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42화
242화. 방송(11)
이해하지 못해도, 예술은 예술이다.
일반인들의 기준에서는 바나나를 테이프로 벽에 붙여 놓은 걸 예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그냥 먹는 걸 가지고 장난을 친다 생각할 뿐이다. 하지만 예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건 오…… 소리가 나오는 독특한 예술이다.
실제로 그 아이디어는 예술로 가치를 인정받아서 팔리기도 했다.
선 하나를 그어도 예술이 되는 세계.
그렇기에 예술이라고 오히려 자신 있게 말하는 곳.
지영은 그런 세계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한다고 그걸 부정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뒀다. 알아서 흘러가도록. 신경을 끈 채로 일상에 집중했다. 그렇게 다시 시간이 흘러서 4월 말이 왔다.
시합.
대학 연맹전이었다.
갑자기 대학 연맹전에 나온 연희고 황금세대.
사실 신청은 했지만 나오지 않을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는데, 황금세대는 시합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 체급씩 올려서 시합에 나오면 당연히 적응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연희고는 지금 연승 페이스를 달리고 있었다. 괜히 대학연맹에 나와 연승 페이스가 끊기는 건 그들도 원하지 않을 거로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그래서 신청은 했지만 나오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다 나왔다.
전원 체중을 빼지 않고 한 체급 위로 나왔다.
“아, X발. 개무시당하네, 진짜.”
“연승 페이스인데, 전원 한 체급 올려서 대회에 나와? 와, 진짜, 하, 하하!”
“아주 우리를 그냥 졸로 보는 거지. 와 씨! 이 새끼들 어떻게 죽이지?”
대학부 선수들은 그런 연희고 황금세대의 선택에 분노했다.
당연했다.
연승 페이스를 신경 쓰지 않는 거라면 모를까, 만약 신경 썼는데도 나온 거면 대학연맹 자체를 별로 크게 의식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었다. 이는 명백한 모욕이라고 생각하는 선수가 늘어났다.
“아, 진짜…….”
그래서 짜증이 났다.
계체하고 나온 이성진이 짜증을 와락 냈다.
경량급 시합이 먼저라, 중량급으로 분류되는 81로 올라간 지영은 첫날 경기가 아니라 둘째 날이었다. 그래서 첫날 경기는 이성진 혼자 뛰게 되었는데, 이성진은 혼자 들어가서 눈치를 많이 받았는지 밖으로 나왔을 땐 골이 잔뜩 나 있었다.
같이 들어갔을 때 지영도 그런 분위기를 느껴서, 그냥 어깨만 툭툭 쳐줬다.
딱히 말로 하지 않는 남자들의 위로였다.
이성진은 계체가 끝나고, 다음날까지 골이 나 있었다.
체중을 빼지 않아서 컨디션은 좋았지만, 심통이 나버린 상황. 이성진은 그걸 시합 때 전부 풀었다. 체중을 빼지 않은 이성진의 피지컬은 73체급에서도 먹혔다.
애초에 근력과 체력, 신장 등이 지영보다 아주 조금 작은 이성진이었다.
그래서 73에서는 탑 피지컬인 지영이다 보니, 이성진도 여기다 던져놔도 조금도 꿀리지 않았다. 게다가 감량이 없었기 때문에 힘 또한 체급에서 전혀 밀리지 않았다.
쿠웅!
으아아!
준결승에서 용인대 3학년 선수를 업어치기로 한방으로 돌리고, 짧고 강렬하게 포효하는 이성진. 지영은 그런 친구에게 마음껏 박수를 보냈다. 1회전부터 4회전인 준결승까지. 이성진은 전 경기 한판 페이스였다.
황금세대의 재능이, 한 체급을 올려도 통용된다는 게 여실히 드러난 거다.
꺄아아!
그런 이성진의 모습에, 팬들은 난리가 났다.
이번 대학연맹은 서울에서 열렸고, 더 런닝에 출연 중이고, 성공적으로 그 프로그램에 녹아든 이성진은 이제는 상당히 많은 팬이 생겼다. 특히 그의 어릴 적 시절 환경 때문에 나이가 좀 있는 누나 팬들이 많았다.
