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17화
117화. 세계 청소년 유도 선수권(10)
커뮤니티 대폭발.
-까진 아니었지만, 화제가 된 건 분명했다.
지영의 시합은 곧 짤로 만들어져 퍼지기 시작했고, 주목받고, 화제가 되었다. 가뜩이나 요즘 주목받기 시작한 운동선수이고, 거기다가 한일전이었다. 이전에도 한 번 화제가 되었었던 만큼, 확실히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당장 지영은 그런 것도 모르고, 시합을 끝내고 병원에 들렀다가, 뒤늦은 저녁을 먹고 객실로 돌아와 호텔에서 휴식 중이었다. 그리고 휴식 중 가장 먼저 한 일은 역시 집에 전화부터 하는 거였다.
-이마는 정말 괜찮은 거지, 아들?
“네, 괜찮아요. 시합 끝나고 다시 검사받았고요. 소독도 하고 약도 받아왔어요.”
-후, 다행이다, 정말. 엄마는 진짜…… 아니다. 아들 피곤할 텐데 얼른 쉬어. 엄마랑은 내일 통화하자. 알았지?
“네. 걱정시켜 드려 죄송해요.”
-걱정은 무슨! 엄마 정말 괜찮아! 그럼 끊는다?
“네.”
전화를 끊은 지영은 후,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영은 폰을 충전시켜놓고, 들어가서 샤워를 하고 나왔다. 머리에 물기가 닿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샤워를 하느라 평소보다 두 배는 더 시간이 걸렸다.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나오자, 몸이 노곤했다.
그리고 슬슬 통증이 몰려오기 시작해 온몸이 아팠다.
신지와 15분을 넘게 시합한 덕분에 후폭풍이 진짜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기분만큼은 좋았다. 패자였다면 이런 통증이 짜증이 났겠지만, 오늘도 지영은 승자였다. 그래서 기분은 더없이 좋았다.
편한 복장으로 옷을 입고 폰을 확인하자, 전화가 한 통 와 있었다.
양유진.
한국은 늦은 시간일 텐데도 전화를 줘서, 지영은 바로 전화를 걸었다.
기다리고 있었는지 그녀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연예인님?
피식.
연예인님? 하고 묻는 그녀 특유의 전화방식에 지영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실소가 아니라, 마음이 이상하게도 따뜻해져서 나온 미소였다.
“저예요. 아직 안 잤어요?”
-네. 히잉.
목소리에 물기가 묻어 있었다.
그에 지영은 양유진이 시합을 봤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시합 봤어요?”
-네, 동생이랑요…….
“이런.”
지영이 시합 중 걱정했던 것대로, 역시 양유진은 지영이 피를 흘리는 모습에 놀란 게 분명했다.
“다 봤잖아요. 저 괜찮아요. 시상식도 무사히 했고, 병원도 갔다 왔어요. 저녁도 먹고, 이제 쉬는 중인데, 봐요. 지금 제 목소리 생생하죠?”
-으잉…….
귀여운 투정 소리가 들렸다.
그러곤 바로 말을 이어가는 양유진.
-연예인님 얼굴 엄청 창백했어요. 하나도 안 괜찮아 보였는데…….
“그건 시합하느라고 지쳐서 그래요. 지금은 진짜 괜찮아요.”
-진짜요……?
“네. 한국은 지금 자정 넘었죠?”
-네, 새벽이에요…….
“이런, 너무 늦었다. 얼른 자요. 내일 연락해요. 우리.”
-꼭 연락해야 해요?
“그럼요.”
지영의 대답에 양유진은 쿨쩍! 코를 한 번 먹고는 마지 못해 전화를 끊었다. 휴, 통화를 끝낸 지영은 몸을 돌리다 흠칫, 자리에 굳었다.
“그럼요. 어흐! 어흐응!”
이성진이다.
이성진이 표정을 요상하게 하곤 지영의 말투를 따라 하며 몸을 배배 꼬았다. 언제 들어왔지? 하고 생각하다가 아예 나가지 않았었다는 걸 깨달았다.
“달달하다, 달달해!”
지영은 무시했다.
