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28화
228화. 스캔들(1)
연초다.
1월 1일.
2024년 1월 1일에, 지영은 정말 뜬금없는 폭탄을 안아 들고 말았다.
“……진짜요?”
-응. 미안한데 진짜야. 지영이 너 열애설 났어. 지금 인터넷 못 해?
임은진의 말에 지영은 잠시 주변을 둘러봤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전을 부치고 있는 양유진과 어머니가 보였고, 다이어트해야 한다면서 김지영 여사님이 만든 잡채를 날름날름 주워 먹는 양지원과 강한결이 보였다.
“어머니, 이거 간 맞아요?”
“응? 어디. 음, 괜찮네. 간 잘 맞네.”
“오빠, 이거 맛있다.”
“그래? 다행이네. 엄마, 맛있대요.”
“아 오빠!”
하루 만에 극단적으로 변한 풍경이었다.
1월 1일 지영은 급히 예약한 강원도의 펜션에 와 있었다. 같이 온 사람은 지영과 어머니. 강한결과 강한결의 가족. 그리고 양지원, 양유진 자매였다.
어머니는 새해를 맞아 양유진을 초대하고 싶어 하셨다.
그러나 양유진이 혼자 충주에 오는 건 좀 무리가 있었다. 충주에 오게 되면 동생 양지원이 혼자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가뜩이나 시끄러운 상황에 양지원을 혼자 둘 수 없어서 난감하던 차에, 비슷하게 난감하셨던 김지영 여사님이 어머니에게 차라리 펜션을 예약하고 다 같이 보자고 제안하셨다.
어머니는 당연히 좋아하셨고, 조금 부담스러워할 것 같았는데 양지원도, 양유진도 오히려 좋다면서 수락했다. 생각해 보니까 새해에, 단둘이 말고 다른 사람과 같이 있는 건 정말 보육원에서밖에 없었을 두 사람이라서, 가슴이 좀 아팠다.
이 스케줄은 지영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넘어오는 도중 결정됐고, 인천공항에 도착해 입국 수속을 마쳤을 때쯤 펜션도 예약 끝났다. 그래서 지영은 공항에서 대표팀과 헤어지고, 임대성 코치와 인사를 한 뒤, 바로 강한결과 강원도로 움직였다.
이미 예약을 해둬 둘은 바로 도착해서 그냥 뻗었고, 다음 날인 1월 1일 12시 전에 어머니를 포함해 양유진, 양지원 자매까지 전부 펜션에 모였다.
그리고 시작된 신정.
갑작스럽게 보였지만 지영은 불만이 조금도 없었다. 오자마자 눈 내린 강원도의 절경을 팔짱을 꼭 끼고 구경에 나선 양유진과 어머니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분이 좋았다. 자신이 뭔가 뒷전으로 밀린 기분이었지만, 지영은 적잖은 경험으로 저렇게 관계가 좋은 게 얼마나 어렵고, 좋은 건지 잘 알기 때문에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구경을 마치고 오후 2시쯤부터는 음식 만들기에 돌입했다.
아침부터 장을 봐서 오셨는지, 아니면 이미 봐두셨던 건지, 바리바리 싸 온 짐을 풀어서 어머니와 여사님이 소매를 걷고 음식을 만들기 시작하셨다.
그렇게 2시간쯤 지난 지금, 지영은 임은진에게 전화를 받았다.
전화 내용은 자신의 스캔들 기사였고, 열애설 상대는 눈앞에 행복한 양유진이 아니라 이연이었다.
하필이면 이런 순간에.
양유진과 양지원, 어머니까지 있는 마당에.
“아 진짜 씨…….”
그래서 입에 절로 욕이 담겼지만, 지영은 초인적인 인내로 그 말을 끝까지 뱉지 않았다. 하지만 즐겁던 표정이 무너지는 건 막지 못했다. 후우. 얼굴을 쓸어내린 지영은 슬그머니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휘잉!
칼바람이 몰아쳤다.
대낮인데도 한밤중에 몰아치는 바람처럼 차갑고, 날카로운 바람이었다.
