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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136화 (136/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36화

136화. 결실의 계절(5)

선생님!

“응? 성진아, 왜?”

이제 서른 초반.

곧 결혼을 앞둔 담임 정수아가 자신을 부른 학생을 돌아봤다.

이성진.

반의 분위기 메이커.

평소에도 자신을 부르는 경우가 많아서 돌아보면서도, 웃고 있는 그녀였지만 이어서 날아든 말엔 웃을 수 없었다.

“선생님! 프러포즈는 어떻게 받으셨어요?”

“어, 어? 어어? 프, 프러포즈? 그, 그건 왜?”

그렇게 대답하는 와중에도 얼마 후엔 남편이 될 남자친구의 프러포즈가 쭉쭉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바보같이도 그녀는 그 프러포즈를 받고 펑펑 울었기 때문에, 흑역사의 대열에 한 발 걸친 기억이었다.

“어떻게 해야 여자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지 궁금해서요!”

그런데 들려온 대답이 상상 이상이다.

여자의 마음?

이성진이? 바람둥이 같지만, 절대 선을 넘지 않는 이성진이 여자의 마음을 궁금해한다?

“혹시 드라마나 이런 거 들어가니? 로맨스야?”

그래서 혹시나 해서 그렇게 물었는데, 들려온 대답이 또 범상치 않았다.

“아니요! 고백했는데 까여서요!”

“……어?”

요건 또 뭔 소리람?

만인의 연인인 강한결 정도는 아니지만, 연애에 정말 생각이 조금도 없어 보이던 친구가 갑자기 고백? 누구한테? 정수아는 정말이지, 그 상대가 너무 궁금해졌다. 대체 누군데 천하의 이성진을 깠는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그런데, 반 애들 상태가 이상했다.

다들 이런 이성진의 폭탄 발언에 놀라기보단,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딱 보니 누가 고백 상대인지 아는 얼굴 들이었다. 하지만 선생이 돼서 그걸 물어볼 수는 없었다. 이렇게 대놓고는. 나중에 반장한테 물어봐야지, 하는 생각을 하며 그녀는 시간을 확인했다.

10분 정도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다시 교탁에 선 그녀의 얼굴엔 이제 당황은 없고, 미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연애는 대학교 가서 해도 늦지 않는다는 틀에 박힌 말을 했겠지만, 저 아이는 달랐다. 적어도 학교 내에서 이성진의 가정사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저 나이에, 아니, 훨씬 더 어렸을 때부터 힘든 일을 겪었던 아이.

그런 아이가 사람을 불신하지 않고 나아가 이성에게 관심이 생겼다면 그건 그대로 축복해 줘야 할 일이었다.

그래서 정수아는 이성진의 연애를, 적극적으로 찬성하기로 했다.

“음, 성진이는 그러니까, 여자의 마음을 얻고 싶은 거지?”

“네! 두 번 차였어요!”

“두 번이나? 이야, 상대가 만만치 않은 모양이네?”

“네! 가드가 너무 견고해요! 메이웨더도 못 뚫을 듯!”

메이웨더?

누군지 모르지만 어쨌든 대단한 사람인가 보다. 어쨌든, 그만큼 상대가 철벽을 치면, 이 경우는 사실 남자가 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었다. 생각해보니까 정수아 본인도 박봉에, 위험천만한 직업을 가진 소방관 남자친구의 구애를 몇 번이나 거절했었던 게 기억났다.

미래의 배우자는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래서 교사 커플이 그렇게도 많은 거다.

그런 기억은 일단 접고, 그녀는 재차 물었다.

“그 친구가 너를 피해? 너한테 아예 관심이 없어 보이니?”

“아니요!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그냥 자꾸 거절해요. 연락은 잘 받아주면서!”

“어장관리?”

“에이! 그럴 애는 아니에요!”

“너무 확신하는 거 아니니?”

“노노! 진짜 아님! 그래서 샘! 어떻게 마음 얻냐니까요? 선물 공세라도 해볼까요?”