이걸 받아주면 진짜, 한도 끝도 없기 때문이었다. 지영은 침대에 앉아서 연락해준 사람들에게 차근차근 답장을 보냈다. 장민주 작가도, 박지상 감독님한테도 보냈고, 지금 같은 호텔의 다른 방에 있는 회사대표 장세리 선배님에게도 보냈다.
‘내 동생 이마 괜찮아?’ 하고 걱정해준 한유진에게도 답장을 보냈다.
“눈은 괜찮아?”
이성진이 옆에 앉으며 물어서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렇게 괜찮진 않았다. 이마에서 느껴지는 통증도, 그리고 시합을 빡세게 한 여파로 삭신이 쑤셨지만 이 정도는 뭐 그냥 참을 만했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인 거다.
“어, 너는?”
“나야 뭐, 너에 비하면 새 발의 피잖아? 시합한 거도 아니지.”
“뭐 그 정도까지. 끙, 애들은? 애들은 컨디션 좋대?”
아까 병원에 다시 갔다 오느라 저녁도 같이 못 먹어서, 애들을 만날 수 없었다. 어제오늘 지영이 예민했다면, 이제는 내일 시합하는 친구들이 예민할 차례라 따로 방에 가볼 수도 없었다.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시합을 준비하는데 지영은 그 루틴을 깨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다 좋아. 우리 이번에 전 체급 석권하고 갈 듯?”
이성진의 말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당연히 그래야 한다. 아직은 청소년 세계선수권이지만, 앞으로 이 대회를 시작으로 모든 체급을 석권하는 게 지영이 바라는 바였다. 지영의 주도하에 방송 쪽으로도 영역을 넓혀가고 있지만, 자신이나 친구들이나 자신이 운동선수라는 점은 한 번도 잊지 않았다.
그건 돌아가자마자 드라마를 찍는 상황에서도 잊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본분이었다.
끄응.
답장을 어느 정도 다 보내놓고 자리에 눕는데 테이블에 올려뒀던 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번호를 보니 이선영이라고 떠 있었다. 오랜만의 전화라 지영은 다시 폰을 들고 일어나 발코니로 나갔다.
“네, 누나.”
-이마는 괜찮지?
이선영도 시합을 봤나 보다.
“네, 괜찮아요.”
-그래, 금메달 축하해!
“네, 감사합니다. 어쩐 일이세요, 새벽에?”
-응? 거기 새벽이야?
“아니요, 한국이 지금 새벽이잖아요.”
-아, 그렇지. 후후. 별건 아니고. 지영이 너 시합 끝나고 시간 좀 날까?
“시간이요?”
갑자기?
음, 시간은…… 안 날 거다. 돌아가자마자 바로 드라마 촬영이 있어서 집에도 못 가고 다시 바쁘게 살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단 이유부터 들어보기로 했다. 드라마 촬영을 매일 하는 것도 아니고, 시간쯤은 어떻게든 낼 수 있으니까.
“가자마자 드라마 촬영이 있긴 한데, 왜요? 무슨 일 있어요?”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천재 소년과 소녀가 문제가 있지.
아…….
지영은 발코니에 비치된 흔들의자에 앉았다.
“자세하게 듣고 싶어요.”
-자세히고 뭐고, 그게 전부야. 경남체고 소속 남매 양궁선수인데, 새아빠가 아주 둘을 들들 볶는 모양이야.
“성진이처럼요?”
-더 심해. 여긴 폭력도 있어. 심지어 성폭행 미수도 있고.
“…….”
자신의 상태를 알면서도 이런 얘기를 할 정도면 상황이 정말 심각한 게 분명했다.
아니, 그냥 마지막 말만 들어도 문제가 진짜 심각했다.
-여자애가 누나고, 남자애가 동생이야. 연년생. 여자애는 너보다 한 살 위, 남자애는 동갑. 그런데 둘 다 지금 도망쳤어. 학교까지 찾아와서 난장판을 부리니 애들이 그 안에서 어떻게 있겠어.
“음…….”
-그래서 겨우겨우 내가 찾아내긴 했는데, 남자 쪽은 반항기가 엄청나. 눈에 독기를 넘어서 살기가 서렸어. 얘 그냥 두면 새아빠란 작자 죽이겠더라.
“엄마는요?”
-많이 안 좋으셔. 제대로 거동도 못 하는데 돈도 없으니 병원에도 못 모시는 상태고.
“…….”
아아…….
