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17화
317화. 세계 선수권(13)
기자들은 싱글벙글했다.
대어다. 속이 꽉 찬 비벼보고 만두를 튀긴 것처럼 알찬 기삿거리가 뭉텅이로 나오고 있었다. 미스터 강. 미스터 강. 성이 둘 다 강 씨니, 둘 다 미스터 강이다. 이 동양의 어린 친구들에게서는 정말 마르지 않는 화수분처럼 기삿거리가 나왔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연예인들을 모아 놓은 곳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이 미국이다.
그것도 이곳, 샌프란시스코에서 아래로 쭈욱 내려가면 나오는, 로스앤젤레스에 있다.
통칭, 할리우드.
세계를 떨쳐 울리는 배우들이 몰리는 할리우드는 기자들이 정말 좋아하는 곳이었다. 스캔들부터 시작해 열애설까지, 각종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셀럽들이 그곳에 몰려드니 가십을 좋아하는 기자라면 좋아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여기에, 할리우드에서 가장 파급력이 강한 배우보다도 더 뜨거운 이가 있었다.
강지영.
본래도 유명하긴 했다.
겸업하기 힘든 두 가지를 겸업하며 착실히 명성을 쌓다가, 기자들이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별 거지 같은 이유로 잠시 은퇴.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유도를 놓고 있었음에도 정상의 실력을 구사하는 한편, 부업이라고 하기도 힘든 연기자 생활로 한국에선 정상까지 단숨에 치고 올라간 배우이자, 운동선수.
이런 운동선수에게 꽂힌 한 유명 디자이너가 자신의 무대에도 올리기 위해 만든 작품을 그가 거절하면서, 일대 사건이 시작됐다.
지금은 뤼비통 스캔들, 혹은 파벨로 스캔들이라 부르는, 전설적인 사건이다.
이 사건을 통해 강지영은 세계적인 셀럽의 반열에 올랐다. 아니, 세계적인 수준을 넘어 탑의 위치에 올랐다. 그 당시에는 뭔 조사를 해도 1위를 했을 정도로 파급력이 대단했다.
그리고 그 파급력이 다시 한번 터졌다.
실시간으로 터지고 있는 기사는, 이미 제대로 불이 붙었음을 알려줬다. 요즘에는 기사보다는 SNS를 통해 더 많이 소비되긴 하지만, 그래도 이미 쏠쏠하게 챙기는 중이었다.
싱글벙글.
화기애애.
그들은 좋겠지만, 지영은 사실 기자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자들이 싫다고 해서 모든 기자를 자신을 공격했던 그 소수 언론과 같이 보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희희낙락하는 모습을 보자 솔직히 배알이 조금 꼴렸다.
다행히 그런 기색을 내보이지 않고 기자 회견을 마무리한 지영은 내려오자마자, 도깨비 뿔을 이마에 장착한 임은진과 마주해야 했다.
“우리 지영이, 누나랑 면담 좀 할까?”
“……네.”
이런 걸 피해봐야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아는 지영은 얌전히 그녀를 따라갔고, 역시 혼났다. 그녀가 뿔이 난 이유는 간단했다.
“최소한 상의라도 해줬어야지. 그래야 회사에서도 발을 맞출 수 있을 거 아냐!”
“……잘못했습니다.”
이건 사실 잘못한 게 맞았다.
지영은 자신이 역으로 친 기부 카운터가 상황을 반전시킬 거라는 계산을 하긴 했다. 완벽하게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이 카운터가 절대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으리란 확신은 있었다.
그 정도 확신이 있었으니, 지영이 작정하고 카드를 뒤집은 거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훌륭하게 자신이 예상한 대로 먹혔다. 그러나 이 때문에 소속사는 매우 난감해졌다. 지영의 이 같은 카드를 알지 못했으니, 대응할 방법이 없는 거다. 그러나 이미 배우가 언론에다가 대놓고 터뜨렸으니 부정 또한 할 수 없었다.
더욱이, 이렇게 되면 회사 자체의 결정도 도마 위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지영은 그걸 모르지 않았다.
포드 또한 비슷한 처지에 내몰릴 것 또한 알았다. 하지만 그런데도 지영은 강행했다. 이런 걸로 혼은 나도, 장세리 대표가 진짜 화가 나지는 않을 게 분명하단 확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리치 언니.
혹은.
리치 누나.
사장 장세리의 별명이고 실제로 장세리 대표는 그 별명에 걸맞게 사고하고, 행동했다. 물론 그렇다고 진짜 백만장자가 돈을 뿌리고 다니는 것처럼 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돈에 구애받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것.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게 지영이 장세리를 믿는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그런 장세라라도, 당연히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건 차이가 컸다.
“당장 한국만 해도 기자들이 난리야. 너는 전부 기부하겠다는데, 소속사는 어떻게 할 거냐고. 미국 말고 한국에 기부할 생각은 없냐고. 할 거면 아이들 위주로 갈 건지, 아니면 그냥 전체적으로 갈 전지 알려달라고. 이미 기부하는 걸 확정적으로 얘기하고 있어.”
