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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124화 (124/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24화

124화. 예인(藝人)으로 살어리랏다(3)

후.

지영은 마지막으로 대본을 확인하고, 아예 테이블 위에 내려놨다. 대사는 전부 외웠다. 그리고 지영은 왜 자신에게 대본이 어제 늦게야 도착했는지 알 수 있었다. 장민주 작가는 지영이 대본을 가지고 연습하는 것 자체를 원하지 않았다.

배우의 연기는 철저한 연습을 통해 드러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지영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장민주 작가는 그런 연습을 통해 지영이 기성 배우들의 느낌을 가지는 걸 지극히 경계했다.

그녀가 원하는 모습은, 평상시 지영의 모습이었다.

차분한 느낌의 강지영.

시합 때, 상대를 던진 뒤 오연한 눈빛으로 패자를 내려다보는 그런 강지영.

장민주 작가는 딱 그런 모습을 원했다.

밖으로 나오자 장민주 작가가 바로 다가왔다.

“대사는 외웠지?”

“네.”

“부탁했던 대로, 따로 연습도 안 했지?”

“네.”

지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장민주가 씩 웃었다. 지영은 그런 장민주 작가를 가만히 바라봤다. 눈에 다크서클이 가득한 느낌이다. 그런데도 자신이 오늘 첫 촬영을 한다고, 새벽부터 현장에 나와 있었다.

솔직히 이쯤 되니 지영은 궁금해졌다.

“원래 작가님들은 다 이렇게 해요?”

지영의 질문에 장민주 작가는 눈을 끔뻑이더니 이번에도 씩 웃으며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가 별종이라서 그래. 나는 꽂히는 캐릭터가 있으면 표현하는데 반드시 내 손길이 들어가야 하거든. 나에 대해 안 찾아봤어?”

“찾아는 봤는데…… 이 정도인가 싶어서요.”

“왜 부담스럽니?”

“아니라곤 말 못 하겠어요. 감사하죠. 감사한데…… 이렇게까지 해주시니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크고, 막 그래요.”

“당연한 반응이네. 그런데 내가 그때 얘기했지? 지영이 너 픽업은 내가 했고, 그에 대한 책임도 내가 지는 거야. 그것 때문에 부담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이게 시합보단 낫지 않을까? 앞으로 목표가 올림픽이라며? 적어도 올림픽보단 이게 덜 떨릴 것 같은데?”

“글쎄요? 올림픽은 저도 못 나가봐서……. 그런데 무슨 말씀이신지는 알 것 같아요. 음, 솔직히 좀 떨렸는데 이제 괜찮아졌습니다.”

그래, 올림픽보다, 이게 더 떨릴 것도 없었다.

앞으로 나가야 할 많은 시합들, 강자와의 대결, 그게 사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자. 그렇게 마인드컨트롤을 했더니 역시나 마음이 좀 차분히 가라앉았다.

“잘됐네. 자, 그럼 가서 동선 좀 짜볼까?”

“네.”

앞서 걷는 장민주 작가의 뒤를 따라 걷는 지영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느껴졌지만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지영은 사실 자신이 얼마나 많은 편의를 받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바닥에서 그게 얼마나 시샘을 일으키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지영은 검증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특혜를 받으니, 당연히 좋은 시선을 받기 힘들었다.

하지만 지영은 이런 시선에 익숙했다. 이 공간이 비록 유도 경기장은 아니더라도, 자신의 능력이 100% 발휘되는 공간이 아니더라도 이런 시선을 무시하는 건 그에겐 너무나 익숙했다.

질투와 시샘.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데, 왜 너는 시작부터 그런 대우를 받냐는 그런 눈빛들. 새벽이지만 배우들은 제법 나와 있었다. 특히 조연배우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미 자리를 잡은 조연배우들보단, 단역배우들이 더 많았다.

잠깐 스쳐 가는 배우들.

그런 배우들의 눈빛엔 질투와 시샘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었다. 그러나 지영은 그걸 깔끔히 무시하고 세트장에 입성했다. 누누이 말하지만, 이런 시선은 너무 익숙했다.

오늘 찍을 장면은 지영이 일어나서 소설을 쓰는 장면이었다.

잠에서 깨서, 그렇게 정신이 맑지 못한 상태에서 뭔가에 꽂혀 글을 쓰기 시작하는 서건. 아침밥도, 씻는 것도, 보통 드라마에 즐겨나오는 커피 마시는 것조차 생략한 채 쓰기 시작한 글은 해질녘쯤 끝났다.

그렇게 등장한 한 편의 소설.

‘새’.

퇴고조차 없이 다이렉트로 연재 사이트에 등록된 소설 ‘새’는, 아주 역동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그리고 이어서 빗발치는 출간 제의. 하지만 서건은 무시했다. 소설은 무료로 풀렸고, 이미 풀린 순간 서건의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린다.

이미 썼고, 올라갔기에, 이 이상 의미를 두지 않는.

그런 장면을 찍는다.

