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47화
247화. 방송(16)
인터넷이 난리가 났을 거라는 지영의 예상은, 정답이었다.
여론은 정말 말 그대로 난리가 났다. 사실 이번 사건이 벌어졌을 때 누구도 라피앙 파벨로가 실제로 자살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일각에서는 그래서 라피앙 파벨로에게 오히려 죽음을 종용하기까지 했다.
너는 예술가다.
그러니 네가 한 말을 지키지 않으면.
없던 명예도 땅바닥에 떨어질 거다.
그러니 네가 한 말처럼, 시간이 되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죽어라.
실제로 그에게 남겼던 조롱들은 이런 느낌이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그가 죽지 않을 거라고 은연중에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조롱했다. 어차피 죽지도 않을 새끼가 허세를 부린다며. 그럴 시간이 있으면 공원에 나가서 그림 한 장이라도 더 그려주고 돈을 벌라고 조롱했다.
원색적인 조롱과 비난을 그에게 던졌지만.
그들은 오히려 기다렸다.
진짜 그가 죽을지, 말지. 어떤 선택을 할지. 죽어도 그만이고 안 죽어도 그만인 그들에게는 그냥 유흥거리였다.
그랬는데, 진짜 죽었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어, 이게 아닌데.
안 죽을 줄 알았는데.
그냥 단순히 허세인 줄 알았는데?
이런 마음이 들고.
이런 마음이 드는 사람들을, 이제는 그러지 않은 사람들이 물어뜯을 차례였다.
방관했던, 물러나 있던, 귀찮았던, 관심 없던 이들이 낄낄거리며 라피앙 파벨로를 조롱했던 이들을 역으로 공격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전자의 인간들은 정신적인 탈출구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느끼는 양심의 가책을, 타인에게 넘길 수 없나 본능적으로 생각하게 되는데 마침…… 지영이 있네? 라피앙 파벨로가 걸고넘어진 건 지영이다. 그리고 지영은 그가 죽을 때까지, 끝까지 작품을 고르지 않았다.
양심의 가책을 떠넘길, 아주 맛 좋은 먹이로 전락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래서 라피앙 파벨로의 죽음이 뉴스를 타고 1시간 만에, 강지영이란 운동선수 겸 배우는 천하의 개 쓰레기가 되었다. 그가 고집을 부렸기 때문에 라피앙이 죽었다고 그를 매도했다. 그에게 여론이 화살이 넘어가면 갈수록, 자신이 받는 양심의 가책이 줄어드니 누구보다 앞에 서서 강지영이란 한 인간을 매도했다.
이는 전 세계적인 분위기였다.
단순히 한국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이번 일을 유흥거리로 생각하며 라피앙을 조롱하고 모독했던 이들은 거의 태반 이상이 그의 죽음 이후 강지영을 역으로 욕했다.
책임을 떠넘기는 짓.
양심이 정말로 찔릴 일이다.
그런데 그 짓으로 자신은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으니 잠깐 양심이 찔리는 걸 참으면 충분히 남는 장사였다.
하지만…….
“하, 이것들이 진짜…….”
임은진도, 장세리도 그런 분위기에 치를 떨었다.
사실, 왕희수 실장이 이미 예견한 일이었다. 이제 비난의 화살이 이쪽을 향할 거라고. 그래도 늦은 시간에 회사에 대기하며 분위기를 보던 그들은, 설마설마했다. 설마 인간이 그렇게까지 추악해질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지영이 쓰러지고, 2시간 후, 새벽부터 비즈 엔터 사무실은 요동치는 전화, 팩스, 메일 등으로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기자들의 전화가 폭주하고, 원색적 비난을 일삼는 전화도 폭주해 아예 유무선 통신기계는 전부 꺼버리고 나서야 소란이 가라앉을 정도였다.
“인터넷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누르며 장세리가 던진 질문을 왕희수 실장이 받았다.
“난리도 뭐 이런 난리가 없죠. 지영 배우가 살인자라며, 벌써 한목소리로 몰아가는데요?”
“지긋지긋하지, 진짜. 참 쓰레기 같은 이중성이야. 안 그래?”
“뭐 한두 번 보세요?”
