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68화
268화. 나의 무사님S2(15)
시청률 40%.
당연히 전례가 없던 건 아니다. 공중파가 없던 시절, 잘나가는 드라마는 기본 30% 이상을 찍었다. 90년대였나, 나 지금 떨고 있니? 이 대사로 유명한 한국 드라마 판에 다시는 없을 레전드로 추앙받는 모래시계라는 작품은 평균 시청률이 무려 46%였고, 최종화 시청률은 60%가 넘었었다.
그런데 그땐 90년대였다.
종편 방송사는 당연히 없었고. 인터넷 또한 지금과 비교하면 아예 구석기 수준의 기술력일 때라 매체라고는 당연히 TV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그런 무지막지한 시청률이 가능했다. 20년대 들어서, 10년도 이후부터는 시청률 20%만 넘어도 대박이란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20년대에 들어서는 그보다 더욱 떨어졌다.
SNS나 동영상 플랫폼 때문에 시청률이 더욱 떨어졌다. 그래서 초대박, 진짜 레전드로 남을 작품이나 30%를 넘기는 게 가능할 거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그랬는데…….
나왔다.
무려 40%.
총 4화를 남겨둔 시점에서 지영의 열애설이 터진 금요일 저녁에 40%를 찍었고, 다음날 토요일 방송은 무려 42%를 기록했다.
“와…… 이게 되네?”
태블릿으로 기사를 확인하던 이연은, 솔직히 현실감이 없는 얼굴이었다. 시청률 거품이 빠져나가고 나의 무사님 시즌2는 30%를 조금 넘는 정도를 기록하고 있었다. 사실 그렇게 되면서 거의 모든 배우가 안도했다.
과도한 압박에서 풀려나, 제대로 자신의 연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그걸 열애설 하나가 그대로 엎어버렸다. 지영의 모습은 정말 왕자님의 정석이었다. 비록 백마는 타지 않았지만, 새까만 밴을 타고 왔지만, 그래도 지영은 자기 연인을 진짜 구하러 왔다.
보통 그런 경우 부담스러워서 피하거나 침묵하거나 하는 게 상책인데, 지영은 직접 서울까지 올라가서 연인을 데리고 당당히 그곳에서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 모습은 열애설 자체를 공격 포인트로 잡은 기자들 덕분에 전 세계로 송출됐다.
“지영아, 너 너무 섹시하다는데?”
이연도 이걸 직접 생중계로 본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날, 지영에게 엄지 척 이모티콘을 보내기도 했었다.
“자꾸 놀릴래요?”
“아 왜? 이 정도는 예상했잖아? 호호.”
“…….”
뭐, 예상하긴 했다.
임은진과 회사 직원들은 열애설이 터지는 순간, 지영이 서울로 출발한 순간부터 회의를 시작했고, 지영이 직접 움직이는 게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을 거라는 판단을 내렸다. 애초에 연예인이지만, 기존의 또래 연예인들과는 결 자체가 달랐다.
그래서 오히려 지영에게 도움이 될 거로 예상했다. 그리고 그건 정답이었다.
기자들은 이걸로 지영을 압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왜? 압박당하는 게 정상이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상대는 일반인에, 심지어 보육원 출신이기까지 했다. 그러니 그쪽은 제대로 반응할 가능성이 없었다.
그래서 지영을 압박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직접 오더니 데리고 가면서 오히려 폭발적인 호응을 받았다.
현실판 프린스부터 시작해 온갖 칭찬이 그에게 쏟아졌다. 그리고 마치 선물처럼, 지영이 출연하는 드라마를 챙겨봤다. 금요일 저녁, 주말은 주력 드라마의 방영일이긴 하다. 하지만 주말이니까 다들 스케줄이 많아, 시청률이 평일보다 안 나올 수도 있다는 그런데도 거의 5% 가까이 올랐다. 별로 안 오른 거 아니냐고? 아니다.
5%에서 10%가 된 것과 35에서 40이 된 건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이걸 인간이 느끼는 체감으로 설명하자면. 다이어트를 마음먹고 처음 1, 2㎏를 빼는 것과 이미 10㎏ 정도 뺀 상태에서 다시 1, 2㎏를 빼는 것의 차이라 할 수 있겠다.
그만큼 어느 정도 꽉 찬 시청률을 올리는 건 지난 하다는 얘기였다.
“지영아. 이거 봐. 다른 드라마들 시청률 그렇게 빠지지도 않았대.”
“아 진짜요?”
“어. 다른 시청률 진짜 거의 안 빠졌어. 그러면 그게 그쪽 드라마 주연들 팬층이라는 거거든? 그런데 이쪽에 이만큼 올랐다는 건.”
“드라마를 원래 안 보던 사람들이 봐줬다는 거네요.”
“응, 맞아. 마치 보답이나 선물 같은 거지.”
“음…….”
좋은 일이었다.
