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97화
297화. 유도 챌린지(10)
이연두!
이연두!
남자부 준결승이 끝나고, 잠시 주어진 시간 동안 관중들이 이연두의 이름을 연호하는 걸 들으며 지영은 저도 모르게 세상은 참 요지경이구나란 생각을 해버렸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연두의 행동이 특별했던 건 아니었다. 유도. 아니, 스포츠에 종사하는 선수들 대부분이 그런 부상을 당했을 때, 그런 모습을 보였다.
부상이란 것에 워낙에 익숙해서 그 정도 부상은 그냥 덤덤하게 반응할 수 있었다.
그건 지영도 그랬고, 친구들도 그럴 거고, 주변에 같이 온 국대 동료들도 그럴 거다. 그리고 오늘 시합을 치른 선수들 대부분이 그럴 거다. 이연두만 딱히 특별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시운이 맞았다.
일반인은 그런 걸 잘 모른다.
상처가 나면 누구나 다 똑같이 아프구나. 보통은 이렇게 생각했다. 남이 당한 상처를 보면, 괜히 자기가 아픈 것 같고 그런 마음도 든다. 그런데 자기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스테이플러로 찢어진 입술을 찍고 막 이러는 건…… 상상도 못 하는 일이었다.
그걸 선수들의 시점과는 다른 곳에서 보고 나니, 그게 우와……! 대박! 이런 느낌이 드는 거였다.
그게, 일반인의 눈에는 정말 너무나 대단한 퍼포먼스로 보였고, 그 결과 그 옛날 롤린처럼 폭발해 버린 것이다.
기세를 탔다.
기세를 타자, 아주 자연스럽게 전체를 휩쓸기 시작했다. 이는 지영과 거의 비슷했다. 지영은 자신이 이렇게 유명해진 걸 한 문장으로 표현하라고 하면, 세상은 요지경이란 문장이 딱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자신과 아주 흡사한 일이 이연두에게 일어나고 있었다.
이제, 오늘이 지난 뒤 그녀의 삶은 많은 것이 변할 것이다. 과연 옳은 곳으로 변해갈지, 아니면 그녀의 삶을 망치는 방향으로 갈지,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건 없지만 부디, 원하는 방향으로 그녀의 삶이 나아가기를 지영은 바랐다.
그런 바람은 바람이고.
‘시합은 시합이지.’
생각해 보면, 그녀의 경기력은 좀 이상했다. 아니, 정확히는 의심스러웠다.
“한결아.”
“응?”
“일이 년도 아니고, 칠 년이나 쉰 선수가 저런 움직임을 보이는 게 가능할까?”
“불가능하지.”
지영의 의문에, 강한결은 즉답을 내줬다.
“그렇지?”
“응. 절대.”
그리고 지영도 거기에 동의했다. 슬그머니, 두 사람의 대화에 주변인들의 귀가 열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일이 년도 아니고 무려 칠 년을 도복을 안 입었던 사람의 움직임이라곤 볼 수가 없어. 분명 어딘 가서 운동하긴 했어. 그것도 꽤 심도 깊이.”
“내 생각도. 저건 운동 안 하고 나올 수 있는 경기력이 절대 아냐.”
다른 사람들은 그럴 수도 있구나. 라고 생각하지만, 지영은 아니었다.
무려 칠 년이다.
이연두의 나이는 이제 스물일곱이고, 그녀는 대학교에 아예 가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성인팀에 소속된 것도 아니었다. 프로필상, 그녀의 유도 인생 마지막은 강원도 소재의 여고가 마지막이었다.
거기서 그녀는 유도 인생의 끝을 고하고, 서울로 올라와 바텐더의 길에 새롭게 올라섰다.
이게 지금까지 알려진 그녀의 스토리 중 하나였다. 그럼 지금까지의 경력 단절이 대충 봐도 7년이다.
그런데 저 경기력은.
아무리 봐도 7년이나 쉰 선수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사성이 대회를 기획한 게 12월이고, 지금이 2월이다. 그 기간에 몸을 풀었다? 한 달 만에 전성기 이상의 실력까지 올라오도록? 이것도 말이 안 됐다.
“지영아. 너도 힘들어?”
누군가가 물었다.
같이 훈련하는 여자 선배의 질문에 지영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저도 드라마 촬영할 때 감 잃지 않으려고 진짜 시간 쪼개고 쪼개서 부딪치기라도 하고 그랬어요.”
“아 진짜?”
“네, 진짜요.”
거짓말이 아니라, 지영은 정말 감을 잃지 않으려고 악을 썼었다. 인간의 몸은 쓰지 않으면 당연히 굳는다. 그건 지영이라고 해도 변함이 없었다. 재능이라 불리는 천재성으로 남들보다 굳는 시간을 느리게 하고, 푸는 시간을 빨리할 수 있다고 해도 아예 빗겨 갈 순 없었다.
이는 깁스를 오래 했다가 풀고 재활을 하는 것과 똑같았다.
