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38화
238화. 방송(7)
루이비통.
말이 필요 없는, 명품 패션 브랜드의 끝판왕이다.
“와, 진짜요? 진짜 지영이 루이비통에서 CF 들어왔어요?”
“네, 들어왔어요.”
놀란 이연의 물음에 임은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모델이 아닌, CF라는 점을 명시해 줬다. 근데 사실 CF도 그렇고, 모델도 그렇고 루이비통이란 곳은 웬만해서는 컨택받기 힘든 곳이었다. 괜히 세계 최고의 명품 브랜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으레 그렇듯, 패션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상한 자존심과 고집이 있었는데, 그건 루이비통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소위 말하는 명품 브랜드. 사실 한국 연예인들은 명품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었다.
지금 연락이 왔다는 루이비통만 하더라도 한국인 앰버서더를 지정한 적이 있었고, 심지어 탑 수준의 여배우는 루이비통의 뮤즈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전례가 있다고, 두 번째는 쉬운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하는 건 순진하다 못해 멍청한 생각이었다.
루이비통은 전통의 강자이면서, 여전히 패션 브랜드의 넘버원 자리를 유지 중인 곳이다.
그런 만큼, 자신들의 뮤즈 선정은 지독할 정도로 깐깐했다.
그런 루이비통이, 지영을 원한다.
“언니언니. 설마 프리패스?”
프리패스?
그건 또 뭐지?
“맞아요. 저도 몰랐는데 오늘 현장에 와서 지영이를 보고 갔나 봐요. 그리고 좀 전에 연락이 왔어요. 면접은 건너뛰고, 작업하자고.”
“헐.”
지독할 정도로 깐깐하지만, 반대로 고개가 갸웃할 정도로 쉽기도 하다. 예술 좀 한다는 양반들이 가진 즉흥성 때문이었다. 꽂히면, 옆에서 만류해도 직진이요. 안된다고 그렇게 말해도 소귀에 경 읽기로 만들어버리는 게 그 바닥 양반들 특기였다.
이는 연예계라고 다를 것도 없었다.
당장 지영만 해도 장민주 작가와 정은정 작가에게 영감을 불어 넣어준 존재였고, 캐스팅도 오디션 없이 미팅만으로 단숨에 프리패스했다.
예술.
이곳은 진짜 알기 힘든 양반들이 서식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거절해 주세요.”
“……어?”
“CF, 안 하기로 했잖아요. 거절해 주세요.”
“……진짜?”
덜덜.
항상 차분한 임은진의 눈빛이 풍랑을 만난 조각배처럼 흔들렸다. 다른 곳도 아닌 루이비통이다. 패션계의 거목 정도가 아니라, 그냥 세계수 정도 되는 곳이 루이비통인데, 지영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차버렸다.
그러나 지영에게도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이거 하나 수락하면, 다른 것도 해야 해. 그동안 지켜온 법칙이 무너지는 거야.’
황금세대는, 연희고 아이돌은 상업성 CF를 찍지 않는다.
이 말 자체가 말도 안 되는 말이었다. 스포츠 스타도 그렇고, 배우도 그렇고, 가수도 그렇고. 그 어떤 스타도 CF를 거부하지 않는다. 텐 미닛으로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탑스타처럼 따로 이유가 있지 않은 이상은, 들어온 CF는 웬만하면 자신의 이미지를 해치지 않는 선에선 받아들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연희고는 달랐다.
방송 활동을 시작하기 전 한 번 찍은 학교폭력 근절 공익광고가 CF로는 마지막이었다.
지영이 먼저 스타트를 끊어 예인으로 살어리랏다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을 때쯤에 연희고 아이돌에게 들어온 CF 제의는 정말 많았다. 하지만 단 한 건도 수락하지 않았다.
이유는 연희고 아이돌이란 이름 때문이었다.
학교폭력 근절 광고를 찍고, 실제로 근절해 내기도 한 게 지영과 친구들이었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자신들에게 언제나 살갑게 대해줬던 것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어려울 때 돕는. 그냥 옆에 앉은 친구 같은 느낌.
당시 지영이나, 지영의 친구들이나 이런 느낌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TV에는 나오지만, CF도 찍고 하다 보면 괜히 친구들과 거리감이 생길 것 같아서, 의도적으로 피했다. 여기서 참 재미난 게, 돈은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만약 당시에 금전적으로 여유가 없었다면 CF를 찍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 황금세대는 돈이 많았다. 지영으로 인해 투자한 게 대박이 나면서, 다들 학생이 가지기는 힘든 금액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지금도 올라가고 있는 베가 제약의 주식을 아직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돈 욕심이 결정적으로 없었다.