최악이다. 딱 봐도 정말 복잡한 문제인데, 솔직히 시합이 끝난 직후 나눌 만한 얘기는 아니었다. 시합 자체를 아무리 좋아하는 지영이라고 해도, 육체에 쌓인 피로는 결국 정신에도 문제를 끼치게 마련이었다.
그러니 이건 지금 나눌 얘기는 아닌데,
‘선영 누나가 그걸 모를 리가 없는데?’
누구보다 눈치가 빠르고, 그래서 반대로 배려심도 강한 분이다. 그런 이선영이 지영이 휴식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전화했다면 분명 다른 이유가 있었다.
“누나, 다른 이유 있죠?”
-응. 동생이 아버지를 쐈어.
“네?”
-양궁선수라고 했잖아. 살기가 넘친다고도 했고. 이미 한 번 활로 쐈어. 다행히 빗나갔는데, 진짜 죽이려고 쏜 거 같아. 일단은 미수로 그쳤는데 이게 보통 문제는 아니지.
“…….”
아이고…….
지영은 왜 이선영이 매너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전화를 했는지 바로 이해했다.
-애들이 너무 아까워. 둘 다 지금 국내 순위 10위 안에 들거든. 얘들도 양궁 시작한 지 채 3년이 안 돼. 재능은 진짜라는 거지. 그래서 다음 올림픽에 승선할 거라고 보는 게 그쪽 업계의 중론이고. 그런 애들이 새아빠의 폭력에 시달려 운동선수로서의 꿈을 잃는 건, 솔직히 너무 아깝잖아?
“그렇겠네요. 그럼 제가 해야 할 일은요?”
-연희 스포츠가 움직여야지. 나 혼자로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어. 내가 무조건 다 해결해 주겠다, 이런 식으로 말할 수는 없잖아? 난 기자 신분이고, 너한테 고용되어 있는 처지인데.
확실히 그렇긴 했다.
그녀는 아직 충주의 방송국 소속이었다. 그리고 따로 지영에게 의뢰를 받아 움직이는 형태였다. 그러니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당연히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연희 스포츠가 움직이면 달라진다.
김지영 여사님이 오랜 시간 동안 금융계통에 계시면서 이어놓은 인맥들은, 연희 스포츠에서 거의 전부 쓸 수 있었다.
즉 법적인 보호, 조치가 모두 가능해진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최종결정권자는 지영과 강한결이었다. 하지만 강한결은 내일 시합이라서 이런 문제를 알리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서포터지.’
피곤하고 삭신이 쑤시지만, 강한결이 시합에 집중할 수 있게 자신이 처리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 지영은 바로 대답했다.
“제가 어머님이랑 통화해 볼게요.”
-응, 바로 부탁할게.
“네. 참, 그 누나는요?”
-누구. 아, 둘 중에 누나?
“네.”
-도망갔는데, 아직 못 찾았어.
“난리네요.”
-난리지. 어쨌든, 애들 심성은 착해. 걔들 학교 인터뷰해 봤는데, 진짜 착한 애들이래. 이런 문제가 없어지면 아마 지영이 너처럼 촉망받는 선수로 클 거야.
“네, 알겠어요. 그럼 바로 어머님한테 연락해 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응, 부탁할게.
이런 문제는 시간을 끌 수가 없었다.
최소한 지원, 후원이라는 전적인 권한을 이선영이 들고 있어야 그 두 남매를 케어할 수 있을 것이다. 지영은 곧장 김지영 여사님께 메시지를 보냈다. 새벽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메시지를 보내기 무섭게 바로 전화가 왔다.
“어머니, 아직 안 주무셨어요?”
-응, 아들. 선영 씨한테 연락받았거든.
“아, 네. 어머니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바로 해야지. 사실 미리 언질을 준 건 며칠 돼서 나도 좀 알아봤는데, 확실히 문제가 있어. 빨리 해결 안 하면 큰 사고 날 거야.
이미 알고 계셨구나.
알고 계셨는데, 시합이 있어서 지영이나 친구들에게는 먼저 얘기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럼 일단 지원 시작해 주세요. 한결이랑은 따로 제가 시합 끝나고 얘기할게요.”
-그래. 알았어. 참 아들.
“네?”
-금메달 축하해. 너무 고생 많았어.
