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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285화 (285/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85화

285화. 마스터즈(4)

자신이 끌어당긴 힘에 순응해, 자신의 예상과는 다르게 너무 빨리 몸에 붙은 지영이 툭 댄 안뒤축을 안데르손은 피하지 못했다. 안뒤축을 댐과 동시에 지영은 마치 무술영화나 만화, 게임의 철산고처럼 어깨로 가슴도 툭, 하고 들이받았다.

대놓고 퍽! 소리 나게 치면 반칙이니까 그냥 끌려간 힘을 이용해 상체를 틀어 퍽, 안뒤축과 동시에 쳤더니 안데르손의 중심이 그대로 무너졌다. 안데르손의 피지컬은 진짜 엄청났지만, 그래도 약점은 존재했다.

기골이 장대하면 할수록, 반드시 떨어지는 게 있다.

바로 민첩성이다. 그리고 민첩성과 함께 중심 밸런스도 떨어진다. 민첩성이 떨어지니, 반응속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만약 지영이 이런 일격을 당했다면, 안뒤축에 맞는 순간 이미 지영은 몸을 틀고 있었을 거다, 그래야 앞으로 떨어지니까. 하지만 안데르손은 그러지 못했다. 중심은 무너졌고, 가슴에 받쳐 밀려 나가며 쓰러지는 상황이다. 보통 같은 경우라면 그냥 뒤로 물러나면 되지만 지영은 이미 안긴 다음, 상대가 도망가지 못하게 가슴 깃 하단을 꾹 쥐어서 짓누르고 있었다.

쿵!

그래서 그냥 쿵! 소리가 나도록 넘어지는 안데르손. 지영은 굳히기를 올라탈까 하다가 곧장 멈췄다. 이렇게 힘이 좋은 상대한테는 괜히 굳히기 올라탔다간 역으로 낭패를 볼 가능성이 농후했다. 지영은 굳히기만큼은 평범했다.

이제는 어디 가서 못한다는 소리 듣는 정돈 아니지만, 그래도 굳히기 스페셜리스트와 붙으면 사정없이 탈탈, 털리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아예 올라타지 않았다. 그런데 올라타지 않아도 충분했다.

잇폰!

한판이었다. 상대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가슴 깃 아래를 잡고 그대로 같이 쓰러지느라 못 봤는데, 한판을 준 걸 보니 상체를 틀지 못하고 그냥 통나무처럼 넘어간 것 같았다. 지영은 후, 짧게 숨을 내쉬고는 일어나서 도복을 고쳤다.

안데르손은 멍청한 얼굴로 일어나서 손을 들어 올리며 이게 왜 한판이냐는 제스처를 취했다. 하지만 심판의 판정은 번복 없이 그대로 승자 선언이 나왔다. 가볍게 악수하고 나온 지영은 숨을 몰아쉬었다. 워낙에 힘이 좋은 상대였다. 그리고 그런 상대랑 붙으면 평소보다 더 긴장하고, 근력도 쥐어짜 내듯이 써서 근 경련이 오기도 한다. 지금은 그런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아귀가 조금 뭉쳐 뻑뻑한 느낌이 났다.

고작 2분 정도 경기했을 뿐인데도 이 정도다.

지영은 빠르게 시합을 끝내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4분 게임 다 했으면 아귀가 진짜 빡빡하게 뭉쳤겠어.’

앞으로 두 경기나 더 남았는데, 그렇게 컨디션에 마가 끼는 건 별로 좋은 일이 아니었다. 대기실 쪽으로 가자, 다른 대기실을 쓰는 임효중이 나와 몸을 풀고 있었다. 지영은 그쪽으로 가 손을 내밀며 물었다.

“컨디션 좋지?”

“그럼.”

짝.

임효중은 지영의 질문에 씩 웃고는 하이파이브를 해줬다. 웃는 친구의 컨디션은 확실히 좋아 보였다.

“야, 효중이보단 우리 걱정하는 게 더 나을걸?”

지영처럼 금방 한판으로 승부를 결정짓고 나온 이성진의 말에 지영이 왜? 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아아, 하며 수긍했다. 임효중이었다. 황금세대 중에서도, 가장 압도적으로 안정적인 경기력을 보여준 친구인 임효중이었다.

퍼포먼스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임효중은 황금세대 중에서도 가장 안정적이었다.

그의 경기를 보고 있자면 고급 세단을 탄 것처럼 편안했다. 오른쪽 자세라 보통 맞잡는 경우도 많고, 맞잡는 자세 자체가 가장 한판이 잘 나와서 불안한 자세인데도 임효중은 그런 게 참 없었다.

그래서 그게 정말 신기했다.

임효중이 들어갔다.

상대는 이탈리아 선수였다. 코가 길쭉한 이태리 미남은 쇼맨십이 상당했다. 들어가기 전부터 관중석에 윙크를 날리고, 근처의 카메라를 잡고 싱긋싱긋 처웃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흡사 가수들이 무대에서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하곤 임효중과 나란히 선 이태리의 마르코는, 정확히 1분 만에 하늘을 붕 날아 떨어졌다.

