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20화
320화. 포드의 운명(3)
그러니까, 급한 건 자신이 아니다.
지영은 그렇게 현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손 놓고 있을 생각은 또 아니었다.
애초에 아예 관계되지 않았으면, 포드의 운명이 어떻게 되든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을 거다. 그 회사의 신차가 망해서 회사가 휘청거리든 말든 아예 관심조차 주지 않았을 것이다. 관계되지 않았다면 말이다.
하지만 나탈리 포드로 인해 지영은 포드와 계약을 맺었다.
그것도 1년 750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계약금을 받았다. 그걸 받는 순간, 운명공동체 정도는 아니어도 최소한 서로가 서로에게 최선을 다해야 하는 파트너가 된 건 맞았다.
그래서 지영은 이렇게 삐걱거리는 문제를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어쨌거나 자신의 이름을 믿고, 자신에게 일 년에 90억을 투자한 이들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어떤 CF를 찍게 될까?
이런 기대와 걱정으로 당연히 생각해 본 적이 있었고, 나름대로 이런 건 어떨까? 하고 정리했던 것도 있었다.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인데요.”
“네?”
“저도 처음 찍는 CF잖아요. 상업적으로는. 그래서 좀 기대가 되는 것도 있었고, 두려운 것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런 거면 어떨까,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해본 적이 있었어요.”
“아, 처음이니 불안하긴 하시겠죠. 그래서요?”
“제일 처음 제가 거부감이 들고, 두려웠던 건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것을 요구할 때였습니다.”
“해본 적 없는?”
“네. 저는 사업가가 되어본 적이 없어요. 후원 재단의 이사로 등재되어 있고, 처음에는 직접 발로 뛰면서 후원할 아이들을 만나고 했지만, 지금은 재단에서 사람을 뽑아 전부 알아서 해주고 있고요. 그리고 그 일은 애초에 사업과는 거리가 있죠.”
지영과 강한결, 그리고 친구들이 하던 일을 맡아 준 건 강유진의 아버지인 강찬범 씨와 어머니인 고미선 씨였다. 두 사람은 확실히 안목이 좋았고, 실제로 강찬범 씨 같은 경우는 인사팀 중추에 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중추에만 있었다. 출신이 출세를 막아섰기 때문이었다. 그런 강찬범 씨와 고미선 씨는 당연히 한국에서 직업이 필요했고, 가뜩이나 일손이 부족했기 때문에 지영은 후원 재단에 두 분을 취직시켰다.
하지만 두 분이 오기 전엔 직접 지영과 친구들이 전국을 뒤지고 다니며 재능과 인성을 확인했었다. 그러나 그게 끝이었다. 그건 결코 사회생활이라 할 수 없었다. 이전 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코치를 맡고 있었지만, 어차피 방과 후에 나가서 애들만 가르치는 일이었다.
따로 훈련일지 같은 걸 써야 했지만, 그것도 그리 어려운 건 아니었고. 교무실에 잠깐 들르는 게 끝인 정도였다. 종종 회식에 불려 나가긴 했지만, 그것도 사회생활이라 보긴 어려웠다.
회귀 이후엔?
지금 사회생활을 하고 있긴 하다.
운동선수로서, 그리고 배우로서 활동하는 모든 게 사회생활이긴 하다.
‘그렇긴 한데, 다르겠지. 아마. 지금 내 이미지를 씌운 사업가가 아마 모델이 될 거야.’
성공한 사업가.
멋진 슈트와 차. 경영으로는 프로페셔널한 모습 등. 냉정하고 탁한 기업가의 이미지를 바라는 거일 수도 있었다. 지영은 여기에서 아마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지영은 그 이미지를 떠올려 연기할 생각을 하니,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지영은 자신의 연기 내공이 매우 얕음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두 작품에서는 작가가 지영의 행동과 심리까지 파악해 몸에 맞춘 것처럼 캐릭터를 만들어줬다.
예인에서도, 나의 무사님에서도 감정적인 부분은 거의 강지영을 기반으로 잡아줬다. 예인은 출연 자체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았고, 나의 무사님은 반대로 많이 나오지만, 익숙한 몸 쓰는 장면이 많아서 괜찮았다.
CF는? 모르겠다.
‘여긴 그냥 미지의 세계니까.’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공익 광고를 찍을 때는 길게 찍지도 않았다. 스케치북 같은 걸 넘기며 학교 폭력 반대에 관한 메시지를 보여주는 게 끝이었다. 그래서 수많은 CF를 봤다. 특히 스토리가 있는 CF를 중심으로 봤다.
