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18화
118화. 세계 청소년 유도 선수권(11)
둘 다 시드 첫 번째다.
지영이랑 헝가리 선수가 붙었을 때 73의 첫 게임이었던 것처럼 둘도 헝가리 선수와 첫판이라 이튿날 대회 시작을 알리는 첫 게임이었다. 첫 게임의 장단점은 사실 크게 없었다. 가장 먼저 시합에 들어가니 긴장은 되긴 하지만, 반대로 몸을 풀고 바로 들어가는 거라 딱 좋게 예열이 되어 있어서 컨디션이 최고조일 때 들어간다는 장점이 있으니까 말이다.
백색 도복을 입고 들어간 임효중과 강한결.
시간이 정확히 10시 정각이 되자 입장해있던 심판이 바로 선수 입장을 신호를 줬다. 총 여덟 명의 선수가 그 신호에 맞추어 일제히 입장했다.
그리고 다시 인사.
한 걸음 앞으로, 하지메!
악!
우렁찬 기합과 함께 시작된 시합.
지영은 한 손에는 수건을, 한 손으로는 음료와 물을 든 채, 경기장 밖에서 두 친구의 첫 게임을 관전했다.
하필이면 둘이 같이 입장에서 정신이 없을 줄 알았는데, 시작과 동시에 임효중이 허벅다리로 상대를 한 판으로 돌려버리면서, 경기 시작 40초 만에 그쳐 없이 승리를 거뒀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지영은 강한결에 집중할 수 있었다.
경기장 밖으로 나온 임효중.
“고생했어.”
지영이 수건을 주자, 임효중은 그걸 받아서 목에 건 다음, 강한결의 시합을 바라봤다. 지영도 그의 옆에 서서 시합을 바라봤다. 1분이 지났을 때쯤, 둘은 고개를 갸웃했다.
“음, 오늘이 한결이 컨디션 안 좋은가?”
“그래 보이지?”
지영의 말에 임효중이 동의하는 답을 했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지영은 시합 중인 강한결을 바라봤다. 확실히 몸이 무거워 보였다. 뭐랄까, 언제나 완벽한 모습에서, 나사 하나가 툭 빠진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몸 풀 때도 저랬어?”
“아니, 몸 풀 때는 괜찮았는데. 왜 저러지?”
“흠……. 밤에 잠은 잘 잤어?”
“밤잠 좀 설치긴 한 것 같은데, 그래도 이상하진 않았어.”
아침에 봤을 때도 컨디션은 그렇게 나쁘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아무래도 아니었던 것 같았다. 워낙에 희고 고운 느낌이라 그냥 지나친 것 같았다. 저 모습은 절대 베스트 컨디션이 아니었다.
아니, 베스트가 뭔가.
어째 정상 컨디션에서 반도 안 되어 보이는 느낌이었다.
부웅!
그 순간, 강한결의 몸이 붕 떴다.
“어!”
“와 씨…….”
다행히 앞으로 떨어져서, 지영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깜짝 놀랐다. 허리후리기에서 감아치기에 걸렸는데, 조금만 더 끌려갔어도 아마 최소 절반을 빼앗겼을 거다. 경기 시간은 벌써 2분을 지났다.
그리고 강한결은 지도를 받았다.
하지만 지도 하나쯤은 어차피 크게 불리한 상황도 아니었다. 막 3분이 지났을 무렵, 몸이 그래도 좀 풀리긴 했는지 강한결의 업어치기가 작렬했고, 끝까지 당기지 못했지만 절반을 따냈다.
남은 시간은 50초 정도.
그 50초간 지도 하나를 더 받고, 강한결을 첫 게임을 겨우 이기고 나왔다. 전기정 교수에게 갔던 강한결이 돌아왔다. 낯빛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무슨 일이야?”
지영이 묻자, 강한결이 쓴웃음을 지었다.
“잠결에 물 잘못 마셔서, 화장실 몇 번 왔다 갔다 했는데 이 모양이네.”
“아…….”
물갈이다.
같은 나라에서도 음식 때문에 잘못하면 물갈이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곳은 헝가리다. 아예 대륙 자체가 달랐다. 그런 곳이라 일단 기본적으로 배급되는 물이 안 맞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충분히 그럴 만했다. 지영도 그걸 경계해서 이곳에 와서 생수는 아예 한 번도 입에 대지 않았다.
그 대신 한국에서 넘어온 생수만 마셨다.
그런데 강한결은 잠결에 물을 잘못 마신 것 같았다. 고작 물 가지고 그러겠냐고 하겠지만, 다들 감량 때문에 몸에 저항력에 바닥으로 처박힌 상태였다. 아주 작은 오한만 느껴도 감기로 연결될 수 있는 상황이란 뜻이었다.
그러나 결국, 강한결의 실수였다.
이건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잠결에 실수로 마셨다는데 넌 좀 조심하지! 하고 타박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약은? 아, 못 먹지.”
