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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335화 (335/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35화

335화. 파리 오픈(3)

“나간다고? 누가?”

“우석이랑 경우, 정민입니다. 걔들 학교에서도 중요한 행사가 있어서 보내달라고 공문 왔습니다. 네, 뭐. 실제로 중요한 행사는 없겠지만요.”

“허.”

전기정 감독은 어이가 없어서 코치 김재정의 말에 헛웃음을 흘렸다. 좀 전에 말한 이름은 파트너로 들어와 있던 선수들 이름이었다. 이제 대학교 1학년들이다. 황금세대의 한 살 후배들이고, 유망주들이었다.

그런데 이 셋이 파트너를 하지 않고 나가겠다고 한 거다.

전기정 감독은 이런 상황은 처음이어서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사실 파트너로 들어오는 것도 실력을 인정받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고등학교, 대학교 저학년 선수들은 무조건 유망주만 뽑는다. 차기 대한민국 유도를 이끌어갈 미래의 동량을 미리 불러 키운다는 소리였다.

그러니 선수 한 명 한 명의 실력이 다 상당했다.

“왜? 행사도 없는데 왜 도로 부른 건데? 협조 공문 다 받았을 건데.”

전기정 감독의 질문에 김재정 코치는 좀 머뭇거렸지만, 이내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말했다.

“아무래도 애들이 먼저 요청한 것 같습니다.”

“뭔 요청?”

“지금 분위기가 좀 뒤숭숭합니다. 황금세대 애들이 너무 압도적이라서, 파트너 애들이 기가 많이 죽고 있습니다.”

“……심각한 정도야?”

“네.”

김재정의 확답에 전기정 감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근래 전기정 감독은 여자팀 훈련에 집중하고 있었다. 워낙 분위기가 뒤숭숭해서 자신이 직접 보고 있었던 거다. 자기가 바로 앞에 있어야, 그래도 집중할 거고, 그래야 부상 위험도가 많이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여자팀 쪽에 거의 붙어서 훈련을 진행 중이었다.

사실 남자팀. 특히 황금세대와 장대호는 알아서 훈련을 잘하기 때문에 건드릴 부분이 없었다. 기술적인 부분도 부분이지만, 멘탈부터 시작해 황금세대는 보는 자신도 질릴 정도로 유도에 진심이었다.

훈련 중에도 한눈을 파는 경우가 거의 없는 모습은 솔직히 전기정 감독 본인이 보기에도 좀 말이 안 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런 모습을 보여주니 역으로 안심하고 여자팀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러는 동안, 황금세대는 선수들의 멘탈에 폭격을 가했다.

“재정아.”

“네, 감독님.”

“너 땐 누가 제일 잘했냐?”

전기정 감독의 질문에 김재정 코치는 잠시 생각하다가, 답을 내놨다.

“아무래도 호진이죠?”

“너 걔랑 몇 번 붙었어.”

“세 번 붙었는데, 다 깨졌습니다. 하하.”

“그때 심정이 어땠냐? 아, 재정아. 내가 이건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너 모욕하려거나, 그런 게 아니라. 나는 정말 모르겠거든. 그런 마음.”

“네, 잘 압니다. 흐음…….”

전기정 감독은 당연히 그런 마음을 모를 수밖에 없었다.

왜?

전기정 감독 본인이 세계 명예의 전당에 등재된, 당대의 천재였기 때문이었다. 그 이전에 전기정 감독의 체급엔 요시다 히데히코라는 선수가 있었다. 천재란 단어는 그를 위한 단어였었다. 하지만 전기정 감독은 그런 천재를, 무참히 박살 내며 꺾었다.

새로운 제왕의 등장이었다.

즉, 전기정 감독도 당대의 천재이자, 제왕이었다. 그렇기에 절망, 혹은 질투란 감정을 잘 알지 못했다. 그는 노력도 노력이지만, 재능 또한 그만큼 타고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질투라는 감정을 잘 알지 못했다.

왜?

노력한 만큼 대가를 얻었으니까.

그리고 그걸 솔직하게 말해서 김재정 코치도 그렇게 기분이 나쁜 얼굴은 아니었다.

“좀 힘들긴 했습니다. 음, 뭐랄까. 호진이는 어떻게 해도 이기지 못할 것 같단 느낌이 들었거든요. 다른 선수들은 뭐, 아 조금만 더 하면 잡을 수도 있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호진이는 그런 마음이 일절 들지 않더라고요.”

“그래. 그래서 은퇴하고 코치로 들어왔구나?”

“네.”

안호진과 김재정은 동갑이다. 하지만 안호진이 절정의 기량을 펼칠 때, 2선발, 혹은 3선발이었던 김재정은 유도복을 벗었다. 정확히는 선수 은퇴를 했다. 그리고 평소에도 관심이 있던 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국가대표급 실력자였기에, 당시 대표팀은 김재정의 코치 전환을 매우 반겼고, 바로 팀으로 받아들였다.

“도망친 거죠. 하하.”

“도망은 무슨. 야, 그런 소리 마라. 다음 대 국가대표 감독이 될 놈이.”

