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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219화 (219/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19화

219화. 가노컵(13)

이튿날.

선수단과 함께 다시 경기장을 찾은 지영은 어제와는 다르게 고요해진 관중석을 보며 이게 무슨 일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지영은 오늘 경기장에 오지 말까도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건 전기정 감독의 의견이기도 했다.

괜히 이 상황에 지영이 모습을 드러내면 극우 관객들이 해코지를 할 수도 있어서였다.

그런 마음에 경기장 불참석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래도 친구들을 응원해야 한다는 생각에 경기장에 왔는데, 어제에 비하면 오늘은 완전 조용했다. 어제를 생각하면 이미 극우 단체에서 그득하게 차 있어야 했는데, 오늘은 그 반의반도 차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도 잠깐, 지영은 오히려 좋다는 생각에 아래로 내려갔다. 내려가서 지영은 친구들의 컨디션부터 체크했다. 여느 대회 때와 똑같이, 몸 상태들은 다들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급하게 감량을 한 것 치고는 안색도 나쁘지 않았다.

지영은 황석의 도복을 입고, 친구의 몸풀기를 받아줬다.

“컨디션 어때?”

“좋다.”

우직한 대답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한결과 임효중도 컨디션은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다행이었다. 솔직히 감량만큼 컨디션에 재를 뿌리는 것도 없다.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다가도 감량에 실패하면, 대횟날 컨디션은 아예 나락까지 처박힌다.

그러나 친구들은 일단 컨디션에 문제가 없어 보였다.

몸을 풀고, 시합 전 미팅이 시작되자 지영은 관중석으로 올라왔다. 관중석으로 올라오자, 어제 잠깐 모습을 드러냈던 신지가 히키라와 함께 다가왔다. 가볍게 악수를 하고, 히카리와는 눈인사만 한 뒤 조용히 구석 쪽에 앉았다.

“이렇게 모습 보여도 돼?”

“안 되면? 어차피 지금 수습하느라 정신도 없는데.”

“무슨 수습?”

“어제 특정 단체 동원해서 비매너 대회를 치른 거. 몰라? 지금 해외에서 난리잖아?”

“아 그래?”

몰랐다.

지영은 어제 호텔로 돌아와서 씻고, 어머니와 통화하고, 저녁을 먹은 뒤 양유진과 통화하고 바로 쉬었다. 아무리 진심을 다한 경기를 한 적이 없다지만 시합은 시합이었다. 한 번 시합이 끝나면 몸이 집단 구타를 당한 것처럼 아프다고들 하는데, 지영도 다를 건 없었다. 그래서 지영도 약을 먹고 이른 시간에 바로 잠들었다. 그래서 늦은 밤, 새벽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딱 보니, 뭔가 일이 있긴 있었던 것 같았다.

“아무래도 협회에서, 극우 단체를 섭외한 모양이야. 어제 왜 시합할 때 유독 시끄럽게 굴던 사람들.”

“아, 그 사람들. 알지. 진짜 그 사람들이 고용된 사람들이야?”

“응. 아마 너와 네 친구에게 압박을 주려고 했던 모양이야.”

“…….”

“부끄럽다, 정말. 미안해, 지영.”

신지의 사과에 지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어제도 그랬지만, 신지는 이번 일에 정말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솔직히 이번 일은 그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에게 잘못이 있다면, 태어난 나라가 일본이라는 점이었다.

“그런데 이런 걸 나한테 얘기해 줘도 괜찮아?”

“나는, 정정당당하게 너와 경기에서 맞붙고 싶어. 그러려면 우리 협회가 변해야 해. 더불어 한국 협회도.”

“…….”

경기장을 내려다보며 한 신지의 말에, 지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지영은 요즘 협회 때문에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지영은 솔직히 많은 걸 바라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자신이 시합을 뛸 여건만 있으면 충분했다.

그런데 그걸 오히려 한국 협회에서 바라지 않는 것 같았다.

일본도 한국도. 하아, 솔직히 이건 매우 답답한 상황이었다. 더 짜증이 나는 건, 앞으로 좋아진단 보장이 없다는 점이었다.

“올림픽 전까지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지영. 난 네가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줬으면 좋겠어.”

신지의 말에 지영은 저도 모르게 피식, 실소를 흘리고 말았다. 그러곤 그를 보며 물었다.

“혹시 내가 드라마 찍는 것 때문에 그래? 유도에만 집중하지 않아서?”