그래서 상업 CF는 찍지 않는 방향으로 정했고, 그걸 지금까지 지켜왔다. 그러니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루이비통?
거기가 엄청난 곳이라는 건 패션에 관심이 없는 지영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돈?
충분할 만큼 있다.
솔직히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아도, 죽을 때까지 먹고사는 데 아무런 지장도 없을 정도로. 애초에 나의 무사님 계약할 때 지영의 몸값도 결코 적지 않았다. 지영이 뭐 아무리 사회적 공헌을 하는 입장이라지만, 회사에 계약되어있는 만큼 작품에 출연할 땐 제값을 받아야 하는 게 당연했다.
그렇게 번 돈도 상당했다.
그것도 당장 고등학생이 벌기는 절대 불가능할 정도로.
그래서 돈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명예?
지영이 원하는 명예는, 이쪽에 없었다.
애초에 지영은 명예를 탐하는 성격도 아니었다. 지영은 명예보다, 살아 있다는 생동감을 더 바라는 편이었는데 이는 당연히 회귀 전의 기억 때문이었다. 그래서 솔직히 루이비통이 자신을 선택했다는 사실에는 좀 놀랐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난 지금, 시큰둥해졌다.
“네. 거절해 주세요.”
“…….”
임은진은 이번만큼은 응, 알았어. 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엄청나게 간절한 눈빛으로 이건 하면 안 될까? 하고 보는 것도 아니었지만, 쉽게 포기하기 힘든 눈빛은 확실했다. 하긴, 자신이 맡은 연예인이 루이비통의 선택을 받는다는 건, 그건 임은진 같은 매니저에겐 정말 영광된 일일 것이다.
그게 깨달아졌지만, 그래도 신념은 신념이었고, 친구들과의 약속이 있기에 임은진의 바람을 들어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이는 친구들이 다 같이 CF도 하자. 라고 합의가 되지 않는 이상 절대 지영 혼자 그걸 깰 생각이 없었다.
“죄송해요. 거절해 주세요, 누나.”
그래서 지영은 거절했다.
아주 단호하게.
임은진은 그런 지영의 기세에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렇게 전할게. 일…….”
뒷말은 거의 기어들어 가서 들리지 않았지만 일단은, 이라고 하려던 걸 여기 있는 누구나 다 알고 있었다. 임은진이 풀이 죽어 나가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정한 룰을 자신이 깰 수는 없으니, 지영은 지금 판단이 잘한 판단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녀가 완전히 밖으로 나가자 한숨과 함께 몸을 돌린 지영은 흠칫 굳었다.
임은진이 떠나고 났지만, 아직도 보스몹 셋이 기다리고 있었다.
루이비통의 광고를 거절한 지영을 놀란 눈으로 보고 있는 세 명의 사람. 이연과 심수정, 강서훈이었다. 심수정이야 여성이니 루이비통이란 브랜드를 당연히 안다. 하지만 이연과 강서훈은 이 바닥에 오래 있었던 만큼, 루이비통의 선택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를 안다.
이런 패션 브랜드의 선택은, 별 볼 일 없는 배우도 탑스타로 급부상시킬 정도의 힘을 가졌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명품 브랜드에서 아무런 인지도도 없던 한 연예인을 찍었다고 치자. 그럼, 이런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선택한 배우다.
우리가 선택한 모델이다.
너희는 못 알아봤지만, 우리는 알아봤다.
이런 메시지를 보내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은 알아서 곡해하고, 그 사람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전까지 그 배우가 드라마에서 거지역, 백수역, 못난 삼촌이나 동생 역을 맡았어도 패션 브랜드가 선택하는 순간 이미지는 완전히 바뀌어버린다.
그리고 그가 입고 들고, 걸치는 모든 게 그 브랜드의 것이 되고, 사람 자체는 달라진다.
그걸 브랜드가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게 브랜드의 힘이고, 가치였다. 그러나 지영은 이미 완성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그런 힘이 필요 없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지영이 이걸 거절했다는 거였다.
“지영아. 너 지금 루이비통 거절한 거?”
“네.”
“아니, 왜?”
이연은 진심으로 궁금했다.
혹시 이 동생이 루이비통을 몰라서 그런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루이비통은 산에서 한평생 밭만 갈던 할머니도 아는 게, 루이비통이었다. 아마 그분들에겐 나성이나, 루이비통이나 비슷하게 대단한 건가 보다. 하는 이미지일 것이다. 그런 루이비통이다. 아무리 관심이 없어도 지영은 그것보다는 훨씬 자세히 알 것이다.
적어도 루이비통의 선택을 받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그 정도는 분명 알 거로 생각했다.
