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32화
332화. 포드의 운명(15)
퍽! 퍼억!
미트에 빨려 들어오는 볼은, 뭣도 모르는 지영이 보기에도 역시 확실히 묵직했다. 조나단은 이제 열 살이다. 그런데도, 공의 속도나 힘이 상당히 강하게 느껴졌다. 지영은 이런 볼에 조나단과 캐치볼을 한다는 것도 좋지만, 역시 피지컬의 나라답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게 베이스 볼이고, 여기에 종사하는 선수들의 피지컬과 재능은 상상을 초월한다더니, 그 말이 확실히 맞는 것 같았다.
퍽!
반대로 지영의 공은 그렇게 힘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어쩔 땐 영 매가리가 없이 날아가기도 했다. 이는 지영이 공을 던지는 요령을 몰라서였다. 축구도 그렇고, 농구도 그렇고, 야구도 그렇지만 당연히 차는, 던지는, 뿌리는 법이 전부 달랐다.
육상에도 주법이 있고, 수영에도 영법이 있듯이, 유도에도 힘을 안 들이고 메치는 법이 있듯이 야구도 스윙, 볼을 뿌리는 법이 당연히 있었다. 그런데 지영은 이걸 모르니 힘으로만 던져도 공이 제대로 날아가지 않았다. 심지어 어깨 근육이 매우 자극까지 됐다. 지영이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유도를 하며 어깨를 잡아 놓은 근육의 형태와 야구 할 때의 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이 근육이 오히려 어깨를 쓰는 데 방해가 될 정도였다.
“지영. 그렇게 쓰면 어깨에 부담 많이 간다고 했어, 이렇게 해봐.”
그걸 보다 못한 조나단이 와서 폼을 수정해줬다. 어린 조나단도 당연히 전문가 실력은 아니다. 그래서 자기가 배운 대로 그냥 알려주는 것뿐이었는데 이게 그래도 꽤 도움이 됐다. 공에 제법 속도가 붙었다.
하지만 그래도 고작 10살이지만, 상당한 피지컬의 소유자인 조나단의 볼에는 한참 못 미쳤다.
그리고 지영은 전력을 다하지 못했다.
부자연스러운 어깨 스윙은 부상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지영은 자신이 지금 조나단과 캐치볼을 하는 게 본인이 원해서지만, 그래도 운동선수로서의 본분은 절대 잊지 않았다. 조나단도 초보인 지영에게 그 이상은 바라지 않았다.
한동안 캐치볼을 했더니, 서늘했던 몸이 순식간에 후끈해졌다. 몸에서 나는 열이 올라오자 지영은 정신이 다시 말끔해지는 걸 느꼈다. 운동의 가장 강력한 순기능이 작용 된 것이다.
그렇게 한참 캐치볼을 하고, 벤치로 돌아오니 임은진이 슬쩍 두고 간 음료수가 보였다. 지영이 그중 하나를 건네자, 조나단은 거절하지 않았다. 음료수와 같이 두고 간 수건도 역시 거절하지 않았다.
땀을 닦은 조나단이 이전보단 확실히 밝아진 모습으로 또 저 멀리 산에 시선을 줬다. 그러나 이전과는 다른 눈빛이었다. 그땐 정말 텅 비어버린 눈빛이었다. 의식이 잿빛의 세계로 가 있으니, 현실 세계의 눈빛에서 어떤 감정이 느껴질 리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어떤 열망이 있었다. 투지에 타올라 열기가 이글거리는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확실히 어떤 욕심이나 욕구 때문에 활력이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지영은 이전의 눈빛보단 이게 백배 천배 낫다고 생각했다.
둘은 또 한참을 그냥 산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러던 어느 순간, 조나단의 입이 열렸다.
“지영. 이제 그만 돌아가.”
“응?”
“지영도 국가대표잖아. 운동선수잖아. 운동해야지. 우리 코치님이 그랬거든. 운동은 하루를 쉬면, 하루만큼 못해진다고.”
음, 맞는 말이라고 하긴 그렇다.
지영 정도의 실력자는 실력이 늘어나진 않는다. 다만, 이 페이스를 유지할 뿐이었다. 그게 지영이 고강도의 훈련을 이 악물고 참고하는 이유였다.