그리고 이게 극 중 천재 서건의 첫 등장 장면이기도 했다. 이 장면 이후로 다양한 분야에서 한 신씩 등장한다. 사실 전체적으로 본다면 비중은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었다. 애초에 조연이고, 중요한 배역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신 자체의 분위기와 영상미로 캐릭터 성을 살리는, 그런 느낌이라고 보면 된다고 감독과 작가가 알려줬다.

계속 나오는 게 아닌, 아주 잠깐씩 그런 모습을 보여 주연 캐릭터들의 감정이 다시금 불타게 만드는, 그런 역할이다.

지영은 그런 역할에 충실히 따를 생각이었다.

박지상 감독과 장민주에게 동선에 대한 설명을 들은 지영은 마지막 점검을 받고, 드디어 생에 첫 촬영을 목전에 뒀다.

동선을 기억하고, 대사를 생각하며 감정을 잡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사위가 고요했다.

그리고 모두가 가만히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에 담긴 감정은 제각각이었다.

이미 지영을 아는 배우들은 자 어떤 연기를 보여줄 거야? 하는 기대.

지영을 모르는 조연들은 그래, 어디 얼마나 잘해서 이런 특혜를 받는지 좀 보자! 하는 시샘과 질투.

그것과 상관없는 촬영 스태프들은 부디, 무난하게 연기해서 분위기만 해치지 말아주세요. 하는 걱정.

박지상 감독과 장민주 작가는 말한 대로만! 하는 부탁.

그런 지영의 시선에 저 멀리, 모자와 마스크를 푹 눌러 쓴 일단의 무리가 보였다. 키는 자신만 하거나, 자신보다 좀 크고 체격이 정말 좋은 장정 넷이다. 지영은 바로 알아봤다. 친구들이 지켜보자 부끄러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마음이 확 안정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고요하게 가라앉은 세트장에, 박지상 감독의 액션! 외침이 울렸다.

* * *

멍…….

시작은 잠에서 깬 것처럼. 아니, 잠에서 깬 게 맞다.

세트장에 세팅해 놓은 침대에서 부스스한 기색으로 일어났다. 마치 유령처럼, 허리의 힘으로만 스으윽, 하고 상체를 세워 일어났다. 눈은 반쯤 떴다. 초점은 당연히 잡히지 않아야겠지? 잠에서 깬 직후니까.

끔뻑, 끔뻑.

잠에서 막 깨면 눈이 따갑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는데 적어도 지영은 그랬다. 그래서 눈을 한차례 비빈 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슬리퍼를 신고 살짝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컷!

“오케이! 지금 느낌 좋았어요.”

박지상 감독이 바로 다가와 지도를 시작했다. 좀 더 천천히, 좀 더 느릿하게. 매사에 급한 게 없다는 느낌을 온몸으로 확실히 보여주는. 그런 주문을 했다. 지영은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침대에 가서 누웠다. 그러자 카메라가 다시 지영의 얼굴 옆으로 바짝 다가왔다.

신기했다.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신기한 마음이 더 컸다. 그리고 타인의 시선에 이미 익숙한 자신에게 감사했다.

다시 사위가 고요하게 물들자, 어느 순간 다시 액션! 소리가 울렸다. 지영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멍…… 아무런 무늬도 없는 하얀 천장을 바라봤고, 이내 아까처럼 스르륵, 유령처럼 코어 힘을 이용해 상체를 세웠다. 살랑이는 머리카락이 눈 앞을 가렸다. 그래서 몇 번 눈을 다시 깜빡였고,

그래도 눈꺼풀이 따갑고 가려워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사실 이런 디테일은 아무도 주문하지 않았다. 대본에는 천재의 나른한 모습을 표현. 정도로만 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 대본과는 다르게 굉장히 심플하게 대본을 짜준 거다. 그래서 지영은 평소 자신의 모습을 오마주했다.

아니, 그냥 요구대로 자신이 눈을 떴을 때 보통 하는 행동을 고스란히 내보였다.

‘대신 좀 전 감독님의 요구대로 좀 더 느릿하게. 너무 느리면 답답하니까, 그래도 답답하지 않을 속도로.’

그런 마음으로 눈을 천천히 비빈 후 다시 멍.

원래 이러지는 않는다. 지영은 잘 자고, 잘 깨어나는 편에 속했다. 그래서 평소 루틴을 좀 더 느릿하게 가져갔다.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난 지영은 가끔 배고파서 힘이 없을 때 일어나려다가 주저앉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도 옮겼다.

폭신한 침대에 일어나려다 다시 콩, 주저앉았다가, 그리고 다시 일어나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문으로 다가갔다. 어깨는 세우지 않고 살짝 처지게 했다. 고개도 조금 더 숙였다. 입술은 살짝 벌어져서 치아도 살짝 보이게 했고, 그렇게 걸어서 문고리를 드륵, 드륵, 두어 번 돌렸다가 끄응, 하는 느낌으로 열고는 밖으로 나갔다.

당연히 밖은, 또 다른 세트장이었다.

그리고 이번 신은 여기까지였다

컷!

컷 사인과 함께 박지상 감독이 짝짝!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대사도 없는 연기였지만 어째 충분히 마음에 드신 모양이었다.