“그것도 분명 걸리긴 하지. 솔직히 하나에 집중하는 것과 양쪽에 분산 집중되는 것의 차이는 분명하니까.”

“그렇기야 하지. 그런데 걱정하지 마. 난 유도에 더 진심이니까. 내가 드라마를 찍으면서 폼이 떨어졌으면 이번 대회를 이렇게 풀어나갈 수 있었을까?”

“음…….”

“그것도 고작 10일 만에 감량하고 나와서?”

지영의 물음에 신지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확실히 지영의 말처럼, 지영은 컨디션이 최고조는 아니었지만, 실력 자체의 폼은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지는 지영도 솔직히 궁금하긴 했다. 본래는 천천히 폼을 올린 다음 감량에 들어가는 게 본래 스텝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수작으로 바로 살을 빼고 나와야 했는데도 신기하게 폼은 그대로였다.

‘분명 초반엔 별로였는데, 나중에 준결이나 결승 때는 솔직히 이전 대회보다 더 좋았어.’

육체가 완벽하게 컨트롤 되는 기분이 분명히 들었다.

폼이 떨어지면, 머리가 기술을 걸어도 육체가 쫓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몸 따로 머리 따로인 정도는 아니지만, 생각을 육체가 따라가는 게 늦어지는 경우가 생기는 거다. 그런데 이번 대회에 그런 느낌은 전혀 없었다.

생각과 동시에 움직이는 육체.

첫 경기는 아니었지만, 준결승과 마지막 경기까지. 육체는 완벽히 통제에 따라줬다.

그러니 지영이 드라마를 병행하는 건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걱정하지 마. 그리고 올림픽 때까지는 진짜…… 유도에만 집중할 거니까.”

지영의 말에 신지가 씩 웃었다.

이미 두 번이나 지영에게 진 신지지만, 그는 조금도 위축되어 있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빛내며 지영을 마주 봤다.

라이벌.

지영이 유일하게 인정한 라이벌의 눈빛은 강렬했다.

주변이 좀 어두워서 그런지 그런 느낌은 훨씬 강했다. 이렇게 반짝이는 눈빛을 보니 부담스럽기는커녕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후후, 역시. 참, 드라마는 정말 잘 봤어. 너무 재미있던데?”

“고마워. 근데 나는 뭐 별로 한 것도 없어. 대본이 좋았던 거지.”

“겸손하기는. 히카리. 이제 됐으니까 사인받지 그래?”

사인?

지영이 뒤에 앉아 있던 히카리를 바라보자 양 볼이 화르르! 맹렬한 기세로 순식간에 타오르는 히카리였다.

“무슨 사인이요?”

“이거…….”

가방에서 뭘 주섬주섬 꺼내서 보여줬는데, 예인으로 살어리랏다의 DVD 판이었다. 그리고 나의 무사님 DVD도 있었다. 일본에서 지영의 인기가 좋다는 걸 아는 제작사는 이미 한국에서 방영하면서도 일본어 자막이 들어간 DVD를 준비했다. 그리고 지영이 선수촌에 들어왔을 때쯤 일본에 풀렸다. 그때 얘기를 듣긴 했는데, 선수촌에 들어가면서 모든 신경이 유도에만 몰려 이쪽은 아예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지영은 DVD를 받아서 사인을 해줬다.

그러자 소중히 가슴에 품는 히카리. 팬심으로 눈이 반짝이는, 참 신기한 친구였다. 이런 여자가 도복을 입고 매트에 올라오기만 하면 세계에서 알아주는 선수로 변모한다. 특히 굳히기 쪽은…… 남자도 압도하는 실력자였다.

대단하단 말로는 부족한 천재들.

이런 천재들이 생각 또한 지극히 상식적이라 다행이었다.

지영은 막 매트로 올라가는 심판을 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이만 가볼게. 다음에, 올림픽에서 보자.”

“그래. 다치지 말고.”

“응, 너도. 히카리도.”

“네.”

짧게 작별 인사를 나누고 한국팀의 자리로 돌아온 지영은 이성진의 옆에 앉았다.

“신지가 뭐래?”

“어제 밤사이 뭔 일 있었나 본데? 그래서 이렇게 조용한 거라고 하더라.”

“아, 진짜?”

“응.”

지영은 폰을 꺼내 기사를 확인해 봤다. 일본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어제 종일 문제가 됐었으니까 한국에서도 기사가 나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런 생각은 역시 맞았다. 가노컵에 관한 기사는 역시 한두 개가 아니었다.

