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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132화 (132/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32화

132화. 결실의 계절(1)

애드리브.

흔히 애드립이라 부르는 이 단어는 연극이나 연기에서 배우가 대본에 없는 대사를 즉흥적으로 치는 걸 뜻한다.

이 애드리브에 있어 선동일 배우님은, 대가(大家)라 해도 부족함이 조금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대가가 건 애드리브는, 역시 느낌이 달랐다. 게다가 다른 배우들도 얼추 눈치채고 있었는지 당황한 기색이 하나도 없이 보조를 맞추고 있었다.

‘나 빼고 다 적이네?’

나 하나 흔들어보려고 작당 모의를 하신 것 같은데, 글쎄…… 지영은 거기에 흔들려 주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어차피 대본 대로 하지 않아도 되니까, 지금은 그냥 대놓고 막 질러도 되는 타이밍이었다.

그러니 오히려 마음이 더 편해졌다.

연기가 아닌, 그냥 있는 그대로의 지영은 어른의 시선으로 봤을 때 어차피 건방져 보인다. 그러니 지금은 그런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대신, 대사는 최대한 생략하자.’

지영은 자신이 대사까지 받아 가며 애드리브를 받을 수는 없다는 걸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서건의 느낌대로 표정과 몸짓으로만 저 애드리브를 받기로 했다. 조금은 차분하게. 아니, 멍한 느낌으로.

그렇게 마음을 정하는 순간, 선동일이 다시금 대사를 날렸다.

“너 뭐냐고. 뭐, 왜 말을 못 혀?”

“…….”

“벙어리여?”

지영은 그걸 그냥 가만히 지켜봤다. 정말 눈빛에 감정을 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시합 중에 쓸데없이 자극하는 놈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라, 그냥 정말 어떤 대응도 해줄 가치가 없는 놈을 바라볼 때, 그때나 내보이는 시선이다. 이런 지영의 시선에 선동일의 이마에 핏줄이 바짝 섰다. 감정과 안면근육을 움직여 지금 화가 났다는 걸 표현하고 있었다. 대단하다. 정말이지…… 대단하단 말 밖에는 안 나오는 배우다.

하지만 감탄은 감탄이고, 애드리브 대응은 또 다른 문제다.

“야 인마. 너 하나 때문에 여기 연주자 몇 명이 모였는데 그따우로 연주를 해. 어? 음도 틀려, 혼자 달려가. 너는 합주가 뭔지 몰러? 어?”

“…….”

이번에도 지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는 표정도 지었다. 그 모습은 마치 이걸 내가 잘못한 건가? 스스로에게 자문하는 그런 표정이기도 했다.

대사가 없는 애드리브다.

아니, 이런 걸 애드리브라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지영은 이런 게 서건이 내보일 반응은 맞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선동일도 거기에 동의하는지, 씨익 웃더니 재차 애드리브를 이어갔다.

“하여간 천재라는 것들은 이래서 안 돼. 세상에 지만 잘난 줄 알지. 지만 잘난 줄 알아서 다 제 멋대로 하지. 합주고 뭐고 그냥 나는 칠 테니까 너는 따라와라. 이따구로 칠 거면 꺼져! 너 아니어도 피아노 칠 놈 많어!”

“…….”

아, 여기서 끝내야겠다.

꺼지라는 말에 지영은 고개를 슬쩍 끄덕이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건이라면 어떻게 하면서 떠났을까? 분한 표정으로? 아니,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귀찮았는데, 잘 됐다. 하는 표정으로 떠나지 않을까?

그래서 지영은 살짝 홀가분한 표정으로 선동일을 힐끔 봤다가 몸을 돌렸다.

“저, 저어 저! 저 새끼가! 야 이 새끼야!”

돌아봐야 하나?

선동일의 거친 애드리브에 지영은 잠깐 고민했지만 서지 않았다. 서건이라면, 지금까지 자신이 맡았던 그 캐릭터는 이대로 그냥 갈 길을 갈 것 같았다. 지영은 힘을 좀 빼고, 잠에서 막 깨서 비척이는 느낌으로, 그대로 피아노를 떠났다. 그런 자신을 옆에서 따라오는 카메라. 지영은 끝까지 감정을 놓지 않았다.

컷!

그리고 기다리던 사인이 떨어졌다.