-지영아?
“네, 누나. 잠깐 밖으로 나왔어요. 후우. 죄송해요. 새해부터.”
-이게 네가 미안할 게 뭐가 있니? 누나가 일단 5분 뒤에 전화할 테니까 기사부터 확인해.
“네.”
지영은 공터 한쪽에 있는 비닐하우스로 들어갔다.
안에 난로를 피워 훈훈했다.
하지만 마음엔 여전히 삭풍이 불었다.
인터넷에 접속해 자신의 이름을 치자, 임은진이 말한 것처럼 이연과 연애 중? 이라는 기사가 한가득 보였다. 지영은 일단 아무 기사나 들어가 봤다. 사진이 가장 먼저 보였다. 이연과 자신의 사진이 맞긴 맞다.
“아 이거…….”
첫 번째 사진은 나의 무사님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의 사진이었다. 카페 밖에서 찍은 사진이고, 이연이 나의 무사님을 설명하면서 조금 씁쓸한 표정을 지었을 때 찍힌 사진이었다. 천재 정은정 작가의 대본, 그걸 완벽하게 소화하지 못하는 자신, 그걸 설명할 때 표정이다.
반대로 지영의 얼굴은 옆면만 뒤쪽에서 찍어서,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다른 기사들에도 사진이 몇 장 있었다. 지영과 이연이 함께 있는 사진은 맞긴 맞다. 합성이나 이런 건 아니었다. 하지만 아주 미묘하게, 주변 풍경을 컷한 사진들이었다.
심지어 나의 무사님 촬영 사진도 있었다.
드라마에서 맡은 배역상, 촬영 중에는 이연과 스킨십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지영은 연을 지키는 재의 역이었고, 재는 호위무사였다. 그래서 손을 잡고 뛰거나 안고 막고, 공주님 안기로 안아 도망치는 이런 신들이 다수 있었다.
그런 신들을 교묘히 편집한 사진들이었다.
이런 장면을 찍을 때 당연히 애틋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걸 부각하니 당연히 분위기가 묘한 컷들이 나왔다.
애초에 이건 편집 방향에도 있었다.
은근한, 미묘한.
연이 재를 바라볼 때 그런 느낌의 표정을 짓는 건 애초에 연의 감정이 맞았다.
하지만 그건 극 중 연의 감정이고,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을 때 이연의 감정은 결단코 아니었다. 실제로 드라마를 찍으면서 지영은 이연과 장난은 쳤어도, 은근한 뭔가는 조금도 없었다.
환장하는 기사들이다.
이건 조작이었다. 전혀 없었던 일이었다.
띠링.
[새해에 보통 열애설 많이 터지잖아? 이번에도 의도적으로 오늘 터뜨린 것 같아. 오늘 터뜨리면 가짜 찌라시 스캔들도 아 진짜? 하게 될 수도 있거든.]
임은진의 메시지를 보며 지영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 연예계 열애설 중, 가장 핫한 것들이 터지는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언제부터 시작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새해에는 아주 대형스타들의 열애설이 거의 매번 터졌었다. 증거를 잡고도 기자들이 고이 보관하기도 했다.
왜?
일반 네티즌들도 오늘은 누가 터질까? 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마음을 충족시키기 위해 디스팩트 같은 언론사는 열애설을 이미 확보하고도, 고이 모셨다가 새해에 터뜨린다.
그런 경향이 있다 보니까, 확실히 진짜 인지 믿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미치겠네, 하하.”
하필이면 오늘이다.
기분 좋게 다들 전을 만들고 신정을 보내는 오늘, 악의적으로 열애설 기사가 나갔다. 저 안에는 지금 연인 양유진이 있고, 그녀의 동생도 있다. 그리고 어머니도 있었다. 이렇게 모인 전부가, 정말 즐거워하고 있었다.
특히 양유진은 ‘가족’ 자체를 원했었다.
그리고 그 가족은 온전한, 완전한 의미의 가족이었다.
