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50화
250화. 선고(1)
돌풍.
아니.
폭풍이었다.
전 세계에, 강지영이란 이름의 폭풍이 몰아쳤다. 강지영이란 인간을 이용한 라피앙 파벨로의 죽음. 그리고 그런 라피앙의 죽음에 얽히고설킨 진실을 양심 고백한 파벨로 부인. 이 모습은 당시 현장에 있던 방송국을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그리고 더욱 큰 논란이 됐다.
다만, 이번에는 좋은 쪽이었다.
-와 씨. 저게 진짜면…….
-뭔 진짜면이야. 파벨로 부인이 무릎까지 꿇고 양심 고백했는데 아직도 그딴 소리 하고 싶냐? 상식적으로 저걸 얘기하면 남편 이름이 바닥에 처박히는데, 저게 구라 같냐?
-그러니까, 아직도 이런 새끼들이 있네?
-심지어 남편 장례식에서 말한 거임. 게다가 카메라가 저렇게 많은 상태에서. 상식적으로 이걸 안 믿는 건, 진짜 어디서 돈 받은 건 아닌지 조사해야 한다고 본다.
-그건 그렇고…… 강지영 쟤는 진짜 불쌍하다. 표정 보이냐?
-한마디도 안 했는데, 진짜 표정 변화가 엄청나네……. 어떤 감정이지 보인다, 그냥.
-끝까지 추모해주지 않은 것도 대박인 듯요……. 와, 그래도 저기까지 갔으니 추모는 해줄 줄 알았는데.
-입술 깨물면서 고민하는 게 와……. 진짜 다시 봐도 대박이네.
-불쌍하다, 진짜. 얘가 뭔 잘못을 했다고 다들 이렇게 괴롭히는 건지…….
-너무 잘나서 그런 거죠.
-뭐?
-아니, 너무 잘나서 그런 거라고요. 생각해 보세요. 저 나이에, 재처럼 사는 애가 누가 있어요? 단순히 운동 잘하는 거 말고, 드라마 몇 편 찍은 거 말고요. 그냥 행보 자체가 엄청나잖아요.
강지영이 이룩한 것.
누가 그걸 나열하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대단했다.
단순히 대회 1등 이런 것 말고.
그냥 그가 살아가면서, 황금세대와 함께 이룩한 것들은 저 나이 때 아이들이 결코 이루기 힘든 업적이었다.
그래, 업적.
특히 큰 자산을 출자해 아직도 집안이 힘든 꿈나무들을 후원하는 건 진짜 대박이었다. 연희 스포츠. 연희 스포츠는 엄청나게 많은 꿈나무를 후원하고 있었다. 지금도 꾸준히 늘고 있었는데, 돈을 남길 목적이 없다는 걸 홈페이지에 이미 명시해놨다. 때가 되면, 딱 마지막으로 후원할 아이들을 받은 뒤 그만 운영하겠다는 의사를 대놓고 밝혔다. 실질적인 운영은 강한결의 어머니가 하지만, 지금은 그쪽 일에 관한 공부도 착실히 하고, 강한결이 그걸 이어받을 의사가 있다는 것쯤은 이미 넷에 파다하게 퍼진 얘기였다.
뭐 그런 것들.
왕따를 없애고, 학교를 클린하게 만든 이야기들. 이런 것들은 단순한 무용담이 아니라, 하나의 업적이 됐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독특한 행보를 걷다가, 대유행의 중심에 선 강지영이었다. 그런데 그는 끝까지 중심을 잃지 않았다. 자신을 이용하려는 테러를 받았을 때는 끝내 마음을 꺾고 작품을 고르려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그것까지 예상하고, 라피앙은 강지영이 작품을 선택하기 전 먼저 세상을 떠났다.
온갖 비난이 그에게 향했다.
