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48화
148화. 2022 전국체전(7)
체전을 끝내고 돌아와 짐을 풀고, 바로 1층 코치실에 모였다. 그리고 일주일 휴식이 결정되었다.
“좋아. 그럼 일주일 쉬는 거로 하고. 주말은 외박. 이렇게 정하자.”
“네, 코치님.”
임대성의 정리에 대표로 강한결이 대답하고, 지영을 포함한 다른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은 일주일 휴가를 주기도 하는데 공부도 해야 하는 황금세대는 수업을 빠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새벽 오후 운동은 쉬고 야간만 자율로 훈련하기로 했다.
이렇게 정리가 끝인 줄 알았는데, 안건이 아직 하나 더 남아 있었다.
“참, 그리고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이건 다시 생각 좀 해보는 게 어떨까?”
임대성 코치의 발언에 지영은 고개를 갸웃했다가, 생각에 잠겼다.
올해 마지막 시합 스케줄이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선발전, 그리고 본 대회인 아시아 청소년 유도 선수권 대회였다. 시합을 많이 뛰지 않는 황금세대라, 이걸 마지막으로 두었는데 코치의 말은 그걸 이제 와 바꾸자는 얘기였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나쁘지 않았다.
이미 세계 청소년 선수권에 참여했었고, 거기서도 훌륭한 성적을 거뒀다. 두 대회의 차이는 아주 극명했다. 단순히 나이로 비교하자면 아시아 청소년은 중학교에서 고1이나 고2 레벨이고, 세계 청소년 선수권은 최소로 잡아도 대학부 고학년 레벨이었다. 잘하는 선수는 일반 실업팀 실력과 비슷했고.
“선발전이 4주 남았는데 두 대회를 연속해서 체중 감량하기에는 무리도 따를 것 같고. 그리고 아시아 청소년은 솔직히 안 나가도 되잖아? 거기 대회 레벨은 이미 뛰어넘었는데.”
임대성의 지금 말이 지영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이유였다.
두 대회의 차이가 너무 나서, 솔직히 이제는 아시아 청소년을 나간다고 해서 정신적인 만족감을 느낄 것 같지도 않았다. 나이 또래 체급에 유일한 상대가 미야모토 신지인데 이미 국가대표 자리를 차지한 그가 그 대회에 나올 거란 생각도 들지 않았다.
“어때?”
강한결이 의견을 구하자, 지영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난 찬성. 신지도 없는데 나가봐야 뭐해.”
“나도. 저번에 보니까 수준은 거기서 거기더라. 일본 애들이 나올 것 같긴 한데. 이번에 대회 나왔던 애들이나, 세계 청소년에 나왔던 애들은 안 나올 거 아냐? 나도 그냥 이번 대회는 넘기는 게 낫다고 봐.”
지영이 의견을 내자 임효중이 뒤따라 바로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황석은 고개를 끄덕였고, 코치님 앞이라 촐랑, 촐싹, 까불거리는 느낌을 싹 지운 이성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머지는 강한결. 그의 의견은 딱 봐도 알 것 같았다.
“저도 찬성입니다. 코치님.”
“그래. 그럼 이번 아시아 청소년은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기회를 주자고.”
“코치님! 저희도 새싹인데요!”
이성진의 그 말에 임대성 코치는 피식 웃었다.
“새싹은 무슨. 이렇게 다 큰 새싹이 있으면 그건 그것대로 징그럽지. 참, 말 나온 김에 좀 더 길게 보고 얘기 좀 하자. 너희들, 유도는 언제까지 할 거냐?”
임대성 코치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다들 눈을 깜빡거렸다.
그만큼 예상치 못했던 질문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영은 그 말을 듣고, 이건 이것대로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어디까지 하는 게 좋을까?’
안 그래도 이건 지영도 가끔 생각했던 문제였다.
유도.
지영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스포츠다.
어쩌다가 시작하게 된 운동인 유도다.
‘그냥 집에서 제일 가까운 게 백곰 체육관이었으니까. 그래서 시작한 건데…….’
정말이었다.
딱히 처음부터 유도가 정말 하고 싶어서, 아니면 자신이 유도에 재능이 있는 걸 알고서 시작한 게 아니었다. 당시 아버지는 남자라면 자신을 방어할 수단 하나쯤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셨다. 그 계기는 아마 그 당시에 반 친구인가, 한 학년 위에 선배인가랑 운동장에서 싸웠는데 얻어맞고 와서가 아닌가 싶었다.