그러니 궁금해졌다.
아는데 대체 왜?
지영은 이연의 궁금증을 풀어줬다.
“저나 친구들이나 상업 CF는 찍지 않기로 했거든요.”
“아니, 그러니까 왜? 상업도 상업 나름이지. 다른 곳도 아니고 루이비통인데?”
“거긴 뭐 다른가요.”
“와, 이 씨…….”
이연은 순간 욕이 나오려고 했던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럴 만도 했다.
연예인이 사랑하는 브랜드는 있을 수 있다.
아주 많은 연예인이 루이비통, 샤넬, 발렌시아가, 입생로랑 등등의 브랜드를 사랑함을 대놓고 SNS나 공식활동을 통해 드러낸다.
하지만 브랜드가 사랑하는 연예인은, 아주 극소수였다.
특히 한국 한정으로 따지면 스물? 그 정도가 될까 말까 했다. 이것도 높아진 K팝, K드라마의 위상 때문에 늘어난 숫자였다.
어쨌든, 성공한 아이돌에서 성공한 배우로 전향한 이연도 이런 브랜드의 선택은 받아본 적이 없었다. 쇼에 초대되어 가본 적은 있어도 자리 채우기 게스트 정도였다. 지영처럼 대놓고 찍자! CF! 우린 이미 결정했다! 너만 오케이하면 된다! 하는 꿈같은 상황은 경험 전이었다.
아니, 그녀는 아마 자신이 은퇴할 때쯤에도, 그건 경험하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다.
브랜드가 사랑하는 이미지는 확고하다.
해마다 변할 때도 있지만, 고정되어 있을 때도 있다.
독특함을 넘어선, 그 사람만의 에너지와 이미지가, 철학이 딱 느껴져야 했다.
그걸 아우라라고 하던가?
이연은 자신에게 그런 아우라는 없음을 알고 있었다. 아니, 있긴 해도 그게 브랜드가 사랑하는 아우라는 아니었다.
반면.
그녀는 지영을 빤히 봤다.
그리곤 대번에 이해했다.
묘하게 중성적인 외모에, 그가 지금까지 이룩한 것들.
이도 저도 아닌 중간이 아니라, 이쪽에서도 최고의 반열에 이미 올라서고 있고, 저쪽에서도 최고의 반열에 올라선 선수였다. 그런 최고가 가진 여유와 강함, 그런 것들이 강지영이란 인간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신기하게 이연은 그걸 보는 순간 알 수 있어, 올라오던 질투와 짜증이 사르르 가라앉아 갔다.
“와, 대박…….”
반면 심수정은 그런 지영이 신기하기도 하지만, 질투를 숨기지 못한 눈으로 바라봤다. 아직 감정 컨트롤이 불가능한 심수정. 이연은 그런 심수정의 머리를 손날로 톡 쳤고, 아얏! 하고 심수정이 찌그러지자 강서훈이 나서서 축하한다고, 진심을 담아 말해줬다.
세 사람 중에 가장 담담해서 그런지 지영도 꾸벅 고개를 숙이며 감사합니다, 하고 말았다.
하루?
아니었다.
고작 30분 만에 지영이 루이비통의 CF를 제안받았지만, 거절했다는 소식이 현장 전체를 강타했다.
새벽인데도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뭐 그럴 수밖에, 한 사람에게 얘기하면 그 사람이 톡에다가 따다다! 올리는 순간 곧장 퍼지는 거니까.
사실 지영은 대단한 곳인 건 알지만, 이렇게까지 할 곳인가? 하는 생각을 어쩔 수 없이 하고 있었다. 지영이 협찬받아서 입는 옷은 있긴 있다. 하지만 고가는 아니고, 적당한 브랜드의 제품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니 몇 번 받지도 않았다. 그럼 평소엔? 그냥 가벼운 운동복, 활동복 차림이었다. 운동할 때는 스포츠 의류의 기능성 제품이고, 도복을 입으면 그건 그냥 도복이다. 유명한 스포츠 브랜드 A사 도복 같은 경우 50이 넘기도 하지만 뭐 그건 패션용이 아니었다.
그래서 새벽인데도 현장이 시끄러울 정도인지, 솔직히 체감하진 못했다.
그러나 새벽 늦게 숙소에 갔다가 3시간 정도 자고 다시 현장에 나왔을 때, 지영은 이번엔 확실히 체감할 수밖에 없었다. 지영이 자는 동안 올라온, 루이비통의 공식 채널에 올라온 유도복, 무도복 때문이었다.
이미 만들어진 작품.
그리고 아래 코멘트에는, 정확히 지영이 언급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