“지영은 국가대표랬잖아. 찾아봤어, 어제. 지영 세계적인 선수인데, 나 때문에 운동 못 해서, 나랑 있는 시간만큼 운동 못 해지면 안 되잖아.”
“…….”
이런 부분은 또 아이 같았다.
하긴, 이게 사실 맞았다.
‘열 살은 열 살다워야지. 힘든 시간을 겪어 부분적으로 너무 성숙해진 게 오히려 이상한 거야.’
그렇게 말한 조나단은 지영을 올려다봤는데, 미안함이 가득했다. 눈에 습기까지 차 있어 오히려 지영이 미안할 정도였다.
“나 때문에 운동도 못 하고. 미안해.”
“조나단.”
“응……?”
“내가 좋아서 여기에 있던 거야. 이런 말은 정말 미안하지만, 네가 눈에 밟혀서 내 의지로 여기에 있던 거야. 그건 누가 강요한 게 아니야. 처음부터 내가 선택했고, 그 선택에 관한 책임도 내가 지는 거야.”
지영의 긴말에 조나단은 이번엔 이해하지 못한 표정을 지었다.
사고의 수준이 지영의 말을 단번에 이해할 수준이 아니긴 했다. 게다가 이미 아이처럼 돌아와 버린 사고 수준이었다.
“내가 한 선택이고, 그 책임 또한 내가 진다고.”
지영이 다시 그렇게 또박또박 말해주고 나니 조나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조나단, 네가 미안해할 필요 없어. 그리고 혹시 내 시합 영상도 봤어?”
“응, 조금…….”
“시원하게 이기지?”
“응.”
“내가 최고다. 이렇게 자신하는 건 아니야. 하지만 난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했고, 그 자리 근처에 있어. 지금도 누구와 붙어도 지지 않을 거야. 지금 당장 도복을 입는다고 해도 말이야. 그리고 조나단. 네 코치님이 해준 말은 맞아. 운동을 며칠씩이나 쉬면, 며칠만큼 못해지는 거야. 하지만 그건 일반적일 때야.”
“그래?”
“응. 조나단. 나는 하루에 10시간 가까이 훈련해. 그 긴 훈련 시간 동안, 한 번도 집중을 놓치지 않아. 그렇게 매일 노력해. 그런 나의 노력이 지금 쉬고 있는 이 며칠 때문에 무너지진 않아. 그러니 걱정 안 해도 돼.”
“아…….”
지영은 손을 뻗어, 열기가 모락모락 나는 조나단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처음엔 움찔했던 조나단도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
“조나단이 괜찮다면, 나는 걸 거야. 그런데 지금 넌 괜찮니?”
“나? 음…… 아니. 그런데 노력 중이야.”
“정말?”
“응. 지영이 나를 도와주려고 노력하고 있잖아. 처음엔 싫었는데, 이제는 고마워. 그러니까 나도 갚아야지. 내가 얼른 나아야 지영이 훈련할 수 있으니까.”
기특한 생각이라 지영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
“하지만 씩씩해질 수 있어. 지영이 세계 최고라니까, 나도 세계 최고가 되고 싶어졌어. 나도 그렇게 될 수 있겠지?”
“그럼 물론이지. 할 수 있을 거야. 나도 네 나이 때는 그냥 수많은 유망주 중 한 명이었는걸. 대신 많이 노력해야 해. 아무리 힘들고, 주변에서 누가 흔들어도 목표를 정하고 그 길을 향해 걷기만 하면 돼.”
“…….”
“조급할 필요도 없어. 천천히, 느리더라도 정상에 도착하기만 하면 돼. 그럼 그때는 네가 세계 최고에 도착해 있을 거야.”
“정말?”
“응. 정말. 나도 그렇게 왔거든.”
“음…… 알았어. 나도 그렇게 할게.”
툭.
씩 웃은 조나단이 주먹을 내밀었다. 눈빛을 보면 확실히 아픔이 전부 가신 건 아니었다. 하지만 텅 비었던, 처음 조나단을 만났을 때의 눈빛은 아니었다. 그때 눈빛에 비하면 진짜 환골탈태한 눈빛이었다.