어쨌든, 그래서 아버지는 지영을 체육관에 보냈다.
당시 살던 빌라 건너편에 백곰 유도 체육관이 있었고, 운행도 필요 없으니 지영이 다니기엔 최고의 조건이었다.
유도는 그렇게 시작했다.
그렇게 지영이 유도를 시작했고, 친구들이 시간은 다르지만 1학기 안에 전부 그 체육관에 들어왔다.
나이도 같으니 같은 시간대에 운동했던 지영과 친구들의 재능을 당시 체육관 관장님은 놓치지 않았고, 선수부로 키우기 시작했다. 천재들은 두각을 빨리 나타내는 법. 고작 1년 만에 충북을 제패했고, 다시 1년 만에 전국을 제패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은 유도.
회귀 전엔 그 유도의 세계에서, 고1 때 튕겨 나갔다. 지영의 교통사고를 시작으로 줄줄이, 한 번에 거의 다 같이. 유도의 세상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그 사고 끝에, 이성진은 결국 눈을 뜨지 못했다.
그렇기에 유도라는 종목 자체가 지영에겐 놓을 수 없는 어떤 끈과 같았다.
‘하지만 목적, 목표를 다 이루고도 친구들을, 그리고 내가 유도를 계속 붙잡고 있는 게 맞는 걸까?’
아니, 그렇지 않았다.
다른 선수들은 한평생 유도만 한다.
최소 국대까지 간 실력자면, 그리고 국대를 노릴 수 있는 실력자들이면 유도를 더더욱 놓을 수 없게 된다. 왜냐고? 놓는 순간 매정하고, 비정한 사회에 내던져지기 때문이었다. 예전엔 그렇게 튕겨 나온 선수들이 참 많이도 망했다. 사업하려다가 망하고, 사기당해 망하고.
한평생 운동만 했으니 다른 쪽에는 완전 까막눈보다 심할 정도로 지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사업도 사업이지만,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선수들은 거의 방송에 얼굴을 내밀었다. 몇 년 전에 요리사가 대세였다면, 지금은 운동선수도 대세의 대열에 발을 살짝 걸친 상태였다. 그걸 알고 있어서 지영도 굳이 방송 쪽에 발을 담갔다.
이성진이 더 런닝에 나가고, 지영이 드라마를 찍고, 황석이 영화를 찍고, 임효중과 강한결이 데뷔를 앞두고 연습하는 것도 다 미래를 위해서였다.
‘만약, 전원이 올림픽을 제패하면?’
그 이후에도 굳이 친구들을 유도에 붙잡아둬야 할까?
거기까지 생각해 보고 나니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길다. 희소성이 있어서 불러주는 상황인 지금, 그걸 이용하는 게 더 낫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그 이후부터는, 친구들이 하고 싶은 걸 하게 두는 게, 더 맞지 않을까?
“그랜드 슬램.”
“응?”
그때 강한결이 입을 열었다.
임대성 코치, 그리고 지영을 포함한 친구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 강한결은 말을 이어갔다.
“제 목표이자 끝은 그랜드 슬램입니다. 아시아 선수권, 세계 선수권, 아시안 게임, 그리고 올림픽. 이걸 제패하고 나면 저는 미련 없이 은퇴할 생각입니다.”
차분하지만 단호한 그 말에 다들 입을 쩍 벌렸다.
그러자 임대성 코치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그 말을 받았다.
“그럴 것 같더라. 그럼 그 이후엔 뭐하게?”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음, 사회복지사? 그쪽으로 나가려고요.”
“어…… 그건 좀 놀라운데?”
“해보고 싶어요. 가능하면 어렵게 운동하는 애들도 후원 계속하면서. 그리고…….”
힐끔.
강한결이 고개를 돌려 지영을 보더니 말을 이어갔다.
“지영이가 열어준 기회도 살리면서, 그렇게 살고 싶어요.”
“확실해서 좋네. 하하! 그럼 너희들은?”
임대성 코치가 지영을 포함해 친구들을 훑어보며 물었고, 다들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랜드 슬램이라. 딱 좋은 목표였다. 하나라도 삐끗하는 순간 몇 년을 더 묶여 있겠지만…… 자신 있었다.
“딱 좋네. 그랜드 슬램.”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네 개다.
지영의 중얼거림에 모두 피식거리며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운동은 목표설정이 참 중요한데, 그랜드 슬램 정도면 과하지 않으면서 딱 클리어하기 좋은 목표였다.