그리고 느낀 게, 아 할 수 있을까? 에서 시작한 두려움이었다.
서로 맺은 파트너십이 깨지지 않으려면, 서로에게 당연히 솔직해야 했다. 지영은 그래서 이런 자신의 마음을 가감 없이 오픈하고 있었다.
“대본이 그러면, 시키면 하겠지만 잘한다고 장담은 할 수 없어요. 특히 저는 배워서 하는 쪽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하는 쪽이거든요.”
“아아, 이해했어요. 음, 하지만 이미지를 생각하면 아마 초기에는 그쪽으로 잡을 확률이 매우 높은데, 이거 어쩌죠?”
“해보긴 해봐야죠. 하지만 말씀드린 것처럼, 잘한다는 답을 드리긴 어렵습니다. 제가 이름값에 비해 연기력이 부족한 건 사실이거든요.”
“아…….”
지영의 말이 의외였는지 메리 킴은 잠시 말을 잊지 못했다.
대화를 알아들은 다른 직원들도 좀 난처하지만, 또 의외라는 표정이 지었다. 약점을 노출하는 것. 이건 솔직히 쉬운 게 아니었다.
게다가 지영은 지금 세계 정상에 있는 인물이었다.
이름값으로 따지면, 당장 지영을 앞지른다 할 수 있는 인물들이 몇 명 안 된다. 한 직원은 할리우드에서도 지영보다 당장 인기가 많은 이를 찾을 수 없다고 했고, 그를 넘으려면 적어도 은퇴한 어벤저스를 데려다가 다시 대본을 쥐여주고 작품에 투입해야 한다고 했을 정도였다.
그런 이가 이런 약한 모습을 보이니, 다들 의외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정상에 올랐을수록, 떨어뜨리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인간은 있게 마련이다. 특히 지영은 그중에서도 적이 많기로 유명했다.
“그런 표정들 마세요. 앓는 소리 하자고 말 꺼낸 건 아니니까.”
“아, 호호. 저희 표정이 이상했나요?”
“네, 조금?”
“호, 호호. 죄송합니다. 그럼 어떤 말을 하려고 이런 무거운 주제를 꺼냈을까요?”
“있는 그대로, 다큐로 가는 건 어떨까요?”
“다큐요?”
“네, 가상의 존재로 저를 변신시키지 말고, 강지영을 강지영으로 쓰는 건 어떨까 싶어서요.”
“어, 음…….”
메리 킴은 솔직히 파트가 다르다.
그녀가 여기에 있는 건 순전히 동생이 현역 태권도 국가대표란 것과 한국계라 한국어가 매우 유창하다는 점과 그녀가 나탈리 포드의 라인이란 점까지, 이렇게 세 개였다. 그녀는 나탈리 포드 라인의 일원이지만, 마케팅 쪽과는 거리가 먼 부서였다.
그래서 당장 확실하게 감이 오진 않았다.
오기 전에 브리핑으로 당장 상황을 듣지 못했으면 이런 대화 자체가 불가능했을 거고 말이다. 그래서 뭐라 판단이 서지 않았다.
다큐멘터리.
사실 몇 해 전부터 저런 방식의 CF는 매우 많이 제작되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그렇고, 미국에서도 스토리가 있는, 혹은 이어지는 내용의 CF가 상당히 유행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 어떤 느낌인지는 알겠다. 하지만 문제가 될 부분은 굳이 고민하지 않아도 떠올랐다.
“다큐를 찍으면, 그걸 CF로 편집하기는 힘들 것 같은데요?”
다큐는 내용과 편성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장담하는데, 절대 30초 안에는 다 담지 못한다. 그건 메리 킴도 아는 거고, 지영도 아는 사실이었다.
“그렇죠. 그런데 굳이 CF일 필요가 있어요?”
“네?”
연기가 힘들다면,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된다.
정말 말 그대로, 있는 그대로. 그걸 보여주면 된다. 다큐멘터리로.
‘내가 포드의 제품을 탄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면, 그게 광고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 지영은 재차 말을 이었다.
“포드의 힘이면 방송사의 편성 하나쯤은 받을 수 있지 않나요?”
“네, 우리 포드는 그럴 역량이 충분하긴 해요.”
“그럼 나탈리 포드 씨에게 물어보세요. 30초 짧게 노출하는 게 좋은지. 제가 한 시간가량 나올 다큐에서 10분 정도 포드를 타고 나오는 게 좋은지.”
“아…….”
반짝.
