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302화
302화. 유도 챌린지(15)
10시, 본선 첫 게임.
개회 게임에 나선 강유진은 정확히 40초에 누르기를 성공시켰다. 상대가 업어치기를 하고 엎드린 걸 그대로 겨드랑이 쪽으로 손을 넣어 반대쪽 목으로 빼 제압한 다음, 그대로 뒤집었다. 목이 제대로 제압당하는 와중에도 상대는 다리를 꼬아 방어했지만, 강유진은 가볍게 발을 다른 발로 밀어내서 누르기를 성공시켰다.
그리고 5초쯤 지났을 때 목이 꺾여 생긴 압박감에 상대가 탭을 쳤고, 그대로 한판승을 따냈다.
물 흐르듯이 이어진 연계.
강유진의 굳히기가 강하다는 걸 안 상대는 분명 방비했을 거다. 그런데도 강유진은 그 짧은 틈으로 손을 넣어 굳히기를 성공시켰다.
-확실히 일본 유도가 한국 유도보다 굳히기는 센 듯…….
-그러게요. 저걸 저렇게 넣어서 돌리네. 가만히 있는 것도 아니고 제대로 방어까지 했는데.
-알고도 당하는 기술이 저런 거……. 저건 상대가 방심했다고 볼 수도 없음.
-ㅇㅇ 보니까 제대로 방어는 했음. 그런데 그 안으로 파고 넣은 게 더 대단한 거.
-일본이 엿 같아도, 메치기와 굳히기 밸런스는 확실히 기가 막힘.
-맞아요. 인정할 건 인정해야죠.
격투기의 나라.
원초적인 것에 열광하는 나라가 일본이었다. 미국과는 또 다른 개념으로 이런 것들에 열광했는데, 그래서 한때는 입식 격투기와 종합 격투기가 대유행하기도 했었다. 아니, 당시에는 격투기 자체를 일본이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좀 시간이 흘러 생긴 UFC와 몇 가지 문제점으로 인해 추락에 추락을 거듭했지만, 그래도 격투기를 제대로 보급했고, 즐기기도 했던 나라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일본 유도는 이걸 잘 이용했다.
격투기에 그라운드 기술은 빼놓을 수 없는 영역이고, 일본의 굳히기는 당시에도 상당했기 때문에 세계 유도의 추세를 굳히기에 시간을 오래 주는 방향으로 조금씩 유도했다.
종주국이기 때문에 그 정도 입김은 있었다.
일본은 미리 준비했던 만큼, 변해가는 추세에 금방 적응했다. 하지만 다른 나라는 아니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서서 넘기는 게 대세였다. 그래서 메치기 기술을 극강으로 연구하고, 연마하던 시절이었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은 전형적인 기술 유도 국가였다. 올림픽을 제패한 한판승의 달인들이 즐비했고, 후배들도 그들의 기술을 직·간접적으로 보고 배웠기 때문에 굳히기보단 메치기에 훨씬 중점을 뒀다. 비율로 따지면…… 8 대 2 정도. 심하면 9 대 1도 가능했을 정도였다.
그렇게 변한 흐름.
뒤쫓아가기엔 늦었다. 그래서 최대한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기술 유도를 더욱 연마했다. 그 결과 양날의 검을 한국은 쥐었다.
제대로 잡으면 이기고.
제대로 잡지 못하면 지고.
결정적인 약점과 강점을 동시에 손에 쥐게 된 것이다. 서서 할 때는 그 어느 나라의, 그 어떤 스페셜리스트와 붙어도 안 말리지만 굳히기로 들어서면 확실한 약점을 드러내는 상황이다. 안자이 히카리가 세계 유도의 여제라 불리는 것도, 미친 굳히기 실력이 절반쯤 도움이 됐다는 걸 생각하면 길을 잘못 들어선 건 아닐까 고민해야 할 때였다.
그런 일본 유도의 정수를 빛나는 재능으로 녹여 일신에 갖춘 게, 이시카와 사오리. 강유진이었다.
메치기도 강하지만, 굳히기는 더 강한.
약점이 없는 유도.
한 가지에 올인한 선수들을 후회하게 만드는 실력을 갖췄다. 이런 강유진은 피지컬은 이미 완성되었기 때문에 경험을 쌓으면 자국을 대표하는 선수가 될 거라는 게 일본에서도 중론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특히 한동안 잊고 있었다가, 갑자기 등장한 그녀의 모습에 올드 유도 팬들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은 새로 유입된 유도 팬들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유도를 좋아했고, 유도를 취미로 즐겼던 이들이다.
옛날과는 다르게 그래도 2010년대 이후부터는 아마추어도 출전할 수 있는 생활체육 대회도 제법 생겨서, 일반인도 유도대회에 나갈 수 있었고, 그 대회를 나가며 유도를 즐겼던 사람들이었다. 오래 취미를 즐긴 만큼, 유도를 선수처럼은 못해도 선수만큼 보는 안목은 갖췄다.
그런 그들이 보기에, 강유진의 실력은 쇼킹했다.
-유도는 진짜 정통 일본 유도 냄새다.