‘아니, 과한가?’
실제로는 과한 게 맞다.
그랜드 슬램이란 걸 달성한 선수 자체도 얼마 안 되는 이유가 이 모든 대회를 석권한다는 것 자체가 진짜 타고난 선수가 아니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국에도 몇 명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영은 딱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페이스면, 앞으로 길어야 4년으로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일반선수들은 꿈도 못 꾸는 목표지만, 지영은 자신이나 친구들이라면 가능하단 생각이 들었다.
“다들 의견은 같은 것 같고. 그럼 길어야 4년이 끝이겠구나.”
“네. 근데 그건 왜 물으세요?”
“왜 묻기는? 나도 아직 한창때인데, 너희들 그만두면 그 뒤에 플랜 짜야지.”
“아…….”
“지금 1학년 애들이 끝이잖냐.”
하긴, 그것도 그렇다.
지금 1학년인 조영우와 주성호, 그리고 권지호가 끝이다.
본래 저 셋이 연희중에 있었을 때 후배들이 셋인가 더 있었지만 그 셋은 전부 공부로 갈아탔고, 연희중 유도부는 아마도…… 올해가 끝이었다.
애초에 없던 운동부였다.
지영이나 친구들이 아니었으면 생기지도 않았을 운동부였다.
그래서 다른 전통 있는 유도부처럼, 억지로 부를 유지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 보니 운동에서 공부로 갈아탄 그 애들한테도 학교는 관여하지 않았다. 그러니 영우와 지호, 성호가 졸업하면 연희고 유도부는 다시 역사 속으로 사라질 거다.
물론 지금 한창 준비 중인 연희대학교 유도부로 갈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임대성 코치는 거기까진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코치님은 그럼 나중에 뭐 하시게요?”
“나? 체육관이나 열련다. 그래도 연희고 황금세대 코치라는 타이틀이면, 굶어 죽진 않을 것 아니냐. 하하!”
“오……! 저희가 더 열심히 해야겠네요?”
이성진의 말에 제발 그래 달라고 너스레를 떠는 임대성 코치. 참 고마운 사람이었다. 조금도 권위적이지 않은 사람. 귀찮은 행정적인 일 처리도 다 해주시고, 그러면서도 황금세대의 훈련 스케줄을 아주 훌륭하게 짜 주시는 분.
지영은 자신의 실력상승 원천이 재능도 재능이고, 노력도 노력이지만 임대성 코치의 덕이 더 크다고 생각했다. 특히 작년에 피지컬을 올릴 때 그가 짜줬던 훈련 프로그램과 식단은 매우 큰 도움이 됐다. 그가 옆에서 잡아줬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진짜 그만두고 싶었었다.
그리고 그걸 이겨냈을 때의 효과도 정말 확실했다.
‘코치님 아니었으면 신지한테 깨져도 제대로 깨졌겠지.’
임대성 코치가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절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자 그럼 여기서 끝. 벌써 12시다. 오늘 금메달 축하하고, 고생했다. 자! 해산!”
“넵! 해산!”
해산이란 말에 평소의 명량함을 되찾은 이성진.
지영은 그런 이성진과 함께 2층 숙소로 올라왔다.
“우리도 진지한 얘기는 다음에 하고, 자자.”
“오케이! 굿밤들 해!”
피곤하니까, 지영도 그러고 싶었다.
각자 인사 뒤에 방으로 향했고 지영도 당연히 방으로 들어왔다. 다들 피곤해서 쉰다고는 했지만 아마 바로 잠드는 친구는 아무도 없을 거다. 그리고 그건 지영도 마찬가지였다. 지영은 일단 노트북을 열어 메일함부터 살폈다.
“흠…….”
하나.
이선영에게 온 메일은 하나였다.
서울로 올라가고 나서 바쁜 건지, 아니면 그녀가 생각했을 때 도움이 필요한 아이가 한 명밖에 없는 건지.
지영은 일단 메일을 열었다.
그러곤 꼼꼼하게 확인하고, 첨부된 영상도 확인했다.
야구선수고, 모자 가정이었다.
아직 초등학생인데도 재능이 보이는 친구였다. 하지만 일단 먼 발치서라도 봐야 하니 당장 지원 결정을 내리진 않았다.
메일을 다 확인하고 지영은 시간을 확인했다.
12시 30분.
잘 시간이었다.
눈을 감은 지영은 운동 말고 다른 스케줄이 뭐가 있나 잠깐 생각하다가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