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58화
358화. 함부르크 올림픽(4)
사람의 심리가 참으로 묘한 게, 치열한 승부가 아닌 어느 한쪽이 일방적인 경기를 보게 되면 이상하게도 이기는 쪽이 아닌, 지는 쪽을 응원하게 된다. 이는 양측과 관련이 아예 없는 제삼자의 입장에서 두드러지게 나왔다.
물론 절대적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높은 확률로 승자보단 패자에게 감정 이입을 해 응원한다.
왜 그럴까?
어떤 이유로, 잘하는 승자가 아닌 패자에게 감정 이입을 할까?
수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들 개개인의 이유를 적어 내보라고 하면 당연히 천차만별일 것이다. 하지만 전체를 관통하는 이유는 나올 수 있었다.
바로.
천재에 관한 반감.
이게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어느 한쪽이 압도적인 경기는 동정심을 유발하기도 하는데, 심지어 이기는 쪽이 천재란 소리를 듣는다? 그럼 천재에 대한 반감이 폭발적으로 솟구친다. 왜 그러냐고? 지구상의 인구 99.99%가 범인이기 때문이다.
대상이 되는 천재에게 관심이 없으면, 그 선수가 내 나라의 선수도 아니고, 내가 관심이 있는 선수도 아니면, 대다수가 그 천재 말고, 그 천재에 대항하는 범재를 응원한다.
팬이 아닌 이상은 챔피언보단 도전자를 응원하게 된다는 거다.
물론 앞서 말했듯, 절대적인 건 아니다.
세상에 절대적인 정답은 없으니까.
그리고 지금, 절대적이지 않은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함부르크 올림픽. 남자 유도 -66㎏ 준결승 경기 하나가 딱 그렇다는 소리다. 경기는 압도적이었다. 이는 해설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이성진 업어치기! 아! 이번엔 앞으로 떨어집니다! 아까워요, 조금만 더 당겼으면 넘어갔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까?”
“네, 조금만 당겼어도 넘어갔을 것 같은데 마지막에 기울이기가 조금 부족했네요. 음, 그런데 왜일까요? 왜 저는 기울이기가 부족했던 게 아니라, 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걸까요?”
“네?”
“제가 이성진 선수의 훈련을 오래 지켜봤거든요. 이성진 선수의 업어치기는 정말 경지에 올랐어요. 기정이…… 전기정 감독님과 비교해도 절대로 부족하지 않거든요.”
“허허, 교수님이 전기정 감독님보다 위셨죠?”
“아닙니다.”
“아, 그렇다고 그렇게 정색을……. 네, 그래서요?”
“네, 어쨌든. 이성진 선수 기술을 보면 정말 대단해요. 기울이기, 지읏기. 유도에서 기술의 막판에 반드시 들어 가줘야 하는 이 능력이 아주 기가 막히거든요. 어떤 순간에서도 제대로 당길 줄을 알아요. 그런 선수가 지금 몇 번씩이나 막판에 기울이기와 지읏기를 실수하고 있어요.”
“아…… 그럼 의도적으로?”
“네. 저는 그렇게 보이네요.”
조인선 해설의 말에 배영우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곤 띠를 고치며 시간을 끄는 이성진을 보면서, 재차 입을 열었다.
“그럼 혹시, 세계 선수권 때의 감정이 남아서 그런 걸까요?”
“……그렇다고 봐야 할 겁니다. 그런 반칙은 사실 트라우마로 남을 수도 있어요. 잘 이겨낸 건 대견한 건데, 그건 그것대로…… 다른 쪽으로도 작용한 것 같네요.”
“음…… 그럼 이게 도의적으로 문제가 될까요?”
“……네.”
조인선 교수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보기에 지금 이성진은 무려 준결승에서, 자신의 코를 아작냈었던 아베 히후미의 복수를 하고 있었다. 시작과 동시에 안으며 덧걸이를 기습적으로 쳐온 걸 받아서 업어치기 절반을 따낸 뒤, 이후 경기는 압도적이었다.
기무라 히로.
일본 남자 유도 -66을 이끌어갈 차세대 에이스는, 절반을 뺏긴 뒤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이성진은 이미 기무라 히로에게 승리한 적이 있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예전 아시안 게임에서도 욕을 욕대로 얻어먹었었다.
압도.
이성진의 스타일은 기무라 히로를 저격하기에 아주 좋았다. 가뜩이나 업어치기 방어가 약한 기무라 히로인데, 이성진은 업어치기가 경지에 올랐다. 이러니 상대성에서 너무 이성진 쪽으로 기울었다.
이성진은 이런 상대성과 실력, 그리고 마음가짐을 토대로 지금 복수전을 펼치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욕먹을 짓이었다.