“감독은요. 제 나이가 이제 서른셋인데요.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그리고 절대, 절대로 안 시켜줄 거 빤히 아시지 않습니까?”

“어휴.”

여기엔 또 그놈의 으른들 사정이 있다.

협회에서 황금세대는 솔직히 쳐내고 싶은 놈들이었다. 통제는커녕, 반기를 들어도 몇 번이나 들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솔직히 통제하려는 의도가 없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걸 최전선에서 막아섰던 게, 바로 김재정이었다.

즉, 이미 협회에 찍혔다는 소리였다.

그걸 지금 커버쳐 주고 있는 게 전기정 감독이었고, 전기정 감독이 물러나면 100%의 확률로 축출이었다.

“쯔, 하여간 미친 협회. 나랑 같이 용인대로 가자. 너 자리 하나쯤은 내가 충분히 챙겨줄 수 있으니까.”

“넵.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

“자, 이제 다시 본론으로. 파트너 애들은 더 이탈하겠지?”

“네. 그리고 실업팀 몇 군데도 보니까, 안 들어 올 것 같습니다.”

“어이구, 다 큰 놈들도 그래?”

“뭐…… 워낙 압도적이지 않습니까?”

“하…….”

전기정 감독은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이게 생각보다 만만한 문제는 아님을 직감했다. 축구나 농구는 혼자 훈련이 가능하긴 하다. 볼을 차거나, 볼을 던지거나. 야구도 배팅 기계를 가져다 놓고 타격 훈련을 하거나, 표적지를 놓고 피칭을 하거나. 이런 식으로 훈련 가능하기는 했다. 물론 실전 감각을 올리려면 상대의 존재가 절대적인 건 똑같았다.

하지만 유도는?

파트너의 존재 자체가 너무 절대적이었다.

훈련 자체가, 선수가 없으면 아예 불가능한 구조였다. 체력훈련은 혼자 할 수 있고, 웨이트도 혼자 할 수는 있고, 고무줄도 혼자 당길 수는 있지만, 실력 향상에 가장 중요한 굳히기나 자유 연습은 상대가 무조건 있어야 했다.

그것도 실력이 상당한 파트너가 필요했다.

훈련은 서로 실력이 비슷하거나. 아니, 적어도 상대가 가능한 상대여야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어린아이를 잡고 훈련해 봐야, 실력향상에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언제나 파트너로 유망주들을 데리고 온 거다.

“애초에 고등부 애들은 데리고 올 수도 없을 거고.”

“상대도 안 될 겁니다.”

지금 고등부 선수들은 피지컬도 피지컬이지만, 실력 부분에서 황금세대의 파트너로 쓰기에는 너무 부족했다. 중등부와 고등부가 차이 나듯이, 고등부와 대학부도 당연히 차이가 크게 났다. 아주 극소수만이 그 차이를 무시하고 활약하긴 하지만 말했듯이, 아주 극소수였다.

예를 들면. 황금세대 같은 극소수 말이다.

“대학부는? 걔들 나이 때문에 또 싫다고 하는 애들 많지?”

“네. 이제 대학교 2학년 애들 따까리 하러 들어오기엔, 용인대 애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 겁니다.”

“자존심은 개뿔. 실력을 올릴 수 있으면 개똥밭에도 굴러야 할 새끼들이. 쯔쯔.”

매우 시대착오적인 발언이었다.

그리고 그건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답답했다. 대학교쯤 오면, 이제 프라이드도 문제가 된다. 나이가 어리다고 무시하는 게 아니다. 너무 적나라하게 나서 그냥 꺼려지는 거다.

그런데 그런 애들을 들어와서 파트너 하라고 하니, 다들 그게 싫어서 거절하는 중이었다.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프다는데, 나이도 어린 애들이 무지막지한 실력으로 폭격을 가하니 거기 가서 폭격에, 아니면 유탄에 얻어맞기가 싫은 거였다. 그리고 그 마음을 김재정 코치는 이해했다.

자신도 겪어봤던 감정이었다.

심지어, 강지영한테도 말이다. 보고 있으면 감탄과 시기, 질시의 감정을 동시에 일으키게 만드는 게, 천재란 족속들이었다.

“감독님.”

“응?”

“그런데 지금 파트너도 파트넌데, 여자애들 여론도…… 매우 좋지 않습니다.”

“후우, 나도 안다. 그런데 어쩌냐. 방법이 없는걸.”

“…….”

“애들이 한순간 실수한 건 알지. 은정이도 반성 많이 하고 있더라. 그런데 어쩌냐. 그놈의 자존심이…… 그렇게 강한 것을.”

도은정은 타고난 리더다.

진짜, 뭘 해도 주변 무리를 이끄는 선천적인 대장이다. 하지만 그런 만큼 자존심이 너무 강했다. 사과해도 부족할 판인데, 도은정은 사과하지 않았다. 아예 그녀의 머릿속에 사과라는 게 없음을, 실력과 자존심으로 사는 전형적인 스타일이고, 이런 스타일들은 고개를 숙이는 순간, 부러진다.

인간 자체가 그냥 그런 인간이었다.

