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52화
352화. 운명처럼 그렇게(4)
삐익- 삐익-
규칙적인 소리를 인지하며 지영은 천천히 눈을 떴다. 자다 깨서 역시 정신이 좀 몽롱했다. 그러나 그런 느낌은 금방 사라지고, 사태 파악이 됐다. 병실. 검사를 끝내고 긴장이 풀린 탓에 기절하듯 잠들었었다.
“끙…….”
지영은 몸을 일으켰다.
잠기운 때문에 몸이 무거웠고, 붕대를 감아 놓은 발이 불편했다. 이런 불편함 때문에 잠들기 전까지의 기억이 폭풍처럼 밀려들었다.
지영은 사고 직후 기절하지 않았다.
다행히 트럭은 감속할 만큼, 최대한 감속했다. 그 결과 어? 하고 쾅! 치고 지나간 게 아니라 진짜 끼이이익! 소리를 내며 감속하면서 툭, 지영을 쳤다. 마지막에 마지막 순간까지 다리를 접어서 몸이 빙글 돌았으나 그래도 그냥 감속도 없이 치인 거에 비하면 진짜 천만다행이었다.
그 결과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긴 했지만 크게 다치지 않았다.
마지막에 떨어지는 그 순간까지 아이를 꼭 안고 있었던 것까지 전부 기억났다. 첫 번째, 두 번째 사고 당시 느꼈던 그 아득하고, 끔찍했던 고통까지 느끼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무사한 건 아니었다.
지영은 곧장 병원으로 옮겨졌고, 정밀 검사를 받았다. 상황이 상황이고, 인물이 인물인지라 지영의 검사는 굉장히 빠르게 진행됐고, 검사 결과도 빠르게 받아볼 수 있었다.
무릎 타박상. 종아리 타박상. 발목 타박상, 어깨 타박상.
‘천운이지…….’
골절이 아닌 게 어딘가.
뼈에 금이 갔거나, 인대가 찢어졌거나 하는 부상은 그 어느 곳도 없었다. 접었던 무릎을 툭 치면서 무릎과 종아리에 타박상이 왔고, 떨어지며 아이 때문에 낙법을 제대로 치지 못해 발목과 어깨도 땅바닥에 찍혔다.
고작 6살? 7살? 체구로만 봤을 땐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아이지만 그렇다고 체중이 없는 건 아니었다. 큰 원판 하나를 안고 뚝 떨어진 거와 같으니 몸이 완전히 괜찮길 바라는 건 애초에 무리였다. 그래서 이곳저곳 타박상이 왔다.
그중 발목과 어깨가 좀 심했다.
처음엔 그렇게 아프지 않았으나 병원에 와 검사를 받으며 긴장이 풀렸을 땐, 통증이 제법 심했다. 발목은 부었고, 어깨는 욱신거렸다. 지영은 직감적으로 그 부상이 얕지 않다는 걸 알았다. 사실 지영이 천운이라고 한 건 차에 치이고도 이 정도 부상이었기에 천운이라고 한 거지, 아주 괜찮아서 한 건 아니었다.
분명히 통증은 있었다.
타박상이라고 했지만, 실제로 이 정도면 몇 주는 정양해야 할 부상이었다. 그런데도 지영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하하…….”
미친 짓을 했다.
소피라고 했던가? 그 아이를 구하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자, 손발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자각한 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미친 짓을 했는지. 트라우마. 아직도 강력하게 자신의 영혼에 각인된 그 날의 기억은, 그 순간에 자신의 영혼과 육신을 잡고 뒤흔들어 강제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후회는…… 없어.’
없다.
후회는 없지만, 솔직히 무서운 일을 겪었다는 기분을 지우지는 못했다. 그게 두려움이 되어 전신을 엄습했다. 하지만 그래도 웃음은 나왔다. 그렇게 미친 짓을 하고도, 이 정도로 끝났다. 어떻게든 살겠다는 강력한 생존 본능이, 폭발한 욕구가 그 짧은 순간 정말 말도 안 되는 선택과 행동을 하게 만들었고, 소피와 자신 모두 무사할 수 있었다.
소피는 아예 무사하고, 지영은 몇 주는 정양해야 하는 부상이었지만.
“이 정도면 아예 안 다친 거나 마찬가지지, 암. 아암.”
진짜 뒤지는 줄 알았다.