이성진의 말에 정수아의 고개는 초속을 잴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저어졌다.

그건 자기 언니나 좋아하는 거고, 어장관리도 안 하는 애라면 선물 공세는 오히려 부담스럽기만 하다.

“성진아, 사랑은 선물로 살 수 없어.”

그러자 애들이 에이…… 한다.

하지만 그녀는 조금도 그런 말을 한 자신이 부끄럽지 않았다. 그녀가 생각하는 사랑은 정말로 돈으로 살 수 없기 때문이었다. 감정, 행동, 마음. 배려, 이런 것들이 사랑으로 발전한다고 그녀는 굳게 믿었다.

왜?

본인이 그랬으니까.

연애관에 대한 정의를 내세울 때는 당연히 자신이 기준점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성진아. 일단 왜 그 친구가 너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지, 그걸 알아보는 게 먼저일 것 같은데? 혹시 물어봤니?”

“어, 아직이요. 그냥 알았어. 하고 물러났거든요.”

시무룩.

생긴 건 귀공자처럼 생긴 애가, 저렇게 풀이 죽으니 그게 또 어찌나 가슴을 흔들던지. 그녀의 머릿속에 여자애가 이성진을 싫어하는 것만 아니라면 꼭 도와주고 싶단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럼 일단 그것부터 알아보는 게 먼저 같아. 알아보고, 그에 맞춰 움직여야지.”

“어, 음. 네. 물어볼게요.”

“그래, 그럼 알아내면 샘한테 얘기해 주고? 다들 수업 잘 받아. 그리고 반장. 양호실 가서 소영이 상태 괜찮은지 가서 확인 좀 하고, 샘한테 톡 좀 보내줘.”

네, 샘.

반장의 대답을 들은 정수아는 그제야 교실을 나섰다.

“풋, 좋을 때다.”

좋을 때야.

그렇게 중얼거린 그녀는 폰을 꺼내 반장에게 그래서 누구니? 라고 톡을 보냈다. 그러자 대번에 날아드는 답장.

[소영이요.]

“…….”

그녀는 걷다가 멈췄다.

그리곤 우리 반 정소영? 하고 답장을 보냈다.

[네.]

하고 답장이 다시 와서 잠시 서 있던 그녀는…… 쉽게 볼 문제가 아님을 바로 깨달았다.

“제대로 얘기를 들어봐야겠어.”

쉬는 시간에 이성진을 불러, 마음이 어떤 건지 확실히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그녀는 다시 걸음을 옮겨, 옆 반으로 들어갔다. 아이의 연애는 연애고, 지금은 애들 수업에 집중해야 할 때였다.

* * *

와…….

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가 함께 섞인 감탄이 지영의 입에서 나왔다.

“미친놈이네, 저거…….”

등교한 정소영에게 날린 고백으로 그 애가 볼이 빨개지다 못해 터질 것처럼 붉어지더니, 이내 도망치듯이 교실을 나갔다. 따라간 이성진을 지영은 붙잡고는 정소영에게 직접 갔다. 울먹울먹. 갑작스러운 고백에 정말 너무 놀랐는지, 얘가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지영은 한숨을 내쉬고는 반장 임단아를 불러 정소영을 양호실로 보냈다.

그런 짓을 저질러놓고, 이번엔 선생님에게 저런 질문을 하는 걸 보고는 이건 좀 아니다란 생각이 들었다.

‘급해도 너무 급해.’

자신도 양유진에게 보는 순간부터 빠져들었다.

좀 세게 말하면 정신을 못 차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영은 곧 냉정해졌고, 천천히 그녀에게 접근했다. 동생과 운동 뒷바라지를 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던 양유진의 마음속에, 강지영이란 인간을 비집어 넣고, 그 크기를 아주 조금씩 키웠다.

처음엔 연락.

그리고 시간이 될 때마다 핑계 대고 올라가서 얼굴 보고, 밥 먹고.