이제는 잿빛 세계의 주민이 아니라, 그냥 아프고 힘든 일을 겪은 이쪽 세상 주민의 눈빛이었다.
그에 지영은 안도했다.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에, 감사했다.
사실 요행이고, 운이 더럽게도 좋다는 걸 지영 본인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엔 이런 경우가 있어도 이렇게 무책임하게, 무대책으로 나서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는 이미 임은진에게도 많이 들어서, 머리에 콱 인이 박여버린 지영이었다.
“지영. 고마워.”
“조나단. 고마우면 우리 친구 할까?”
“응?”
“친구 하자. 우리. 같은 운동인으로. 그리고 캐치볼도 함께 했잖아?”
“……괜찮아? 지영 정말 유명한 사람이잖아. 제임스가 그랬어. 지금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지영이라고.”
“그냥 유명하기만 하지. 사실 실속은 없어. 그래서 싫어?”
“지영만 좋다면…… 나도 좋아.”
됐다.
지영인 수줍게 웃으며 손을 내미는 조나단을 보며, 이 정도면 이제 안심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있어 주는 것. 지영은 어쩌면 조나단이 이런 구원을 기다리고 있던 게 아닌가 싶었다.
스스로 나올 줄 모르니, 예민한 반응이 나온다.
저도 모르게 날이 선 반응을 하면 사람들은 아, 이 아이는 시간이 필요하구나. 하면서 뒤로 물러난다. 그리고 기다려 준다.
‘그러나 그때마다 조나단은 어어, 하면서 손을 뻗었을 거야.’
진심이 아니라고. 본의가 아니었다고.
그럴 생각은 없었다고. 가지 말라고. 그런 마음으로 손을 뻗었을 거다. 하지만 그 손은 닿지 않았다. 말을 못 했으니 가던 사람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리고 멀찍이서 관찰하듯이 조나단을 봤을 거다.
마치.
‘섬세한 동물을 다루듯이.’
그게 오히려 어쩌면 조나단을 더욱 궁지로 몰았을 수도 있었다. 물론 이 모든 건 지영의 추론이었다. 그러니 뭐가 정답인지는 알 수 없는 얘기였다. 다만, 그들의 방식과 다른 자신의 방식이 통했음은 알았다.
마음이 놓였다.
한번 밖으로 나온 조나단은, 잘 웃는 친구였다.
미소가 맑은 친구기도 했다. 아직 눈빛에 아픔이 서려 있지만 그건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해결될 문제였다. 그 과정에서 조나단을 자극하는 일이 더는 벌어지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캐치볼 더 할까?”
“그럴까?”
지영의 말에 이제는 제법 멋있는 미소를 짓는 조나단.
지영은 그런 조나단과 한참을 캐치볼을 하다가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로 돌아와 잠시 기다리는데, 강한결에게 전화가 왔다. 잠시 누워있던 지영은 그 전화를 번개같이 빠르게 받았다.
“어, 한결아.”
-어, 지영아. 우리 지금 그리스야. 좀 전에 내렸고, 좀 기다렸다가 이제 싱가포르로 출발.
“그래? 피곤하겠다.”
아침에 배웅하고, 바로 출발하지 않았다.
비행기가 잠시 결함이 생겨 대기하고, 그러다가 또 뭐 때문에 기다렸다가 그러다 좀 늦게 출발했다. 그렇게 출발한 비행기는 이름이 길고도 긴 아테네의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Eleftherios Venizelos) 공항에 도착했고, 여기서 다시 싱가포르로 이동한다고 들었다.
-뭐, 포드에서 신경 써줘서 편하게 왔어. 나도, 스태프 팀들도. 넌? 거긴 지금 저녁 시간이지?
“응. 이제 숙소 와서 씻었어. 좀 쉬다가 저녁 먹으려고.”
-그래. 오늘은 어땠어?
“오늘? 오늘은…….”
지영은 오늘 있었던 일을 설명해 줬다.