몇 개를 클릭해 들어가자, 해외에서 다시 가노컵에서 벌어진 일본 관중들의 비매너를 문제 삼았고, 그게 미국은 물론 프랑스, 영국, 독일 등에서 기사로 나갔고, 그 때문에 일본이 자기 얼굴에 먹칠했다는 것까지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일본은 세계를 향한 체면과 명분을 정말 중요하게 여겼다.

이런 문제가 발생해 버렸으니, 일본 협회는 어제 동원했던 극우 단체를 오늘은 아예 부르지도 않았다.

“참 멍청하지 않냐? 처음부터 아예 이러지 않았으면 괜히 변명하거나 숨길 일도 없을 텐데. 안 그래?”

이성진의 말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런 건 가능할 리가 없다. 그럴 거라고,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어, 효중이 나왔다!”

상념을 끊는 이성진의 말.

지영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막 경기장에 들어선 임효중을 바라봤다.

“임효중 파이팅!”

“효중이 파이팅!”

꺄아아아!

어제는 조용하던 일본 소녀 팬들이, 오늘 드디어 그 봉인을 막 풀었다. 열띤 응원을 받으며 들어간 임효중. 사실 요즘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을 꼽으라면 저 친구, 임효중이었다. 프로젝트 보이그룹으로 데뷔한 임효중은 벌써 방송 3사 1위를 전부 찍었다.

거기엔 어린 독지가 임효중의 이름값도 있지만, 일단 이 프로젝트를 나중에 ‘사들여’ 재기획한 박나정 팀장이 워낙에 좋은 곡과 춤을 들고 왔기 때문이었다.

아이돌 전성시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시작된 대 아이돌 전성시대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예전엔 예쁘고 노래 잘하고, 곡 좋고, 춤 느낌 있고, 콘셉트 확실하면 대부분이 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이상이 됐다.

기본 스펙 이외에, 좀 더 특별한 걸 원하는 시대였다.

임효중은 그 특별함을 제대로 갖추고 있었다.

임효중의 춤과 노래는 느낌이 있었다.

감정을 자극하는 보이스와 눈빛. 멤버들과 같은 것 같으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춤.

같은 멤버들과 융합도 잘 되지만, 솔로 파트에서 확실히 빛이 날 정도였다. 그래서 임효중은 데뷔 2주 차에 방송 3사를 싹 쓸어버렸다.

아직 영화가 개봉하지 않은 강한결.

이성진이야 2주에 한 번씩 꾸준히 나왔고.

황석은 차기작을 정했지만, 아직 들어가진 않았다.

제대로 활동한 건 지영과 임효중이 전부였는데, 드라마도 드라마였지만 임효중은 순식간에 아이돌계를 접수해버려 더욱 인지도가 높았다.

역시 임효중.

활동조차도 완벽했던 친구였다.

그런 임효중은 오늘 첫 게임부터 한일전이었다.

후지와라 소타로.

일본의 81체급 2선발이다.

그런 선수의 실력이 별로일 리는 없었다.

게다가 후지와라 소타로도 세계대회 경험이 제법 많았다. 19년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대회에 나오고 있는 후지와라 소타로다. 하지만 세계대회 성적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한국도 그렇지만, 일본도 81체급은 약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역시 무시할 레벨은 아니었다.

아무리 세계대회 성적이 없다고 해도 그간의 경험과 일본이란 나라의 국가대표라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되었다.

“임효중 파이팅!”

꺄아아! 효중 상! 간바레!

스무 명? 고작 그 정도가 전부인 소녀팬의 외침이었지만 이걸로 분위기가 확 살았다. 적진에서, 적진의 여성에게 응원까지 받는 임효중은 역시…… 대단한 놈이었다.

왼쪽 자세로, 잔뜩 긴장한 채 다가온 후지와라 소타로는 그의 허벅다리를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임효중의 허벅다리는 이성진의 업어치기만큼이나 정평이 난 기술이었다.

우아함.

이성진의 업어치기가 자비가 없는 싸늘한 느낌이 난다면, 임효중의 허벅다리는 그 자체로 우아한 느낌이 제대로 난다. 그런 그의 허벅다리는 경계한다고, 막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지영은 임효중의 허벅다리를 그렇게 경계하고, 또 경계해서 막아낸 선수를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건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홰액!

엇박자 스텝에 찍어 찬 허벅다리에 움찔했던 후지와라 소타로가 마치 새처럼 떠올랐다가, 홱 뒤집혀 매트에 처박혔다.

이틀째.

가노컵의 악몽이라 명명될 대회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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