후아. 지영은 그 소리에 한숨을 내쉬고는 몸을 돌렸다. 그러자 선동일 선배님이 씩 웃으면서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아따야, 너무 세게 한 거 아닌가 했는데, 잘 받네. 미안혀.”

이 지역 저 지역 사투리가 섞인 특유의 말투로 미안하다고 하는 선동일. 지영은 솔직히 그리 기분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손을 살짝 잡으며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선배님. 좋은 경험이었어요.”

“허헛, 그제? 야, 물건이네. 물건이야. 민재나 연이도 내가 애드립 치면 바짝 얼어붙는데, 허허. 연기 잘 봤다.”

“네, 감사합니다.”

꾸벅.

하긴, 깜빡이도 없이 훅 들어가는 게 선동일 배우님의 특기라 할 수 있었다. 갑자기, 정말 갑자기 훅 치고 들어가는 애드리브에 수많은 배우들이 당황하고, 그래서 NG가 나곤 했다. 그걸 지영은 기사를 통해서 봤었다. 지영은 그래서 어쩌면 자신한테도 그러지 않을까? 하고 조금은 긴장하고 있기도 했다.

그런데 역시, 아니나 다를까 딱 자신을 저격하기 위한 애드리브를 하셨다.

아마 자신이 당황하거나 하는 모습을 보고 싶으셨던 것 같은데, 솔직히 그 부분은 조금 그렇지만 원래 저러신 분이란 걸 알아서 기분이 크게 나쁘거나 하진 않았다.

‘뭐, 마주치는 신은 이걸로 끝이니까.’

서로 맞붙는 신은 이번이 끝이다.

그러니 다시 저런 애드리브에 곤란하지 않아도 된다.

지영은 이어서 모니터링을 위해 박지상 감독에게 향했다. 장면을 확인한 지영은 신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장민주 작가에게 일단 말은 해보겠다고 한 뒤 재촬영을 지시했다. 애드리브 신 하나, 그리고 대본대로 가는 신 하나.

두 번째 신은 편하게 연기에 임할 수 있었고, 선동일과의 합주 신이 끝났다.

* * *

뜨거운 태양.

열정과 낭만.

그런 여름……은 개뿔.

“하아, 하아, 하아.”

지영은 땀복을 챙겨 입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8월의 마지막 주.

지영은 여름휴가를 다녀온 뒤, 다시금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섰다. 이번 시합까지는 앞으로 한 달이 좀 더 넘게 남았다. 그리고 이번 대회는 대한민국 스포츠인의 축제라 할 수 있는 전국체전이었다.

다른 A급 국내대회는 거의 전부 건너뛰었지만, 전국체전은 건너뛸 수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학교 측에서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게 바로 전국체전이었다. 이 전국체전은 학교와 충북유도협회의 명예와 직결되는 아주 중요한 대회이다. 그리고 지영이 이렇게 여름휴가가 끝나자마자 다시 달리는 이유는, 전국체전 최종선발전이 있어서였다.

본래는 3차까지 있는 대회다.

하지만 충북유도회와 협상 끝에, 충북 자체에서 여는 선발전은 딱 1차만 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게 9월 초, 바로 다음 주였다.

지금은 8월 말.

시합까지 이제 5일 남았고, 그래서 지영은 다시 감량에 들어가 있었다. 남은 체중은 2㎏.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힘든 건 역시 매한가지였다.

트랙을 달려 땀을 쫙 뺀 지영은 숙소로 바로 가지 않고 정문 쪽으로 향했다.

“온다! 온다!”

“꺄아아! 오빠아!”

일단 소녀 팬들과 지영보다도 나이가 많아 보이는 여성 팬들이 정문을 통과하지 못했지만 지영이 운동하는 모습을 이 더위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이렇게 팬이 많이 몰린 이유는 드라마 때문이었다.

지영이 첫 촬영을 한 날부터 한 달 뒤, 드라마 예인으로 살어리랏다가 정식 방영됐다.

예인은 시작부터 화제를 모은 작품이었다. 일단 주연배우인 장민재와 이연이 연기력으로 흠을 잡을 수 없는 라이징 스타였다.

이 둘의 팬도 만만치 않은데 조연배우들 라인업이 매우 화려했다.

선동일, 고창선, 전여옥 등등은 물론 연기력으로는 어디 던져놔도 꿀리지 않는 조연진 라인업에다가, 아카데미에서 조연상을 받은 임윤옥 선생님까지 합류했다.