지영은 이번 일이 진짜 천운임을 잘 알고 있었다. 벤츠의 화물트럭에 그 관성 제어 프로그램? 시스템? 그게 설치되어 있지 않았으면 애초에 피하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거다. 하지만 트럭은 급정거를 넘어, 그냥 물리법칙을 무시하고 멈춰 서다시피 했고 그 결과 조금의 틈이 나왔다. 그 틈을 이용해 피했을 때 그 차선에서 오던 한국 용달차를 봤을 땐 솔직히 다 틀렸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지영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씨X!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욕을 내질렀지만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 순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을 내렸다. 앞으로 굴러야 하나, 몸을 회전낙법처럼 날려야 하나 많은 고민이 그 순간 스쳤고, 발로 밀어 차 추진력을 얻는 미친 짓을 선택했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평범하게 앞으로 확 날았어도 될 것 같긴 했다. 물론 그냥 감이었다. 그러나 그때도 감으로 움직였고, 결과적으로 지영은 이 정도면 정말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결과라고 생각했다.
“하아…….”
깁스한 발목도, 붕대를 감아 놓은 무릎도, 교정기로 감아 놓은 어깨도 정신이 맑아지면 맑아질수록 통증은 되살아났지만 그래도 그냥 기분이 좋았다. 열기 띤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래도 입은 웃고 있다는 걸 알았다.
1인실.
지영은 천천히 몸을 세웠다.
화장실에 가려고 신발을 더듬거리며 신는데 문이 열리더니 간호사가 들어왔다. 동양계, 그중에서도 한국계 간호사였다. 태어나기를 독일에서 태어나 한국어가 어색하긴 하나 그래도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는 레벨을 갖춘 간호사였다.
미셀? 이름이 그랬던 것 같았다.
“깨어났네요? 몸은 좀 어때요?”
“괜찮아요. 잠깐 화장실 좀 먼저 갔다 와도 될까요?”
“물론이에요. 히어로 강.”
“히어로? 설마 그 단어가 제가 아는 단어가 맞나요?”
“호호, 그럼요. ‘영웅’이란 단어 말고 당신에게 어울리는 단어는 찾기 힘들거든요. 적어도 지금은요.”
“……제발, 살려주시죠? 저 사라져서 곤욕 치르기 싫으시면?”
“후후, 알았어요. 체크할 게 있으니 얼른 갔다 오세요. 아, 여기 컵에 소변도 좀 받아다 주시고요.”
어색한 한국어지만, 그래도 역시 대화는 어색하지 않았다.
컵을 받은 지영은 화장실에 갔다가 나왔다. 미셀은 컵을 받아 바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 혈압부터 시작해 체크하기 시작했다. 정상. 정상. 기분도 좋았다. 불편함만 빼면 컨디션 자체는 정말 최고, 베스트였다.
물론 그렇다고 걱정이 없는 건 당연히 아니었다.
미셀이 나가고 다시 혼자가 된 지영. 지영은 침대에 눕지 않고 새벽 비 떨어지기 시작한 창밖을 바라봤다. 지금은 새벽이다. 친구들도 숙소에서 자고 있을 시간이다. 감성적일 수밖에 없는 시간.
현재 당면한 문제 중, 가장 큰 문제가 오래 참았다는 듯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이 몸으로, 시합은 뛸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일단 이 정도면 정말 결과 중에서는 최고였다. 많은 운이 겹쳐서 나온 결과지만, 그래도 어디 하나 부러지지도 않았다. 심지어 피조차 보지 않았다. 땅바닥에 떨어지면 등, 어깨가 살짝 땅에 긁혔지만 그건 부상이라고 칠 수도 없었다. 그러니 타박상으로 끝난 건 정말 최고의 결과였다.
하지만 타박상 자체는 문제가 됐다.
발목은 깁스하기 전에도 느꼈지만, 시큰거리는 느낌이 역시 강했다. 무릎도 말할 것도 없었고, 가장 큰 문제는 어깨였다. 제대로 뚝, 떨어져서 낙법을 치지 못했다. 소피를 안고 있었고, 그 체중에 눌려 오른쪽부터 뚝 떨어지면서 그쪽이 충격을 전부 흡수했다.
제대로 낙법도 치지 못한 상황에서 소피의 체중까지 감당했으니, 무사하길 바라는 건 솔직히 무리였다.
그리고 그것처럼, 어깨는 역시 좋지 않았다.
엑스레이 촬영 결과로 뼈에는 문제는 없지만 분명 근육은 상했다. CT를 찍자 역시, 꽤 좋지 않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이런 몸이다.
“이런 몸으로 올림픽이라…….”
정말 참, 지랄 맞다.
피식 웃는 지영이지만 창문에 비친 지영의 눈빛엔 체념의 빛이 조금도 없었다. 오히려 빛나고 있었다. 이런 부상? 이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영은 이것보다 훨씬 더 극악한 부상도 경험했었다. 눈이 찢어지고 뭐 이런 거 말고도 그냥, 그때 입은 부상을 생각하면 솔직히 이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올림픽을 포기하라고?
