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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227화 (227/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27화

227화. 가노컵(21)

예선부터 준결승까지 뜨거웠다면.

결승전은, 싱거웠다.

황금세대는 1회전부터 준결승까지는 위기가 있었다. 천재랑 맞붙기도 하고, 점수도 빼앗기고 하는 위기가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가장 피가 튀겼어야 할 결승전은 정말 너무나 쉽게 게임이 끝나버렸다.

임효중은 업어치기로 딱 1분 만에 금메달을 확정 지었다.

강한결도 어렵지 않게 2분 만에 업어치기로 한판을 확정 지었고, 준결승전에서 지영을 긴장하게 했던 황석도 30초 만에 밭다리 되치기 한판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의 날이었다.

전체 일곱 개의 체급 중에, 총 세 개의 금메달을 가지고 오며 도합 여섯 개의 금메달을 확보해, 대회 성적 1위를 달성했다.

병원으로 실려 갔던 오연선도 다행히 검사 결과 큰 문제는 없었다.

혹시 쇼크가 올지 몰라서 철저하게 검사를 받은 결과, 가벼운 영양실조 증상과 출혈이 겹쳐 생긴 어지럼증이었다. 링거를 잘 맞고, 잘 먹으면 자연히 회복되는, 그런 정도였다. 이마의 상처도 다행히 머리카락 안쪽이 찢어진 거라서 아물고 나면 겉으로도 보이지 않을 거고, 큰 문제는 없을 거라고 했다.

그렇게 가노컵이 마무리됐다.

30일.

연말이라 도쿄는 분주했다.

대회가 늦게 끝났고, 돌아가는 비행기 예약이 내일이라 하루는 도쿄에서 보내기로 했다.

도쿄의 거리.

호텔 근처는 허락이 되어서 지영은 친구들과 함께 나가기 전, 라운지의 카페에 먼저 들어갔다. 나가서 놀기 전에 해결해야 할 게 있기 때문이었다. 강한결은 시합이 끝나고 이미 기사가 올라온 걸 확인했다.

그리고 시상식이 끝나고 숙소에 와 씻고 외출을 나온 지금까지, 표정의 변화는 조금도 없이 담담했다.

그리고 담백하게 답을 내놓았다.

“공개 연애할 거야. 지원이랑 상의했고, 그렇게 하기로 했다.”

역시.

깔끔한 강한결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예상은 하고 있었다. 이런 주제로 이미 지영은 강한결과 심도 깊이 대화를 나눴었다. 지영이야 아직 걸리지 않았지만, 먼저 걸리면 언제고 사실대로 밝힐 생각이었다.

“잘 생각했네. 그럼 어떻게? 근데 우리가 막 연애한다고 기자 회견하고 그런 건 아니잖아. SNS에 손편지라도 써서 올려야 되나?”

이성진의 질문에 강한결은 고개를 저었다.

“굳이 안 그래도 돼. 지원이랑 찍은 사진 틈틈이 SNS에 비공개로 올려놨어. 그날그날. 그것만 공개로 풀면 알아서 지원이 남자친구가 누군지 알게 될 거야.”

“헐, 그걸 생각해서 벌써 비공개로 올려뒀던 거야?”

“응.”

강한결의 준비성 넘치는 대답에 다들 입을 벌렸다. 그리고 그건 지영도 마찬가지였다. 강한결은 그런 지영을 오히려 웃으며 놀렸다.

“지영이 넌 안 올렸지?”

“……응. 와, 난 생각도 못 했다.”

“하하, 말해줄 걸 그랬나?”

“그러지 그랬냐. 나도 이제라도 올려야겠다.”

“그렇게 해. 나도 나지만, 분명 너한테도 사람 붙을 텐데.”

“응, 그래야겠다.”

강한결의 방법은, 정말 지영이 생각도 못 한 방법이었다.

비공개로 올렸지만 올린 시간은 무조건 남는다. 그건 어떻게 조작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니 그간 차곡차곡 쌓은 증거이자, 행복했던 순간을 공개로 돌리는 걸로 양지원이 누굴 만나는지에 관한 의문은 한 방에 해결이 될 거였다.

역시 천재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그런 쪽으로 나는 확실히 범재네. 아니, 둔재인가?’

SNS를 이용한 준비.

이건 정말 깜짝 놀랄 만한 준비였다. 그러나 그걸 준비한 게 강한결이라서, 그럴 만하네, 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뭐가 달라도, 참 다른 친구.

지영은 피식 웃고는 폭신한 소파에서 일어났다.

“얘기 끝?”

“응. 그거 공개하면 끝인데 뭐. 11시까지니까 얼른 좀 돌고 오자. 배도 고프고.”

“오케이! 난 효중이랑 쇼핑 먼저 할 건데, 너넨?”

“난 석이랑 밥. 한결인?”

“나도 쇼핑부터. 그럼 석이랑 지영이랑 둘이 가고, 우린 셋이 갔다 올게.”

