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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103화 (103/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03화

103화. 왕의 초대(5)

“오늘 고마웠어요.”

안호진의 인사에 지영은 고개를 저었다.

훈련이 끝나고 지영은 훈련장에 딸린 샤워실에서 씻고, 준비해 온 옷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안호진은 그때까지 가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같이 태릉에서 저녁을 먹자고 했지만, 지영은 약속이 있어서 거절했다.

그러자 그는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입구까지 배웅을 해줬다.

“다음 대회는 세계 청소년이죠?”

“네.”

“음, 이번 아시안 게임은 이미 늦었고, 그럼 그다음 올림픽은요?”

질문의 의도는 명확했다.

올림픽을 노려볼 생각이 있냐는 뜻이다.

그 질문에 지영은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노려볼 생각이에요.”

“그럼 그때쯤 시합에서 보겠네요.”

안호진은 씩 웃고는 손을 내밀었다.

끝까지 매너가 좋은 선수였다. 지영은 잠시 그 손을 보다가 공손히 잡았다. 그러자 다시 부드럽게 웃는 안호진.

“다음 시합에서 봐요.”

“네, 선배님.”

안호진은 악수 후 다시 돌아갔고, 지영은 한숨과 함께 몸을 돌렸다. 그러자 바로 빠앙! 차량 경적이 들렸다. 소리가 난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새빨간 스포츠카 한 대가 서 있었다. 동그라미가 네 개 붙어 있는 엠블럼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우디 R8. 지영이 알기로 적어도 2억이 넘는 고급 차량이다.

그런 고급 차량에서, 한유진이 내렸다.

저 사람일 거라고 예상은 했다. 그래서 당황스럽진 않았는데, 이상하게 한기가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내리자마자 눈을 쪽 찢는 한유진.

“너! 누나가 전화하라고 했지!”

“어, 씻고 바로 나오느라 못 봤어요. 저 기다렸어요?”

“그럼 누굴 기다릴까! 어, 뭐지. 왜 뒷걸음질 치지?”

“하하…… 제가요? 아닌데요?”

“아냐, 너 지금 뭐에 겁먹은 것처럼 뒷걸음질 치고 있어. 도망만 가봐, 아주? 누나 내일부터 청주에서 시합 있는데, 한번 시달려 볼래?”

“아닙니다.”

무서운 협박이다.

그 말에 지영은 반사적으로 물러나던 걸 멈췄다.

그러곤 얌전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죄지를 지은 건 없지만, 이상하게 죄지은 기분이 들게 하는 재주가 있는 한유진이었다.

“그렇지. 바로 청주로 내려가?”

“아니요. 약속 있어요. 음, 막차 타고 내려갈 것 같아요.”

“그래? 누나 내일부터 중계라 어차피 청주 가는데, 데려다줄까?”

“네? 아,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그런데 무슨 약속?”

“음…… 개인 프라이버시입니다.”

“데이트구나?”

숨겨봐야 의미가 없다.

지영이 그냥 웃고 말자, 한유진은 목젖이 보일 정도로 호탕하게 웃었다.

“좋을 때다. 타, 데이트 장소까지 데려다줄게.”

여기서 가려면 제법 먼데, 잘됐다.

지영은 사양하지 않고 보조석에 올랐다. 그러자 부드럽게 차를 출발시키는 한유진. 음, 일단 운전 실력은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차가 신호에 막혀 서자, 한유진이 지영을 굳이 기다렸던 용건을 꺼냈다.

“너 현정이 제자 후원 시작했다며?”

“그 누나 입이 싸네요.”

“후원이 뭐 비밀이랄 게 있니? 그리고 그 사실 솔직히 너희가 후원하고 간 날 톡방에 이미 올렸어.”

“어, 장세리 선배님은 아무 말도 없으셨는데요?”

“기다리는 거지. 발칙한 후배들이 좋은 일 하는데 괜히 부담 주기 싫어서. 맞다. 그리고 너희 다 세리 언니 회사로 들어갔다며? 엔터테인먼트 담당으로.”

