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11화
211화. 가노컵(5)
아침부터 떠들썩했다.
새벽녘에 바다 건너편에서 시작된 기사 때문에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까지 같이 불타기 시작했다.
두 나라의 시차는 없고 그렇기에 아침을 시작하는 것도 비슷했다.
그래서 눈을 뜨자마자, 어젯밤까지 핫한 키워드였던 이 문제가 바다 건너편 프랑스에서 아주 진지하게 다뤄졌고, 세계인의 이목을 신경 많이 쓰는 일본에선 당연히 그걸 곧장 파악해서 아침 헤드라인으로 내걸었다.
일본에서 내걸었으니, 일본과 미리 프랑스 쪽 언론과 말을 맞추고 대기하고 있던 MBS에서 발 빠르게 대응했고, 아침부터 진짜 볼만해진 판이 만들어졌다.
프랑스는, 그 당시를 제대로 취재했는지 일본 네티즌들이 이시카와 사오리의 SNS에서 와서 어떤 말을 했었는지, 아주 제대로 풀어놨다.
어제 강지영에게 몰려가서 그렇게 뭐라고 했었던 기자들은, 전부 침묵했다.
자국민이 사오리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어차피 알고는 있었지만, 알면서도 그렇게 강지영을 몰아갔던 거였지만, 이게 이렇게 풀렸으니 이제 그를 압박하는 건 진짜 선을 넘어도 너무 넘는 거라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이 일로, 일본에 와 있던 외신들이 시합장으로 와버렸다.
그래서 지영의 심기를 건드려 경기력 자체를 죽이겠단 계획도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인터넷도 인터넷이고, 현실도 시끄러웠다.
호텔에서 나와 시합장에 모습을 드러낸 지영에게 다시 수십 개의 카메라가 향했다.
다만 어제처럼 앞까지 와서 그러진 않고, 멀찍이서 찍는 거라 그나마 괜찮았다.
짝짝!
“자자, 주변 신경 쓰지 말고 몸 풀자!”
전기정 감독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풀기 시작했다. 지영은 도복을 챙겨 입으면서 선배들의 얼굴을 살펴봤다. 아침 먹을 때도 나쁘지 않았는데, 지금도 확실히 나쁜 기색은 없었다. 지영이 이걸 보는 이유는 미안해서였다. 당장 어제까지, 지영을 노린 무례한 행동에 선수단 전체가 스트레스를 받았다.
유도선수뿐만이 아니라, 스포츠 선수 전부가 대체로 예민하다.
특히 당일 시합 뛰는 선수들은 지극히 예민해서 웬만하면 건드리지 않는다. 선수마다 다르고, 종목마다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날이 바짝 서는 건 다들 똑같았다. 게다가 유도는 감량이 필요한 종목이라서, 며칠간 죽도록 고생까지 했다. 그래서 컨디션이 바닥이면 어쩌나 했는데 선배들의 눈빛은 진짜 제대로 불타고 있었다. 우리 막내를 감히! 이런 느낌은 사실 정수원 한 명이 가장 강했고, 다들 한 성격들 하는 편인데 일본의 수작에 그들의 말로, 야마가 바짝 돌아버렸다.
특히 정수원의 눈빛이 가장 살벌했다.
안 그래도 삼백안에 가까운 정수원이다 보니 약이 오른 모습이 마치 초봄의 독사처럼 보였다.
지영은 몸을 풀었다.
“자, 30개씩 가자! 시작!”
“훅, 후욱!”
전담 코치 김재정을 잡고 지영은 빠르게 몸을 풀었다.
업어치기 30개, 허리후리기 30개, 밭다리 30개, 허벅다리 30개, 안다리, 안뒤축 연결 30개. 계속 30개씩 짧은 숨 돌리기만 주고 20분 가까이 움직이자, 몸에서 열기가 후끈 솟아났다. 원래 이 정도로 땀은 어림도 없었지만 그래도 어제오늘 체중에 신경 써서 좀 먹었더니, 확실히 땀이 잘 났다.