-ㅇㅇ 자세나 잡기, 굳히기, 기술 보면 한국이랑은 미묘하게 달라.
-근데 좀 이상한데, 나만 그럼? 얘 유도가 뭔가 이상한 것처럼 보이는 게?
-저도 그렇게 보이긴 해요. 아 뭐지? 하는 생각은 드는데 정작 그게 뭔지는 모르겠어요 ㅠㅠ
-국가 차이 말고도 뭔가 더 있는 것 같긴 한데…….
-아! 알았다! 강유진 유도 특이점!
-뭔데요?
-남자유도!
-엥?
-아! 늘어지는 게 없구나!
-ㅇㅇ 그거임! 여자유도 특유의 물고 늘어지는 게 없고, 탄력적인 느낌이 강해요!
-맞네, 그거네…….
팬들은 강유진의 특징을 또 파악했다.
여자와 남자의 스포츠는 어쩔 수 없이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는 배구 축구, 농구 야구 전부 마찬가지였다. 성별에서 나는 신체조건 때문에 느낌 또한 다르게 변하는 거다. 그래서 남자들의 빠르고 파괴적인 경기를 보다가, 그보다 한참 약한 느낌인 여자 경기를 보면 사람들이 재미가 없다고 느끼는 거고.
근데 그건 여자들이 설렁설렁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최선을 다해도 어쩔 수 없는 신체조건의 차이 때문에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는 거였다.
좀 더 빠르고, 좀 더 사나운 느낌에 팬들은 열광한다.
뭐 그런 건 빼더라도, 어쨌든 그런 차이점이 있었다.
그런데 강유진은 그 한계를 뛰어넘었다. 아니, 남자부와는 진짜 겨를 수 없으니 한계를 뛰어넘었다기보단, 여자 선수 중에서도 특출나다는 뜻으로 봐야 했다.
-강유진 예선전 누가 올린 거 있어서 봤는데, 맞네. 남자유도 느낌임.
-근데 보면 그게 구분이 돼요?
-ㅇㅇ 좀 오래 유도 경기 본 사람들은 구별하죠. 결정적으로 잡고 늘어져 메치는 것과 탄력을 이용해 던지는 것, 이런 느낌이 좀 달라요. 물론 전부는 아님. 제대로 걸리면 여자부도 남자부 기술처럼 나올 때 많음.
-맞아요. 일반화시켜서는 안되죠.
-ㅇㅇ 여자 선수들 무시하는 건 절대 아님.
맞다.
무시하는 게 아니었다.
단지 흐름과 느낌을 얘기할 뿐이었다.
다만, 이런 느낌이 다른 이유로도 강유진은 확실히 군계일학으로 느껴졌다.
이어진 2회전.
강유진은 서서 소매꽂이로 뽑아, 그대로 상대를 바닥으로 꽂아버렸다.
* * *
우와아!
거대한 함성이 울렸다.
그 함성에 먹먹한 귀를 어루만지며 지영은 강유진의 2회전 통과를 박수로 축하했다.
역시, 잘한다.
“이야, 쟤 진짜 잘하네?”
73경기가 있던 날부터 본선이면 시합장을 찾는 구혁의 말에 지영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니가 가르쳤나?”
“에이, 제가 시간이 어디 있다고요. 알아서 훈련한 거예요. 원래 잘하기도 했고.”
“그래? 이야, 잘하네. 상대가 굳히기만 방어하니 반대로 그냥 기술로 뽑아버리는 것 봐라. 저거 보니, 성깔도 제법이겠다.”
글쎄?
그건 아니다.
어제 만난 강유진은 성깔 있는 여고생보단, 그 나이 또래의 여고생이란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굳이 그걸 정정해주진 않았다.
“쟤, 이번 대표팀 승선할 수 있을까?”
“힘들걸요. 1차도 안 나왔고, 2차 뛴다고 해도 점수 부족하고.”
“그렇긴 하겠네. 음, 아깝다. 쟤 나가면 메달 딸 것 같은데.”
“음…… 제가 봐도 그렇긴 해요.”
여기서 메달이란, 올림픽 메달을 말했다.
국내 대회라고 얕보는 게 아니라 진짜 강유진의 실력은 입상을 노려볼만한 실력이었다. 아직 경험이 부족하지만, 저 패기와 재능이라면 세계의 벽을 부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8강을 통과한 강유진은 준결승에서, 은퇴한 전 국가대표와 만났다.
김성혜.
아시안 게임에서 안자이 히카리에서 패배하고 나서 국가대표를 은퇴했고, 지금은 실업팀에서 코치 겸, 현역으로 활동하는 선수였다. 국가대표를 은퇴했으니 당연히 선발전에는 나오지 않았고, 선발전에 나오지 않으니 국내 랭킹은 한참 아래에 있었다. 아니, 아예 소멸했다고 봐도 좋았다.
그래서 자격 요건은 충분했다.
애초에 전 현역까지 출전하는 대회라 김성혜의 출전은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성혜 선배랑 하네. 흠. 지영아, 어때? 누가 이길까?”
