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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142화 (142/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42화

142화. 2022 전국체전(1)

10월 9일.

전국체전 2일 차, 남고부 개인전.

울산 남구에 있는 한 체육관에서 열린 103회 전국체전 유도부 경기에는 이전 년과 비교해 배는 많은 관중이 몰려왔다.

특히 그중 반은 여중, 여고생으로, 꽤 많은 관중석을 절반 이상을 가득 채웠다.

이유는 당연히 하나, 연희고 아이돌을 보기 위해서였다.

보통 전국체전이 열려도 학생은 수업받지만 울산시 교육청은 좀 더 축제의 느낌이 났으면 한다는 생각에, 학교 재량껏 경기 관람을 자유롭게 풀어주는 용단을 내렸다. 그랬더니 당연히 유도 경기에 여고 대부분이 몰렸고, 그냥 알아서 해라. 이렇게 풀어버렸고 그 결과 연희고 아이돌 팬 대부분이 유도 경기장으로 몰려들었다.

때아닌, 유도 붐.

대한 유도회는 이걸 이용하려고 했다.

어느 협회나 자신의 종목이 부흥하려는 조짐을 보이면 이용하는 게 지극히 당연했다. 한 종목이 부흥하면, 그 낙수효과는 고스란히 현역, 은퇴 선수들도 나눠 받는다. 당연했다. 선수 생활을 하다가 그만두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게 코치 자리나, 체육관인데 인기가 생기면 당연히 그 운동을 배우기 위해 사람들이 돈을 쓰기 시작한다.

체육관으로 예를 들면, 본래 100명의 관원으로 200의 순이익이 나던 게, 관원 120을 받아 400에 가까운 순이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생활체육이 활발해지고, 생활체육 지도자들이 더욱 많이 필요로 하게 된다.

엘리트 체육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의 엘리트 체육에서 가장 선호하는 종목은 단연 축구와 야구였다. 프로가 되었을 때 타 종목과 비교하면 몇 배나 많은 연봉을 받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대부분의 스포츠 스타는 이 두 종목에서 나왔다.

실제로 유도만 해도 계속해서 선수가 줄어들고 있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고등부 경량급 체급엔 거의 200여 명이 시합에 나왔지만 지금은 그 반도 안 되는 선수밖에 나오지 않았다. 출산율도 출산율이지만, 유도라는 종목 자체를 선택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 결과였다.

그래서 협회는 유도의 부흥을 위해, 연희고 아이돌을 대대적으로 이용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거절합니다.”

“네?”

시합이 끝난 후, 그리고 내일과 모레 대학부, 일반부 경기가 끝나고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팬 사인회를 열자고 한 제안을 임대성 코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스트레칭을 하며 그 얘기를 듣던 지영도, 그 제안에 따라주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팬 사인회?

지랄 맞는 소리다.

협회는 이미 연희고 황금세대에게 등을 돌렸다.

아시안 게임이 끝난 직후, 연희고 황금세대에게 몰려드는 수많은 비난을 협회는 무시했다. 협회 차원에서 연희고 유도부의 문제가 아니다. 이번 일은 전적으로 협회의 준비가 부족했던 탓이다. 이런 식으로 방어막이 되어줬어야 하는 게 지극히 정상이었다.

왜냐고?

연희고 황금세대는 유탄에 맞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그 유탄의 초점을 자신들에게 돌렸어야 했다. 실제로 이번 아시안 게임은 협회의 안일한 준비와 선수들의 실력 부족으로 일어난 대참사였기 때문이었다. 그걸 협회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런데 협회는 침묵했다.

그렇게 침묵한 이유는 협회로 날아드는 비난을 연희고가 나눠 받고 있으니, 침묵으로 몸을 사렸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아니, 실제로 몸을 사린 게 맞았다.

그래놓고 이제 와, 사인회를 하자?

그때 협회에 가장 강하게 따졌던 게 임대성이었고, 임대성은 협회의 일방적인 침묵에 결국 이를 갈았다.

“아니, 임대성 코치님. 이해를 잘못하신 것 같은데 이거 협회 지시사항이에요.”

“그게 지시입니까? 강요지?”

“협회에 가입되어 있으면 따라야 해요, 코치님.”

피식.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그럼 짜르세요. 저는 이걸 연희 재단을 통해 공식적으로 문제 삼겠습니다.”

“아, 진짜. 왜 이러세요? 이게 협회 잘되자고 하는 일입니까? 다 연희고…….”

그렇게 말하는 순간, 나이 지긋한 노부인이 일단의 무리를 이끌고 다가왔다. 지영은 스트레칭을 하면서 얘기를 듣다 말고 얼른 일어났다.

흰머리가 지긋하신 노부인은 연희 재단의 이사장인 박옥순 여사셨다. 회귀 전에, 반폐인이 되어 있던 지영에게 코치직을 제안해 먹고 살길을 열어주신 분이시기도 했다. 지영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는 분이다.