“헉, 허억. 허억.”
그리고 힘들었다.
이전 대회인 아시아 선수권보다, 바로 직전이었던 선발전보다도 더 힘들었다. 숨을 마시고, 뱉을 때마다 힘이 쭉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손발이 저릿하면서 힘이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았다. 감량할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증상이었지만 유독 이번엔 세게 느껴졌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역시 아니네.’
유독 힘들다.
이번이 유독 힘든 이유는 역시 감량을 본인만의 루틴대로 하지 못해서였다. 그래도 시합을 나갔던 짬이 있으니까 며칠 안 되는 시간 동안 억지로라도 체중을 감량한 거지, 아니었으면 어림도 없었다.
옆을 힐끔 봤더니 이성진도 역시 쪼그리고 앉아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러나 목은 반들반들하다. 제대로 땀이 나지 않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건 지영도 마찬가지였다.
“아, 돌겠네…….”
제대로 몸이 풀리지 않자 결국 짜증 가득한 혼잣말까지 터뜨리는 이성진. 지영은 그런 이성진의 어깨를 두들겼다.
“괜찮아?”
“어? 어어. 괜찮지. 끄응.”
앓는 소리를 내고 일어난 이성진의 얼굴은, 땀이 조금 나긴 했지만 그래도 줄줄 흐를 정도는 아니었다. 컨디션 관리 실패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지영이나 이성진은 황금세대 중에. 아니, 유도선수 중에서도 감량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특히 신장이 체급에서 가장 커서, 보통 한 번 감량하면 기본 8㎏ 정도였다. 이성진은 지영보다 1㎏ 정도 더 했고. 한 번 빼는 거야 문제없지만 이걸 1년에 몇 차례나 한다고 생각해 봐라.
그럼 진짜 맨정신에 이걸 할 수 있나? 싶은 마음이 들게 될 거다.
올해만 네 번이었다.
다른 충북권 선수들이 마지막 기회를 얻을 수 있게 전국체전을 포기하지 않고 뛰었으면 9월부터 다달이 체중을 뺐을 거다. 그럼 천하의 지영이라도 이건 솔직히 참기 힘들 정도의 스케줄이었다.
그런 만큼, 황금세대 중에서 둘은 정말 힘들게 감량을 한다.
가뜩이나 이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데, 망가진 루틴 때문에 오늘 몸을 푸는 순간부터 조짐이 좋지 않았다.
“지영 상!”
심지어, 저 끝에서 지영을 불렀다.
대회 스태프가 불러서 가봤더니, 체중을 다시 한번 재야 한단 얘기를 해줬다. 후우, 이건 짜증 낼 게 아니다. 매번 대회마다 이런 일이 있다. 그냥 제비뽑기로 선수 두셋 정도를 뽑아 체중을 재게 하는 거다.
대회 당일 체급에서 2㎏ 오버되지 못하게 하려는 뜻에서 만든 대회전 검사였다.
지영은 한 번도 체중을 다시 재본 적이 없지만, 그렇다고 영원히 안 걸릴 거란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다만 여기가 일본이고, 그런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둘 중 어느 쪽이라도, 지영이 여기서 날을 세워 얻을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래서 그냥 한숨과 함께 스태프를 따라가 체중을 다시 쟀다. 74.7㎏. 안전하게 통과였다. 사실 지영은 이렇게 될 수도 있단 걸 알았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지영뿐만이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다 똑같이 했다.
나는 아니겠지.
에이, 설마 내가 걸리겠어?
이런 안일한 생각을 하다가 설마에 발등 찍혀 계체는 통과해 놓고, 시합 당일 체중 오버로 실격당하는 선수가 더러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영은 물론이고, 황금세대도 그렇고, 다른 선수들 전부 체급에서 2㎏ 넘지 않게 조절했다.
체중을 재고 밖으로 나온 지영은, 곧장 물부터 찾았다.
