태. 그런 방전 상태에 빠져 있던 지영을 깨운 건 올림픽 위원회에서 나온 직원들이었다.
그들이 언제나 같이 움직이는 임은진과 함께 들어온 이유는 빤했다.
“지영아.”
“네?”
“도핑 테스트 때문에 나온 직원분들.”
“아, 네.”
지영은 일어나서 소변과 혈액 샘플 채취하는 데 협조했다.
그들이 나가자, 다시 침대에 앉은 지영. 여전히 멍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좀 전에 마주 보고 있던 직원 둘의 얼굴이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아…….”
“왜?”
“뇌가 멈춘 것 같아요. 뭘 좀 먹어야 할 것 같은데……. 지금 식사 될까요?”
“안 돼도 되게 해야지. 아, 근데 어머님이 뭐 만드시나 본데?”
“어? 그래요?”
“응. 밥 먹이고 싶으시다고 해서, 내가 근처 교민분 연결해 줬거든 어제. 아마 거기 가셨을 거야. 시상식 끝나자마자.”
“어…….”
그런 말은 없으셨다.
어머니는 지영이 시합 전에 어떤 상태가 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예체능 계열 종사자들은 사실 전부 시합이나 공연 전에 어느 정도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감각이 예민한 만큼 주변의 자극에 아주 날카롭게 반응하기도 한다.
이런 정도가 심한 선수는 여성이 마법에 걸린 날의 변화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남자 선수인데도 말이다.
지영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매우 예민해지는 편이었다.
그걸 잘 아는 어머니는 시합 전에 지영에게 말도 안 걸었다. 그저 시합 잘해. 아들 파이팅. 정도가 전부였다.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로.
시합 전날에는 전화도 잘 걸지 않았다. 그래서 지영이 언제나 먼저 걸었다. 그럼 오늘은? 오늘은 아예 마주치지도 못했다. 관중석에 앉아 계신 어머니를 보는 게 전부였다. 시상식이 끝나고 같이 사진을 찍을 때도 어머니는 말없이 안아주시기만 했다.
‘유진 누나는 펑펑 울기만 했고.’
얼굴이 퉁퉁 부어서, 제법 귀여웠었다.
어쨌든, 어머니는 그랬다. 그래서 지영은 어머니가 어디 있는지 알지도 못했다.
“그럼 밥은 좀 있다가 먹어야겠네요.”
“응, 너무 힘들면 조금 속 채울 죽이라도 달라고 할까?”
“아니요. 좀 참아보죠, 뭐. 그래도 누나랑 얘기 좀 하다 보니까 뇌가 조금씩 깨어나긴 하네요.”
“후후, 그래? 아, 잠깐.”
주머니에서 전화를 꺼낸 임은진.
“네, 대표님. 아, 제가 내려갈게요. 네, 로비에 계셔요. 네.”
짧게 전화를 끝낸 임은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표님 오셨대. 모시고 올게?”
“네.”
장세리 대표님은 지영의 시합을 보러 경기장에 오지는 못한 걸로 알고 있었다. 이유는 장세리도 선수단의 일원으로 왔기에 스케줄이 따로 있어서였다. 여자 골프팀 감독. 선수단에서 장세리 대표의 직함이었다.
레전드.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골프 세계사의 한 축을 담당하는 장세리는 이번에도 사령탑을 맡았다. 지영은 그사이 폰을 꺼냈다. 톡이 어마어마하게 왔다. 연예계 인맥도 뭐 크게 대단하진 않지만, 그래도 아는 배우들에게 전부 연락이 와 있었다.
그런데 와 있어야 할 사람에게 오지 않은 메시지.
지영은 고개를 갸웃하고 전화를 걸었다.
“온 걸로 아는데?”
그렇게 중얼거리며 전화를 걸자, 이선영이 전화를 받았다.
-어, 지영아!
“누나 어디에요?”
-나? 독일이지! 유도 경기장에 아직 있어!
“거기 아직도 있어요? 왜요?”
-흐흐, 왜긴, 너 때문이지. 나 잡혀 있어. 너랑 연결 좀 해달라고 다른 기자들이 붙들고 안 놔준다!
“아……. 어, 이거?”
-응, 스피커폰. 야, 이 정도는 좀 이해해 주라. 응?
“하하, 알았어요.”
그래, 이 정도야 뭐.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선영이다. 지금의 강지영이 있게 해준 일등 공신을 꼽으라면 지영은 주저 없이 이선영을 뽑을 거였다. 지금 당장은 임은진이 모든 것을 케어해 주지만, 애초에 이선영이 아니었으면 지영은 연예계에 발을 들이지도 못했을 거다. 아니, 다른 방향으로 발을 들이기는 했겠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성공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지영아, 우승 축하해! 크, 너랑 아까 사진 한 장 찍고 싶었는데 내가 또 기자라…… 그거 풀리면 나 맞아 죽거든. 하하!