자기 행동을 좋게 본 분들이 드라마에 관심 가져주시는 거니까, 그건 전혀 고깝게 볼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지영은 이게 크게 부담스럽지도 않았다. 하지만 포인트는 그게 아니었다.
“대단하다는 거야. 너의 행동이 드라마를 안 보던 사람들도 끌어들인 거니까.”
“그래요?”
“……그래. 아, 내가 너한테 뭔 말을 하겠니. 신 찍는 것 빼고는 관심도 없는 앤데.”
“하하.”
뭐 솔직히 진짜 그런 마음이긴 하다.
시청률? 드라마에서 시청률만큼 중요한 건 사실 찾을 수 없었다. 아무리 명작 소리 들어도, 시청률이 개판이면 그건 반쪽짜리 성공이었다. 아니, 성공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순수하게 작품이 재미있는가, 재미없는가를 가르는 게 바로 시청률이기 때문이었다. 영화로 따지면 관객 수랑 비슷했다.
자기들끼리만 모여서 아 좋다. 이건 숨은 명작이다. 다들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이걸 본 내가 자랑스럽다. 이렇게 자기합리화해 봐야, 그건 결국 자기합리화일 뿐이었다. 진짜 중요한 건 관객 수고, 시청률이었다.
지영도 그걸 알지만, 시청률이 잘 나오자 어느 순간 그것 자체를 그냥 잊었다.
그저, 자신이 해야 하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 지영은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은 그것밖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참 신기해.”
“또 뭐가요?”
“어떻게 그렇게 덤덤해?”
턱을 괴고 지영을 보던 이연의 말에, 지영은 대본을 결국 내려놨다. 그리곤 몸을 돌렸다. 이연의 말은 이미 주변에서 같이 쉬던 배우들의 시선을 슬그머니 전부 당겨놓았다. 보통은 독립된 공간을 주지만, 오늘 현장이 너무 협소해 대형천막을 대기실로 그냥 다 같이 쓰는 중이었다. 그래서 이연의 질문에, 모두 궁금증 가득한 눈길로 지영을 봤다.
같은 배우들에게도 지영은 진짜 이해하기 힘든 동물이었다.
조금 정도는 흔들릴 법도 한데, 인기에 취할 법도 한데, 그런 기색이 전혀 없이 중심을 유지하는 지영이 그들은 정말로 신기했다.
어떤, 초탈한 느낌마저 드는데 지영의 나이를 생각하면 당연히 불가능한 거라, 더더욱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래서 다들 이연의 질문에 각자 하던 일을 하는 척하면서도, 다들 귀를 기울였다.
지영은 그걸 알면서도, 그녀의 눈빛을 보니 대답을 해줘야겠다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전에 잠깐 생각을 정리했다. 자신은 어떻게, 자신을 둘러싼 이 모든 현상에 초월하게 반응할 수 있을까?
‘누나나, 다른 사람들이 궁금한 건 아마도 인기에 관한 거겠지.’
다들 궁금한 건 그 부분인데, 사실 이 부분은 좀 난감한 부분이었다. 지영은 회귀자였다. 시간을 거슬러서, 과거로 돌아온 인간이었다. 거기에 과거에는 끔찍한 일을 겪었다. 그래서 시간을 거스름과 동시에, 지영에게는 어떤 목적이 생겼다.
그 목적을 중점에 두고 행동하다 보니까 다른 부분에 관해서는 좀 초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게 바로 인기였다.
지영은 자신이 지금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 요즘은 정말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회사로 들어오는 선물과 요즘 쏟아지는 기사 같은 걸 보면 정말 대세 중의 대세였다. 그런데도 지영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게 사실은 본인도 신기하긴 했다.
‘거품이니 뭐니 생각한다고 말해도 이해하진 못할 거고.’
그럴 법한, 근거가 있는 이유를 말해줘야 다들 이해할 것 같았다. 말도 안 하고 그냥 넘어가자니, 그건 또 불가능해 보였다. 같은 작품에서 호흡하는 배우들이다. 앞으로 안 볼 사이들도 아니고, 괜히 비싸게 굴어봐야 좋을 것도 없었다. 임은진도 돈 빌려달라거나, 다음에 작품같이 하자거나 하는 말들 아니면 그냥 스무스하게 넘어가는 게 좋다고 했었다.
“의식은 되는데, 의식 안 하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중? 뭐 그런 상태예요.”
그래서 내놓은 답이었다.
이런 과도한 인기와 관심이 왜 의식이 안 되겠나. 된다. 당연히.
“어? 의식하고 있어?”
이연의 물음에 지영은 쓴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되죠. 당연히. 저도 사람인데.”
“근데? 너 이제 스물인데, 그걸 의식하면서도 어떻게 지금처럼 해? 나도 이 바닥에 이제 10년 좀 넘게 있었지만, 진짜 너 같은 케이스는 본 적이 없거든. 어떻게 그걸 노력으로 이겨내? 주변에서 누가 잡아줘?”