거기에, 강지영까지.

지영의 시합이 화제가 되며 초기에 관심은 충분히 끈 상태에서 방영된 예인은 시작부터 10%의 시청률을 찍었다. 10%면 요즘 공중파에서도 찍기 힘든 수치였다. 그렇게 초반부터 화려한 시청률과 함께 시작된 예인은 방영될 때마다 화제가 됐다.

청춘물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예술에 목을 매단 이들의 처절함과 처연함이 스며들어 있어 결코 밝은 작품이 아니었다.

현실.

밝은 이면이 아닌, 처절한 생존의 세계.

실력이 좋아도 시운이 맞지 않으면 성공하기란 정말로 요원한 세계. 반대로 실력이 없는데도 빵 뜨는 사람이 나오는 정말이지 불공평한 세계.

그런 세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아이돌, 가수, 작곡가, 작사가, 소설가, 피아니스트, 바이올리니스트, 첼리스트, 화가, 기타리스트, 드러머, 온갖 예술을 하는 이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깨지는 세계를 담은 작품이니 심적으로 편한 드라마는 절대로 아니었다.

하지만 그 자체가 포인트였다.

그런 예인의 한 축을 맡은 지영이다.

등장 횟수는 많지 않지만 장민재가 손을 뻗어 닿고 싶은 그 자체인 지영이고, 무난한 연기력으로 지영도 확실히 인기를 얻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학교에 찾아오는 팬들이 많아졌다.

평상시였다면 무시했겠지만, 오늘은 주말이기도 하고. 그리고 자신이 운동하는 내내 이 땡볕에서 지켜봐 준 게 고맙기도 했다. 그래서 들어가기 전에 사인이라도 해줄 생각이었다. 다행히 그렇게 많진 않았다.

한, 음.

서른 명 정도?

지영이 다가오자 꺄악꺄악거리는 팬분들.

힘들지만, 지영은 그래도 웃으면서 팬에게 다가갔다. 솔직히 트랙을 달리고 난 직후라 힘들어 죽겠지만 땡볕에서 기다린 분들에게 인상을 팍팍 쓰는 건 절대 할 짓이 아니었다.

“안 더워요?”

“더워요!”

“그럼 어디 그늘에라도 계시지, 왜 땡볕에 서 있어요.”

우산? 양산?

그런 걸 쓰고 있다지만 그걸로 해결될 만한 더위가 아니었다.

오늘 청주의 낮 기온은 33도.

8월 말인데도, 미친 날씨를 기록 중이었다.

그나마 아랫지방보단 낫지만 33도면 가만히 있어도 사람의 진을 쫙 빼놓는 기온이었다. 그런데도 서서 지영이 트랙을 달리는 걸 다 지켜봤다. 그게 미안하면서도 참 이해가 가지 않는 지영이었다.

원래 팬이란 존재는 그런 건데, 지영은 그 세계를 당연히 알지 못하니 이해가 가지 않고, 반면 신기하기도 그랬다.

“종이랑 펜 있죠? 더우니까 얼른 사인해 줄게요.”

“네!”

서른 명 정도의 팬이 얼른 가방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서 지영에게 건넸다. 본래 지영은 사인이 없었지만 하나 만들어 두는 게 좋다고 해서 이름을 정직하게 쓰는 방식으로 하나 만들었다.

그렇게 일일이 한 분씩 다 사인을 해주고, 같이 사진도 찍었다.

땀에 흠뻑 젖은 몸이었지만 팬분들은 지영의 몸에 붙는 걸 서슴지 않았다. 그렇게 사진도 찍어주고 나서야 지영은 숙소로 돌아갔다.

안으로 들어오자, 감량으로 다들 홀쭉해진 친구들이 지영을 반겼다.

“팬분들 잘 보냈어?”

“응, 사인해 드리고, 사진 찍어주고.”

“오우, 역시 연예인. 팬 관리 확실한데?”

“나만 찾아오는 것처럼 말하지 말지? 너네들도 많이 오면서.”

거짓말이 아니었다.

강한결과 이성진은 더 런닝 측과 고정 멤버를 두고 이미 세계 청소년 대회 이전부터 얘기 중이었다. 그리고 시합이 끝나고 지영이 촬영에 집중할 때, 강한결은 제외하고 이성진만 더 런닝 측과 계약을 맺었다.

더 런닝.