임은진의 말에 지영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설레발이라고 한다.
이걸 방조한 건 지영이지만, 참 속성 어디 안 간다 싶었다. 이렇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예상을 하긴 했었다. 설마 그런 카운터 카드를 준비하면서, 그 후폭풍에 대해 예상을 안 해봤을까, 했다.
해봤고.
‘이럴 거라 생각하긴 했지.’
생각하긴 했는데.
그게 실제로 벌어지니까,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참, 역겨운 자태다.
당장 좀 전까지만 해도 지영의 앞에는 20여 명의 기자가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포드와 지영의 소속사는 얼마나 기부를 할 거냐고 묻지 않았다. 그 질문 자체가 강요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는 아마 두 가지일 거다.
이들이 친 포드 성향 기자들일 경우와 진짜 강요라는 걸 알아서 자제하는 중이거나. 그런데 어느 쪽이든 그냥 대단한 거다.
지영과 적대하는 한국의 소수 언론은 그걸 참지 않고 맛 좋은 먹이! 하면서 냉큼 달려들었으니까.
이 때문에 지영의 머릿속엔 순간적으로.
‘다른 기업에도 이 인간들 날려주면 계약해 주겠다고 딜 걸어볼까?’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지영이 속으로 고개를 털어 그 헛소리를 날리는 순간.
“지영이 너, 일부러 그랬지? 솔직히, 너 이런 거 생각 못 할 애 아니잖아. 그치?”
임은진이 의심 가득한 눈으로 그렇게 물었고.
지영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음……. 네.”
“하아…….”
긴 한숨과 함께 골을 짚는 임은진.
“왜?”
“제 생각이 맞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는데, 제가 즉흥적으로 생각했다는, 느낌을 주려면 같이 올라간 한결이나 나탈리 포드 씨가 놀라는 모습이 선명하게 나와야 했거든요.”
“즉흥적? 그게 왜 중요한데?”
“놀라는 모습이 포인트니까요.”
“그게?”
“네. 절친한 이들조차 몰랐던 기부 얘기로, 제가 얼마나 이 문제를 고심했는지를 보여주니까요. 그럼 누군가의 지시나, 누군가와 상의 없이 온전히 나 혼자 생각한 게 되니까요.”
“아…….”
임은진은 그제야 이해한 표정이 됐다.
이게 지영이 어머니에게만 결정을 알린 진짜 이유였다.
지영의 나이는 아직 어리다. 이제 고작 21살이다. 성인이 되긴 했지만, 이런 큰 문제를 혼자 결정할 나이로 본다면 글쎄? 그렇게 보기엔 너무 어렸다. 그러니 보통 저 나이대의 큰 결정들은 부모가 해주게 마련이다.
만약 아이돌이나 연예인이면, 소속사에서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다 못해 직접 핸들링까지 해주고.
그렇게 되면, 의미가 퇴색될 수도 있었다.
에이, 회사에서 시켰겠지.
기부가 이미지 메이킹으론 최고지!
설마 자기가 기부할 생각을 어떻게 했겠어? 등등.
그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껏 기부하고도 욕먹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지영은 친구도 모르게 하고, 회사도 모르게 했다. 지영이 발표하자마자 기자들이 달려들 거라는 걸 지영은 알았다. 그런데 회사가 완벽하게 대처한다? 그러면 회사가 시켰네. 하는 여론이 생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회사는 패닉 상태일 거다.
솔직히 그렇게 만든 건 정말 죄송했다.
죄송한데, 이게 최선이란 생각이 들어서 결국, 알리지 않은 지영이었다.
그 결과 펑펑! 갑자기 날아든 폭탄에 대처하느라 한국은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하아, 하여간 머리도 좋아. 이따가 대표님이 전화한다니까, 받아서 잘 설명해 드리고.”
“어, 네.”
“나도 바쁘거든? 기자들 다 간 것 같지? 아니야. 다 나 기다리고 있어. 정확한 데이터 소스 얻으려고. 나도 가서 이제 일해야 해.”
“……죄송합니다.”
“죄송은. 이게 내 일인데. 에잇, 올 때 팀원 좀 끌고 올 걸 그랬어. 혼자 하려니까 이거 너무 힘드네.”
“제가 도와드릴까요?”
“……놀리니?”
“아닙니다. 하하……. 저는 그럼 병원에 가 있을게요.”
“그래. 저녁은?”
“그건 저희가 알아서 해결할게요.”
“그래, 그럼. 어디 돌아다니면 안 된다? 만약 나가야 하는 일 생기면 거기 병원 경호원분들이랑 같이 움직이고. 그거 다 서비스 이용료 내는 거니까 죄스러워 말고. 알았지?”
“네.”
임은진이 일하러 떠나자, 지영은 강한결을 찾았다.
친구는 대기실 한쪽에서 나탈리 포드 씨와 대화 중이었다. 그쪽으로 갈까 하다가, 지영은 그냥 의자에 앉았다.