그걸 잘 아는 전기정 감독과 스태프들은 도은정에게 사과하란 말을 하지 못했다. 그건 그녀의 자존심을 죽이는 게 아니라, 인간 자체를 죽이는 거란 걸 알아서였다.

이게 가장 큰 문제였다.

그리고 문제를 알면서도, 고칠 수 없는 게 더욱 큰 문제였다.

“일단 파트너는 대학부, 고등부 대상으로 계속 넣어봐. 정 안 되면, 다른 나라 국대들 받지 뭐.”

“어, 그건 좋겠는데요? 다른 나라 국대. 우리가 초대하면 올 나라 수두룩한데.”

그러면 되는데 그러지 않은 건 당연히 전력 노출 때문이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고, 이는 스포츠에도 적용된다. 아무리 강한 실력자라고 해도 넘어지고 깨지고, 무참히 박살이 나더라도 그걸 계속 반복하다 보면 5분간 세 판씩 넘어가던 게 두 판으로, 나중엔 한 판으로 줄어든다. 상대의 실력이 갑자기 급상승해서? 아니다. 선수가 상대의 스타일에 익숙해져서였다.

스타일에 익숙해진다는 건, 매우 경계해야 할 일이었다. 특히 유도는 익숙해지기 매우 쉬운 경기였다. 전략을 짠다고 해도 한계가 아주 명확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전력 노출을 위해 웬만해서는 다른 국가의 국대들은 선수촌으로 부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같은 경우는 정말 답이 없었다.

전력 노출을 꺼려서 파트너를 수급 못 하면, 선수들 훈련에 실질적 문제가 될 상황이었다.

“나라 리스트 좀 뽑아볼까요?”

“응, 뽑아봐. 가능하면 올림픽 못 나갈 만한 나라로. 홍콩 정도가 좋겠다.”

“넵! 알겠습니다.”

“그리고 한두 체급 정도 섞이는 건 괜찮을 거야. 그 정도는…… 애들을 믿자고.”

“네!”

그런 나라는 생각보다 많다.

한두 체급 정도는 어쩔 수 없었다. 그것까지 다 생각하면, 너무 티가 나서 양아치 소리 듣기에 딱 좋다. 만약 대표가 아예 안 껴 있으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되는 게 선수들 실력이 별로일 수도 있었다.

대한민국은 유도 강국이었다.

비단 황금세대의 등장 전에도 충분히 세계에서 알아주는 강국이었다. 그래서 웬만한 나라 국대는 대학부 선수들과 붙여놔도 될 정도였다. 동남아 정도면, 고등부 최강자를 보내도 이길 수 있을 정도고 말이다.

이런 차이가 나니, 파트너로 불러도 실제로 훈련에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었다. 특히 황금세대와 장대호는 세계 탑레벨이라서 웬만한 선수로는 제대로 상대조차 할 수 없을 게 분명했다. 오죽하면 강지영이 한 체급, 두 체급 위의 선수들을 상대하고 있겠는가. 그게 동레벨 선수들은 상대되지 않아서였다.

피지컬도 피지컬이지만, 실력으로도 한 체급 위까지 충분히 먹히는 게 현 남자 국대였다.

똑똑.

막 나가려던 김재정이 움찔했다가 문을 열었다. 그 앞에는 도은정이 서 있었다.

“어, 은정이냐. 들어와라.”

“……네.”

굳은 표정으로 도은정이 들어오고, 김재정은 슬쩍 도은정을 봤다가 밖으로 나갔다. 문은 살짝 열어둔 채로 김재정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안으로 들어온 도은정이 전기정 감독의 앞에 앉았다.

“그래, 무슨 일이야?”

“감독님. 저 그만두겠습니다.”

“뭐?”

“제 선택 때문에 애들이 너무 피해를 보고 있는 거 알고 있어요. 이건 제가 그만둬야 결국 해결될 게 분명하니까…… 제가 그만둘게요.”

“야야, 은정아. 뭔 소리냐? 네가 그만두긴 뭘 그만둬? 그런 소리는 하지도 마!”

선수를 버리는 감독?

도의적으로 절대 품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른 게 아니라면,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도은정은 분명 순간의 선택에서 실수를 저질렀지만, 그게 어렵게 단 태극마크를 도로 뗄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시간이 해결해 주긴 힘들어도, 어떤 수를 써서라도 품고 가야 하는 게 내 새끼다.

전기정 감독에게 도은정은 적어도 그런 선수였다.

전기정 감독은 실망했어도, 그게 그녀가 국가대표를 그만둬야 할 만큼의 일이라고는 절대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미 글 올렸어요. 제가 책임지고 물러날게요.”

“뭐?”

“SNS에 글 올렸어요. 제 잘못이고, 반성할 거고, 책임지고 물러나겠다고.”

“……야!”

놀라서 벌떡 일어나 소리친 전기정 감독에게 도은정은 따라서 일어나더니.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감사했다는 그런 인사도 없었다. 그냥 고개만 숙여 인사한 뒤, 바로 돌아섰다.

그리고 그대로 감독실을 빠져나갔다.

미처 잡을 틈도, 없이.

하지만 문을 열고 나간 그녀는, 예상치 못한 인물에게 가로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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