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93화
293화. 유도 챌린지(6)
대한민국 최고의 MC.
오죽하면 네티즌이 우느님이라 부르는 방송계 최고의 스타가 우정혁이었다. 그런 우정혁의 등장은 엄청난 환호를 끌어냈다. 그 환호가 잦아들자, 우정혁이 기분 좋은 웃음과 함께 멘트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오늘 더 챌린지 오프닝 진행을 맞은 개그맨 우정혁입니다.”
와아아!
우정혁! 우정혁!
우정혁은 역시 능숙하고 익숙하게 오프닝을 진행했다. 모든 대회에 나오는 게 아니라, 개회인 오늘과 폐회인 5주 뒤 마지막 날에만 나온다는 말에 팬들은 서운해했지만, 그래도 우정혁을 봤다는 것에 다들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약 10분 정도, 팬들과 소통하던 우정혁이 자! 하며 흐름을 바꾸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쇼’를 개최하도록 하겠습니다! 대망의 첫 경기를 장식해 줄 선수를 먼저 보시겠습니다.”
마이너스 48킬로! 충북체고 이선화!
우정혁의 외침과 동시에 경기장 위, 스크린에 충북체고 이선화의 프로필이 훅 떠올랐다. 고등학생 현역이다.
이선화는 지영도 아는 얼굴이었다.
지영이 고3일 때 청주 용암중 3학년이었는데, 그때도 이미 유망주로 이름이 높던 선수였다. 그런 이선화는 이번 대회에 참가했고, 16강까지 올랐다. 자신이 유망주가 아니라, 정상을 넘볼 실력을 갖췄다는 걸 제대로 보여줬다.
와아…….
하지만 다른 의미의 감탄이 관중석에서 흘러나왔다.
그런 이유는, 등장한 이선화의 복장 때문이었다.
쇼.
이선화는 쇼에 걸맞게, 작정한 모습을 보여줬다. 여자부 경기는 보통. 아니, 무조건 안에 하얀색 티셔츠를 받쳐 있게 되어 있었다. 남성이야 아무것도 안 입지만 여성은 당연히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규정으로 흰색 티셔츠를 입는 걸 명시해 놨다. 하지만 그건 정식 대회고, 지금 이 경기 더 챌린저는 아니었다.
안에 뭘 받쳐 입든, 그건 대회를 준비하는 사성에서 정하기 나름이었다.
그래서 사성은 안에 반드시 흰색 티셔츠를 입어야 한다는 규정 자체를 날려버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캐릭터 티셔츠 같은 화려한 것들은 안 된다고 못 박았다. 그럼 허용되는 건? 바로 기능성 제품이었다.
이선화는 그중에서도 기능성 스포츠 브라를 입고 나왔다. 이종격투기 선수들이 경기 중에 입는 그런 제품이었다. 그래서 맨살이 고스란히 드러났고, 거기에 탄을 발랐는지 구릿빛 복근부터 시작해 탄력적인 몸매를 고스란히 내보였다.
체급에서 상당한 신장을 자랑하는 이선화는, 외모도 귀염상에 가까웠다.
그런데 복근부터 시작되는 몸매는 가녀린 느낌과 탄탄한 느낌이 공존하고 있었다. 게다가 카메라가 잡은 얼굴도 일반 대회와는 완전히 달랐다.
여자 선수 중 시합에 나오면 화장하는 선수가 과연 몇이나 될까?
없다.
비비도 거의 안 바르고 나온다.
애초에 시합 중에 상대가 불쾌감을 느끼는 레벨의 뭔가를 하는 것 자체가 반칙패를 당할 가능성이 있어서 스킨로션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데 지금 이선화는 제대로 메이크업을 받았다.
“이야, 선화 빛난다. 빛나.”
“역시 여자는 화장하니까 확 다르긴 하다.”
이성진과 임효중의 말에 지영도 100% 공감했다.
사성에서 작정한 룰 개정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메이크업이었다. 사성은 본선에 진출한 모든 선수의 프로필 촬영을 수, 목에 걸쳐 진행했다. 그 프로필 사진은 선수가 등장할 때 대형 스크린에 제대로 떠올랐다.
그리고 시합 당일인 오늘, 사성에서 초빙한 메이크업, 헤어 아티스트들이 선수 전원을 케어했다.
시합에 지장이 가는 정도로 화려하게 할 수는 없지만, 전문가의 손이 탔으니, 당연히 거의 민낯에 가까울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완전히 다른 사람.
체급이 주는 가녀린 느낌과 정상급 선수가 주는 강인함을 동시에 내뿜으며 이선화는 자신의 자리에 서서 도복을 입고, 시합을 준비했다.
그리고 그런 이선화 뒤로, 다시 한번 무대가 암전되며 등장하는 선수를 비췄다.
장한빛.
이번에도 아는 선수였다.
3년 전에 은퇴한 전 국가대표였고, 현재는 경기도 소재 실업팀 소속의 선수였다. 세계 정상의 문을 줄기차게 두들겼지만, 결국은 한 번도 정상에 서본 적이 없는 선수. 이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점이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불굴의 의지를 지녔다고 할 수 있었다.