이성진이 아베 히후미에게 말도 안 되는 일을 당한 거야, 모두가 알고 있었다. 유도계에 종사하는 이들이라면 당연히 다들 아는 얘기였다. 본인이야 덕분에 콧대를 세웠다며 너스레를 SNS를 통해 떨었지만, 복수심이 없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당사자인 아베 히후미는 강제로 은퇴당했다. 모든 협회에서 공식적으로 올라간 보이콧으로 결국 선수 생명이 끝장났고, 원래 이곳에서 만나야 했을 아베 히후미 대신 나온 기무라 히로에게 이성진은 그 복수심을 풀고 있었다.
어느 정도 경기가 진행되다 보니, 관중부터 알아봤다.
이성진은 끝낼 수 있었다.
이미 업어치기로 끝낼 기회가 적어도 네 번은 있었다. 그 네 번은 완벽했던 네 번이고, 그러지 않았던 기회까지 합치면 더 많았다. 하지만 이성진은 그 기회를 살리지 않았다. 분명 넘길 수 있었으면서도, 이성진은 넘기지 않는 걸 택했다.
업어놓고, 놨다.
업은 다음 놨기 때문에 기무라 히로는 넘어가다 말았다. 몇 번이나 이 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어느 정도 유도를 보는 눈이 있는 이들은 전부 눈치챈 거다. 이성진이 그때의 복수로, 기무라 히로를 ‘가지고 노는’ 치욕을 안겨주고 있다는 것을.
이는 결코 유쾌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선수에게 굴욕을 안겨주는 것과 같으니, 어찌 옳다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기이한 일이었다. 그 누구도, 이성진을 비난하지 않았다.
천재에 관한 반감이 작용해도.
도의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함에도.
누구도 이성진을 욕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해했다.
이건 진짜 기이한 일이었다.
하지만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일본.
일장기를 가슴에 박은 유도 선수.
이들은 그 어떤 응원도 받지 못했다. 선수 소개와 등장 음악이 나와도 박수는커녕, 고요했다. 응원조차 보이콧한 것이다.
이는, 형벌이었다.
선수가 무슨 죄가 있냐고?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거다.
맞는 말이기도 했다. 잘못한 건 협회지, 선수가 아니니까. 하지만 이전의 일은 선수와 협회가 동시에 잘못한 거다. 그리고 그들은 대회에 그 어떤 코멘트도 없었다. 이는 침묵으로 동조한 거다. 협회가 무서워서 입을 닫았어도, 동조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이 자체가 최소한의 스포츠맨십조차 보이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이걸 아니까, 일종의 형벌로 그 어떤 응원도 해주지 않는 것이다.
이건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었다. 그냥 아주 자연스럽게, 정말 너무나 자연스럽게 일본 유도 선수에 관한 보이콧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래서 보통은 욕먹을 짓인데도, 이성진은 욕먹지 않았다.
쿵!
달려드는 기무라 히로를 받아 툭 업은 이성진은 그대로 넘기지 않고, 오히려 잡아줬다. 넘어가지 말라고. 그러곤 도복을 놓고는 뒤로 물러났다. 그런 이성진을 보는 기무라 히로의 얼굴이 구긴 과자봉지처럼 일그러졌다.
이건 지독한 모욕이었다.
으아아!
결국 기무라 히로는 참지 못했다.
그는 20초를 남겨두고 심판을 향해 손가락을 교차해 보였다. 시합을 포기하겠다는 뜻이었다. 심판은 그걸 받아들여, 그대로 띠를 고치란 수신호를 보냈다. 이성진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도복을 고쳤다.
고개를 푹 숙인 기무라 히로는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치욕이다.
경기를 냉정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지영은 순간적으로 안호진이 떠올랐다. 기무라 히로가 느끼는 감정은 일전에…… 안호진이 느꼈던 감정과 비슷할 것이다. 신지에게 아시안 게임에서 굴욕을 당한 안호진은 결국 은퇴했다.
선수 생활을 하고는 있지만, 대표는 이제 은퇴한 그가 느낀 감정과 매우 흡사할 것이다. 지영은 기무라 히로가 불쌍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SNS를 통해 아베 선배의 복수를 하겠다는 글을 남겼던 놈이었다.
그 글은 올라왔다가 얼마 되지 않아 지워졌지만, 이미 기사로 나갔다.
그리고 당연히 이성진은 그 기사를 확인했다.
‘복수?’
어처구니가 없는 소리였다.
사실 지영은 이성진이 다른 경기는 몰라도 이 경기에는 진심으로 날을 갈았음을 알고 있었다. 컨디션 조절 겸 기술 연구를 하면서 미리 전해 들었기 때문이었다. 지영은 그걸 들었을 때, 반대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미안했다.