“아니, 너무 자주 보니까 더 치가 떨려. 후우. 이런 인간들과 같이 한 하늘 아래에서 숨을 쉰다는 게 소름 끼치기도 하고.”
장세리는 정말로 몸서리까지 쳤다.
그만큼 현재의 분위기는 그녀로서는 이해도 안 되고,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어떻게 정말 하루아침에 그렇게 싹 안면몰수하고 책임을 돌리는지, 신기하다 못해 무서울 정도였다.
하지만 그래서 이미 내성이 어느 정도 쌓인 상태였다.
황금세대, 혹은 연희고 아이돌을 향한 언론의 공격은 솔직히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렇게 쌓인 내성은, 이 상황을 어떻게 뒤집어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자, 마지막으로 분노들 충전하자고.”
“대표님도 진짜, 독특하시다니까요. CCTV 그거 그냥 공개하면 될걸.”
“후후, 더 화가 나 있어야 자비도 사라지는 법이지.”
그 대답에 혀를 찬 왕희수 실장이 나가고, 임은진도 자신의 노트북을 꺼내 펼쳐 인터넷 반응을 살폈다.
새벽이다.
인간의 본성이, 폭발하는 시간.
자신을 짓누르는 도덕적 문제를 밤의 마성이 휘감아, 말도 안 되는 면죄부를 향해 달려가게 만드는. 그 현장은 정말이지 더럽기 그지없었다.
워낙에 그 여론이 폭발적이라서,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감히 끼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임은진은 그 모든 것을 눈에 담았다.
기이할 정도로 사건과 사고가 달라붙는 배우다.
그 본인은 가만히 있는데 주변에서 달려와 달라붙어 거머리처럼 피를 빨아먹었다. 그녀는 근 20년 가까이 이 바닥에 종사하면서, 이런 캐릭터는 또 처음 봤다.
스타성이 넘치는데. 그 넘치는 스타성만큼의 트러블도 넘쳤다.
전혀 상관도 없던 일도 그와 연관되면 거대한 산불로 변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강지영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주변에서 그를 대유행의 중심에 던져 넣더니, 이제는 정말 도무지 이해 못 하는 상황으로 욕을 먹고 있었다.
그래서 임은진은 그게 정말 화가 났다.
팬과 스타.
악플러와 스타.
혹자는 악플도 관심이니 관대하게 봐주라고들 얘기하지만, 임은진은 그러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래서 사건이 터지자마자 아는 변호사 사무실에 의뢰를 넣었다. 이런 일을 전문적으로 해주는 사무실인데, 이제 모든 인터넷을 대상으로 악의적인 비방, 욕설 등은 모조리 캡쳐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건, 총알로 변하게 될 것이다.
몰라서 욕했다고?
몰랐다고 해서, 그 사람이 인터넷에서 가명이란 가면을 뒤집어쓰고 내지른 폭력이 정당화되는 건 절대 아니었다.
화르르 불타는 인터넷의 여론.
아침 해가 뜰 때까지 그 상황을 그녀는 전부 지켜봤다.
그리고 7시.
끼익.
사무실 문이 열리고 장세리 대표가 들어왔다.
“임 팀장? 이제 슬슬 영상 올려.”
“네. 대표님.”
밤을 지새우신 게 분명한 장세리 대표가 추호의 머뭇거림도 없이 영상 공개를 명령했다. 그리고 임은진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미 준비했던 영상을 홈페이지에 아무런 코멘트도 없이 올렸다.
이 영상이 무슨 영상이냐고?
지영을 욕하던 모든 인간에게 빅엿을 선사해 줄 증거인, 지영을 포함한 황금세대가 도복을 고르던 회의실의 CCTV 영상이었다. 그리고 임은진이 들어와 상황을 알려주고, 뉴스로 그걸 지켜본 지영이 그대로 허물어지면서 테이블을 밀치고, 난장판을 만드는 영상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치했다고?
아니.
지영은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이 먼저라고 생각해서, 중립 의지를 깨고 작품을 고르고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라피앙 파벨로의 전언이다.
그는 분명 한국 시간으로 자정까지 시간을 준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자정까지 기다려주지 않았다. 뉴스가 올라온 건 자정 이전이었다. 한국 시간으로는 11시 좀 전이었다. 그럼 그의 죽음은 훨씬 더 이전이었을 거다.