그래서 지영은 시간이 나는 족족, 아니, 없는 시간도 만들어서 액션 스쿨 선배들에게 부탁해 도복을 입혀 부딪치기라도 했다. 간혹 매트를 챙겨와 매치기도 하고 그랬었다. 그렇게 해서 겨우겨우 폼을 유지한 지영이었다.
그런데도 다시 폼을 되찾는 데 진짜 개고생했던 지영이다.
황금세대 전체가 비슷한 수준의 재능을 타고났지만, 지영이 겪은 일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벌어졌던 일이었다.
그런데 이연두는 7년이다.
절대, 무조건, 도복을 주기적으로 입지 않았으면 저런 경기력은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왜?
“청담에서 잘나가는 바텐더가 주기적으로 도복을 입은 이유를 꼽으라면…… 역시 미련이나 유도가 좋아서라고밖에 할 수 없겠지.”
지영의 말은 정답에 가까웠다.
현역인 선수들만큼이나 그 종목에 대해 잘 아는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현역이니 전문가들보다 훨씬 더 나았다. 속된 말로 현역들은 현장에서 뛰기 때문이었다. 이론만 빠삭한 이들보다, 현장에서 취득한 것들이 많은 현역이라, 지영의 말에 적극적으로 공감했다.
“소연아.”
“네, 선배.”
한 여자 선배의 부름에 현 48 주전이 답했다.
지영보다 두 살 많은 현소연. 그녀가 지금 48 체급의 주전이었다.
“어때?”
“붙어보면요?”
“응.”
“그냥 뭐, 스타일만 봐선 모르겠어요. 진짜 붙어봐야 알 것 같은데요?”
“그래? 지명권 1차가 너고, 2차가 1등이었지?”
“네.”
“붙어봐, 재랑. 나중에 아무것도 모른 채로 당하지 말고.”
“네?”
도은정. 현소연과 초, 중, 고등학교에 대학교까지 1년 위지만 함께 다닌 헤비급 주전의 말에 현소연은 고개를 갸웃했다.
“지영이 말처럼 미련이나 유도가 좋아서 계속했을 수도 있잖아. 그럼 이번을 기회로 선발전에 나올 수도 있어. 실력 보니까 결승까지 올 것도 같은데, 아무런 정보도 없이 붙을래?”
“아.”
“그러니까 먼저 붙어봐. 가능하면 꺾어주는 게 좋겠고.”
“네, 선배.”
묵직한 선배의 말에 현소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냉정한 얘기였다. 하지만 굉장히 현실적인 얘기였다. 국가대표는 계속해서 도전받는 사람들이었다. 세계로 나가는 순간 도전자가 되는 게 보통이지만, 적어도 국내대회인 선발전만 해도 결국 내 자리를 넘보는 다른 선수와 붙어야 했다.
그런 대회가 1년에 두 번에서, 세 번이나 펼쳐진다.
국가대표는 영예로운 자리였다.
그래서 차지하기 위해 기를 쓰는 만큼, 기존의 선수들은 언제나 긴장하고 있어야 했다. 안호진처럼 장기간 자리 잡고 있기도 하지만 그런 체급은 사실 그리 많지도 않았다. 황금세대가 선발전을 뛰기 시작한 이후부터, 그들이 뛰면 적어도 다섯 체급은 고정이었다. 이런 남자부와 달리 여자부는 춘추전국시대처럼 계속해서 왕좌를 차지하는 선수가 변했다. 1년 천하, 길면 2년 천하 등등, 계속 변하고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등장한, 저 이미 스타의 반열에 오른 저 선수는 지극히 경계해야 할 대상이었다.
도은정은 그걸 찍었다.
그것도 대놓고.
그러나 누구도 그런 도은정의 생각이 나쁘다고 하지 않았다. 지키기 위해서라면, 반칙을 하는 것도 아니니, 미리 겪어보는 건 절대로 나쁜 게 아니었다. 미리 겪고, 미리 준비하는 것. 정상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니 오히려 저런 마인드는 칭찬받아 마땅했다.
그리고 자연히, 남자부인 60도 비슷한 대화가 나왔다.
현역과 은퇴 선수가 올라갔다.
여기서 은퇴 선수가 이긴다면,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거다. 그러니 조심하는 건 당연한 거고, 말이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나왔다.”
이연두가 나왔다.
이름은 그냥 큐티한데, 역시 포스가 예사롭지 않았다. 카메라에 가득 비친 이연두. 지영은 이연두가 세팅을 다시 받았다는 걸 알았다. 좀 전보다 훨씬 더 정교해진 메이크업이었다. 저 메이크업은 땀이 나도, 아마 추하게 줄줄 흐르지 않을 거다. 그 옛날 피겨스케이팅의 퀸이 했던 메이크업처럼 말이다.
머리도 다시 만졌다.
숏컷에 가르마를 타서 살짝 옆으로 넘겼는데, 그 사이로 보이는 눈빛이 장난이 아니었다.
‘이 사람은 진짜네.’
지영은 저 모습 자체가 꾸밈이 하나도 없음을, 정말 타고났음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냥 태어나기를 무신경하게 태어났다. 남들의 일에 관심이 없다. 이런 사람들은 보통 누가 자기를 왕따시키면 노리지 않아도 똑같이 전체를 왕따시킬 사람이었다.