그렇게 거의 반년 가까이 지난 뒤에야 고백했고, 연인이 됐다. 하지만 이성진은 지금 그렇게 못하고 있었다. 이건 급해도 너무 급해서, 이성진의 저돌적인 돌격에 정소영이 겁을 먹고 내빼는 상황이었다.

자신이 연애의 고수는 아니지만, 적어도 방식이 틀렸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이따가 얘기를 좀 해줘야 할 것 같았다.

1교시가 끝나고 이성진을 빼내는데, 저 멀리서 정소영이 조심스럽게 걸어오는 게 보였다. 지영은 이성진이 못 보게 그쪽을 막고는 그를 밀어서 건물 밖으로 나갔다.

“야, 너 지금 너무 급해.”

“……나도 알아.”

안다고?

모르는 것 같은데?

“소영이가 널 싫어하는 것보단, 지금 네가 너무 부담스러워서 피하는 거잖아.”

“어, 그것도 알아.”

“그럼 좀 차분하게 다가가. 네가 이렇게 행동하면 너 말고도 애들이 더 힘들게 할 수도 있어. 소영이 성격으론 그거 못 감당해.”

“……그럼 어떻게 하는데?”

“말했잖아. 천천히. 부담 주지 말고. 처음엔 그거면 충분해.”

“…….”

시무룩.

이건 뭐, 누가 보면 세상 망하는 줄 알겠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의 방법은 잘못됐다. 그래서 좀 자극을 해주기로 했다.

“너 혹시, 며칠 연락하고 사귀자 할 만큼, 소영이가 만만했어?”

“아 뭔 소리야! 그건 절대 아니야!”

지영의 자극에 제대로 걸려 격렬하게 부인하는 이성진.

그런 이성진을 지영은 좀 더 몰아붙였다.

“근데 왜 그렇게 경우 없이 행동해.”

“어? 나 경우 없었어?”

“없었지. 지금 넌 네 감정만 강요하고 있잖아. 소영이 마음은 아예 신경도 안 쓰고. 왜, 너 더 런닝에도 나가고 인기도 많고 하니까 당연히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한 거 아니야?”

“어, 어어…….”

그랬구만.

‘쯔쯔, 으이구. 이 한심한 놈아.’

지영은 이성진이 뭘 실수했는지, 뭘 잘못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흔히 하는 실수다.

이성진처럼 잘난 인간 한정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해 주니 자연히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도 날 좋아해 주겠지. 하는 착각에 빠져 있었던 거다. 황금세대가 아무리 어른스럽게 행동한다고 해도, 사실 이제 고작 고2다.

생일도 느려 아직 주민증도 나오지 않은, 고2 말이다.

그러니 생각도 당연히 어릴 수밖에 없었다. 어른들의 눈으로 보면 혀가 절로 차지는. 그런 어린 생각이었다.

“이따가 소영이한테 사과하고, 천천히 관계부터 다시 쌓아나가. 소영이는 그래야 마음을 열 거야. 안 그래도 상처 있는 앤데, 뭐 하냐, 진짜.”

“…….”

끄덕.

이성진은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길로 다시 돌아온 교실.

이성진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정소영에게 시원하게 고개를 숙였다. 나이에 상관없이 머리를 숙인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그것도 진심으로 숙이는 건 더더욱 그랬다. 일단 자신의 잘못을 알아야 하고, 그 잘못을 용서받기 위해 모두의 앞에서 진심으로 고개를 숙이는 건 자존심을 전부 버려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장소가 별로 안 좋았지만 그래도 아침처럼 큰 목소리로 한 것도 아니고 해서, 정소영은 많이 놀라지 않았다.

그리고 다행히 정소영은 고개를 끄덕여 이성진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휴…….’

다행히 일단 이걸로 관계가 더 나빠지진 않을 테니, 적어도 봉합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수업을 받고, 오후에 운동하고 저녁을 먹은 지영은 바로 TV 앞으로 향했다. 지영뿐만이 아니라, 친구들도 전부 거실에 모였다.