비난을 넘어선 욕설, 치욕, 모욕, 인간이 입에 담아서는 안 될 말들이 그에게 날아갔다. 그의 가족을 향해서도 날아갔고, 그의 친구, 주변 지인에게도 날아갔다. 그러나 밝혀진 것은 끝내 강지영은 옳은 선택을 했다는 점이었다.
그러다 쓰러졌고.
화가 난 건지, 아니면 따지러 간 건지, 분노를 풀러 간 건지 알 수 없지만 라피앙 파벨로가 묘지에 안장되기 전 그곳에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이어진 파벨로 부인의 양심 고백은, 모든 걸 뒤집었다.
절로 숙연해졌다.
끝끝내 상처만 받은 강지영을 바라보는 시선엔, 연민이 가득했다.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은 이 어린 친구에게, 괜찮아, 라고 응원해 주고 싶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사실 별로 되지 않았다.
강지영을 욕하지 않은 사람은 찾기 힘들 지경이었고, 욕하지 않았어도 그 비난 폭풍에서 입을 닫고 침묵했으니, 스스로가 떳떳하다 할 수 없었다. 애초에 문제 자체가 그랬다. 쉽게 나는 아니다! 나는 떳떳하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미묘하게 걸쳐 있는 양심이 그걸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만큼, 강지영에 관한 이슈는 여기서 종결되었고, 또다시 커져만 갔다. 몹쓸 일을 당했다. 그에 관한 연민이, 동정이, 강지영이란 한 인간의 이름값을 어마어마하게 올리기 시작했다.
대유행?
그건 애교였다.
커져도, 너무 커져 버린 이름.
강지영이란 이름은 이제는 잡으면 대박이 되는 이름이 됐다. 애초에 대유행의 중심에 선 게, 지영이 루이비통의 CF를 까버리면서 시작된 거였다. 그러니 그가 CF를 끝끝내 거절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를 잡으면 대박이 된다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아니, 애초에 그런 인식은 이전에도 존재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라피앙 파벨로의 장례식에서 보여준 강지영의 행동은, 그걸 알면서도 그를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만들었다.
가식이 없는, 한 인간의 슬픔과 억울함, 억울함으로 인한 분노가 고스란히 담겼던 모습.
그걸 지켜본 한 저명한 인문학자가 한 말이었다.
가식적이지 않았다.
그는 끝까지 자기 정신을 지켰다. 특히 그중 백미는 지영이 꽃을 들어 그의 관에 다가갔을 때였다. 꽃을 던지면 끝끝내 그를 용서한다는 의미가 된다. 당신이 나에게 모진 짓을 저질렀지만, 그래도 당신의 죽음은 추모하겠다. 하는 모양이 되니 이는 용서로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는 꽃을 끝끝내 던지지 않았다.
이는, 용서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주변의 카메라가 그렇게 많았는데도, 끝끝내 던지지 않고 돌아선 강지영의 모습은 많은 이들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이름은 가히 성층권을 뚫은 로켓처럼 쏘아져 올라갔다.
끝끝내 꺾이지 않은, 소신.
그 소신을 지키는 모습에 미친 듯이 날아들었다.
연희 스포츠, 비즈 엔터로 CF며 뭐며, 정말이지 미친 듯이 날아들었다.
이전과는 몸값 자체가 달랐다.
국내 탑 배우의 몸값을 아득히 상회하는, 지구 상에서 가장 비싼 몸값들이 모여 있다는 할리우드에서도 탑 레벨의 몸값이 그에게 제시됐다.
하지만 그래도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그 어떤 제의에도 그는 생각해보겠단 말조차 하지 않았다. 전부 냉정하게 거절한다는 코멘트가 달려, 되돌아갔다. 그렇기에 더욱, 애가 달았다. 이전에는 관망하던 이들이, 전부 달라붙었다.
그 와중에.
-가뜩이나 광고 다 까는데 뭐 정부 공식 광고? 미쳤냐, 이 새끼들?