“응.”

그렇게 바로 팀이 나뉘었다.

친구들과 찢어진 지영은 황석과 함께 근처를 천천히 둘러보며 걸었다. 예전에 무도관 앞 호텔과는 다른 느낌의 맛이 많이 났다. 정확한 지명은 모르지만, 일본 중심지가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는 얘기를 얼핏 들었던 것 같았다.

“석아. 여기 어디라고 했지?”

“이케부쿠로.”

“아, 유명한 곳이구나.”

일본에 별로 관심이 없는 지영도 들어본 적이 있는 지명이었다. 일반인에게는 긴자, 신주쿠, 시부야 등과 함께 도쿄 하면 가장 유명한 지명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당연히 사람도 많았다. 지나가는 인파의 절반은 직장인 같지만, 놀러 나온 젊은이들도 엄청 많았다.

샛노란 탈색, 피어싱, 일본 특유의 껄렁함으로 무장한 양아치들도 곳곳에서 보였다.

일본은 일본이었다.

다행히 그런 사람들과 시비는 없었다. 사람이 많은 곳은 별로라 좀 더 둘러보는데, 황석이 한 곳을 툭툭 쳤다.

“저기 어때?”

포장마차다.

그런데 사람이 별로 없었다.

“저기?”

“응. 나오는 사람들 얼굴 봤는데, 되게 만족스러웠어. 맛있으니까 그런 표정 지은 게 아닐까?”

“진짜? 그럼 맛집이지.”

입맛이 진짜 독특한 게 아니라면 황석이 말한 게 맞을 것 같아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은 네 명이 있었다. 직장인으로 보이는 여성 셋, 노년의 신사 한 분. 그리고 우람한 근육질에, 추운 날씨인데도 반 팔을 입어 팔뚝 가득 보이는 문신이 매우 인상적인 주인장이 이랏샤이마세! 하고 인사를 했다.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자, 석이가 메뉴판을 보며 설명을 해줬다.

그래도 연희고 아이돌 중에서는 일본어를 가장 잘하는 황석이었다. 지영은 우동 하나와 어묵을 시켰고, 황석은 지영도 모르는 메뉴를 줄줄 읊어 시켰다.

“코리안?”

그때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30 초반? 중반?

진한 화장과 화려한 복장을 하신 회사원 여성분이었다. 지영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뭐라고 또 했는데, 알아듣지 못했다.

“일본어 좀 하냐는데?”

“못한다고 해.”

그 말을 황석이 통역해 주자, 담배를 꺼내 입에 물더니 불을 붙였다. 이건 일본 쪽 문화였다. 요즘 좀 사라졌다고 들었는데 포차라서 그런가, 대놓고 담배를 무는 캐릭터가 있을 줄은 지영도 몰랐다.

그리고 음식이 나오기 전에 갑자기 시작된 대화였다.

하지만 이미 음식을 시켰으니 빼기도 뭐해서, 지영은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연예인이지? 음, 운동선수 겸 배우.”

자신을 아네?

지영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손가방에서 명함을 꺼내주는 여성.

“아, 패션잡지 에디터시네. 직급도 높아. 부장? 사이티 에리카.”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지영은 신기하게도 굉장히 도회적이란 느낌이 들었다. 외모도 그렇고, 이름도 그렇고. 자신을 어떻게 알았나 했는데 패션잡지 쪽에서 일하면 자신을 모르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하긴 했다.

반짝반짝.

같은 회사에 다니는 게 분명한, 여성 둘도 지영을 이제 대놓고 바라봤다.

흥미, 이성으로서의 호감보단, 다른 눈빛이었다. 그리고 지영은 저런 눈빛을 본 적이 있었다.

‘예술가의 눈빛이지.’

지영은 지금 자신이 지금 아주 잘생긴 마네킹이 되어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런저런 옷을 입혀보고, 메이크업하고, 머리 스타일을 바꾸고, 표정을 고쳐가면서 요구에 따라 포즈를 잡는, 모델이 되었을 거로 생각했다.

“모델 제의를 해보고 싶은데, 귀국은 언제야?”

당당하고, 아주 단호하게 날아든 목소리.

“내일이요. 그런데 그건 제 소속사로 해주세요.”

“소속사로 당연히 할 생각이긴 하지. 그런데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인연이니, 물어볼 수는 있잖아? 어때. 할 생각 있어?”

목소리에 자신감이 이렇게 넘치는 걸로 보아 저 바닥에서는 생각보다 거물인 것 같았다. 황석도 좀 찾아봤는지, 유명한 사람이래. 하고 언질을 줬다. 신기했다. 그리고 보니, 마스크를 쓰고 있었는데 어떻게 알아봤지? 그래서 지영은 그걸 물어봤다.