그래서 일어나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니 푸근하게 웃은 박옥순 이사장이 협회 사람을 돌아보며, 조용히 말했다. 말을 열 땐 그 푸근한 미소는 이미 씻은 듯이 사라진 상태였다.

“연희 재단 이사장이에요. 앞으로 시합을 제외한 그 어떠한 협조도 하지 않을 생각이니, 이만 돌아가세요.”

“아, 그…….”

임대성 코치야 협회 간부가 좀 비벼볼 만하겠지만 박옥순 이사장은 감히 그가 비벼볼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결국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간부가 떠나자, 이사장이 다가왔다. 지영을 포함한 유도부가 전부 모이자, 박옥순 여사가 푸근히 웃으며 말했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이런 문제는 재단이 전부 알아서 할 테니, 너희들은 시합만 열심히 하렴.”

네!

그렇게 크게 대답하자, 박옥순 이사장은 봉투 하나를 임대성에게 건네고는 바로 떠났다. 보통 높은 사람이라고 와서 이런저런 얘기를 떠들어대는데, 역시 그런 꼰대들과는 결이 다르신 분이셨다.

박옥순 이사장이 떠나고, 임대성이 그 자리에 섰다.

“몸은? 다 풀었냐?”

“네!”

“아까 헛소리는 신경 쓰지 말고. 시합에만 집중하자. 알았지?”

“네!”

그럼, 당연하다.

솔직히 팬 사인회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들을 이용할 거라는 건 이미 전원 예상했었다. 그래서 임대성이 총대를 메고 확실히 대처하기로 이미 말이 끝나 있었기 때문에 별로 분노를 느끼지도 않았다.

자꾸 협회와 갈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아쉬운 건 연희과 황금세대가 아니라, 협회가 될 게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마음이 편하게, 온전히 시합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오전 9시. 경기장이 비워지고, 시합이 시작됐다.

가장 첫 번째로 들어가는 선수는 역시 임효중이었다.

시드 첫 번째이고, 두 번째 게임이 바로 임효중이었다.

꺄아아!

임효중이 경기를 준비하자 한쪽에서 여중, 여고생들의 환호성이 울렸다. 진짜 아이돌이라면 손을 흔들었겠지만, 임효중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시합에 집중했다. 임효중의 첫 게임은 경기도였다.

경민의 마성준.

임효중이란 벽을 넘지 못한 선수였다. 작년에도 체전에서 임효중을 만나 떨어졌는데, 이번엔 첫 게임이었다. 그래도 작년보다는 훨씬 더 정신 무장을 했는지, 겁먹은 느낌은 없었다.

하지만 정신 무장으로만 경기 결과를 뒤바꿀 수는 없었다.

쿠웅!

잇폰!

경기 시작 1분.

임효중의 깜짝 업어치기에 자세를 낮추고 허벅다리만 방어하던 마성준의 몸이 빙글 돌았다. 그리고 정확하게 등짝부터 대(大)자로 뚝 떨어졌다. 임효중의 특기가 허벅다리라고, 허벅다리만 줄기차게 방어하다가 나온 빈틈을 임효중은 놓치지 않았다.

“꺄아아!”

“오빠! 멋있어요!”

이전과는 다르게 우와, 하는 감탄보다는 여중, 여고생의 환호가 더 크게 경기장을 울렸다. 확실히 작년에 비해 경기장의 풍경이 너무 변했다. 그게 신기한지 대기하던 선수들이 그쪽을 구경하기도 했다.

다만 연희고만 조용했다.

그들에게만 익숙한 분위기였기 때문이었다.

임효중을 시작으로, 연희고 황금세대의 경기가 줄줄이 이어졌다.

이성진! 이성진!

더 런닝의 영향으로 황금세대 중에서 가장 많은 팬을 보유했을 이성진이 경기에 들어갔을 땐 아예 이름을 연호하기도 했다. 평소라면 이성진이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 방심하면 어쩌나 했겠지만, 표정을 보니 그런 걱정은 덜어도 될 것 같았다.

쿠웅!

경기 시작 30초.

제주도 대표를 업어치기 한판으로 깔끔하게 돌린 이성진. 이성진이 나오고 강한결, 황석도 들어가서 시원하게 한판으로 장식하고 나왔다. 그리고 73체급의 첫 경기, 지영이 들어갔다. 지영의 상대도 제주도였다.

제주 남녕고의 서동철.

요즘 73체급의 에이스로 급부상하는 선수였다. 나이는 아직 고1이지만, 고등부로 올라오면서 키와 체중이 불어나면서 성적이 확 올라간 선수였다. 벌써 이우진과 올해에만 결승에서 세 번이나 맞붙었고, 그중 한번은 이기기까지 한 선수였다.

그래서인지 서동철의 눈빛엔 자신감이 확실히 붙어 있었다.