“네. 운동 쪽은 한결이 어머님이 연희 스포츠라고 만들어서 그쪽에 소속되어 있어요. 운동은 연희 스포츠, 방송 쪽은 세리 선배님. 이렇게 나눠서 활동하려고요.”

“본격적이네. 이야, 너희 행보는 참 독특하다.”

“네, 인정해요.”

지영은 솔직하게 인정했다.

그 어떤 스포츠 선수도 이런 식의 행보를 보인 적이 없었다.

운동선수가 병행할 수 있는 최선은, 공부와 운동이었다. 유명해져서 방송에 나가는 경우는 있어도 그건 단발성으로 한 번 정도였다. 그런데 연희고 황금세대. 혹은 연희고 아이돌로 불리는 지영과 지영의 친구들은 아니었다.

방송, 연기나 영화, 이런 쪽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었다.

그거야 이미 장세리를 통해 전해졌을 거라 숨길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근데, 안 힘들어? 공부도 성적 유지 중이라며. 운동만 해도 힘든데 방송까지 하면, 뭐 하난 떨어질 건데 괜찮겠어?”

“아직 성적 떨어진 친구는 아무도 없어요.”

“아니. 어떻게 그게 가능해?”

핸들을 잡은 채로, 정말 궁금한 눈빛으로 묻는 한유진.

지영은 그 말에는 대답이 좀 궁했다.

‘우리가 천재라서요?’

그렇게 답하는 건 솔직히 또 너무 재수 없으니, 답이 궁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사실 답은 좀 전에 지영이 떠올린 생각이었다. 한 세대를 풍미할 천재들이, 기가 막히게도 한 지역에서 태어났다.

바로, 청주다.

청주가 작은 도시는 아니니 동서남북, 중앙 이렇게 떨어져서 태어나 서로 동네가 달랐다면 모르겠지만, 우연인지 필연인지 전부 한 학교에 배정받을 지역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체육관에 다니면서 인연을 쌓았고, 지금은 황금세대. 혹은 연희고 아이돌로 불리며 서로 둘도 없는 관계가 되어버렸다.

여기서 중요한 건, 천재성이었다.

운동신경이 좋은, 재능이 뛰어난 선수들은 굳이 그 종목이 아니라 다른 종목을 했어도 아마 빛을 발했을 거다. 투기가 강하면 구기가 약한 경우가 간혹 있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는 다 한다. 최소한 주력과 몸싸움 같은 거에서 밀릴 일도 없다.

어쨌든, 뭘 했어도 될 친구들이었다.

공부를 해도, 운동을 해도, 두 개 다 해도.

그랬을 친구들이 뭉쳐서, 거기에 크게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이제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다른 애들은 안 되도 이 애들은 되는 이유가, 힘든데 싶어서 옆을 보면 묵묵히 그 길을 가는 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도 사실은 힘들어서 고개를 돌려보면, 자신을 보고 쟤도 하니까 나도 해야지. 하면서 또 묵묵히 가는 친구가 있다.

그런 효과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어서, 서로 군말 없이 그냥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타고난 재능과 정신력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천재들이 뭉쳐 있어서, 그래서 가능한 거였다.

“그냥, 어쩌다 보니 됐어요.”

그렇지만 지영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이러했다.

그 대답에 피식 웃은 한유진이 신호가 바뀐 걸 깨닫고 차를 출발시켰다.

“대단하다, 진짜. 가끔 너희들 행보 세리 언니한테 들으면 좀 존경스러워.”

“에이, 선배님이 더 대단하죠.”

“나야 뭐 족적도 제대로 못 남긴 은퇴 선순데, 뭐.”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별로 자기비하적인 느낌은 없었다.

한유진은 대단한 선수가 맞다.