-공익광고도 아닌 ㅋㅋ 진짜 노양심이다
-이런 나사 빠진 기획을 올린 새끼들 월급을 내 세금으로 준다고 생각하니 너무 아깝네 ㅠㅠ
-누가 아니래요 ㅠㅠ
정부에서 강지영을 푸른 집을 바탕으로 한 광고에 넣으려고 시도를 했다가 까이고, 그걸 슬그머니 언론에 흘렸다가 영혼이 가루가 되도록 후드려 까였다. 진짜 영혼까지 까였다.
일종의 성역.
성역을 유지하는 지영을 정부라는 이름으로 이용해 처먹으려고 한 죄였다. 그리고 비슷하게 유도협회에 이름을 걸려던 이들도 전부 까였다. 공식적으로 강지영이란 선수, 혹은 배우를 걸어놓을 수 있는 곳은 연희 재단, 연희 스포츠, 그리고 비즈 엔터가 전부였다.
그랬기에 희소해졌다.
희소해졌고, 그 가치가 어마어마해져서 기업들은 몸이 달았다.
매일같이 비즈 엔터와 연희 스포츠로 업계 관계자들이 찾아갔고, 나름 이름 좀 있는 예술가들은 강지영을 기본으로 삼아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인물화도 있었고, 옷도 있었고, 시계나 쥬얼리, 가방, 그리고 이전처럼 도복도 있었다.
폭풍이 광풍이 되었고, 그 광풍의 가장 큰 수혜를 입은 건 역시…… 나의 무사님 스핀오프, 선고였다.
총 12부작인데, 벌써 티저 공개 영상만으로도 난리가 났다.
나의 무사님은 아시아권 작품이었다.
전쟁이라는 키워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먹히지만, 전쟁의 흐름 자체가 달랐다. 동양의 전쟁과 서양의 전쟁은 일단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차이점은 쉽게 메워지지 않았다. 좀비라도 등장시키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래서 실제로 흥행도 아시아권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번엔, 세계적으로 관심이 보였다.
뜬금없이 지영이 주인공으로 출연했던 나의 무사님이 웹플릭스에서 터지기 시작했다. 70개국 1위. 오징어로 대변되는 역대급 시리즈보단 덜했지만, 인물 하나가 일으킨 파도치고는 굉장히 강렬했다.
그리고 당연히 나의 무사님 이전 작품인 예인도 뜨기 시작했고, 이제는 한창 촬영 중인 선고에 이목이 몰렸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거라고, 총 10분짜리 지영의 티저는 공개되자마자 천만을 순식간에 뚫어버렸다.
그러나 여름도 아닌데 폭풍을 넘어선 광풍을 몰고 온 지영의 하루는, 여전히 같았다. 지영은 프랑스에 갔다 온 이후, 대학교는 휴학계를 냈다. 어쩔 수 없었다. 학교에 무시무시하게 찾아오는 기자들과 지영의 팬들 때문에 학우들이 피해를 받는 지경이 되자, 지영은 어쩔 수 없이 휴학계를 냈다.
물론 이는 지영 혼자만의 결정이었다.
실제로 다른 친구들은 휴학계를 내지 않고, 그대로 학업에 충실했다.
이미 많이 변했지만, 지영은 그 안에서 여전히 변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다. 참, 지영다운 모습이었다. 라고 친구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 * *
깡! 까앙!
“그렇지! 뒤로 백 스텝! 다음 막고! 버텨! 어어! 안 돼! 시선 틀지 말고 감에 의지한다는 모습으로!”
지영은 오늘도 연습이 한창이었다.
학교에 휴학계를 냈기 때문에 훈련 시간은 확실히 더 나왔다. 일주일에 도복 입는 시간 3일을 제외하면, 지영은 무조건 액션 스쿨에 나오고 있었다. 이제 지영의 촬영 날이 다가오고 있어서, 막바지인 지금이 아주 중요했다.
깡! 까앙! 깡!