하지만 자신감이 실력 향상에 어느 정도 도움은 줘도, 실력 차이를 뒤집을 수는 없었다. 악! 기합을 넣고 경기 시작과 동시에 빠르게 다가오는 서동철. 지영은 서동철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일단은 간을 볼 생각으로, 본인 특유의 방어 유도 자세를 잡았다. 상체를 숙여 지면과 가깝게 만들고, 업어치기든 허벅다리든 어느 자세에서 날아드는 기술이든 방어가 용이한 자세.

이 자세를 따라 하려고 한 선수들에게 재능의 차이가 뭔지를 확실히 일깨워준, 그런 자세였다.

서동철은 그런 지영의 자세에, 겁도 없이 등판을 곧장 잡아 왔다.

몇 개 안 되는 영상으로 봤을 때 서동철은 전형적인 오른쪽 허리기술 선수다. 업어치기도 거의 못 하고, 타이밍과 힘으로 허리기술을 차는 선수다. 그러니 임효중과 비슷했다. 하지만 임효중도 지영과 잡으면 던지는 데 애를 먹는다. 지영의 방어가 워낙 굳건해서 조금이라도 잘못된 상태에서 기술을 차면 되치기에 걸릴 가능성이 정말 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서동철은 역시 올해 들어 올린 좋은 성적 때문인지, 겁이 없었다.

잡자마자, 손으로 땅을 짚으며 그대로 허벅다리를 찼다.

힘은 좋다.

그래도 확실히 몸이 끌려가긴 했으니까.

하지만 서동철은 지영이 카운터가 얼마나 날카로운지, 그걸 잊은 것 같았다.

스윽, 빡!

들어오는 허벅다리를 슬쩍 피해, 역으로 빗당겨치기를 꽂는 지영. 그에 가차 없이 허벅다리를 찬 서동철의 몸이 180도를 넘어 거의 한 바퀴를 돌아 앞으로 엎어졌다. 마지막에 제대로 기울이기를 하지 못한 게, 오히려 너무 상대가 돌아가는 상황을 만들고 말았다.

하지만 아쉽지 않았다.

세계 청소년 이후 시합에 조금은 목말라 있던 지영이었다.

미야모토 신지처럼 상대를 가지고 놀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상대가 최선을 다할 기회는 주고 싶었다.

‘지금 게 전부라면…… 어쩔 수 없는 거고.’

어설프게 덤비다가 끝나고 후회하지 말고, 신중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확실히 한 바퀴 제대로 날아간 서동철의 눈빛은 변해 있었다. 사실 서동철은 귀에 딱지가 얹을 정도로 지영과 비교됐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자신보다 분명히 잘하는 선배인데, 스타일 또한 확실히 다른데, 코치님과 부모님은 자꾸 자신을 강지영과 비교했다.

지영처럼만 해라.

쟤처럼만 해라.

조금만 더 노력하면 이길 수 있다.

연기에 빠져 있을 때가 기회다.

강지영 쟤 허파에 바람 들었으니까, 조금만 더 해서 잡아보자.

한 판이라도 이기면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네 것이다.

우리 열심히 해서, 천재를 꺾어보자.

이런 얘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그래서 일면식도 없는 저 선배가 솔직히 너무나 친숙했다. 하지만 반대로 그런 비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게 만든 원흉이었다. 그런 선배와 첫 게임에 만나 솔직히 너무 잘 됐다고 생각했다.

질질 끌 것 없이, 첫 게임에 바로 승부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잡은 강지영은, 좀 만만한 느낌이었다.

독특한 자세이긴 하나 잡아보니 힘이 정말 센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서 곧장 끌어당겨 허벅다리를 찼다.

그리고 본인이 한 바퀴를 홱! 하고 날아갔다.

다행히 너무 크게 돌아 점수는 안 뺏겼지만 대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게 천재의 카운터구나…….’

유도에서는 흔히 되치기라고 하는 기술.

천재 유도 선수 강지영의 주특기 중 하나.

서동철의 눈빛이 카운터에 놀라, 신중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런 서동철의 눈빛을 확인한 지영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제자를 들일 나이는 아니지만, 회귀 전엔 제자들을 많이 가르쳤다. 마지막 제자였던 박한솔이 실력을 좀 얻고 딱 서동철 같은 눈빛을 했었다.

하지만 절룩이는 지영에게 박살이 난 뒤 다시 고분고분해졌다.

실력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시합은 무조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지영은 가르쳤다. 본 실력을 내보이지도 못하고 지고 나오면, 백이면 백 후회밖에 남지 않기 때문이었다.

정신을 차린 서동철이 신중한 기색으로 다시금 달려들었고, 본 게임이 시작되었다.

서동철은 이후 최선을 다했지만, 강지영이란 산은 넘지 못했다.

2분 30초가 지났을 무렵, 제대로 잡았다고 착각하게 만든 미끼를 문 서동칠이 찬 허벅다리를 피한 지영의 카운터에 그는 하늘을 날았고, 쿵! 잇폰이 선언됐다.

이로써 1회전 종료.

1회전에서 일어난 이변은 없었고, 이는 2회전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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