별 차이 없는 거 아니냐고?
아니, 아주 큰 차이가 있는 거였다.
그렇기에 이 영상은 지금 지영을 매도하는 인간들의 아가리를 죄다 닫게 만들어버림과 동시에, 머릿속에 오직 한 가지 단어를 떠올리게 만들어줄 영상이었다.
“이제 니넨 다 X 된 거야…… 후후.”
그녀는 속이 다 시원했다.
이제 며칠 후면, 선처를 바란다고 연락이 빗발치겠지만 한 명도 예외 없이 금융치료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지잉.
영상을 올린 그녀는 곧장 노트북을 챙겨서,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하니 깨어난 자신의 배우가 그녀에게, 프랑스행 비행기를 부탁했다. 그리고 라피앙 파벨로의 장례식 정보까지 같이 부탁했다.
그녀는 대표님을 들먹였지만, 속으로는 정말 만족했다.
참……. 인간적인 아이다.
중성적인 외모라 차가운 이미지가 풀풀 나지만, 그래도 속은 참 따뜻한 아이다. 알게 모르게 이 아이가 내리는 선택은, 전부 그런 느낌이 났다. 그래서 더욱 만족스러웠다. 몇 번 맡아봤던 겉과 속이 다른 연예인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친구라, 정말이지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지영이 다시 검사를 위해 병실을 나서자, 그녀는 곧장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저녁 비행기였다.
그리고 그녀는 곧장 글로벌 ‘정보통’에게 연락을 넣어 라피앙 파벨로의 장례식 정보를 의뢰했다.
그리곤 느긋하게, 병원에 오기 전 올린 영상의 후폭풍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예상대로, 여론은 극단적으로 뒤집혀 있었다.
* * *
요즘 들어, 아니, 몇 해 전부터 인터넷은 무서운 동네가 됐다.
그럴싸하게 여론을 모아서, 내 말과 다르면 역적, 죄인으로 만들어 매도하는 풍습이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너 나랑 의견이 달라? 너 사형. 마치 이런 느낌이었다. 세상에는 절대적인 게 그리 많지 않다.
하나의 사건을 뒀을 때, 완벽하게 의견이 일치하는 사건이 있는가 하면 사람의 성향에 따라 다르게 의견이 나오는 사건도 존재한다.
그런데 그걸 다르다가 아니라, 틀리다로 인식하고 나랑 의견이 다르니깐 넌 틀려. 넌 쓰레기야. 다들 뭐 해? 저 새끼 우리랑 의견 다르잖아! 조져! 이렇게 몰고 가는 거다. 요즘은 좀 자제되는 분위기지만, 이번은 달랐다.
-강지영 내가 언제 사고 칠 줄 알았다. 살인자 새끼 ㅋㅋ
-이게 왜 지영이 살인자?
-X신아! 강지영이 빨리 골랐으면 이런 일이 일어났겠냐? ㅋㅋ 괜히 유행 선도고 뭐고 뻗대면서 버텼잖아! 솔직히 강지영이 도복 그거 하나 골랐으면, 라피앙 같은 예술가가 나왔겠냐? 안 나왔지?
-ㅇㅇ지가 뭔데 루이비통 샤넬 소속 디자이너들이 만든 걸 깜? 별 좆도 아닌 새끼가 ㅋㅋㅋ
-솔직히 이번엔 좀 실망스럽긴 하네요. 이런 문제가 생기면 솔직히 사람부터 생각해야 하는데, 강지영은 끝까지 방관했잖아요. 그렇게 자해한 영상이 올라왔는데.
-나도 좀 그렇더라. 다른 건 다 빼고, 그냥 이렇게 결국 문제가 터졌는데 아무런 액션도 없는 게 진짜 좀 그렇더라
-맞음 이번엔 개실망임
-후원하는 것도 솔직히 좀 알아봐야 하는 거 아니냐? 이런 인성을 가진 새끼가 뒤에서 뭔 짓을 하고 있을지 어케 앎?
-ㅇㅇ조사할 필요가 있지
몇몇이, 만든 분위기다.
그리고 여기에 동조하는 이들이 생기면.
-재단 세무조사 한번 치고! 이번 일도 책임지게 해야지!