오늘은 9월 19일.

아시안 게임 유도 종목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사실 지금 학교도 그렇고, 나라 분위기도 그렇고 아시안 게임 때문에 뜨겁게 달아올라 있는 상태였다.

10일 개막해서, 벌써 가장 먼저 경기를 치르는 공기소총 같은 경우에는 메달의 주인이 다 가려졌다. 유도는 19일인 오늘부터 남자부 경량급, 여자부 중량급, 이렇게 이틀간 치러지고 3일째 남녀 혼성 단체전이 치러진다.

그래서 오늘은 공부보단, 유도 경기에 집중하기로 한 지영이었다.

사실 수업 중에도 틈틈이 경기 결과를 확인했었다. 올림픽과는 다르게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 유도는 매우 강했다. 남자부 3체급 전부 결승까지 올랐고, 여자부도 3명이나 결승까지 올랐다.

“한다.”

수영 경기에서 화면이 바뀌더니, 여자부 결승전 경기가 먼저 나왔다. 한국 선수의 상대는 지영도 아는 선수였다.

안자이 히카리.

일본 전통 유술 집안의 딸로, 지영과 동갑의 나이로 이미 일본 여자 유도계를 평정한 천재가 백색 도복을 입고, 한국 선수와 맞붙기 시작했다. 결승까지 올라간 한국 선수는 벌써 몇 년째 정상을 국가대표를 유지하고 있는 김성혜다.

작년 올림픽에서도 은메달을 딴, 세계 정상급 선수였다.

그에 비해 안자이 히카리는 지영과 동갑의 선수다.

하지만 안자이 히카리는 강했다. 김성혜가 약한 게 아니라, 안자이 히카리가 너무 강했다. 나이가 어린 만큼 체력 면에서도 앞서고 있었고, 파이팅 자체가 차원이 달랐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정통 주짓수가 생각날 법한 아크로바틱한 서브미션이 진짜 장난 아니었다.

‘나도 당했지…….’

남자인 지영까지 압도적으로 찍어 눌렀던 안자이 히카리의 전략은, 굳히기였다.

굳히기 포지션을 만든 다음 철저하게 김성혜의 혼을 빼놓기 시작했다. 굳히기 무서움이 계속해서 구르고, 눌리고 뒤집고 하다 보면 상대의 진을 빼놓기 참 좋다는 점이었다.

히카리는 그걸 전략으로 정했는지, 차분하게 경기를 운용하다가도 기회가 오면 굳히기에서 김성혜를 철저하게 농락하기 시작했다.

“힘들겠는데……?”

“그러게.”

2분 30초가 지난 지금 서로 점수는 없었다.

하지만 김성혜가 벌써 지도가 2개고, 안자이 히카리는 지도 하나였다. 그러나 이런 지도 상황보다는 서로의 체력이 문제였다. 아직도 호흡이 차분한 안자이 히카리와 고작 2분 30초 만에 히카리의 굳히기 전략에 체력이 호흡이 망가진 김성혜.

이 경우는…… 그냥 밀어붙이기만 해도 게임이 끝난다.

그리고 그건 선수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어서 짧은 그쳐 기간 동안 최대한 호흡을 다듬어 덤벼들었다가…….

쿵!

잇폰!

시원하게 빗당겨치기에 꽂혀, 하늘을 날았다. 승리를 거두고 기뻐하는 안자이 히카리. 그리고 그런 히카리 뒤로 이어진 결승전 3게임에서 한국은, 처참하게 박살 났다.

일본의 여자 유도는, 역시 세계에서 최고 수준이었다.

그리고 잠시 뒤 시작된 남자부 결승.

시작은 –60이었다.

–60 결승은 시작과 동시에 끝났다.

일본 선수의 모두 걸기 한판으로.

그렇게 아시안 게임은, 숙적 일본에게 처참하게 박살 나기 시작했다.

한국과 일본의 잔치가 될 거라고 떠들었는데, 한국은 빠지고 일본만의 잔치가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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