임효중이 급히 물어보다가, 제풀에 꺾였다.
대회 중에는 그 어떤 약도 먹지 않는 게 좋았다. 괜히 탈 난 거 잡겠다고 약 잘못 먹었다가 도핑이라도 걸리면 차라리 시합에서 지는 것만 못한 상황이 나온다. 도핑. 운동선수에게는 정말이지, 최악의 상황이었다.
운동을 그만둘 때까지는 마치 낙인처럼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될 게 분명하니 약은 아예 손도 대지 않는 게 좋았다.
“시합 괜찮겠어?”
지영의 물음에 강한결은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는 뭐, 아무것도 아니야. 문제없어.”
“퍽이나. 일단 쉬자. 뭐 좀 먹을래?”
지영의 말에 강한결은 고개를 저었다.
“먹으면 바로 또 화장실 가야 할 것 같아서. 물도 지금은 조심하는 중이야.”
“후, 미치겠네.”
강한결이 이렇게 얘기할 정도면 지금 상태가 진짜 안 좋다고 봐야 했다. 언제나 주장으로서 모범적인 모습을 보이기 위해 스스로를 철저하게 컨트롤하는데, 그게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 딱 한 번의 실수가 만들어낸 상황치곤 가혹하다는 생각에 지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일단 최대한 쉬자.”
“응.”
한쪽으로 이동해서 강한결이 자리에 앉자 지영은 담요를 덮어주고 바로 의료진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어제 자신의 응급처치를 해준 의사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잠시 고심하던 의사는 지금 바로 처치는 어렵다는 말을 해줬다. 탈수증세를 해결하려면 수액을 맞아야 하는데, 지금 현실적으로 그럴 시간이 없었다. 수액을 맞고, 시합을 뛰고를 병행하는 것도 말이 안 되고.
결국 답이 없었다.
“방법 없대?”
이성진의 물음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약 같은 걸 먹자니, 그것도 어디서 도핑에 걸릴지 모르니 먹지 않는 게 좋았다. 그러니 방법은 수액이 최곤데, 가서 얘기했더니 강한결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곤 한다는 말이.
“너도 입 찢어지고 이마 찢어지고도 시합했잖아. 나보다 상황 더 안 좋았는데도.”
“야, 그거랑 같아? 난 그래도 컨디션이 그렇게 나쁘진 않았어.”
“안 달라. 걱정 마. 첫 메이저 대회를 놓치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까. 그리고 호흡도 트여서 이제 시합 제대로 할 수 있어.”
“하아.”
절레절레.
하여간 고집불통이다.
“석이 들어간다. 석이 내가 보고 올게.”
“응, 부탁할게.”
그사이 황석의 차례가 되었다.
헤비급 시합의 특징이, 한판이 잘 나온다는 점이었다. 민첩성이 떨어지니 걸리면 보통 한판으로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경량급보다 훨씬 빨리 1회전이 끝나서, 벌써 헤비급인 마백과 플백 차례가 됐다.
황석은 시드 중간.
ABCD로 따지면 C인데도 금방 차례가 왔다. 앞서서 들어간 장대호가 카자흐스탄 선수를 한판으로 던짐과 동시에 입장하는 황석. 지영은 1회전을 끝낸 강한결과 임효중의 옆에서 황석의 시합을 바라봤다.
띠링.
메시지가 와서 빼봤더니, 한은정이었다.
[한결이 왜 그래? 컨디션 안 좋아?]
방송을 본 한은정도 역시 강한결의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보였나 보다. 하긴, 언제나 완벽한 친구였다. 시합도, 공부도, 대인관계와 스스로를 통제, 절제하는 것도 대단했던 친구였다. 그러니 강한결을 아는 친구들은, 강한결의 지금 상태가 별로라는 건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지영은 바로 배탈이라고 답장을 적어 보내고 황석의 시합을 바라봤다.
어제는 최고였다.
이성진이 첫 세계 대회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자신도 연장 접전 끝에 결국 미야모토 신지에게 승리를 거두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렇게 어제는 최고였다. 하지만 진짜 최고로 시합이 마무리되려면, 오늘 친구들이 중요했다.
이제 1회전이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1회전에 시합 감각을 찾는 게 정말 중요했다.
‘우리 약점이 대회를 자주 나가지 않는다는 거지.’
보통 고등부 선수들은 시즌이 시작되면 다달이 대회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춘계, 추계, 하계. YMCA, 용인총장배, 청풍기 등등, 전국체전까지 거의 쉬지 않고 대회가 있었다. 하지만 황금세대는 이 모든 대회를 나가지 않고, 청소년 선발전과 체전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그래서 실전 감각이 떨어졌다.
매일 훈련을 거르지 않지만, 연습과 실전은 당연히 차이가 극명했다. 그래서 첫판은 다들 조심해야 했다. 감각이 떨어졌기 때문에 어떻게 날아갈지…….