세상천지에 동생과 나, 단둘 말고.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고. 내가 힘들 때 힘들다고 품에 안겨 울 수 있는 온전한 가족 전체를 원했다.
그래서 저 안에 사람 중, 오늘 누구보다 좋아하는 사람은 양유진이었다.
워낙에 밝고, 붙임성도 좋아서 강한결의 가족과도 이제는 격의가 없는 사이가 된 그녀는 이렇게 다 같이 있는 걸 너무 좋아했다.
그런데, 스캔들이 난 거다.
기가 막힌 말도 안 되는 찌라시가 터져버렸으니, 이제 그녀의 기분이 어떻게 될지야 안 봐도 눈에 선했다.
“후우…….”
제대로 걸렸다.
이건 해명한다고 해도, 일단 지영에게는 큰 상처를 이미 다가오고 말았다. 동시에 화가 났다. 대체 왜 그럴까? 왜 이렇게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걸까? 정말 유명한 명대사처럼,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그거 하나 때문에 그러는 걸까?
지잉.
지잉.
임은진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네, 누나.”
-지금 강원도라고 그랬지?
“네, 내려갈까요?”
-아니, 그럴 필요는 없지. 이건 회사 차원에서 대응할 문제지.
“……네. 누나.”
회사를 믿어야 했다.
이런 쪽으로는 잔뼈가 굵은 임은진을 믿고, 기다리는 것밖에는 없었다. 가만히 있으면 호구가 되는 거지만, 그래도 지금은 그녀를 믿을 때였다.
“네, 누나. 기다릴게요.”
-그래, 후우. 너무 걱정하지 말고! 예전이랑은 달라서 이런 건 이제 꽤 큰 책임을 져야 하거든. 이런 쪽으로 잘하는 변호사도 있고. 누나가 준비해 놓은 것도 있고. 아, 대표님 전화 온다. 끊는다?
“네, 고마워요.”
전화를 끊은 지영은 친구들 톡방을 열었다.
이미 친구들도 기사를 읽었는지, 토닥거리는 이모티콘이 몇 개 와 있었다. 강한결만 답이 없고, 숫자가 1이 남은 걸로 보아 안에서 깨를 볶느라 아직 못 본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직접 말해야 할 때였다.
이건 어차피 오늘 안으로 무조건 알게 될 얘기였다. 그러니 직접 말하는 게 양유진에 대한 예의였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자신은 분명 떳떳하지만, 이런 일은 가족은 물론이고 연인을 힘들게 하는 일이라는 걸 누구보다 지영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천근이 달라붙은 것처럼 발이 잘 떼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영은 곧 당당해야 한다는 생각에 각오를 다졌다.
그런 마음으로 안으로 들어왔더니, 이미 이쪽에도 전달이 됐는지 분위기가 묘했다.
하지만 그래도 지영을 의심하는 눈빛은 아니었다. 딱한 눈빛으로 보는 시선이었다. 계속해서 공격받는 지영을, 안쓰럽게 보는 눈빛들이었다.
“괜찮아요?”
양유진이 가만히 다가와 올려다보며 그렇게 물었다.
그녀는 조금도, 정말 조금도 기사를 의심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지영을 철석같이 믿는, 그런 눈빛이었다.
그에 무겁던 마음이 사르르 풀렸다.
“그럼요. 누나는?”
“저도요.”
그렇게 대답하면서 배시시 웃는 양유진.
다행이었다.
그녀가 믿어주고, 가족이 믿어줘서. 흔들릴 거로 생각했지만 조금도 그런 기색 없이, 지영은 새해를 마저 보내기 시작했다.
* * *
하지만 당사자가 그렇게 아무렇지 않다고 해도, 여론은 그렇지 않았다. 배우 강지영과 이연의 열애설은 생각보다 문제가 컸다.
왜냐고?
지영은 미성년자고, 이연은 성인이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이연은 스물 후반이라, 나이 차이도 제법 났다.
쾅!
작디작은 주먹인데, 그게 테이블에 떨어지자 엄청난 소리와 함께 박력을 자아냈다.