잡아주는 사람? 있긴 있다.
황석이 있고, 강한결이 있다, 그리고 임효중도 있고.
‘성진이는 잡아줘야 하는 친구고.’
신기했다.
강한결은 그냥 뭐 이름처럼 그저 한결같이 완벽한 친구라 이제는 뭐 그러려니 하는데, 임효중이나 황석도 인기와 관심에 크게 흔들리는 타입이 아니었다. 임효중은 이미 프로젝트 그룹이 끝났고, 그래서 팬들이 가장 아쉬워하고 있었다. 고작 반년에 가까운 활동이었는데, 그걸로 얻은 인지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특히 동남아와 중국, 일본에서의 인기는 지영은 게임도 안될 정도였다.
그런 임효중도 지영과 별반 다를 게 없이 행동했다. 그렇게 인기가 많은데도, 그 인기를 누리기보다는 한발 물러나 소 닭 보듯 하고 있었다. 황석도 그랬다.
‘애초에 걘 우리가 좀 떠밀어서 한 케이스기도 하고.’
황석의 관심은 연예계에 있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먼저 제의가 들어온 건 황석이었다. 그래서 그걸 기회로 여긴 지영이 황석을 등 떠밀어 연예계로 먼저 내밀었다. 그래서 시작한 연기자 생활이라 그런지, 황석은 수동적으로 작품에 임했다.
개봉 직전인 배터런을 찍었을 때도 그랬고, 지금 준비하는 드라마도 그랬다.
반대로 이성진은 인기와 관심에 흔들렸다. 애초에…… 그럴 수밖에 없는 친구라, 이성진만큼은 예외였다. 지영이 이런 친구들이 자신을 잡아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친구가 길 가다가 담배꽁초를 주우면, 자기도 모르게 옆에 떨어진 빈 커피 캔을 줍는. 모두가 그러는 건 아니지만, 지영은 자기의 마음이 딱 그렇다고 생각했다.
지영은 이걸 가볍게 설명했다.
친구들의 성격도 그렇고, CF도 비슷한 이유로 거절 중이라는 걸.
그러자 다들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강지영만큼이나 유명한 친구들이고, 그들 전체가 지영과 같은 행보를 하고 있다는 건 당연히 다들 알고 있었다.
“연쇄작용 뭐 그런 거야? 그런데 그게 돼?”
“네, 저흰 되던데요? 뭐 저희가 딱히 크게 올바르게 살자! 이런 마음인 건 아니에요. 어떻게 하다 보니까 이런 포지션을 얻게 됐고, 그게 나쁘지 않고, 성향에도 맞아서 그냥 유지 중인 거예요. CF 건도 비슷해요. 어려서 그런지, 저희는 돈 욕심이 없거든요.”
돈 욕심이 정말 없기는 했다.
그런데 실제로 돈이 없는 건 아니었다. 지영은 부자였다. 그것도 상당한. 돈이 있기에, 돈 욕심이 없는 거였다. 만약 처음처럼 집에 빚이 있고 그랬다면 근 100억에 가까운 CF를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건 욕심이 아니라 만용이고, 어리석어도 한참 어리석은 짓이었다.
“……뭐 그건 그럴 수 있다 치고. 근데 그래도 이해는 안 간단 말이지. 아니, 부처님도 아닐 거고 대체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는 거지? 데뷔 20년 차 되는 선배님이면 이해하겠는데, 이제 고작 2년 찬데. 아, 3년 차구나. 어쨌든, 그래도 이해 불가야 참.”
“누나, 이해 안 가는 걸 억지로 이해하는 건, 심력 낭비예요. 그냥 저 같은 놈도 있구나. 실제로는 이렇게 생각하는 게 제일 속 편해요. 그건 누나도 알잖아요?”
“알지. 아는데, 아니까 그러는 거야. 그렇게 넘어갈 순 있는데, 그래도 궁금하니까.”
별게 다 궁금하단 말은 차마 못 한 지영이었다. 지영은 회귀자인데도, 가끔 강한결이 참 신기하고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이연과의 짧은 대화로 그래도 다들 어느 정도 궁금증은 풀린 모양이었다.
지영은 이런 동료들이 그래도 고마웠다.
주말 내내 시끄러웠고, 월요일인 오늘도 시끄러운 열애설에 관해서는 다들 한마디도 묻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걸 꺼내더라도 그냥 오, 하고 말 뿐이었다. 지영은 그게 솔직히 정말 고마웠다.
배려를 아는 사람들.
인간관계의 기본이지만, 지키기 정말 힘든 기본을 어렵더라도, 힘들더라도 지켜주는 사람이라서 지영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지영이 할 수 있는 건 정해져 있었다.
연기.
진심을 담은 연기로, 대망의 피날레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것만 남았다.
그리고 그 피날레는, 오늘부터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