실제로 악착같이 물고 늘어지는 장한빛은 역시 이선화처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서 등장했다.
장한빛의 체구는 작다.
150이 조금 넘는 단신이다.
하지만 이선화처럼 전문가의 손길을 거친 장한빛은 큐티와 섹시, 그리고 역시나 강인함을 제대로 보여줬다.
등장하는 장한빛은 이제 고등학생이라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이선화의 당당함과는 반대로 좀 어색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지만, 그래도 충분히 제대로 된 등장을 보여줬다.
그렇게 양 선수가 등장했고, 시합이 빡시게 예선전을 거치고 3일간의 제대로 휴식을 취한 심판까지 등장하자, 경기 준비가 전부 끝났다. 선수 등장만 해도 몇 분이나 잡아먹었지만, 지영은 조금도 그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타 종목에 비해 스포트라이트를 더 받을 때도, 덜 받을 때도 있는 게 유도였다.
올림픽의 성적이 곧 인기였는데, 지금은 지영을 포함한 황금세대 덕분에 전에 없는 호황을 누리는 중이었다. 지영은 힘들게 운동하는 선수인 만큼, 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격투기처럼 청코너! 이런 건 없었다.
대신 장내에 거슬리지 않는 선에서의 음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전쟁, 혹은 전투의 고양감을 올려주는 음악이 절묘한 크기로 관객과 선수의 흥을 돋게 했다.
“음악까지 넣는 건 진짜 신의 한 수인 듯. 누가 의견 냈는지는 몰라도 진짜 상 줘야 해. 안 그러냐, 지영아?”
“인정. 이건 진짜 제대로다. 사운드랑 조명을 진짜 기가 막히게 맞췄어.”
어둡지도, 너무 밝지도 않았다.
이 적절함이 경기장 자체를 더 돋보이게 해줬고, 그 결과 집중도가 빡! 하고 살아났다.
“돈에 구애받지 않고 인력을 갈아 넣어야 나올 수 있는 수준이네, 이건.”
강한결의 감상평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런 대회는 일반적으로 열기 힘들겠단 생각이 바로 들었다. 이걸 협회에서 준비한다? 세상이 두 쪽 나도, 이런 대회는 기업에서 작정하지 않는 한 열릴 수가 없었다.
시합이 시작됐다.
악!
뭔가 엔터테인먼트 쇼 같던 느낌은, 두 선수가 기합을 내지르며 맞붙는 순간 연기처럼 흩어졌고, 그 자리를 대신 채운 건 반드시 이기겠단 악과 독기였다.
하지메!
일본에서 온 국제 심판의 외침에 4분의 타이머가 흐르기 시작했다.
사성은 시합 자체의 룰은 건드리지 않았다. 그래서 4분 게임 자체는 변함이 없었다. 작은 체구의 선수다. 그러나 은은한 음악이 주는 고양감은 두 선수가 맞붙는 순간, 격렬한 에너지를 발산시켰다.
이선화.
오른쪽 허리 기술.
장한빛.
올라운더.
등장할 때 스크린 떠오른 프로필에 적혀 있던 정보였다.
이선화는 큰 신장을 이용해 잡기로 일단 조지고, 그다음 허리기술로 결정타를 넣는 전형적인 오른쪽 허리 기술 선수였다. 반대로 장한빛은 양쪽 업어치기, 허리기술, 발기술 전부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선수였다.
이렇게 보면 장한빛이 다 잘하니 훨씬 유리해 보이겠지만.
“올라운더라는 것 자체가, 다 할 줄 알지만 다 깊이는 떨어진다는 소리지.”
턱을 괴고 막 시작한 시합을 보던 강한결의 말에, 지영을 포함한 친구들, 그리고 주변에 있던 국대 선수들까지 전부 고개를 끄덕였다. 잘 포장하면 올라운더다. 다 잘하지만, 그 말 자체가 이성진이나 임효중처럼 장인급으로 기술을 걸 정도는 아니라는 거였다. 그러니 반대로 말하면 어중간하단 말도 된다.
‘애초에 그 정도 깊이까지 기술을 연마했으면…… 정상의 문을 두들기기만 하다가 국대 생활을 끝냈을 리가 없지.’
진짜 깊이가 있었다면, 끝끝내 정상의 자리를 차지했을 거다.
국내 말고, 세계 무대에서 말이다.
하지만 장한빛은 세계 정상에 서지 못했다.
그게 그녀의 실력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재미난 건.
이렇게 집중을 받게 되면, 선수의 기량이 널뛰기할 때도 있다는 점이었다.
아악!
콰앙! 제대로 안다리에 걸려 넘어간 이선화를 보며 지영은 역시 쇼는 ‘쇼’라는 생각이 들었다.
와자리!
심판의 절반 선언에 다급하게 올려다봤던 이선화는 고개를 푹 숙이고 굳히기 방어 모드에 들어갔고, 이선화는 잽싸게 그 위로 올라가 띠를 잡아 들어 올려 다리에 꼬고는 그대로 굴렸다.
