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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269화 (269/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69화

269화. 나의 무사님S2(16)

피날레.

대미의 장식.

화룡점정.

등등등.

뜻은 같다.

모두 한 작품의 마지막을 뜻하니까.

시즌2의 마지막은 사실상 한 배우의 독주다. 그리고 그 배우는, 바로 지영이었다.

극 중, 재는 고심한다.

전황이 매우 좋지 않아서였다. 샨강을 넘어온 제국군을 평야와 숲, 산맥에서 패퇴시키고 있긴 했지만, 아주 소규모 전투에서 승리를 이룬 거라, 전황 자체에 큰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니었다. 소규모 국지전에서 승리를 거둬봐야, 그 정도뿐이었다.

척후로 보낸 이족의 발 빠른 전사들은 샨강 너머에 다시 제국군이 몰려오고 있음을 밝히면서 전황은 더욱 안 좋아졌다.

그러니 이걸 뒤집을 수 있는 역전의 묘수가 필요했다.

그러던 차에, 한 가지 소식이 이족의 땅으로 스며들었다.

승상 후가 전장으로 향한다!

그는 직접 군을 이끌어! 이족 땅을 점령할 계획이다!

이어 이족의 땅을 정벌하고, 스스로 황제의 위에 오를 것이다!

이런 소식이었다.

이 소식에 이족군의 수뇌부는 즉각 반응한다.

독주는 이때부터였다.

* * *

“이건 기회입니다! 지금 당장 별동대를 꾸려서 놈의 목을 땁시다!”

한 이족 전사의 말에 다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의 승상 후는 이 모든 일의 원흉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 뛰어난 능력을 그냥 평범하게 썼으면 제국의 태평성대가 이어졌을 건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반란을 일으켜 선황과 황자들을 모조리 죽였다.

그리고 이제는 유일하게 남은 핏줄인 연을 죽이려 했다. 그 과정에서 이족과 부딪쳤고, 전쟁이 벌어졌다. 그러니 승상이 원인이고, 원흉이었다.

“승상을 제거하면, 저쪽은 구심점이 없으니 분명 자중지란을 일으키다 와해가 될 겁니다. 연. 이건 기회가 맞습니다.”

“맞소! 승상 후가 전장에 도착하기 전인 지금이 기회요!”

연은 이족의 얘기에 고심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당연히 이해했다. 하지만 이해했다고 해서, 그게 손바닥 뒤집기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 누가 갈 건가요. 합무치. 당신이 갈 건가요?”

“어, 그건…… 그래! 내가 가겠소!”

시선이 달려들자 밀리기 싫었는지, 아니면 어차피 안 보낼 거라는 걸 알고 있는 건지 합무치는 호기롭게 그리 외쳤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제 60줄이 넘은 합무치가 별동대를 맡을 일은 없을 거라는 걸. 그는 뛰어난 전사고 지휘관이지만 별동대를 이끌어 승상 후의 목을 딸 정도는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합무치에게서 시선을 뗀 연이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아요.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게 있어요. 승상을 얕보지 마세요. 승상 후는 제국 역사상 손에 꼽히는 천재입니다. 그가 이곳에 온다는 건, 이미 우리가 별동대를 꾸려 공격할 수도 있다는 것쯤엔 가정에 넣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에 합당한 준비도 마쳤을 가능성이 큽니다. 아니, 반드시 그랬을 겁니다. 승상 후는, 그런 인간이니까요.”

연의 차분한 말에 다들 큼, 하면서 헛기침을 했다. 연은 이들을 이 이상 책망하지 않았다. 정보가 없어서 그렇다. 후의 명성은 이미 제국 내에서는 매우 유명하다. 후는 거의 뭐 전설 속에서나 나올 법한 능력을 갖춘 인물로 묘사되는데, 그게 좀 과장되긴 했어도 정말 다방면으로 뛰어난 것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이런 천재는 몸이 안 좋다고도 하는데, 심지어 몸도 튼튼하다.

한마디로, 괴물이다.

그러나 그런 후의 명성은 샨강을 넘지 않았다. 애초에 제국과 교류하지 않고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살던 이족들이었다. 그래서 승상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이런 정보가 없으니까 아직 이들은 승상 후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를 잘 몰랐다.

그리고 승상 후가 이끄는 군대도, 승상 후를 지키는 호위군도,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 이들은 아직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연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재에게 향했다.

연이 아는 한, 승상에게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은 재였다. 자신에게는 없는, 어떤 미증유의 존재가 지켜주는 것처럼 느껴지는 재가 아니면, 후라는 거대한 ‘악’에 대항하는 건 불가능했다. 적어도 연의 생각은 그랬다. 그래서 반사적으로 바라봤고, 그런 연을 따라 다른 이족의 인물들도 자연스럽게 재를 바라봤다.