쿵!
와자리!
아무도 모른다.
절반을 빼앗겼다.
우크라이나 선수에게 절반을 빼앗긴 황석이 급히 굳히기 자세를 잡았다. 다행히 굳히기 상황에서 눌리지 않고, 그쳐 선언이 나왔다. 후우. 지영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시합 때 가장 위험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황석인데, 오늘도 역시나 시작부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황석! 정신 안 차려!”
일어난 황석에게, 전기정 교수가 불호령을 내렸다.
그러자 네! 하고 단단하게 대답하는 황석.
정신 안 차린다고? 아니, 반대다. 정신 차리겠다고 힘차게 대답한 거다. 황석은 요즘 연기를 준비한다. 그것도 제대로 된 상업영화의 조연을 맡았다. 그래서 지영처럼 하루 루틴에 연기 연습을 넣었다. 딱 그것만 보면 허파에 바람이 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아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철저하게 시간을 쪼개서 훈련했지.’
임대성 코치는 결코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다.
능력이 없었다면 중학교부터 황금세대를 맡아 고등학교까지 같이 픽업 될 일은 없었을 거다. 감독이 없는 대신 팀 전체를 케어해 주는 게 임대성이고. 그는 황금세대가 다른 연예계 일을 시작하자마자 훈련 시간만큼은 철저하게 돌렸다.
그래서 결코, 허투루 훈련에 임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은 방심?
아니다.
‘이게 세계인 거지.’
황금세대는 한국이 좁은 천재들이었다.
당장 성인부에 던져놔도 국대 선발을 노릴 수 있는 실력자들이었다. 지영의 실력이 그러니, 지영과 비슷한 이 친구들도 분명 그 정도 급은 될 게 분명했다. 그런데도 절반을 빼앗겼다? 방심도 아닌데?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세계의 벽이, 높고도 단단한 것.
지영의 눈빛이 절로 호선을 그렸다. 이 상황인데도, 황석이 절반을 빼앗겼는데도 웃음이 나왔다. 앞으로의 유도 인생이 만만치 않겠다는 걸 자각했기 때문에 나온 웃음이고…….
‘더, 더 높은 곳으로 가고 싶다.’
세계 청소년 말고, 전 세계에서 가장 유도를 잘하는 선수들이 나오는 대회에 나가고 싶어졌다. 그런 욕구가 폭발적으로 솟구치는 걸 느끼면서 지영은 황석의 시합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런 지영을 임효중과 강한결이 빤히 보더니 피식 웃음을 흘리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쿠웅!
의지를 다진 황석이, 밭다리로 우크라이나 선수에게 절반을 빼앗았다. 이로써 동점. 시간은 2분. 지영은 차분한 눈빛으로 두 사람의 시합을 바라봤다. 황석의 시합은 불안감이 좀 있다. 그래서 심장은 거칠게 뛰고 있어도, 그걸 티 내지는 않았다.
그런 복잡한 심리 상태를 보이는 지영의 시선 속에서 다시 맞붙는 둘.
둘은 전형적인 맞잡이였다.
황석도 오른쪽 틀어잡기고, 우크라이나 선수도 똑같이 오른쪽 틀어잡기라 서로 소매와 어깨 목깃을 잡고 턱으로 상대의 팔을 죽인 채 힘과 기술을 겨루기 시작했다. 그걸 자세히 보던 지영은 약점을 대번에 찾아냈다.
‘하체가 약해.’
왜 그런 게 있지 않나.
바둑이나 장기를 둘 때, 두는 사람은 집중해서 판을 보느라 잘 모르지만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은 전체를 넓게 보니까 기가 막힌 수를 찾아내는, 그런 경우 말이다.
지영이 그랬다.
우크라이나 선수의 상체는 탱크였다. 얼마나 벌크업을 했는지 도복을 터질 것처럼 뻑뻑했다. 그런 만큼 힘이 좋다는 거니까, 그건 분명히 장점이다. 하지만 상체는 정반대였다. 유도복은 폼이 넓지만 움직이기 시작하면 얼추 대략 적으로 느낌이 온다.
‘상체의 힘을, 하체가 못 따라간다.’
이런 경우는 당연히…… 하체를 집중공략 해야 한다.
그렇다면 황석은, 그 약점을 알아챘을까?
툭, 툭툭.
안뒤축에, 당겨서 모두걸기.
그리고 빙글 돌아 나오면서 발목받치기.
알아차렸다.
지영이 속으로 다행이라 중얼거리며 웃을 때, 휘청이는 상대에게 다시 한번 발목받치기를 건 황석이, 그대로 무너진 상체를 핸들치기로 감아서, 그대로 허리후리기로 연결했다.
쿠웅!
잇폰!
전원 1회전 통과.
세계 청소년 유도선수권 이튿날 경기가, 본격적으로 막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