단순히 국가대표를 오래 해서가 아니라, 정말 타인에게 모범이 되는 모습을 보이며 선수 생활을 끝까지 마친, 실력과 인성 모두 훌륭한 선수였다. 지영이 한유진의 이런 장난이 편한 것도, 사람이 정말 좋다는 걸 알아서였다.

“시합은. 시합 준비는 잘돼가?”

“네, 잘돼가요.”

“세계 청소년권 대회랬지?”

“네, 어떻게 아세요?”

“세리 언니 있잖아.”

“아. 세리 선배님이 다 말해주세요?”

“언니가 말하는 것보단, 우리가 묻는 거지. 그 일 있고 궁금하잖아. 잘 지내는지, 잘 해결됐는지. 그래서 물어보면 말씀해 주셔.”

역시.

사실 크게 비밀이랄 것도 없으니 말해주는 거야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굳이 숨길 만한 일을 한 것도 아니었고.

“참, 저 이번에 드라마도 들어가요.”

“아! 나 그것도 들었어! 황석? 걔는 영화 찍는다며!”

“네. 효중이랑 성진이, 한결이는 예능도 나가고요.”

“예능 어떤 거?”

“달리는 예능이요.”

“허얼! 진짜?”

“네.”

거짓말이 아니라 이성진과 임효중, 강한결은 다음 주에 예능을 찍는다. 그것도 엄청나게 오랫동안 사랑을 받은 예능이다. 섭외 제의는 사실 좀 노는 언니들의 방송이 나간 이후 이성진이 빵 뜬 뒤에 왔는데, 그때는 시합 때문에 거절했었다. 하지만 조율 끝에 셋만 출연이 결정됐다.

“대단하다, 진짜.”

“에이, 뭘요.”

“그냥 대단해. 젊어서 그런가. 세대가 달라서 그런가. 우리 때는 방송 자주 나가면 헛바람 들었다고 욕 엄청 먹었는데.”

“라떼 시절 얘기예요?”

“응, 그 시절. 방송 나갔다가 경기력 떨어지잖아? 그럼 진짜 장난 아니었어.”

“그건 지금도 그럴걸요? 저희도 그거 감수하고 나가는 거예요. 그리고 지금이 아마 더 엄격할걸요?”

아?

지영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던 동의하는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지금이 더 장난 아니겠네. 요즘 공인들에게 들이대는 잣대가 진짜 엄격하니까.”

그녀의 말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하면 박수 치지만, 못하면 욕한다. 이는 운동선수의 팬이 가진 기본 속성에 가까웠다. 잘할 때는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처럼 대하다가도, 못하면 원수보다 더 사납고 무섭게 구는 게 팬이었다.

물론, 절대적인 건 아니니 모두가 그렇다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대개, 보통은 그러했다.

“안 무서워?”

한유진의 물음에 지영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섭죠. 그런데 무섭다고 안 할 수는 없어서요.”

“왜? 그만두고 해도 되잖아.”

“그때 기회가 있을까요? 앞날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그래서 벌써 그렇게 영역을 다져놓는 거야? 나중을 위해서?”

“네. 이대로 평탄하게 간다고 해도, 어차피 유도선수는 서른 전후면 거의 노장이거든요. 그럼 그 이후 할 일을 준비해야죠. 저희 같은 선수들은 잘해봐야 특채잖아요. 그렇다고 또 일반 회사원이 될 수도 없고, 뭣도 모르는 사업에 뛰어들 수도 없고.”

한유진은 지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연예계가 쉽다는 얘기가 아니었다. 만약, 이선영이 지영의 다큐를 찍지 않았다면, 그 다큐 덕분에 임스테이에 나가지 않았다면, 아마 이런 기회는 오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그 방송 이후 지영과 지영의 친구들을 찾는 프로그램이 있었고, 지영은 그 자체를 기회로 받아들였다.

그런 기회가 없었다면 모를까, 품으로 쏙 들어온 기회를 걷어차는 건 너무 아쉬웠다.

또한.