역시 일하는 사람들답게 지영이 한 말의 뜻을 제대로 캐치 했다. 지영이 생각한 이건, 포드에도 좋은 방법이었다. CF마다 길이가 있지만 대충 30초 정도다. 미국은 또 어떤지 모르겠지만, 한국으로 따지면 이 정도다.
그럼 이 짧은 시간 안에 제품을 얼마나 노출 시킬 수 있을까?
등장과 동시에 보여주고 끝날 때까지 치우지 않으면 그래도 30초다. 40초면 40초고, 50초면 50초다.
결국 방송에 태우는 CF는 그 시간이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아예 SNS에 올리는 방법도 있지만…….’
그건 오히려 힘이 떨어진다.
포드에 관심이 있지 않은 이상 아마, 굳이 찾아보지 않을 것이다. 특히 SNS에 뜨는 광고는 일단 유저들도 극혐한다. 귀찮고 짜증 나서 스킵할 확률이 높았다. 아무리 지영이 광고모델이라고 해도 말이다.
가장 SNS를 많이 하는 시간은?
하루를 마무리하고 이제 잘 시간, 그쯤이다.
‘그런데 자기 전에 누가 광고를 봐.’
스킵하든가, 아니면 다음 영상으로 넘어가든가. 광고를 안 보이게 하려고 SNS 회사에서 광고가 안 나오게 하는 걸 아예 돈을 받을 정도니, 그 시간대에 광고는 거의 안 본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는 전 세계 공통일 거다.
그러니 그런 SNS에 공개하는 것도 별로다.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아예 장시간 노출하는 게 최고였다. 그래서 생각한 게 바로 다큐멘터리였다. 그렇게 가면 포드에도 좋고, 지영에게도 좋았다.
물론 이는 포드에서 허락했을 때였다.
메리 킴은 잠시 고민하다가, 임은진을 바라봤다. 스케줄 표를 받고 처음 얘기를 나눴을 때 대회와 훈련 스케줄 때문에 조율이 쉽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다큐에는 조용하다? 그게 이상해서였다. 그리고 따로 말이 없는 걸 보고 이미 합의가 된 사항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어서 메리 킴은 동생도 대회가 끝나면 휴가를 받아 집에 오는 걸 떠올렸다.
고되게 훈련한 선수가 시합까지 끝냈는데 휴식 없이 곧장 다음 대회 준비에 들어간다? 부하가 걸려 어디 하나 고장 나도 크게 고장 날 수 있었다.
그래서 육체에 남은 피로와 심적인 스트레스의 해소를 위해 짧아도 일주일 정도는 휴가를 받았다.
그걸 떠올리자 메리 킴은 지영이 그 휴가를 이용해 이 다큐를 찍을 예정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이때 CF도 찍을 수 있긴 하니, 애초에 초반의 앓는 소리도 그냥 던져본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그녀는 곧,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제가 빨리 보고하고, 답을 받아와도 될까요? 아마 지금 안 자고 계실 건데.”
“네, 그러세요.”
“감사합니다. 그럼.”
드르륵.
의자를 밀치며 일어난 메리 킴과 포드의 직원들이 떠나자, 지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임은진이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물었다.
“지영아. 정말 대회 끝나고 휴식 없이 그렇게 일해도 괜찮겠어? 네가 괜찮다고 해서 가만히 있긴 했는데, 힘들 것 같아서. 아무래도. 지금이라도 누나가 얼른 취소할까?”
임은진의 말에 지영은 고개를 저었다.
미팅 전에 미리 말해놓긴 했지만, 역시 부담스러운 스케줄이긴 했다. 하지만 그래도 지영은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포드도 입장이 있는데, 어떻게 저만 생각해요. 저는 안 해봤던 CF랑 이런 게 부담스러우니 패스하면 좋고, 포드도 제품을 더 오랫동안 노출할 수 있으니 좋고. 제가 봤을 땐 이게 최고예요.”
물론 나탈리 포드가 받아들였을 때 얘기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영은 거절하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비싼 돈을 줬다. 1년에 무려 750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썼다. 그러니 포드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그 돈만큼 뽑아내고 싶을 거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CF보다, 다큐가 훨씬 더 수지에 맞았다.
그러니 지영은 나탈리 포드가 이 제안을 거절하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잠시 뒤, 다시 돌아온 메리 킴이 전한 말은 이랬다.
“부사장님이 빠르게 비행기 편을 알아보고 계세요. 이 건은 직접, 만나서 해결하고 싶으신가 봐요.”
“가부의 말은 없으셨고요?”
“네.”
이렇게 좋은 제안을.
덥석 물지는 않는다?
역시, 참 쉽지 않은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