그런 팬들의 환호에도, 이성진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온전히 시합에 집중하는 모습.
“멋있다, 성진이.”
황석의 말처럼 멋있었다.
이성진은 결국 팬들의 환호 속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사실, 무주공산이었다. 잘한다는 사람이 거의 빠진 대회였다. 지영과 동갑이고, 용인대로 진학한 이우진은 지금 선수촌에 있었다. 그래서 73은 거의 무주공산이었다.
그 빈산을 이성진은 어렵지 않게 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다음 날, 지영을 비롯한 다른 친구들도 승승장구했다.
이우진과 함께 선수촌에 있는 장대호 덕분에 헤비급도, 천재라 불리는 선수들은 없었다. 물론 대한민국 유도가 그렇게 수준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애초에 대학부는, 고등학교에서 살아난 선수들만 올라갔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지만 대학교에서도 선수로 활동하려면 당연히 고등학교 때 어느 정도 성적을 보여줘야 했다. 최소한, 정말 최소로 잡아도 단체전 입상이라도 있어야 했다. 끝까지 유도를 놓지 않는 선수들도 있긴 하지만, 보통은 고등학교에서 대학교에서 선수 태반 이상이 물갈이된다고 보면 맞다.
그러니 대학부는 그런 물갈이에서 살아남은 선수들이었다.
그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정예 선수들.
그러니 대학부가 시합에 참가하는 인원이 적어도 호락호락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연희고 황금세대는 세계급 선수였다. 아시아 선수권과 가노컵 두 개의 대회지만 확실히 아시아 정상을 한 번 차지했고, A급 대회라 최고의 선수들만 나온 가노컵도 제패했다.
그런 황금세대의 실력은 대학부를 이미 넘어서 있었다.
애초에 선발전도 1위를 거머쥐고 선수촌에 들어가는 국가대표들이기도 했다. 이런 말 하면 좀 재수 없겠지만, 노는 물이 다르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런 대학부에서, 황금세대는 게임 용어로 거의 무쌍을 찍고 있었다.
물론, 아무런 상처도 없는 무쌍은 아니었다.
지영은 뭉친 아귀를 풀기 위해 혼자서 마사지했다. 체력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체력으로 지영을 따라올 선수는 없었다. 황금세대 중에서도 임효중과 함께 탑 레벨의 체력을 보유했다.
문제는 근력이었다.
73에서 지영의 근력은 최고 수준이다.
진짜 넘사벽으로 힘이 센 선수와 붙지 않는 이상 힘에는 거의 밀린 적이 없었다. 그러나 81로 오자, 만나는 선수 반이 넘게 지영보다 힘이 좋았다. 이성진을 생각하면 사실 이건 말도 안 되지만, 실제로 지영이 만난 선수들은 힘이 좋은 선수들이었다.
그 체급에서 한 힘 한다는 선수들과 붙었고 이기긴 했지만, 아귀가 뭉치고, 팔뚝도 땡땡하게 뭉친 상태였다.
“지영아, 마사지해 줄까?”
그런 지영의 상태를 보고 황석이 냉큼 왔지만, 지영은 당연히 거절했다.
“야, 너도 결승 남았는데 무슨?”
황석도 결승전까지 왔다.
장대호가 신청서를 내긴 했지만, 선수촌에 있어 시합에 나오지 않았고, 황석은 자신이 고등학교 때 3번이나 이긴 상대와 결승전을 치른다. 하지만 그래도 결승전이다. 똑같이 시합을 뛰는 선수에게 마사지를 받을 만큼 지영은 뻔뻔하지 않았다.
“나 괜찮은데? 시합도 얼마 안 했고.”
“됐어. 너도 컨디션 관리해.”
“응.”
조금은 시무룩해지는 황석이지만, 지영은 거기에 넘어가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였다.
“준결승 좀 밀리던데. 힘으로 역시 안 되겠지?”
90에 출전해 81체급 뛸 때와 똑같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는 임효중의 말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 역시 세긴 하더라. 상익 선배가 워낙 힘이 좋기도 했고.”