여지없는, 너무나 깔끔한 한판.

제대로 떨어지고 나서 벌떡 엎드리며 심판을 간절하게 올려다보는 마르코에서 심판은 손을 번쩍 들어, 잇폰을 선호했다. 그러자 울상이 되어 고개를 푹 숙이는 마르코.

“쯔쯔, 까불고 싶으면 이기고 나서 하던가. 저게 뭔 개쪽이야. 그치?”

“그러게.”

이성진은 그 모습을 보고 혀를 찼다. 그리고 지영도 혀를 차고 싶은 마음만큼은 같았다. 마르코는 너무 깝쳤다. 저런 퍼포먼스는 보통 승자가 됐을 때나 보여줘야 하는 건데, 그걸 굳이 경기 전에 해서 개쪽을 먹었다. 쯔쯔, 혀를 찬 지영은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패자전 시작이라 휴식 시간이 충분히 남았다.

지금 쉬는 시간 동안 점심을 먹고, 부족했던 잠을 조금 자둬야 체력이 쭉쭉 다시 올라올 것이다.

대표팀의 식사는 웬만하면 전부 한국에서 공수해 온다.

예전에 강한결이 밤에 물을 잘못 마셔 물갈이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기 때문에 더더욱 식사에 신경 썼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이런 대회에 나오는 선수가 100명이면, 최소 90명은 전부 감량한 상태로 나오기 때문이었다.

기본 5에서 많게는 10㎏ 정도를 빼고 나오니, 컨디션이 정상일 리가 없었다.

특히 면역력이 매우 많이 떨어졌다. 이런 몸 상태에 갑자기 낯선 이국의 음식이 들어온다? 생전 처음 먹는 향신료나 재료가 배로 들어오는 순간, 낯선 이물질의 침입으로 판단한 몸은 아주 난리가 날 것이다.

강한결이 물만 마시고도 탈이 난 이유가 그거였다.

감량 없이 타국으로 여행을 온 멀쩡한 사람도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면 탈이 나는데, 감량으로 인해 면역력이 바닥난 선수들은 안 봐도 빤했다. 뭐, 어떤 음식이든 소화하는 강철 위장의 소유자가 있긴 하겠지만, 그런 선수가 몇이나 되겠나.

그래서 대표팀은 식단에 정말 신경 썼다.

그래서 오늘 점심도, 한국에서 직접 공수해 온 식단이었다.

약간 싱거운 간.

하지만 전체적으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단짠의 조화를 아주 잘 이룬 식단이었다. 후식으로 과일까지 야무지게 먹어준 뒤, 지영은 이어폰과 수면안대를 뒤집어쓰고 눈을 감았다. 공식 점심시간은 아닌 이 시간이, 체력을 보충하는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뭐 1, 2회전 탈락자야 의미 없는 시간이지만 준결, 결승을 앞둔 선수들은 이 시간을 잘 써야 했다.

짧게도 좋다. 20분. 30분. 그 정도의 수면으로도 체력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올라오니까.

그렇게 잠시 눈을 붙였다가, 누가 멱살을 잡아당긴 것처럼 갑작스럽게 잠에서 깼다. 잠에서 깬 지영은 안대와 이어폰을 다시 챙겨 가방에 넣은 뒤, 약간 몽롱한 정신으로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거의 본능이었다. 잠에서 깨자마자 스트레칭을 하는 건. 멍하니 스트레칭을 하는 중에 이성진과 임효중도 깨서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나란히 앉아서 스트레칭을 시작한 지영과 친구들을 보며 스태프들이 신기하게 바라봤다.

“와, 이어폰 꼈으면서 어떻게 저렇게 같이 일어나지?”

“음, 몸이 기억해서? 너도 왜 규칙적으로 자고 일어나다 보면 그 시간에 눈이 딱 떠지잖아. 그거랑 비슷해.”

“아하. 근데 그래도 얘네가 그러니까 뭔가 신기해요. 형제도 아닌데. 호호.”

“이 정도면 그냥 형제 아닐까?”

스태프의 말을 들으면서 스트레칭을 먼저 끝낸 지영은 자신의 파란 도복을 입고 기다리는 중인 김재정을 잡고 부딪치기를 시작했다.

훅, 훅, 훅!

아무리 해도, 모든 시합에서 이런 시간을 겪었는데도, 여전히 적응되지 않았다. 그리고 할 때마다 힘들었다. 숨을 트이는 작업. 이 작업은 숨이 턱 끝까지 올라와 헛구역질이 나올 레벨 정도까지 혹사해야 제대로 작업이 끝난다고 볼 수 있었다. 그래서 힘들었다.

임효중과 이성진도 인상을 팍팍 쓰면서 부딪치기를 시작했다. 그렇게 양쪽으로 부딪치기를 끝내고, 다시 팔 벌려 뛰기를 비롯한 체력훈련으로 호흡을 몰아붙였다. 20분간 훅 내달리고 나자, 숨이 트였다.