-인기 좀 얻었다고 X나 거만하게 굴더니만 ㅋㅋㅋ 꼴 좋다 ㅋㅋ
-이렇게 쌍둥이처럼 가나욬ㅋㅋㅋㅋ
-야 쌍둥이는 좀 그렇지 않냐? 지영이는 반대
-아 X발! 위에 분위기 파악 안 하냐? 지금 이 상황에서 강지영 편들고 싶냐? 이 개념 없는 새끼야?
-저거 강지영 빠순이라 그럼 ㅋㅋ
-아 쏘리. 그럼 놈이 놈이 아니라 년이네?
하나의 거대한 여론이 만들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이들은 새벽 내내 이 커뮤, 저 커뮤 옮겨 다니며 불을 지폈다. 군불을 지핀 뒤, 부채질을 빡세게 해서 화르르 불태운 다음, 다음 먹이를 찾아 떠났다. 그리고 이 과정에 마치 황건적 봉기처럼, 수가 확 쌓였다.
유흥에 동참했다가, 생각지도 못한 사태에 책임을 떠넘겨야 하는 사람은 솔직히…… 한두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새벽 내내 국내 커뮤니티 전체를 돌며 여론을 몰아갔다. 그렇게 아침에 그들은 마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개선장군처럼 위풍당당해져 있었다.
하지만…….
그때 올라온 동영상 하나.
무편집 동영상이었다.
동영상은 사고가 일어나기 전, 그러니까 라피앙 파벨로의 사망 소식이 프랑스에 언론을 타기도 전에 도복을 고르기 시작하는 지영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시간상으로는 적어도 1시간 이전.
즉, 그러니까……
-뭐야…… 고르려고 했네?
-쟤네 황금세대 맞네. 석이랑 한결이, 성진이! 효중이 다 있네! 우리 지영이도 있고!
-씨 뭐야! 우리 지영이 사람부터 생각했잖아! 그런데 왜 욕해!
-야? 이거 비즈에서 올라온 건데? 솔직히 조작했을…….
예상치 못한 영상의 등장은, 그간 숨죽이고 있던 연희고 황금세대 팬덤의 총집결을 불러왔다.
또한 이번 사태에, 정말 화가 나 있던 동문들과 중고등학교 동기들이 대거 참전했다.
그들은 믿고 있었다.
애초에 상업성 CF도 자신들이 올바르고, 건강한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거절하는 애들이다. 그런 거절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 설마 방조했을까? 거기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뭔가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리고 역시 뭔가 있었다.
강지영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SNS에 올라온 작품까지 전부 찾아서 그는 사람부터 구하고 보려고 했다.
-아 그럼 뭐 하는데! 늦어서 사람 죽었잖아? 그럼 이미 끝난 거 아니냐?
-지랄하네. 야, 라피앙 파벨로가 분명 한국 시간으로 자정이라고 했다. 그런데 한국에서 기사 난 거 시간 봤냐? 그때 11시야! 제일 빨리 올라온 게 10시 50분쯤이고!
-맞아! 저 때쯤 이미 지영이는 다 간추리고 최종적으로 선택 직전이었어!
-어, 어?
-어? 지영아!
그리고 이어진, 강지영의 기절 영상.
작품을 고르다 말고 임은진에게 소식을 듣고 TV를 본 강지영 쓰러졌다. 그게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시간을 어떻게 아냐고? 모든 CCTV 영상에는 날짜와 시간이 제대로 표기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건, 조작이 불가능했다.
뭐 배우들을 써서 만들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었다. 왜? 조금만 조사하면 어차피 다 나오는 게 이 바닥이기 때문이었다. 특히 경찰의 손에 들어갈 영상이라 더더욱 수를 쓰기 힘들었다.
그러니 영상은 진짜였다.
무너진 강지영.
난리가 난 회의실.
급히 황석이 강지영을 업고 달려 나가고, 전체가 우르르 따라 나갔다. 난장판이 된 회의실. 그 회의실에 감도는 황량함.
영상은 몇 분 정도 더 이어지다 끝났고, 동시에 비즈 엔터테인먼트의 입장 전문이 떴다.
경찰 의뢰, 법적 조치, 선처 없음이란 단어가 들어간, 밤새 여론을 몰았던 이들의 혼을 뿌리째 뽑아버리는…… 입장 전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