이걸 조절하느라 안 그래도 죽는 줄 알았다. 실제로 자신이 체중계에 올라가서 좀 떨리긴 했지만 그래도 어쨌든, 이게 일본의 수작이건 뭐건 일단 이제부터는 리미트가 해방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시합이 있으니 과식은 당연히 하면 안 됐다.
삐이이!
훈련 시간으로 지정된 타이머가 울었다.
그건 곧 이제 시합을 시작하겠다는 뜻. 지영은 마지막으로 호흡을 터뜨리기 위해, 빡세게 몸을 움직였다. 5분. 거의 쉬지 않고 몸을 돌린 후에야 겨우 호흡이 터진 느낌이 났다.
“헉, 허억, 허억.”
상체가 저절로 앞으로 내려갔지만, 지영은 그걸 억지로 잡아당겨 세웠다. 아무리 힘들어 죽겠어도 숨은 세워서 다듬는 게 가장 효율적이었다.
그렇게 정말 힘들고, 힘든 준비 시간이 끝났다.
담요를 몸에 두른 지영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첫 게임에 들어가는 정수원을 바라봤다.
이번 대회를 가장 독하게 준비한 선배였다.
잔정이 많은 선배.
그래서 선수촌 선수들에게 정수원이 아니라, 츤수원이라 불리는 선배. 차갑고, 사나운 이미지를 가졌지만, 누구보다 마음은 따뜻한 선배. 그런 츤수원이 지영은 잘됐으면 했다. 사실 세계 랭킹도 높고, 나름 세계 대회 성적도 좋으니 나쁘지 않은 유도 인생을 보내고 있긴 했다.
하지만 메이저 대회 성적이 아쉬웠다.
1번 참가한 올림픽은 입상하지 못했고, 아시안 게임은 2위, 아시아 선수권은 3위, 세계 선수권은 2위였다. 보통 1위와는 연이 없는 정수원이었다. 그런 정수원의 커리어는, 이제 거의 막바지였다. 유도선수로서는 거의 황혼이기 때문에 길어야 다음 올림픽을 노리는 게 아마 그의 커리어 마지막이 될 것이다. 그런 만큼, 지영은 정수원이 마지막을 제대로 불태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영은 정수원을 제법 많이 도왔다.
정수원은 첫판에 강적을 만났다.
스페인의 가린시스 프란시스코가 첫판 상대였는데, 몸 상태가 진짜 최고로 좋아 보였다. 힘도 넘쳐 보이고, 몸도 정말 가벼워 보였다. 이런 선수한테는 제대로 걸리면 그냥 게임 끝이다. 이런 프란시스코와의 경기를 지영은 정수원과 함께 분석했다.
지영의 분석 능력은, 웃기게도 선수촌에서 거의 가장 좋은 축에 속했다.
거기에 제시하는 방법도 확실히 할 줄 알았다. 정수원은 첫판이 고비였다. 그 스스로가 항상 첫판에서 죽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을 정도였다.
그게 약점이다.
그럼 반대로 보자면.
“첫판만 넘기면, 경기력이 극단적으로 살아난다는 거지.”
“누구, 수원이?”
김재정 코치의 되물음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첫판 네가 봐줬다며?”
“네. 전부는 힘들고요. 첫판은 보니까 파훼법이 딱 보여서요.”
“그래?”
“네.”
파훼법.
가린시스 프란시스코의 유도는 완벽한 정석의 한 갈래였다.
그는 팔이 일단 정말 길었는데, 그걸 통해서 잡기 싸움에 엄청난 강세를 보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긴 리치를 가진 상대인데 정수원은 평균보다 팔이 조금 짧았다. 신장 역시 정수원이 확실히 작고, 프란시스코가 좀 더 컸다.
여기서 일단 차이가 확 났다.
흔히 신체 조건이라고 하는 게 왜 그렇게 중요하냐면, 이런 상황에서 차이를 확 주기 때문이었다. 먼저 잡으면 유리한 경기에서 먼저 잡는 데 유리한 신체 조건이니, 이런 걸 타고났다는 말로 곧장 포장했다.