재는 그 시선을 차분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입가에 피어나는 조소.

“이번 묏자리는, 후의 앞인가 봅니다.”

“아니, 나는…….”

당황했다.

연은 순간적으로 후를 상대할 만한 사람은 자신이 아는 한 재밖에 없기에 반사적으로 돌아본 거였다. 결코 어떤 의도가 있어서 본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끝장난 관계에서는, 단순한 시선도 이 같은 결과를 낳았다.

그냥 본 거다.

그러나 재는 자신에게 그곳으로 가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자신이 무슨 말을 다시 하기 전에 일어나 막사를 빠져나가 버렸다. 연은 그런 재를 잡으려다가 손을 뻗었지만, 입술을 질끈 깨물고 손을 내렸다.

화가 나고. 억울했다.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냥 바라본 거다. 거대한 악 ‘후’를 상대할 사람은 재밖에 없어서. 그런데 그 시선을 곡해한 건 재였다. 그게 화가 났다. 그래서 오해를 풀려고 잡으려다가, 그러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좀 전에 손을 뻗었을 때가, 그를 나의 무사로 둘 수 있는 마지막이었음을.

* * *

정말 갈 거야?

연인 선고의 물음에 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야지.”

“이번엔 정말 위험하다며.”

“응. 위험해. 승상도 승상이지만, 제국제일검은 정말 만만치 않거든.”

“하긴, 그 사람 무섭더라. 나 저번에 꼬리 잡혀서 정말 죽을 뻔했잖아? 어휴!”

“위험할 거야, 이번 임무는.”

“진짜?”

“응. 나도 장담하기 힘들거든.”

후도 후지만, 제국제일검 진의 무위는 솔직히 예사롭지 않았다. 예전과 비교하면 훨씬 더 성장한 강력한 무위를 내보일 게 분명했다. 전쟁이 벌어지며 그간 거친 실전으로 자신도 확실히 강해졌지만, 짧게 마주쳤던 제국제일검의 기세는 여전히 강력했다.

그러나 재는 알고 있었다.

진이 대단하고, 후가 두려워도, 가긴 가야 했다. 이유는 현재 전황이 너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전선이라는 것 자체를 만들지도 못했다. 산발적으로 교전을 펼쳐 승리를 거두고 있긴 하지만 그래 봐야 백, 이백 정도 죽이는 선에서 끝이었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이런 피해도 끝없이 누적시키면 되겠지만, 지금은 후가 내려오는 상황이었다.

병법에도 조예가 깊은 후가 전선에 합류하게 되면, 병력에서도 밀리는 이족은 정말 희망 자체가 사라지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였다.

재는 후를 ‘죽여야’ 한다는 것을 아까 막사 안에서 깨달았다.

이대로는 말라 죽을 뿐이었다.

그래서 승상이 전선으로 오고 있다는 소식에 재도 곧장 ‘암살’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임무에 가장 적합한 사람은 자신이었다. 그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모집은 어떻게 할까?”

선고의 질문에 재는 잠시 생각하다가.

“부양할 가족이 없는 전사, 사랑하는 연인이 없는 전사, 생에 미련이 없는 전사. 혹은, 부족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내던질 수 있는 전사.”

“……무조건 죽는다는 거구나?”

“아마도.”

호위군이다.

백적파를 상대하기 위해 키워진.

무려 제국제일검이 직접, 손수 훈련시킨 집단이다. 이런 방어 집단의 특성은 이족과 백적파 같은 변칙적인 집단에게 상성이 지독할 정도로 좋다는 점이었다. 그걸 백적파보다도 떨어지는 이족 전사들을 데리고 쳐야 한다.

그런 만큼 아마.

‘살아 돌아올 수 없겠지.’

그리고 그건 자신에게도 적용되는 얘기였다. 하지만 재는 무섭거나 두렵거나 하진 않았다. 예전부터 그랬다. 죽음에는 언제나 무뎠다. 그래서 목숨을 도외시한 작전에 나갔다가 돌아올 때면 양부가 그렇게 한숨을 내쉬었다.

제발 너의 목숨을 소중히 하라고, 그렇게 주의를 주기도 하고 당부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고쳐지지 않았다.

정말 두렵지 않았기 때문에, 경계하고 주의하고 자시고 할 게 없었다. 혹자는 그걸, 칼등에 올라탄 자들의 숙명이라고들 했다.

죽음을 겁내는 자는 칼을 쥐어봐야 단명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사선에 선 자는, 죽음을 도외시하는 각오가 언제나 서야, 역설적으로 생존 확률이 조금은 올라간다고 했다.