“따지고 보면 고작 타박상인데……?”
못 하지.
그건 절대 용납하지 못한다.
지영은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여기까지 이 악물고 악착같이 기어서 온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황금색 카펫을 걸어온 것도 아니었다. 남들이 하는 정도의 노력? 그 이상 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렇게 노력한 지영이 바라마지 않던 대회고, 목적지였다. 선수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커다란 명예가 기다리는 대회다.
물론 아직 어린 자신에게는 많은 기회가 있겠지만, 그래도 지영은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게 마지막 기회는 아니지만, 이건 놓치기 너무 아깝다는. 그래서 지영은 담당 주치의가 시합은 좀 힘들겠다고 했을 때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주변에서 탄식이 흘렀지만, 지영은 속으로 1㎏ 남은 감량은 어떻게 해야 하나, 그걸 고민하고 있었다. 즉, 포기할 생각이 애초에 없는 지영이었다. 그래서 임은진에게 부탁해 도핑에 문제가 될 만한 약은 모두 커트해 달라고 했다.
그녀는 그 말에 지영의 뜻이 어떤지 눈치챘고, 눈빛에 서린 기세를 보고 말려봐야 소용없다는 걸 알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그래도 지영의 부탁을 들어줬다.
이미 그렇게 준비하고 있는 지영이었다.
기사로 전치 6주? 시합 출장 불투명? 이렇게 기사가 나간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당장 며칠 만에 몸 상태를 최선으로 끌어올리는 게 먼저였다. 고작 며칠로는 힘들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래도 해야 했다.
‘회귀까지 해가며 얻은 이 기회를…… 이렇게 날릴 수 없으니까.’
그래, 날릴 수 없었다.
지영은 이렇게 포기하기엔, 그간 해온 노력이 너무 아까웠다. 소피를 구한 것에 후회는 죽어도 없지만, 이렇게 대회를 포기하게 되면 그땐 또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단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뛸 생각이었다.
“그러려면…… 전략을 지금부터라도 전부 수정해야 해.”
정상 컨디션인 자신이 만들었던 상대의 대응법을 모조리 갈아버려야 했다. 지영은 창가에서 떨어져, 소파에 앉았다. 1인실. 넓어서 좋은 1인실의 소파에 앉은 지영은 임은진에게 미리 부탁했던 노트북을 펼쳤다.
그리고 상대 선수들의 시합 영상을 다시 확인하기 시작했다.
1회전, 2회전 예상 상대, 3회전 예상 상대. 전부 확인해 본 결과 지영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전부 오른쪽 자세였다. 오른쪽 자세면 그나마 어깨에 부하가 덜 간다. 맞잡으면 초근접전이 펼쳐지고, 그러면 부하가 만만치 않게 걸릴 건데 다행히 다 오른 자세였다.
준결승, 결승은 워낙 올라운더 스타일이라 어떻게 될지 모르니 자세를 맞추는 건 포기했다.
‘그럼 기술은…….’
몸이 자연스럽지 않은 상태다.
그럼 이때 노려야 하는 건 역시…… 카운터였다.
자신이 장기를 극대화할 필요가 있었다.
‘분명…… 부상 부위를 노려올 거야.’
어마어마한 야유가 뒤따를 수도 있는 행동을 서슴없이 하는 선수가 분명 있을 것이다. 왜? 올림픽이니까. 어쩌면 그 선수 인생에서 두 번 없을 올림픽이 될 수도 있으니까. 이 대회에 간절했던 이들은 당장 한국만 해도 수두룩하다.
경험하는 곳이 아닌.
증명하는 곳이다.
그렇기에 증명하기 위해 간절함이 머리끝까지 도달해 있을 거다. 그러니 상대의 약점을 공략하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상대가 비록, 현재 전 세계적으로 ‘영웅’으로 추앙받는 선수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에겐 그만의 간절함이 있고.
일반인은 아무리 간절해도 그런 비신사적인 행동은 하지 않을 거로 생각하겠지만, 지영은 선수이기에 안다.
간절함은, 그 어떤 비난도 이겨낸다는 것을.
그러니 분명 발목, 무릎을 노리는 선수가 나올 거다.
‘그걸 역으로 노리자.’
불편한 것처럼 연기, 아니, 불편하니까 그냥 연기하지 않아도 상대에겐 노리고 싶은 맛 좋은 먹이처럼 보일 것이다.
미끼. 그리고 낚시.
자신이 아주 잘하는 것.
잘하는 걸 잘하면, 이번 대회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게 지영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지영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대어를 낚을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했다.
우승.
지영은 이번 올림픽, 반드시 우승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