그런 면에서 가린시스 프란시스코는 일단 타고났고, 자신의 신체 조건을 십분 활용하는 스타일이었다.
잡기로 일단 상대를 정신없이 조진 다음, 반칙 두어 개를 먹여서 벼랑 끝으로 밀어 넣고, 거기에서 빠져나오려는 상대를 받아서 홱! 던지는 방식의 전형적인 잡기 형 선수였다.
그렇다고 기술이 약하냐?
그것도 아니었다.
벼랑 끝에서 빠져나오려는 상대를 카운터 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깔끔한 기술을 가졌다는 걸 의미했다. 상대가 무작정 밀고와도 그걸 이용할만한 기술이 없으면, 애초에 스타일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니 가린시스 프란시스코는 정수원에게는 확실히 강한 스타일이었다.
정수원은 그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영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프란시스코의 영상을 함께 보던 지영은 이 선수의 약점을 찾아냈다.
‘형, 보이죠? 이 선수, 3분이 거의 끝이에요. 특히 상대가 격렬하게 움직이면 거의 2분 컷인데요? 뭐지? 체력이 왜 이렇게 없지?’
‘음…… 담배구나.’
‘아, 맞네요. 술 담배. 이야…… 대표팀 선수가 술 담배라니. 신기하네요.’
‘적지 않게 있지. 선수촌에도 꽤 있어. 타고난 재능으로 선수촌에 입성하지만, 그 이상은 노력하지 않는 선수들.’
‘아…….’
타고난 천재들.
그러나 노력하지 않는 천재들.
정도를 넘어서 방탕한 천재들.
그런 족속들은 어디에도 있다.
‘형, 어쨌든 이 선수 봐봐요. 체력이 더럽게 없어서 초반에 먼저 공격적으로 나오는 거예요. 긴 리치를 이용해 상대의 체력을 깎아 먹고, 반칙 두 개 정도 빠르게 먹이는 게, 자기가 체력이 없어서예요. 똑같이 가면 결국 자기 체력이 먼저 바닥나니까. 근데 형은 체력 하나는 끝내주잖아요?’
‘그렇지. 첫판에 이상하게 허덕여서 그렇지, 체력 하난 진짜 자신 있지.’
‘그럼 됐네요. 악착같이 움직이세요. 최대한 프란시스코가 움직이도록. 잡기에서 밀려도 좋으니까 계속 쉬지 않고 물고 늘어지세요. 그럼 적어도 3분쯤에 틈이 보이겠는데요?’
‘……그래. 고맙다.’
이게 정수원과 나눴던 대화였고, 그 대화처럼 정수원은 잡기에서 초반에 밀리는데도, 쉬지 않고 움직였다. 몸이 가볍고, 힘이 좋아도 결국에는 체력이 없는 선수다. 정수원이 넘어가지만 않고 3분 이상 버티면, 프란시스코는 반드시 약점을 보일 거다.
라고 지영이 예상한 것처럼.
3분이 딱 지났을 때 정수원은 지도 2개를 받았다. 반대로 프란시스코는 지도 1개. 그러나 눈으로 딱 봐도 보일 정도로 프란시스코의 체력은 개판이었다. 지영의 예상대로 결국 약점이 나왔고, 그 약점을 놓치지 않고 정수원은 업어치기로 파고들어, 그대로 한판을 따냈다.
잘됐다.
이제, 제대로 경기력이 나오게 될 거다.
정수원을 시작으로 한국 선수들은 순조롭게 1회전을 통과해 가기 시작했다. 이성진, 그리고 여자팀 선배들이 전원 깔끔하게 1회전을 통과했다.
그리고 지영도 1회전을 위해, 경기장에 섰다.
터지는 카메라.
번쩍이는 불빛에는 시선을 조금도 주지 않고 지영은 건너편의 상대를 바라봤다.
마켈리 아서.
캐나다 선수가 지영의 1회전 상대였고, 마켈리 아서와 마주 선 지영의 눈빛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상상 이상으로 더러운 스타일.
지영도 첫판은 절대 방심할 수 없는 게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