이성진이 그날 당했던 사고는, 결국엔 자신을 노린 칼날이었다. 그런데 자신을 직접 노릴 수 없으니 절친이라 알려진 이성진을 노리고 사고를 친 것이다. 그러니 이성진은 피해자였다. 그런 이성진에게 그래도 올림픽이니까 좀 참아. 이런 말을 하는 건 솔직히 매우 양심이 없는 짓이었다.
지영은 유도복을 입었을 때만큼은, 정말 독한 마음을 때때로 먹었다.
회귀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자신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던 선수의 팔을 아작냈던 적도 있었다. 물론 유도 경기 룰이 인정하는 범위 내에서 했던 행동이지만 어쨌든, 지영도 그랬다.
이성진도 그런 거다.
싱글싱글 웃는다고 해서 이성진이 마냥 착하기만 한 바보라 생각하면 곤란했다. 지영만큼이나 강력한 트라우마를 가진 게 이성진이고, 아베 히후미의 폭력은 그런 이성진의 트라우마를 일정 부분 자극했다.
트라우마의 자극 결과가 저거였다.
꾸벅.
승자 선언 뒤 밖으로 나오면서 이성진은 관중석을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 의도는 명확했다.
‘역시 영악해.’
불편한 모습을 보여 죄송하다는 뜻이다, 저건.
자신도 자신이 저지른 행동의 뜻을 잘 알고 있었다. 혹은 알고도 했다. 이런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이게 그의 행동에 날아들 비난을 어느 정도는 막아줄 거라 ‘계산’했을 거다.
즉, 무작정 일을 터친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지영은 이성진의 행동을 보고 참 영악하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육체적 재능도 상위권이지만, 머리도 상당히 좋은 황금세대였다. 그래서 전국에서도 순위권에 드는 사립 고교에서도 제법 공부 잘하는 축에 들었다.
밸런스 조화가 죽이는 재능에서 나오는 실력은, 이성진을 결국 올림픽 결승전이란 무대에 올렸다. 이성진이 결승에서 맞붙을 상대는 이미 정해졌다. 도쿄 올림픽 이후 랭킹 1위를 유지 중인 몰도바 공화국의 데니스 비에루라는 선수였다.
각종 대회를 휩쓸며 아베 히후미가 없는 왕좌를 향해 거침없이 진격 중인 이 선수는 전형적인 올라운더였다. 틀어잡기도 하고, 발기술도 수준급이고, 빗당겨치기를 비롯한 기술을 상당히 날카롭게 구사하는 선수였다.
무결점까진 아니지만, 특별히 눈에 띄는 약점은 없는 선수.
하지만 반대로.
특별히 이건 무조건 조심해야 한다! 하는 기술도 없는 선수.
이 선수의 능력치를 그래프를 통해 본다면 아주 고르게 분포되어 있을 게 분명했다. 그래서 지영은 이성진과 함께 결승전에 올라올 선수 1순위로 꼽았다. 그리고 역시, 올라왔다. 신기하게도 데니스 비에루는 이성진과는 한 번도 붙은 적이 없었다.
이성진이 참가한 대회에도 나오긴 했지만, 이성진이 올라간 대회는 그가 떨어져서였다.
그러니 이번이 첫 승부다.
영상 데이터만 있는 선수는 극히 조심해야 했다.
영상에는 분명 스타일이 있는데, 이걸 노려서 카운터 기술을 들고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었다.
지영은 그걸 무조건 조심하라고 했다.
그리고 그것 외엔, 다른 코멘트는 하지 않았다.
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제대로 한 번.
‘한 번 업는 순간 게임은 끝날 테니까.’
이성진의 업어치기는 알면서도 말려가는 업어치기다. 그의 업어치기 방어가 수월했다면, 이성진에겐 패배가 몇 번이나 있었을 거다. 그게 국내든, 국외든 말이다. 그러나 성인 무대 데뷔 후 이성진은 패배가 없었다.
주니어 무대에선 있었지만, 주니어 꼬리표를 뗀 대회에서는 세계 선수권을 제외하고 단 한 번도 없었다.
칼각을 만들어 파고들어 가는 그의 업어치기는, 어? 하고 날아간다.
흔히 눈 뜨고 코 베인다는 말처럼. 스르륵, 귀신에 홀린 것처럼 파고들어 온다. 이런 업어치기에 지영도 연습 때 몇 번이나 하늘을 날았다.
방어유도의 귀재인 지영조차 어, 하는 순간 하늘을 나는 게 이성진의 업어치기였다.
결승전의 관전 포인트는 1회전부터 지금까지 경기와 같았다.
과연 상대는 이성진의 업어치기를 막을 수 있을 것인가. 막지 못할 것인가. 여기서 승패가 결정된다.
사실상 모든 경기의 관전 포인트는 같았다.
승패의 키포인트도 같았다.
막나, 막지 못 하나의 단 방 승부.
패자전이 전부 끝나고, 여자 결승이 끝나고, 남자 -66㎏ 결승전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