한 여자 선배의 말에 지영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요. 유진이 실력은 나쁘지 않은데, 성혜 선배가 워낙에 경험도 많고 잔뼈가 굵으시잖아요.”
“그건 그렇지. 흠.”
“아마 성혜 선배가 조금 우위지 아닐까 싶긴 해요.”
“그래?”
“네.”
거짓말은 아니었다.
김성혜는 국가대표를 무려 10년을 넘게 했다. 올림픽을 두 번이나 나갔고, 아시안 게임은 세 번인가를 나갔다. 올림픽 입상은 없지만 아시안 게임에선 입상이 있고, 메이저급 세계 대회도 입상을 많이 했다.
그런 만큼 절대 실력으로 낮게 볼 수 없었다.
피지컬이 확실히 떨어지긴 했어도, 아직도 실업대회는 우승을 차지하는 실력자였다.
경험과 연륜.
젊음과 재능.
이 두 가지가 붙었을 때, 지영은 어느 쪽도 손을 들어줄 수 없었다.
‘일, 이 년 뒤에는 유진이가 무조건 압도하겠지만, 아직은 모르지.’
이는 현장만이 아니라 중계 채널에서도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김성혜가 잘하긴 하지. 올림픽에서 계속 물 먹어서 그렇지, 실력으로는 세계 탑클래스였음.
-ㅇㅇ 맞음. 말년에 안자이 히카리한테 워낙에 개발려서, 그것 때문에 좀 얕보는 사람이 많은데, 그건 그냥 안자이 히카리가 괴물인 거임.
-맞아요. 히카리가 여자부의 황금세대 같은 존재죠. 선수진 단단한 일본에서도 체급별로 다 석권하고 올라왔어요. 지금 체급에 안착하기 전까지 거의 일본 여자유도 도장 깨기하고 다녔던 애임.
-그런데 그런 안자이 히카리랑 비견되는 게 이시카와 사오리, 강유진 쟤 아님?
-강유진은 개화 전이잖아요. 히카리는 이미 활짝 만개한 꽃이고. 실력으로는 아직 히카리가 위임.
-그러니까, 둘 다 히카리보다 아래니까 해볼 만하지 않겠음?
-ㅋㅋ 같은 아래라도 급은 있죠.
-아니, 이따가 붙어보면 알 건데 이걸 지금 떠들어서 뭐해요?
-……그러게. 한심들 하다, 진짜.
-아니, 야. 궁금할 수 있지!
-맞어! 니넨 축구나 야구 볼 때 미리 전력 비교 안 하냐?
-아. 그러네?
-맞넼ㅋㅋㅋㅋ
-ㅋㅋㅋㅋ
이런 관심 속에서 시간이 흐르고 흘러 둘의 경기가 어느덧 가까워졌다. 경기장 밖으로 눈발이 파르르 날리기 시작할 무렵, 선수들이 입장했다.
입장은 강유진이 먼저였다.
지영은 강유진이 먼저 입장하는 걸 보고, 주최 측에서 김성혜에게 예우를 차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진 철저하게 인기순으로, 흥행순으로 입장이 갈렸다. 뒤에 입장하는 선수가 더 인기가 많은 선수였다.
그런데 이번엔 강유진의 인기가 압도적임에도, 강유진이 먼저 나갔다.
이는 한 나라의 국가대표직을 10년이 넘게 맡아온 선수에 대한 예우였다. 꾸벅, 입장하면서 관중들에게 인사한 김성혜가 자리에 서자, 박수가 멎었다.
둘이 서 있는 모습을 보며, 배영우가 굉장히 의미심장한 멘트를 던졌다.
[이야, 이런 말이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제 눈엔 지금 대한민국 여자유도의 과거와 미래가 현재에 마주 보고 서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 그러네요. 대한민국의 과거와 미래. 둘이 현재에 만났네요.]
[그걸 선수들도 아는 걸까요? 표정에는 비장함보단, 이상한 각오 같은 게 보입니다.]
[시합 전인데 김성혜 선수의 눈빛 보세요. 굉장히 따스하지 않습니까? 마치 자신의 뒤를 책임져 줄 후배를 만나, 그게 진실로 기분이 좋은 것처럼 보입니다.]
장내를 조용히 울린 그 말에, 지영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
확실히, 과거와 미래가 만났다.
‘말처럼 현재에. 재밌겠네.’
이 경기는 생각보다 의미가 있었다.
아마 이런 스토리를 배영우가 즉흥적으로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방송하는 양반들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지영이 잘 알았다. 김성혜와 강유진 둘이 같이 본선에 올라갔을 때, 이미 지금의 이야기가 짜였을 거다. 서로 만나게 된다면 이런 멘트로 이야기를 만들자는 쪽으로. 결승전에서 만났으면 더 극적이었겠지만, 그러지 않아도 충분히 스토리가 나왔다. 그렇게 만난 두 선수는 언질이라도 받은 건지, 아니면 직감으로 느낀 건지, 서로 예를 갖춘 인사 뒤에 맞붙었다.
결과는?
2분 30초.
강유진의 업어치기 한판승이었다.
이미 지나간 흘러간 과거는, 앞으로 이어질 미래를 이기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