“내일 찍어요. 안 그래도 아까 누나 안 와서 좀 서운했는데.”
-오…… 그랬어?
“네.”
-후후, 봤냐, 이것들아! 이 이선영이 이 정도다! 하하!
인터뷰도 아닌데, 이선영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래서 안심됐다. 솔직히 인터뷰를 못 해주는 미안함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기를 살려줬으니, 마음이 놓였다.
-몸은 어때?
“지금 검사 다 받고, 병실 올라왔어요.”
-그래. 괜찮았으면 좋겠다. 고생했어. 그리고 정말 고마워. 국민의 한 사람으로 지영이 너 때문에 어깨에 힘이 아주 많이 들어가는 중이거든. 아, 여기에 다른 나라 기자들도 있다? 다 폰 여기 대고 녹음 중이야. 하하!
“괜찮아요, 이 정도는.”
인터뷰도 아니고, 단순한 대화지만 이걸로 적어도 장난질은 못 친다. 이 대화를 녹음하는 이들이 그렇게 많은데 괜히 잘라서 장난을 쳤다가, 영원히 매장당하는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 오올, 금메달이 역시 너를 조금은 부드럽게 하는구나?
“그러게요.”
-후후, 잘됐네. 지영아, 금메달 축하해.
“고마워요.”
-자, 통화는 여기까지! 한국 가서 보자!
“네, 누나. 고생해요.”
-응! 끊는다!
전화를 뚝 끊은 이선영.
참 그녀다운 반응에 지영이 웃는 순간 장세리 대표가 임은진과 함께 병실로 들어왔다. 지영이 일어나려고 하자 장세리 대표는 얼른 손을 저었다.
“아냐아냐, 앉아 있어.”
“아, 넵.”
“어디 아픈 데는 없어?”
“그냥 시합 끝나면 전신이 쑤시니까요. 그 정도랑 발목도 좀 당기긴 하는데, 이제 진통제 맞아야죠.”
도핑까지 끝났으니 이제 진통제를 맞아도 된다. 사실 그게 가장 마음에 드는 지영이었다.
“그래, 아휴, 고생했어. 금메달 축하하고. 정말 축하해.”
“감사합니다.”
“정말 고생했어. 저녁은?”
“어머니가 뭐 만드신다는데요? 그거 기다렸다가 먹으려고요.”
“그래? 그럼 다행이고.”
장세리 대표는 지영의 어깨를 다독여 주고, 시계를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가시게요?”
“명색이 감독인데 자리 오래 비우긴 좀 그렇지. 지금은 엔터 대표가 아니라, 대표팀 감독이니까.”
“네, 음, 감사합니다.”
매우 함축적인 의미가 담긴 감사 인사였고, 장세대 대표는 내 뜬금없는 인사를 부드럽게 받았다.
“감사는 무슨. 내가 고맙지. 갈게. 몸조리 잘하고. 은진 씨. 잘 부탁해.”
“네.”
“네, 대표님.”
장세리 대표도 떠났다.
임은진이 배웅을 위해 같이 자리를 비우자, 지영은 침대에 누웠다. 지영은 고요한 병실의 천장을 보며, 음…… 금메달의 기분을 만끽해 보기로 했다.
“우승, 올림픽 우승……. 와, 강지영. 절뚝이 신세에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됐구나.”
올림픽은 역시 다른 대회와는 우승의 파급력 자체가 달랐다. 회귀하고 이제 4년 가까이 됐던가? 지영은 많은 대회에서 우승했다. 아니, 지금까지 무패였다. 기권패가 하나 있지만, 경기장에 들어가서는 아직은 패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 우승 기록은 많았다.
하지만 그 어떤 대회에도 지영에게 이런 감정을 만들어주진 못했다. 그런데 역시 올림픽은 달랐다.
시합의 긴장이 빠지고, 우승을 음미하기 시작하자 정말 말로는 형용하기 힘든 감정이 지영을 찾아왔다.
그냥 평범한 선수도 올림픽 금메달을 따면 온갖 감정에 휘말려 제정신을 차리기 힘들 건데, 지영은 과거까지 있었다. 회귀 전의 기억이 있기에, 이 금메달은 정말 의미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걷지도 못했던 그 과거에서, 이제는 금메달리스트다.
유도는 애증이었고, 미련이었다. 사실 그건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영은 이제는 그런 애증도, 미련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목표까지는 아직 두 개의 대회가 더 있지만, 그래도 올림픽 금메달은 팔부능선을 넘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금메달, 금메달.
하하.
지영은 그냥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 좋았던 기분도 잠시였다. 검사 결과가 나왔고, 수술이 결정됐다.
사유는, 뼛조각 제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