짝짝짝.

그리고 이상하게 다 같이 축하를 해줬다.

지영은 그에 꾸벅, 인사하고는 감독님을 향해 다가갔다.

모니터링…… 솔직히 어제 이연과 장민재를 보고 좀 해보고 싶었다.

그러자 웃으며 자리로 안내한 박지상 감독.

자신이 움직이는 모습을 본 지영은 딱 정의 내릴 수 있었다.

‘봐도 잘 모르겠네.’

뭐가 잘 된 건지, 뭐가 미진한 건지, 솔직히 경험이 일천한 지영은 아무것도 파악할 수 없었다.

“좀 알겠어?”

박지상 감독의 물음에 지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죄송합니다. 잘 모르겠어요.”

“하하, 당연한 거야. 신인이 벌써부터 자신의 연기 어디가 부족한지 알면, 그것도 진짜 천재라고 할 수 있는 거거든.”

“네, 감독님이 시키시는 대로, 그냥 그대로만 하겠습니다.”

“그래요, 잘 부탁해. 자, 그럼 다음 신 가볼까?”

“네.”

지영은 꾸벅 인사를 하고 몸을 돌렸다.

그러자 환하게 웃고 있는 장민주 작가가 바로 앞에 서 있었다. 마치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고, 그에 취해 환희하는 모습이라서 좀 부담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저렇게 기뻐하니 마음이 놓였다.

장민주 작가는 이어 엄지를 척 들었고, 다른 얘기는 하지 않았다.

꾸벅, 그런 장민주 작가에게도 인사를 한 지영은 다시 두 번째 신 자리로 이동했다. 오늘은 새벽 촬영은 거의 혼자였다. 낮과 밤이 흐리는 시간차를 보여주기 위한 촬영이 이어지고, 해가 뜨면 다른 배우들 촬영이 있었다.

물론 뒤늦게 합류한 지영이 낮에도 촬영 신이 가장 많았다.

특히 오늘은…….

웅성웅성.

“어머어머, 반가워요. 아휴, 새벽부터 너무들 고생한다. 미안해요. 미안해. 근데 어쩌겠어. 우린 이런 팔자인데. 우리 조금만 더 힘내요.”

하면서 들어오는 임윤옥 선생님과 합을 맞추는 신도 있었다.

꾸벅, 지영이 인사하자 손짓으로 반갑다고 받아준 임윤옥 선생님이 바로 대기실로 향하셨다.

‘그러고 보니…… 오늘 전부 같이 연기하는구나.’

이연과 붙는 신도 오늘 찍고, 장민재와 붙는 신도 오늘 찍는다. 사실 지영의 촬영은 이미 많이 밀려 있었다. 2주면 드라마 몇 화를 만들어도 만들지만, 지영이 없어서 아직은 1화 편집도 들어가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지영은 오늘내일, 그리고 월요일까지 초반에 들어갈 신을 전부 몰아 찍기로 했다.

빡빡한 일정이지만 글쎄…….

운동했던 거에 비하면, 특히 감량하는 거에 비하면 이건 그리 빡빡한 것도 아니라는 게 지영의 생각이었다.

서건의 거실 세트장으로 이동한 지영은 두 번째 촬영을 준비했다.

두 번째 신은 거실 테이블에 역시나 멍하니 앉아 있는 장면이다.

그러다 그냥 생각 없이 고개를 돌렸는데, 이른 새벽부터 밖에서 하루를 시작한 새를 보고는 어떤 영감을 떠올리는 장면이었다.

거실의 옆은 통유리였다.

그리고 그곳엔 마당이 있었다.

서건의 집은 실제 집이 아니라 세트장이라, 이런 세팅이 가능했다. 그리고 그 통유리 너머, 이른 아침에 먹이활동을 시작한 새가 있다는 설정이다.

당연히 새는 CG로 처리한다고 했다.

그러니 여기서 중요한 건…….

‘상상.’

새가 있다고 상상.

그리고 그런 새를 따라서 시선이 움직여야 했다.

사실 이런 연기는 웬만한 배우들도 어려워했다. 왜? 실체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공이 된 배우들도 쉽지 않은데, 이걸 생초보인 지영이 해야 했다.

물론 지영은 그게 어려운 연기인지 전혀 몰랐다.

모르면 용감하다고는 말이 있는데 실제로 박지상 감독과 장민주 작가는 그 부분을 노렸다. 모르니까 시키면 잘할 거다.

이미지 구현 능력이 뛰어나니까, 분명히 좋은 모습을 보여줄 거다. 이런 생각을 하고 시작된 지영의 연기.

카메라는 지영의 눈빛을 담았다.

시시각각, 아주 천천히 변화하는 감정.

박지상 감독도, 그런 박지상 감독에게 바짝 붙어서 모니터 중인 장민주 작가도, 카메라가 타이트하게 잡은 지영의 눈빛, 표정을 보곤 저도 모르게 주먹을 꾹 쥐었다.

두 사람은 보았다.

지영이, 새를 어떤 느낌으로 보고 있는지.

아주 어렴풋이나마, 그걸 같이 본 기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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