“상익이 형이 워낙 힘이 좋긴 해.”
이상익.
지영보다 한 살 많은 청주 청석고 출신 선배였다.
즉, 동향 선배였다. 자존심이 센 선수라 동 체급인 임효중과는 잡고 연습해도. 지영과는 연습 때도 붙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꽤 오래 같이 훈련했지만, 붙어본 적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정말 힘이 좋아서 생각보다 고전했다.
절반 승.
4분 게임을 다 쓰고 절반 승으로 이기긴 했지만, 그 결과 아귀가 제대로 뭉쳤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 결승까지 시간이 남아 있으니, 팔을 풀어줄 시간은 충분히 있었다.
여대부 경기가 끝나고, 지영의 경기 차례가 됐다.
“강지영 파이팅! 꺄아아!”
“지영 오빠! 파이팅!”
어제는 이성진의 팬이 많았다면, 오늘은 지영의 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황금세대가 시합에 나온다는 걸 가장 먼저 연락해서 확인한 협회에서 급히 체육관을 바꿨기에 망정이지, 본래 예정했던 체육관에서 경기를 치렀으면 팬 때문에 선수진 가족이나 학교 관계자들이 들어오지도 못하는 참사가 벌어질 뻔했다.
결승전 상대.
한체대 4학년 이호석.
81체급에서는 저돌적인 탱크로 불리는 선수였다. 이 선수는 특이한 이력이 있는 선수였다. 본래 한체대에 들어갔을 때는 60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까지는 55를 뛰었었고. 그런데 대학교에 입학해 키가 크기 시작하더니, 1년에 한 체급씩 훅훅 건너뛰어 4학년이 된 지금은 60에서 81까지 왔다.
이런 경우 갑자기 큰 키 때문에 피지컬이 무너질 수도 있는데 이호석은 체급을 올리면서 극단적인 웨이트로 무너지는 피지컬을 강제로 잡아버렸다. 하루에 스테이크를 열댓 장씩 먹어가며 웨이트를 했고, 그래서 생긴 별명이 탱크였다.
다부진 체격.
신장은 지영과 비슷한 정도인데, 지영보다 어깨 하나는 더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경기가 시작되자, 빠르게 서로 손이 오갔다.
지영이 뻗은 손을 가볍게 쳐내고, 먼저 가슴 깃을 잡아서 일단 끊어지는, 아니면 버티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툭툭 쳐봤는데 역시 쉽게 끊어지진 않았다. 73체급의 힘과는 역시 차원이 달랐다.
묵직한 게, 이 정도면 거의 강한결에게 잡혔을 때의 느낌이었다.
그래서 지영은 짧은 고민 끝에, 이번에는 잡기 싸움을 하지 말잔 쪽으로 방향을 전했다. 괜히 잡기 싸움으로 힘이 빠지는 건 막기 위해서였다.
오른쪽 자세.
특기는 업어치기.
한 번에 쑥, 저돌적으로 밀고 들어오는 업어치기가 위협적인 대상이었다. 힘이 좋은 선수답게 이호석은 업어치기도 힘으로 넣었다. 이성진처럼 타이밍을 맞춰서 거는 게 아닌, 힘으로 욱여넣은 다음 일단, 그다음 상대를 던지는 방식이었다.
이런 상대에겐 아예 기술에 걸릴 각조차 주면 안 된다.
그래서 지영은 업어치기 모션이 보이는 순간, 그 순간을 포착해 반 타이밍이 먼저 움직이는 걸로 흐름을 끊었다.
유도의 기술은 준비 동작이 거의 정형화되어 있었다.
업어치기의 경우는 손목을 툭 채서, 상대의 안쪽에 틈을 만드는 게 준비 동작이라 할 수 있었다. 업어치기 선수들에게 이 채기는 습관의 영역이었다. 그냥 버릇처럼 툭툭, 툭툭 친다. 상대가 이 채기에 익숙해져 방어하지 않을 때가 타이밍이었다.
그 타이밍만 알아채면, 기술을 방어하는 건 생각보다 쉽다.