진이 빠졌다.
기자 회견? 이런 건 거의 처음이었다.
근래에 들어서는 마이크 앞에 아예 서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는 매우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고, 천하의 지영도 지쳤다. 솔직히 시합하는 게 더 낫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종일 시합해도 이것보단 진짜 낫긴 하겠다. 하.’
그런 생각을 하며 폰을 꺼낸 지영은 쌓인 메시지를 확인했다. 시차가 상당할 텐데도 벌써 기사를 확인했는지, 이연을 필두로 한 나의 무사님 팀에게서 메시지가 잔뜩 와 있었다. 그리고 연인에게도 메시지가 와 있었다.
지영은 전화를 할까 하다가, 걸지 않았다. 아직 일하는 시간일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답장만 보내놓고, 폰을 넣으려는데 1이 사라지더니 폰이 울렸다.
“어, 쉬는 시간이에요?”
-아니요, 사장님이 기자 회견 보라고 배려해 주셨어요. 헤헤.
“아 진짜요? 좋은 분이시네, 역시.”
-그러니까요. 음, 으음…….
“나 괜찮은데?”
-알아요. 괜찮은 거. 근데 그냥…… 음. 고생했어요.
“……네.”
지영은 그냥 군말 없이 그 위로를 받아들였다.
안정감이 들었다.
마음이 치유되는 것처럼.
아직도 아이 같은, 그래서 철이 없이 느껴지기도 하는 이 목소리는 지영에게 부모님 다음으로 안정을 주는 마법이었다. 지영은 그 마법을 한없이 만끽했다. 통화를 끝내자 어느새 앞에 와 앉은 강한결이 빙글빙글 웃으며 물었다.
“그렇게 좋아?”
“넌 안 좋은 것처럼 말한다? 지원이한테 다 이른다, 너.”
“항복. 지원인 나도 무섭다. 하하.”
“무섭지. 음, 무섭지.”
양지원.
음…… 여러 가지 의미로 대단한 친구다.
천하의 강한결을 휘어잡고 휘두르는데, 그 솜씨가 아주 일품이다. 그래도 하는 행동은 귀여워서, 크게 문제 되지는 않았다. 따지고 보면 강한결이 잡힌 게 아니라, 잡혀준 거기도 했고.
“포드 부인이랑은 무슨 얘기 했어?”
“네가 터뜨린 폭탄에 화약 보태기? 에 관한 대화를 나눴지.”
“포드도 기부에 동참하겠다는 뜻이겠네?”
“해야지. 네가 모든 수익을 기부하겠다고 했으니, 안 하면 욕 처먹지. 너만큼은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무조건 할 거야.”
“뭐, 그렇겠지.”
“소소한 복수냐?”
“아니.”
사실 거기까지 생각은 안 했다.
그런데 강한결의 말을 듣고 나니, 복수가 되기도 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지영은 포드에게 악감정이 조금도 없었다. 과정이 어찌 되었든 간에, 포드의 저 기획이 없었으면 지영을 포함한 황금세대는 꼼짝없이 은퇴할 뻔했다. 아직 모든 상황이 종결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대반전의 기회를 넘어서 카운터를 칠 카드 전부를 손에 쥐여준 건 포드였다.
그 감사함을 지영은 모르지 않았다.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래도 솔직히 조금, 괘씸하기는 했다. 그런데 이번에 지영이 던진 폭탄에 발을 억지로 맞추어야 할 테니까, 그 자체가 소소한 복수가 된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았다.
“근데 네 말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긴 하다. 그래도 하나도 안 미안하지만.”
“하하. 은진 누나는?”
“기자들 상대하러. 우리 먼저 가라는데?”
“그럴래, 그럼?”
“어, 건너편이니 뭐 조용히 넘어가자.”
“그래.”
지영은 강한결과 함께 호텔을 나서서, 병원으로 돌아왔다. 병실로 올라가자 친구들이 엄지를 척 내밀었다. 지영은 웃으며 엄지를 내밀고는 이성진의 옆에 앉았다. 어제와는 다르게 확실히 표정이 살아났다. 움직일 수도 있지만, 아직 한국으로 가는 건 무리였다. 고도가 올라가면 기압 때문에 상처가 어떻게 덧날지 알 수 없어서였다.
그래서 당분간은 미국에 체류하기로 정했다.
어차피 시합도 날려 먹었고, 아닌 것 같아도 그 때문에 스트레스가 제법 쌓였다. 그러니 밖은 못 나가도 그냥 병원에서 한동안 푹 쉬기로 정했다.
침대에 누워 있는 이성진의 주변으로 모여 TV를 보다가 배가 고파서 같이 다시 병원 지하의 푸드코트로 내려갔다. 거기서 배를 채우고 올라와, 다시 다 같이 늘어졌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당분간은, 이렇게 목적 없이 뻗어 있을 생각이었다.
기자 회견이 있고 다음 날 징계위는 열렸고, 아무런 징계 없이 조용히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