조금만 더 깊게 걸렸고, 이선화가 조금만 허리를 트는 게 늦었으면 무조건 한판이었다.
시합 시작 고작 1분 만에 나온 절반이었다.
“이제 서른 중반이실 텐데, 경기력이 진짜 하나도 안 죽었네.”
“그러게. 오히려 더 잘하시는 거 같은데?”
다른 국대 선수들의 말처럼, 장한빛의 나이는 이제 서른 중반이다. 정확히는 서른넷. 은퇴가 남자 선수보단 조금 늦는 게 여자 선수라고 해도, 유도 선수 나이 서른넷이면 황혼 중의 황혼이다.
그런 선수가 치열한 예선을 거치고, 16강에 온 것도 솔직히 아무리 전 국대라고 해도 대단한 건데, 지금 떠오르는 신예를 압도하고 있었다.
이선화는 요즘 선발전에서 3위권까지 갈 정도로 물이 올랐다.
그래서 솔직히 지영은 이선화의 승리를 점쳤다.
그런데.
그쳐 후, 이어지는 경기를 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선화 안 되겠는데?”
“그러게. 한빛 선배 아직 살아 있네!”
“아, 걸렸다.”
쿵!
황석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장한빛이 절반을 딴 안다리를 다시 한번 작렬시키며, 경기를 끝냈다. 패자와 승자가 갈리면서 큰 환호성이 나왔다. 경기는 재밌었다. 확실히 경기장 내 조명과 음악을 제대로 세팅해서 그런지, 보는 맛이 있었다.
“와 재밌다…….”
“이런 대회면 솔직히 좀 나가고 싶은데?”
이성진과 임효중의 말에 다른 국대 선수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시합을 개최한 사성 측은 국내 랭킹 1위부터 4위까지는 이벤트 매치로 돌렸다. 여기서 시합에 나갈 여건이 안 되는 선수들이 있으면 랭킹 5위로, 다시 6위로 이런 식으로 내려가 국내 랭킹 순위권자 총 네 명을 정했다.
그리고 그들은 시합을 나가지 못하는 대신, 역시나 처음보다 오른 금액을 받고 이벤트 매치에 서게 해주는 특권을 줬다.
국가대표 선수들은 솔직히 수백 명이 나와서 하는 경쟁보다, 이벤트 매치에 서는 걸 더 좋게 생각했다.
생각지도 못한 돈도 받고, 크게 힘도 들지 않으니 당연히 나쁠 리가 없었다.
당장 지영만 해도 그런 생각이었다.
그런데 본선 첫 게임을 보자마자…….
“와, 남의 경기 보고 피가 끓는 건 진짜 오랜만인데…….”
“헐, 지영이 너도?”
“응.”
거의 마지막이…… 그래. 신지였다.
미야모토 신지의 천재성을 확인한 경기를 보고 지영은 그때 진짜 피가 끓었다. 당장 신지와 붙어보고 싶은 마음이 훅 솟구쳤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사실 거의 없었다. 아니, 거의가 아니라 없었다.
오직 신지의 천재성만이 지영의 피를 끓게 했었다.
그런데 지금, 저 무대에 서고 싶단 욕심이 생겼다. 너무 잘 꾸며진 무대였다. 정말이지, 유도 선수에게는 있을 수 없었던,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완벽한 무대였다.
다른 국대 선수들도 몸이 닳은 표정이었다.
요즘은 세계대회에 나가면 그래도 소개와 함께 음악도 틀어주고 그러지만, 이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게다가 무려 일만이 넘는 관중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수만일지, 수십만일지 모르는 시청자들도 지금 이 경기를 보고 있었다.
완벽한 무대.
그래서 욕심이 나는 무대였다.
이어지는 경기들.
첫 게임만 본격적인 느낌을 줄줄 알았는데, 2회전에서도 선수 소개는 제대로 했다. 2회전 선수는 모르는 선수들이었다. 둘 다 은퇴한 선수들이었는데, 국대 생활도 겪지 않았던 선수들이었고, 실업팀 생활도 하지 않았던 선수들이었다.
그러나…….
경기력은 진짜였다.
1회전보다 훨씬, 일반인은 모르겠지만 현역인 지영이 보기엔 훨씬 압도적인 시합을 보여줬다.
치고받는 난타전.
절반, 절반을 서로 교환하고, 입술이 터져서 피가 진짜로 튀는…… 그런 경기였다.
함성과 환호로 가득하던 장내가 싸늘하게 식었다.
실제로 선수의 입술이 터져서 피가 주르륵 흐르는 걸 보고 난 뒤부터였다. 제대로 이빨을 찍혀 터졌는지, 피는 금방 그치지 않았다. 카메라가 바짝 입술이 터진 선수를 잡았다. 고통보다는, 피를 봤다는 짜증과 승리를 향한 갈망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얼굴.
그 선수의 얼굴을 카메라가 집중 조명한 순간. 그 순간의 시청률은 무려.
17%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