선수 입장 라인에 선 이연두.
심판이 입장하고, 선수도 입장했다.
내빈석 쪽, 국가대표들의 대화는 선수들이 라인에 섬과 동시에 사라졌다. 사성에서 만든 이벤트 대회.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왔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간단하게 느낄 수 있는 대회가 아니게 되어버렸다.
유도 좀 한다. 했었다 하는 선수 전체가 나온 거다 보니까, 대회의 질이 매우 높았다. 매번 하던 선수들끼리 하는 게 아니다 보니까, 신선도도 높았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현역 국대들을 긴장시킨 건 4강까지 올라온 선수들의 실력이었다.
보면 딱 느껴지는 게 있긴 하다.
나보다 잘한다, 나보다 못한다.
상성이 좋다. 상성이 나쁘다.
등등.
보는 순간 어느 정도 계산이 파바박 되는 거다.
하지메!
마이크까지 달아 우렁찬 심판의 목소리가 들리면서 시합이 시작됐다. 이연두의 상대는 역시, 은퇴선수였다.
이연두보다 두 살이 많은.
프로필에 ‘주부’라고 적혀 있던 걸로 보아 결혼, 혹은 출산과 동시에 선수를 접은 게 아닐까 추측됐다. 그렇게 떠났던 기간이 2년밖에 안 되고, 몸도 굳었지만 그래도 역시 실력은 여전했다. 그걸 증명하는 게 바로, 조수정이 4강까지 올라왔다는 사실이었다. 4강이다. 무려 이백 명이 넘었고, 5회에서 6회에 가까운 예선전을 뚫고 본선에 올라와 다시 4강까지 왔다.
이기면 최소 은메달 확보고, 져도 패자전이 없으니 동메달이었다.
수백의 상금과 부상이 이미 확보된 상태였다.
그리고 거기서 만족할 생각일까? 아니면 실력 차가 큰 걸까?
“이건 게임이 안 되는데?”
2분 정도 지켜보던 이성진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연두는 압도적이었다.
이건 뭐, 그냥 가지고 놀았다. 체력, 속도, 힘, 기술, 그 모든 것에서 이연두가 앞섰다.
“보면서 누구랑 계속 비슷한 것 같았는데, 이제 알겠다.”
“누구?”
“지영이.”
“그치?”
이성진과 임효중의 아주 짧은 대화에 주변에 있던 선수들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당사자인 지영은 그냥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스타일 자체로 따지면 자신과는 좀 다르다. 하지만 전체적인 느낌…… 이 비슷했다.
세상에서 가장 애매한 게 느낌적인 느낌 뭐 그런 건데, 진짜 딱 그랬다.
몸이 완전히 풀린 이연두의 시합 방식은, 지영과 확실히 느낌이 비슷했다. 아니, 방식이 아니라 그냥 시합에서 나는 느낌, 냄새가 비슷했다.
‘사냥꾼 과라 그렇지, 뭐.’
지영은 그 이유도 알고 있었다.
지영은 철저하게 상대를 사냥하는 방식을 취할 때가 많았다. 특히 지도나 절반 하나를 먼저 따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사냥은 여태 벗어나 본 선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연두가 그랬다. 많이 움직이는 것 같지도 않은데, 확실히 공격할 땐 공격하고, 막을 땐 막으면서, 반칙 관리에도 매우 능숙한 모습을 보였다.
기술도 수준급이지만.
“진짜 전형적인 운영 유도…….”
운영 유도.
일견 보면 일반적인 선수들과 비슷해 보이지만, 강지영의 냄새가 난다는 말을 듣고부터 보면 확실히 시합 운영에 중심을 둔 유도였다. 몸에 갖춘 실력을 바탕으로 본능에 맡기는 시합이 아닌, 철저히 계산된 시합을 하는, 그런 스타일이었다. 그게 지영과 비슷한 느낌을 나게 했다.
쿵!
지도 두 개를 먹여서 한참 유리한 상황에, 억지로 들어온 안다리를 받아 되치기해 절반을 따냈다. 그러곤 무리해서 굳히기를 잡지 않고 적당히 있다가 일어나는 이연두. 후, 짧게 숨을 내쉬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 섰다.
남은 시간은 이제 1분.
반칙 2개, 절반 1개.
말 그대로,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다. 실수해서 막판에 한판을 맞지 않는 이상 무조건 승리할 거라고 봐도 좋은 점수 차이였다.
[남은 시간은 1분! 아! 이연두 선수 철저합니다! 무리하지 않아요! 자신이 가진 점수의 이점을 확실하게 이용합니다!]
중계석이 근처에 있기도 하지만, 마이크 때문에 쩌렁쩌렁 체육관을 울리는 배영우의 말처럼, 20초 정도를 방어에 써 반칙을 하나 받았다. 그리고 다시 수비적으로, 자세를 바짝 낮춘 다음 어이없게 날아가는 상황을 모조리 차단하고 다시 35초가 지나 지도 하나 더.
남은 시간은 5초였고 땀을 닦아내며 힐끔, 남은 시간을 본 조수정은 경기를 포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