그러자 강한결은 정말 좋아했다. 사실 이쪽으로는 누구보다 진심인 게 강한결이었다. 그는 조나단의 일을 가장 깊게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지영이 꼭 해결하기를 바라기도 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그러니까. 내일이랑 모레도 가보고, 정말 괜찮아진 것 같으면 가려고.”
-그래, 좀 더 지켜봐. 그리고 알지? 지속적으로 봐줘야 하는 거.
“응. 안 그래도 한국 와서도 연락하려고 핸드폰 선물 준비 중이야.”
-그래? 금액이 만만치 않게 들 건데? 통신비도.
기곗값도 기곗값이지만, 통신비도 무시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걸 주는데 솔직히 조나단에게만 몰래 주는 것도 그렇다. 하지만 이 부분은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할 것 같았다. 오면서 임은진에게 물어봤는데, 이런 걸 전문적으로 해주는 통신 서비스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았다고 해줬기 때문이었다.
그걸 얘기해 줬더니, 강한결은 비용을 같이 계산하겠다고 했다.
영앤리치는 아니지만 강한결도 지영 덕분에 꽤 부자였다. 아니, 많이 부자였다. 하지만 지영은 고개를 저었다.
“이건 내가 할게. 다음에, 다음에 너도 하고 싶은 곳이 생길 거야.”
-그래. 알았다. 아, 슬슬 들어가야겠다. 한국 와서 보자.
“응.”
전화를 끊은 지영은 1층으로 내려가, 근방에서 가장 맛있다는 피자와 햄버거를 먹었다. 소감을 말하자면 맛은 있었다. 맛은 있었는데.
“음, 혈관이 막히도록 맛있는 맛인데요?”
“푸흡, 좀 그렇지?”
“네. 어후. 이거 두 번은 못 먹겠어요.”
절레절레.
맛은 진짜 단짠의 극치다.
하지만 칼로리가…… 진짜 재료를 아낌없이 때려 부어 맛을 낸 피자와 햄버거였기 때문에 하나만 먹어도 하루 권장 칼로리를 전부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높아 보였다. 하지만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비록 도복을 입은 건 아니지만 조나단과 캐치볼을 하며 칼로리를 제법 소모했기 때문이었다.
저녁을 그렇게 헤비하게 먹고, 지영은 역시 이대로는 못 잘 것 같아 옷을 챙겨 입고 지하로 내려갔다.
미국이다.
언제 갱이 나올지 알 수 없는 곳.
저녁은 특히 위험한 곳이 미국이었다.
그래서 지하에는 가볍게 운동할 수 있는 짐이 있었다. 지영은 러닝 머신을 신나게 달렸다. 숨이 가빠질 때까지 달리는데도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혈관을 막으려던 것들이 으악! 비명을 지르며 흩어지는 게 마치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물론 기분 탓이었다.
운동복이 흠뻑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린 지영은 상쾌한 마음으로 올라와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지영은 조나단에게 말했다.
“내일 한국으로 갈까 해.”
“정말? 잘 생각했어. 지영은 가서 운동해야지. 친구가 나 때문에 여기에 잡혀 있는 거, 난 싫거든.”
“그럴 것 같아서 내일 가려고. 나가면, 운동 시작할 거지?”
“응. 세계 최고의 투수가 될게!”
“그래, 다행이다.”
정말, 정말 다행이다.
좌절한 채로 끝내지 않아 줘서.
그가 겪었던 일은 무너지기에 충분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완전히 무너지지 않아, 지영의 손을 잡고 다시 일어났다. 저 소년이 세계 최고의 투수가 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가능성은 다시 살아났다.
지영은 그 가능성이 생긴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날 저녁, 지영은 꿈에서 한 흑인 여성과 만났다. 그 여성은 지영을 안아줬고, 조용히 떠났다. 다시 잠에서 깼을 땐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 있었지만, 지영은 오컬트를 믿지도 않지만, 알 것 같았다.
그 사람이 누군지.
그래서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지영은 비행기에 올라, 미국을 떠났다. 그렇게 지영이 미국을 떠났을 무렵, 한 수녀의 일기가 조용히 가상의 세계로 스며들었다. 하지만 아직은,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않고 조용히, 자기만의 세계에 홀로 존재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