이럴 때는 몰아붙이는 코치진이 진짜 원망스러웠다.

왜 그러는지 아는데도 원망스러웠다. 지영은 숨이 트이자 고개를 빳빳이 든 원망을 뒤로하고, 화장실로 갔다.

볼일을 보고 손을 씻는데, 문이 열리면서 한 외국인 선수가 들어왔다. 낯이 익었다. 영국의 조쉬 브라운. 다음 판 상대였다. 젠틀한 영국 신사 주니어처럼 생긴 조쉬는 지영을 보더니 씩 웃었다.

비웃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반가워서 웃는 것도 아니고, 그냥 사람을 보니까 습관처럼 웃는 것처럼 보이는 미소였다. 딱히 어떤 감정이 담긴 건 아닌, 그런 미소 말이다. 자리를 비켜준 뒤 나가려는데. 조쉬가 말을 걸었다.

“지영. 미안한데 사진 좀 찍어줄 수 있을까? 내 여자친구가 너랑 시합한다니까, 믿지 않아서 말이야.”

“그래.”

보통은 이런 부탁은 시합 끝나고 하게 마련인데. 지금 해서 좀 놀랐다. 하지만 못 들어줄 부탁은 아니라서 지영은 같이 사진을 찍어줬다. 그리고 사진을 보내자마자 곧장 걸려온 영상통화.

“어때, 지영 맞지?”

-오마이갓! 꺄아아! 지영!

슬쩍 비추는 걸 봤지만 지영은 피하지 않았다. 시합 전에 이러는 건 좀 별로긴 하지만, 그래도 싫은 티를 내고 거절할 일도 아니었다. 심지어 여자친구라는 사람이 저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그냥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지영은 짧게 인사를 해주고, 시합 준비하러 간다는 변명을 대고 자리를 피했다.

대기실에서 잠시 숨을 돌리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이윽고 시작된 준결승. 준결승은 한 경기씩이었다.

오늘 한판승 행진 때문에 경기 시간이 굉장히 빨라졌고, 본래는 패자전을 시작해야 하는 시간인데 벌써 준결승이었다. 그러니 적당히 해 떨어질 때 경기를 마치기 위해서는, 경기 시간을 최대한 딜레이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러려면? 준결승을 한 게임씩 하다 보면 시간은 금방 간다. 하지만 그런 의도가 무색하게, 60게임이 시작과 동시에 끝나버렸다.

콰앙!

일본의 콘도 하야토가 우크라이나의 래식 아르뎀을 시작과 동시에 안뒤축, 업어치기 연결로 한판을 날려버린 거다. 여지가 없었다. 몸을 풀며 지영이 봤을 때도 저건 뭐, 무조건 한판이었다.

그리고 뒤이어진 다른 준결승도 1분 만에 한판이 나왔다.

총 5분도 되지 않아 연속으로 이어진 한판승의 행렬. 이어서 들어간 이성진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쿠웅!

“아자!”

알면서도 넘어간다는, 이성진의 업어치기는 이미 유명했다. 그런 이성진이 업어치기 모션을 대는 순간 상대는 중심을 뒤로 쫙 뺐고, 그걸 감지한 이성진은 그대로 안다리를 매트를 쓸 듯이 걸어 그대로 메쳤다.

머리를 잘 쓴, 아주 영리한 연결이었다.

뒤이어 경기는 그래도 4분 게임이 전부 흘렀다. 결과는 일본의 다나카 료마의 절반승이었다.

이제 73차례였다.

지영은 첫 번째 결승전이었다.

상대는 영국의 조쉬 브라운. 화장실에서 봤던 그 선수였다. 백색 도복의 조쉬가 먼저 음악에 맞춰 입장했다. 그리고 그다음, 지영이 입장했다. 지영이 정한 OST는 나의 무사님 캐릭터 테마곡이었다. 당연히 재의 테마였고, 지영은 별 관심도 없다고, 고민 끝에 이 곡으로 정했다.

지영의 테마곡이 나오자, 장내가 다시 열광했다.

이곳에 모인 지영의 팬은 모두 재의 테마곡, ‘흩어지는’을 당연히 알고 있었다. 사실 극 중 재가 워낙에 회색빛 캐릭터라서 흥이라고는 조금도 나지 않는 게 흩어지는이지만, 팬들의 환호 때문에 댄스곡처럼 느껴졌다.

감정 표현에 솔직한 나라.

아니, 지역이다. 유럽은. 그래서 그들은 지영이 이미 경기장에 섰는데도 환호를 멈추지 않았다. 결국 진행요원이 나서고 나서야 환호가 잦아들었고, 이내 경기가 시작됐다.

하지메 소리에 맞춰 시합을 시작한 지영은, 팬들의 환호에 조금쯤은 보답을 해줘야겠단 생각이 오늘 처음으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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