진검은 아니지만 실제로 쇠로 만들어진 소품이었다. 제대로 맞으면 뼈가 움푹 파일 수도 있는, 아주 위험한 소품이었다. 그런데도 굳이 이런 걸로 하는 이유는, 정신을 벼리기 위해서였다. 변수가 많은 실제 촬영에서는 이런 소품은 절대 쓰지 않는다.
괜히 이런 소품 잘못 쓰다 배우가 다치면, 드라마만 욕먹는 정도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때 쓰는 소품도 위험하긴 매한가지였다.
어느 정도 무게감이 있어서 아무리 플라스틱이라도 제대로 맞으면 아플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 봐라. 플라스틱 텀블러로 머리를 확 내려찍으면 아플까 안 아플까? 여자가 쥐고 때려도 아프다.
그러니 그때 쓰는 것도 위험하다.
그래서 막바지인 지금, 날만 안 세운 진짜 쇠로 만든 소품으로 실전에 버금가는 훈련 중이었다.
뜨거운 여름. 이 아닌데도 뜨거운 여름같이 더운 5월 중순.
지영은 그렇게 예전과 다를 바 없이 그냥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까앙!
“돌아서 빠르게 백 점프! 그리고 좌측 긋고! 다시 허리! 허리 젖혀서 검 피하고! 그렇지! 회전! 좋아! 좋아! 베고! 중단! 오케이!”
스쿨 관장 왕주형의 외침에 지영은 자세를 풀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앞에서 마찬가지로 검을 하단세로 겨누고 있던 김진우가 씩 웃으며 다가왔다.
“수고했다.”
“네, 형도 고생하셨어요.”
“하하, 뭘. 나는 거의 그냥 서 있었는데.”
“그래도요.”
이제는 진짜 부관장이 된 김진우는, 실제 작품에서 역적 후를 지키는 수문장이었다. 이른바, 제국제일검이라는 설정을 품으신 분이라, 1부에서는 거의 제대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선고에서부터 김진우의 신이 자주 나갈 예정이었다.
선고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거의 이어서 들어가는 나의 무사님 2부, ‘연의 역습’에서는 더욱 자주 모습을 보이며 주인공 재를 압도하는 무사로 나올 예정이었다. 이번 신도 그런 신이었다. 아직 반란이 일어나지 않았을 때, 후의 친위대와 재의 친위대가 합동 연습할 때를 보여주는 신이었다.
이때도 극 중 제국제일검 ‘진’은 재를 압도했다.
그런 진 역의 김진우가 앞에 있으니 몰입이 훨씬 더 잘돼서 좋았던 지영이었다. 임은진이 가져다준 물로 적당히 입을 축인 지영은 후아, 숨을 몰아쉬었다.
“이제 합은 다 외웠지?”
“네. 음…… 네.”
대답은 했는데 혹시 기억이 나지 않는 신이 있나 다시 고민했던 지영은, 이내 준비가 완벽하단 생각이 들자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김진우는 지영이 거짓말을 할 친구가 아니라는 걸 알고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오늘은 이만하고, 내일 현장서 보자.”
“어, 벌써 끝내요?”
시간을 보니 8시밖에 안 됐다.
“응. 내일 신 많으니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체력 아껴야지. 잘 먹고 푹 쉬고, 내일 보자?”
“네. 형. 고생하셨어요.”
“그래, 지영이 너도.”
김진우가 떠나자, 지영은 마무리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잘 먹고, 잘 쉬고. 김진우의 말을 똑바로 따른 지영은 다음 날, 선고의 촬영이 한창인 촬영장으로 향했다.
경기도 파주에 있는 대규모 세트장.
엄청난 지원을 받아, 그 규모를 훨씬 늘려서 이곳에는 대한민국에서는 찾기 힘든 밀림도 갖추었다. 물론, 어느 쪽으로든 좀 걷다 보면 충분히 밖으로 나가지는, 느낌상의 밀림이었다.
하지만 그런 촬영장에 도착한 지영은 현장 안으로 진입할 수 없었다.
어디서 퍼진 건지.
현장에는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