중화권, 동남아 쪽에서는 엄청난 팬덤을 자랑하는 간판 예능에 이성진이 고정 멤버로 출연하게 됐다.

그리고 지영의 촬영이 거의 끝나갈 때부터 이성진은 더 런닝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얼마 전에 첫 방송을 했고, 아주 훌륭하게 그곳에서 자신의 끼를 발산하고 왔다. 이런 이성진은 지영보다 팬이 더 많았다. 특히 누나 팬들이 엄청 많았다.

이성진의 가진 개인사와 맑은 모습이, 누님들의 심금을 자극해 버렸다.

그런 누님 팬들이 솔직히 지영보다도 더 많이 왔다.

거기다가 그 누님들은 심지어 재력마저 되다 보니까 이런저런 선물이 초반엔 엄청 쏟아졌다. 그래서 이성진이 공개적으로 선물은 일절 받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그런데도 가끔 선물이 왔다.

팬이 연예인에게 조공하는 거야 사실 아주 오래된 문화였다.

그래서 역조공이란 말이 생기기도 했고.

그런데 이성진에게 쏟아지는 선물들이 워낙에 고가였다. 더 런닝에 나갈 때 신거나 입으라고 옷과 신발 액세서리 등을 보내는데 그게 가볍게 10만 원을 넘기는 고가다 보니 주장인 강한결은 이건 문제가 되겠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선물을 아예 받지 않기로 했다. 이는 이성진뿐만이 아니라 강한결 본인, 임효중, 황석, 그리고 강지영까지 전부 똑같았다.

기존의 것도 도로 돌려보내려다가, 그건 예의가 아니니 받기로 합의를 봤다. 이런 이성진도 이성진이지만 다른 친구들도 매일 같이 팬이 찾아왔다. 연희고 아이돌이 유명해지기 전에도 찾아오는 팬은 분명 있었지만, 요즘은 확실히 처음에 비해 몇 배나 많이 늘어난 상태였다.

“한결이는?”

“서울에서 이제 출발했다는데?”

“그래? 도착하면 8시쯤 되겠네.”

강한결은 오늘도 서울에 갔다.

이제는 여자친구인 양지원을 보러 간 게 아니라, 강한결도 지영처럼 드라마 캐스팅 미팅에 갔다. 지영이 천재 역이었다면, 강한결은 청춘로맨스 드라마의 주연이다. 그것도 서브 남주가 아니라 메인 남주.

아무런 경험도 없지만 장민주 작가처럼 강한결을 두고 시나리오를 쓴 작가가 있었고, 멜로 장인이라는 감독과 함께 강한결을 캐스팅하기 위해 직접 연희 스포츠와 장세리 선배님의 회사를 찾아갔다.

그리고 며칠간 논의 끝에, 오늘 결정을 내리러 갔다.

결과는 아직 미지수.

‘잘 어울리지.’

순정만화의 주인공보다, 로맨스 소설의 넘사벽 캐릭터보다 더 넘사벽으로 보이는 게 강한결이다. 그래서 지영은 강한결에게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그래서 꼭 강한결이 그 작품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지영이었다.

‘그럼 이제 자립은 끝난 거니까. 나도 마음 놓을 수 있고.’

이제는 각자 알아서 갈 길을 찾기 시작했다.

황석도 영화 촬영을 제대로 끝냈고, 올말에 개봉한다고 했다. 임효중도 시간을 쪼개서 프로젝트 아이돌 훈련을 하고 있었다. 이성진은 말했듯이 더 런닝의 고정으로 들어갔고. 여러모로 잘 풀리고 있었다.

강한결이야 뭘 해도 잘하겠지만, 그래도 이쪽 길에 끈을 남겨뒀으면 싶었다.

‘선택지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두 개의 길 앞에서 고민하는 것보단, 세 개, 네 개. 다섯 개의 길 앞에서 고민하는 게 좀 더 좋다는 게 지영의 생각이었다.

2시간쯤 지나 도착한 강한결. 이성진이 참지 못하고 하기로 했어? 하고 묻자 강한결은 어색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배우 강한결. 잘 어울렸다.

‘하지만 그전에…….’

시합이 먼저였다.

영화도 찍고, 예능도 찍고, 아이돌 데뷔 준비도 하고, 드라마도 찍지만.

다들 본분은 잊지 않았다.

유도 선수.

그게 연희고 아이돌의 본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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