“어제오늘 일본에서 가장 시끄러운 게 너인데, 고작 마스크 하나 썼다고 못 알아봤을까? 그리고 그 정도도 못 알아볼 안목이면 이 바닥 떠나야지. 그런 동태눈깔로 어디 패션 업계에서 일하겠어?”

시원시원한 말에 지영은 아, 그게 되긴 되는구나. 했다.

“그래서, 할 마음은 있어? 없으면 지금 얘기해 줘. 괜히 고생해서 제의 넣었는데 나중에 안 한다고 하면 우리 애들 힘만 빠지잖아? 안 그래?”

마지막 질문은 같이 온 동료에게 했는데, 그녀들은 듣자마자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죄송합니다.”

“좋다. 깔끔하네. 제가 무례하게 굴었으니까 계산은 제가 하도록 할게요. 이걸로 용서해 주세요. 좀 전의 모습은 제 일할 때 콘셉트입니다. 얕보이면 끝장인 세계거든요.”

“아아…….”

반말에서, 갑자기 분위기를 바꿔 일어나 정중히 고개를 숙여 사과하더니, 만 엔을 꺼내 사장에게 건넸다. 그러면서 먹고 싶은 거 다 먹게 해주라는 말을 덧붙였다. 신기한 사람이었다. 지금의 모습도 진짜인 것 같은데, 아까 그 모습도 진짜 같았다.

이중성.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지영은 사이티 에리카의 행동과 사과에, 별로 비슷하지도 않은데 기자들이 떠올랐다. 분명 이 여자의 행동에서 기자들을 떠올리는 건 오버고, 무리였다. 일본어로 하면 무리데스! 하고 욕먹을 게 분명하지만, 지영은 그렇게 느꼈다.

그래서 좀, 기분이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렇게 가라앉았던 기분도 나온 음식을 먹는 순간 확 사라졌다. 도로가 포장마차라 위생이며 뭐며 문제가 될 걸 찾으면 한도 끝도 없이 많겠지만, 맛은 진짜였다.

“와…….”

우락부락한 외모.

근육질에 팔 전체를 휘감은 잉어들의 향연에 사실 저녁은 실패했구나라고 생각했는데, 맛은 진짜였다.

우동, 어묵, 무조림. 계란 조림 등등, 황석이 추가로 시킨 모든 게 맛있었다.

씩.

그에 놀라서 고개를 들고 저도 모르게 주인을 보며 탄성을 흘리자, 씩 웃은 그가 맛있어? 라고 물어봤다. 황석의 통역을 들은 지영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양손으로 쌍 따봉을 날리면서.

그만큼 맛있었다.

그래서 지영은 천천히 맛을 음미하며 음식을 먹었다. 허겁지겁 먹고 싶기도 하지만,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천천히 음미해 주는 게, 잘못된 편견으로 포기했던 자신에게 주는 벌이자, 저 주인장에게 보내는 감사의 인사가 될 터였다.

양이 적지도 않았다.

작정하면 삼겹살 4, 5인분은 기본으로 끝장내는 지영의 배가 어느 정도 찼을 정도니까, 훌륭한 양이었다.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았고. 소소한 이벤트에 답답했던 기분이 금방 풀어져 버렸다.

기분이 안 좋을 때는 고기 앞으로 가라는 말처럼, 기분이 안 좋을 땐 맛있는 걸 먹으면 풀리는 건 확실히 맞는 말인 것 같았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혹여 양유진과 일본에 올 일이 생기면 꼭 같이 와보고 싶었다. 천천히 음식을 음미하며 먹었지만, 정신은 거의 뺏겼기 때문에 다 먹고 났더니 아까 말을 걸었던 에리카는 이미 가고 없었다.

값을 치르려고 본능적으로 지갑을 꺼내는데, 주인장이 만 엔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에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인 지영은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아, 여기 진짜 죽인다. 석아 진짜 잘 골랐다.”

“그치? 다행이다. 이거 맛 기억했다가, 은정이한테 말해봐야지.”

“은정이가 말해주면 할 줄은 알고? 이 정도는 아무리 은정이라고 해도 얘기만 듣고 따라 만들기는 무리일 것 같은데?”

지영의 말에 황석은 씩 웃었다.

그 미소에 가타부타 말이 없어서, 지영은 그냥 웃고 말았다. 소화도 시킬 겸 다시 걷는데, 눈이 오기 시작했다.

낮에는 기분이 참 더러웠었는데, 그래도 밤엔 기분이 좋아졌다.

다른 친구들에게 맛집의 위치를 알려준 뒤, 이케부쿠로를 탐방하듯 돌아다니다가 지영은 호텔로 돌아왔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영은 스무 살, 성인이 되었다. 지영이 스무 살이 되었다는 건, 새해가 되었다는 것.

그리고 새해에는 종종, 이벤트가 열린다.

스캔들이란, 큰 이벤트가 말이다.

1월 1일, 올해는 배우이자 운동선수 강지영의 스캔들이 터졌다.

그리고 스캔들 상대는…… 이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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