한발 먼저 움직여 발기술이든, 아니면 잡기든 뭐든 공격하면 업어야지! 하던 생각은 순간적으로 리셋되기 때문이었다.
반사적, 본능적.
상대가 공세로 나오면 보통은 그걸 막기 위해 몸이 움직이기 때문이었다. 이 정형화된 습관을 지영은 잘 이용했다.
그렇게 흐름을 끊다 보니 2분이 금방 갔고, 양쪽이 나란히 지도 하나씩을 받았다.
지도 하나.
두 개가 아니니 아직 여유는 있었다.
‘좀 더 공격적으로.’
딱 두 번만, 이호석을 수세로 밀어 넣으면 된다.
그럼 오늘 심판 판정의 흐름상, 열에 아홉은 지도가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럼 승기는 단숨에 넘어오게 된다. 시합 운용은 이렇게 이성적인 판단으로 결정되는 게 보통이었고, 여기서 이 보통을 해낸 사람은 지영이었다.
갑작스러운 공세.
이번 결승전의 승부다.
이호석도 그걸 알았는지 뒤로 물러나지 않고, 자세를 바짝 낮춰 지영의 공세를 방어했다. 지영은 쭉 손을 뻗어 어깨 깃을 잡았다. 그러자 이호석은 자연스럽게 깃을 뜯어냈다.
‘한 번.’
지영은 반보 전진해서 다시 손을 뻗었다. 가까이 붙은 지영이 부담스러웠는지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나며 다시 지영의 손을 쳐냈다. 아주 가까이 붙으면, 어느 한쪽도 유리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업어치기와 허리기술로 주특기가 갈라지면, 이 경우는 그래도 허리기술 쪽이 조금은 더 유리했다. 허리기술 자체가 상대를 자신에게 붙인 다음 차는 기술이 대부분이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업어치기는 공간이 필요했다.
몸을 회전시켜 상대의 안으로 넣을 수 있을 정도의, 최소한의 공간이 필요했다. 말아업어치기도 마찬가지였다. 완전히 붙어 있는 상태에서는 업어치기 기술이 나오기 힘들었다. 그래서 툭툭 채는 손버릇이 생긴 거다.
그래야 상대가 움찔하고, 그 자체가 틈이 되니까.
업어치기 선수인 이호석이 그렇게 반사적으로 물러나자, 지영은 다시 붙었다. 이렇게 붙어오면 발목받치기나 업어치기 등, 공간이 있으면 기술을 역으로 걸어오기 좋기는 하다. 만약 지영이었다면 그 틈을 노렸을 거다.
그걸 노릴 수 있는 것과 노리지 못하는 것의 차이는 바로.
실력이다.
당황하지 않았지만, 이호석은 그 기회를 놓쳤다.
그리고 기회는 지영에게로 넘어갔다.
툭.
마찬가지로 빠지려던 이호석의 발 뒤에 툭 댄 안뒤축. 그냥 대기만 했을 뿐이다. 도망가는 상황이니, 뒤에다가 뭉툭 튀어나온 돌부리를 댄다는 느낌으로. 뒤통수에 눈이 달리지 않은 이상은 이런 돌부리에 걸리는 순간 인간은 십중팔구는 넘어간다.
그리고 아무리 유도선수라고 해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중심이 좋을 것 같아서 안 넘어가는 거 아니냐고? 그럴 수는 있다. 만약, 그 어디도 잡히지 않은 상태라면 휘청거려도 넘어가지 않을 수는 있을 거다.
하지만 지영은 기습적으로 덮쳐 상대의 어깨 뒤에 손을 댔고, 반대쪽 가슴 깃을 아래지만 제대로 잡았다.
뒤로 빠지려던 이호석이 그 때문에 막혔고, 지영이 댄 돌 무리에 걸려 중심이 쭉 무너졌다.
쿵!
절반!
피한다고 피했지만, 이호석은 절반을 뺏기는 걸 면하진 못했다.
그렇게 따낸 절반.
지영은 그걸 끝까지 지켜냈고, 연승 또한 지켜내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81로 체급을 올렸으니, 이변이라면 이변인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