어머님도 보셨구나.
“네, 감사합니다.”
-그래, 이쪽은 맡겨두고. 우리 아들 내일 잘 부탁할게?
“네, 어머니.”
-그래, 그럼 얼른 쉬렴.
“네, 어머니. 늦은 시간에 연락드려서 죄송해요.”
-죄송은 무슨.
그렇게 전화를 끊은 지영은 바로 이선영에게 연락을 넣었고,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누구 전화야?”
“선영 누나.”
“이 시간에? 한국 지금 새벽 아니야?”
“응.”
지영은 짧게 간추려서 설명했고, 이성진은 고개만 끄덕였다.
새아버지의 가정폭력.
가정폭력이라는 것 자체가 이성진에게는 역린이나 다름이 없었지만, 이성진은 그냥 고개만 끄덕이곤 넘어갔다.
“우리 지영이, 시합 끝나고도 고생이 많네?”
오히려 씩 웃으며 이런 말을 하기까지 했다.
“그러게 말이다.”
그래서 지영도 웃으며 그 말을 받았다.
지영은 폰을 다시 충전기에 꽂아두고, 침대에 누웠다. 시간은 아직 별로 안 됐지만 내일 새벽부터 움직여야 하니 일찍 자둘 생각이었다. 지영이 이불을 덮자, 이성진이 잘자, 하고 인사를 했다. 지영도 잘 자라고 해준 뒤 눈을 감았다.
몸이 피곤하니 눈을 감자마자 수마가 의식을 휘감아 당겼고, 거기서 풀려났을 땐 알람을 맞춰둔 새벽 6시였다.
“끄응…….”
일어난 지영은 본능적으로 몸부터 풀기 시작했다.
“으…….”
절로 앓는 신음이 나왔다.
평상시에도 인간의 몸은 자고 일어나면 굳기 마련인데, 지영은 격렬한 시합까지 했으니 몸이 진짜…… 악을 지르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투둑, 투둑거리면서 경직되었던 근육이 늘어나는데, 이것 때문에 진짜 잠이 단숨에 깼다.
“으으…….”
알람에 비슷하게 일어난 이성진도 스트레칭을 하며 앓는 소리를 냈다.
지영이 조금 더 빡세게 시합한 거지, 결코 편한 시합은 아니었다. 그렇게 스트레칭을 끝내고 난 다음 샤워를 하고 나왔다.
식당으로 모이는 시간은 7시니, 시간은 넉넉했다.
씻고 식당으로 가자 같이 온 협회 스태프분들이 한국에서 챙겨온 재료로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호텔 측에 양해를 구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다. 지영과 이성진, 그리고 둘보다 먼저 내려온 여자부 선배들과 같이 세팅을 했다.
세팅이라고 해봐야 접시를 펴놓고, 일회용 젓가락과 수저를 놓는 게 전부지만 이렇게 준비해 놔야 오늘 시합을 뛰는 선수들이 시간을 조금이라도 아껴서 컨디션 관리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제도 오늘 시합인 선수들이 다 준비해 줬으니,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식당 문이 열리고 남자팀이 먼저 들어왔다.
강한결을 필두로 임효중, 황석이 들어왔고 조금의 시간 차를 두고 장대호가 들어왔다. 그리고 여자팀이 들어왔고, 조용히 아침을 먹었다.
시합 날의 식사는 언제나 조용하다 못해 고요하다.
종종 대화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저마다 마인드컨트롤을 하느라 거의 대화가 없는 편이었다. 그리고 이건 황금세대도 마찬가지였다. 식사를 끝내고, 지영은 뒷정리를 하고는 시합장에 갈 준비를 했다.
시합은 10시부터니 9시까지는 가서 몸을 풀어야 했다.
스태프들과 빠르게 짐을 챙긴 다음, 선수들보다 늦게 후발주자로 시합장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후끈한 열기가 들어왔다. 벌써 선수들이 와서 몸을 풀고 있던 탓이었다. 한국팀도 그 틈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10시 10분 전에 나온 안내 방송으로 인해 시합장이 비워졌다.
경기진행요원들이 와서 모든 매트를 정비한 뒤에, 첫 게임에 들어가는 선수들이 입장했다.
그리고 그중에는 임효중과 강한결, 둘 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