“대표님.”
“어? 어, 연아. 하하, 진정 좀 하자. 응?”
“제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을까요? 지금 인터넷에서 저보고 뭐라고 그러는지 아세요? 민짜 잡아먹은 미친년이라고 그래요!”
“어? 누가! 어떤 미친놈이!”
“인터넷이요! 인터넷이! 그러니까 사람들이 그런다고요!”
이연은 화가 잔뜩 났다.
솔직히 어처구니가 없었다.
휴식기 루틴대로, 12시쯤 일어나 모닝커피로 점심을 시작하는데 갑자기 친한 언니나 동생들에게 톡이 와르르 오기 시작했다. 새해 인사인가? 싶어서 봤다가 그녀는 눈을 의심해야 했다.
[어머, 미친년! 너 잡혀가, 이년아!]
[너 제정신이니? 걔 고등학생 아니야?]
[언니 개 능력자……. 와, 진짜. 와!]
[언니 부럽다…….]
[넌 진짜 운동하는 애들만 보면 사족을 못 쓰지?]
등등의 톡.
처음엔 이게 뭔 소린가 싶었다.
그러다 아는 동생이 띄워준 링크를 타고 들어갔다가 그녀는 새해 열애설 기사로 자신이 찍혔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뭐 이런 기사야 아이돌 때부터 지긋지긋하게 났었으니까.
하지만 그 대상이 강지영이란 걸 알았을 때는 너무 놀라서 커피잔을 그대로 자유 낙하시켰고, 파편에 발등이 살짝 찢어지고, 뜨거운 커피에 반대쪽 발등은 미약한 화상까지 입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열애설 대상이 고작 고3인 강지영이라는 게 중요했다.
그녀는 급히 기사들을 살폈고 교묘히 조작, 편집된 사진들이 증거랍시고 사용됐다는 걸 알게 됐다.
당연히 이건 정정 기사를 내면 되는데, 하필이면 오늘이 새해였다.
톱스타들의 열애설만 터진다는 새해, 1월 1일이었던 거다. 그래서 친한 언니 동생들도 다 진짜인지 알고 그런 톡을 보낸 거고.
어처구니가 없는 걸 넘어서, 그녀는 진짜 크게 분노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고등학생이다. 나이 차이가 거의 10살에 가까운! 자기 친동생보다도 어리다! 그래, 지영이 정말 성숙하다는 거야 자신도 알고, 같이 드라마를 찍었던 전부가 아는 사실이었다.
고작 고3이면서도, 못해도 나이 서른은 된, 사회 경험이 적어도 몇 년은 쌓인 친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그는 고3이었다. 아직 주민등록증에 잉크도 마르지 않은! 편의점에서 술도 못 사는! 그런 민짜였다.
이게 뭘 뜻하냐면, 진짜면 범죄나 다름이 없는 거다.
사랑이란 단어를 가져다 붙이면, 둘이 같이 우리 둘은 서로 사랑합니다! 하면 수갑은 면하긴 하겠지만, 최소 천인의 지탄은 피할 길이 없는 문제가 될 거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러지 않다는 거다.
열애설은 찌라시였다.
드라마가 끝나고 간혹 연락을 주고받긴 하지만, 그건 같이 드라마를 동료애 정도가 전부였다. 아니, 그냥 착하고 의젓한 동생의 안부를 묻는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동생과 졸지에 연인이 되는 범죄가 일어났다.
절대, 참을 수 없는 문제였다.
“대표님. 저 재계약, 이거 얼마나 잘 해결해주시는지 보고 정할게요.”
“어, 어?”
“길게 못 드려요. 일주일! 일주일 안에 결과 가져오세요.”
“어, 야! 아무리 그래도 일주일은…….”
이연은 더 듣지 않고 대표실을 나왔다.
뿌득!
서슬 퍼런 그녀의 기세에 새해에 강제로 출근 당한 직원들이 슬그머니 고개를 숙였다. 탑배우의 이유 있는 갑질은, 생각보다 매우 무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