재가 딱 그랬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죽을 자리라는 느낌이 팍팍 왔지만, 두렵거나 무섭지 않았다.

“언제까지 모이라고 할까?”

“내일 새벽. 개인 장구와 열흘 치의 건량만 챙겨 오라고 해.”

“알았어.”

선고는 고개를 끄덕이고, 전사를 모으러 떠났다. 재는 바위에 걸터앉아, 저 산 아래를 바라봤다. 벌거벗은 나무들 천지라 풍광이 썩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운치가 있었다.

삭막한 맛.

그게 본인이 살아온 인생과는 달라 공감하기 힘들다고 해도, 그런 맛이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떠난 전우들이 떠올랐다. 시궁창 골목에서 구해진 자신과는 다르게, 시궁창에서 살아남은 친구들이었다.

그 시궁창은 도둑굴, 매음굴, 아편굴 등등 다양하지만, 똑같이 시궁창이었다.

그도 아니면 태어나서 버려졌거나, 부모가 지주에게 팔았는데, 지주의 폭력에 견디다 못해 도망쳤거나, 이래저래 밑바닥 인생들이었다.

거기서 그들을 건져낸 게 재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참 영악했어.’

재가 그 친우들을 건져낼 수 있었던 건, 당연히 양부에게 거둬지고 난 뒤였다. 여력이 되었고, 그래서 건져내고 싶다고 하자 양부는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먼저 물었다. 왜 거두고 싶냐고. 단순히 불쌍해서냐고.

재는 아니라고 대답했었다.

잘은 모르지만, 그냥 구해주고 싶은데, 불쌍해서는 아니라고.

양부는 다시 물었다.

불쌍해서가 아니라면, 무엇 때문이냐고.

‘같이 놀고 싶어서.’

재가 잠시 고민하다 던진 대답이었다.

양부는 그 말에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리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재가 친우를 ‘사귀’는 걸 허락했다. 친구라고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신이 우위에 섰다. 이 자체가 영악했다.

그렇게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해, 수십으로 불었다.

그렇게 모인 친구들과 골목을 쓸고 다녔고, 본격적으로 무예를 익혔다. 그 과정에서 사고도 많이 쳤다. 실제로 크게 다치거나, 죽은 친우도 있었다. 그럴 땐 또 처절하게 복수해주고, 그랬다.

‘관영, 너는 조만간 두고 보자.’

세 번째였나, 네 번째였나?

관영은 하천가에서 만났다. 조잡한 움막에서 여동생과 함께 지주의 마수를 피해 도망쳐 살고 있던 관영과 재는 만나자마자, 치고받았다. 재의 친구가 움막을 발로 차서 무너뜨렸고, 뒤늦게 온 관영이 친구의 턱을 날렸기 때문이었다. 친구는 한 방에 뻗었다. 그리고 재와 붙었다. 당시 나이가 11살이었나? 그랬지만 워낙에 강골이고, 제대로 먹지 못했음에도 발달한 성장 때문에 둘은 코가 주저앉고 이빨이 뽑혀 날아갈 정도로 치받았다.

그리고 둘은 서로 가장 믿을 수 있는 친우이자, 동료가 됐다.

그런 관영인데, 자신을 배신했다. 아, 적의 편에 붙었다는 게 아니라 자신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자기 몰래 건 걸 말했다.

작전에 나갔을 때는 적어도 재가 대장이다. 그래서 통제와 명령에 따라야 하는데 관영은 그걸 어겼다.

그래서 다시 만나게 되면,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승부를 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추억하기를 한참. 새벽이 왔다. 아직 졌던 해는 다시 떠오르지 않았으나 주변으로 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재는 챙겨놨던 칼과 등짐을 챙겨 막사 밖으로 나왔다. 횃불도 없다. 하지만 재는 자신을 중심으로 빼곡하게 둘러싼 이족의 전사들을 이미 충분히 확인했다.

“많이도 모였네.”

“……부족을 위해 목숨을 거는 건 카샨이 가장 좋아하는 가치일걸?”

가장 정면에 선 선고의 말에 재는 그럴 리가. 죽음은 그냥 죽음이야.

‘이런 전투에 목숨을 잃는 건 개죽음일 수도 있고.’

란 생각을 떠올렸으나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다.

대충, 삼백이 조금 안 되는 인원이다. 호위군이 그 정도니, 잘 도발하면 호위군 정도와는 붙을 수 있을 것이다. 재는 따로 분별하지 않았다. 그럴 시간도 없었다.

해가 뜨기 전에.

족쇄를 벗어던지는 마지막 ‘여정’에 오르고 싶었다.

그 여정의 끝에 부디, 안식이 있기를 기도하면서.

삼백의 결사대가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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