뭔가를 포기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방송일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니고, 다음 대회까지 시간이 남을 때 그때 잠깐 시간을 빼서 일을 하는 거니 크게 부담도 없었다.

“그렇지. 멋지네. 벌써 미래 준비도 하고. 나는 너 나이 때 어떻게든 실업팀 가려고 아등바등 살았는데.”

“그래서 지금 누나가 있는 거잖아요.”

“하긴, 뭐 나도 열심히 하긴 했어. 그지?”

“네.”

그녀의 너스레를 웃음으로 받아준 지영은 울어대는 폰을 꺼내 메시지를 확인했다.

[어디세요?]

[저 이제 일 끝나고 링크장 도착했어요!]

이런.

7시 약속인데, 그녀는 벌써 나와 기다리고 있다. 지금 시간이……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지영은 왜 벌써 나왔냐고 답장을 보냈다. 그러자 동생 연습하는 것도 보고, 곽현정 선배님이 불러서 일찍 도착했다는 답장이 왔다.

“누구? 여자친구?”

“아직 여자친구는 아니에요.”

“아직? 와, 진짜 썸타는 사람인가 보네? 누군데? 나도 아는 사람이야?”

곽현정이 그래도, 지영과 강한결이 후원을 한다는 얘기는 했어도, 두 사람에게 마음이 있다는 얘기는 하지 않은 것 같았다. 하긴, 그것까지 얘기했으면…… 좀 서운할 뻔했다.

“아니요. 일반인이에요.”

“그래? 와, 기대되네. 어떤 사람일지.”

“……설마 보고 가려고요?”

“너 목적지 보니까 대충 감은 오는데? 내가 나중에 따로 보는 것보다 지금 살짝 보는 게 낫지 않을까?”

“…….”

“왜 거짓말 같아? 너 지금 링크장으로 가잖아. 거기 현정이도 있고. 그럼 현정이는 알지 않을까?”

아 맞네.

타자마자 목적지를 물어봐서 자연스럽게 양지원이 옮겨서 훈련하는 링크장 이름을 댔다. 그러니 유추할 수 있는 게 너무 많았다.

“에휴.”

“뭐지, 왜 한숨이지? 이 누나가 부끄러워?”

한유진의 말에 지영은 고개를 저었다.

‘그 높은 텐션이 부담스러운 겁니다.’

그리고 괜히 이상한 얘기 할까 봐, 그것도 걱정됐다. 하지만 지영은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한유진이 철없게 보이긴 해도 그건 방송용 모습이다. 그녀는 실제로 그렇게 무례한 사람이 아니었다. 만약 그런 성격이었다면 장세리가 지금까지 아끼지도 않았을 거다.

‘그냥 나를 골려주려는 거구나.’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동생한테 짓궂은 장난을 치는 누나.

한유진의 마음이 지금 딱 그렇게 느껴졌다.

“아니요. 이따가 잠깐 인사해요, 그럼.”

“흐흐, 그래. 아, 기대된다.”

“네에…….”

차는 쭉쭉 미끄러져…… 달리지 못했다.

토요일의 서울.

거기에 퇴근 시간.

혼잡의 끝이다.

약속 시간은 7시가 조금 넘겨 링크장에 도착하자, 주장에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세 사람이 바로 보였다.

양지원, 양유진, 그리고 곽현정이었다.

“현정아!”

“어! 언니!”

차를 대고 짐을 챙기느라 지영보다 먼저 내린 한유진이 손을 흔들자, 곽현정이 오전에도 봤다면서 방방 뛰며 반기더니 달려와 폭 안겼다. 그런 곽현정을 안아서 토닥토닥해 준 한유진이 성큼성큼 걸어 움찔 놀라는 양지원과 양유진에게 다가갔다.

그러곤 고개를 살짝 숙여 두 사람을 살펴보는 한유진.

지영은 그 모습에 끙…… 앓는 한숨을 내쉬었다.

“음, 음. 알겠네. 자! 밥 먹으러 가자!”

척!

워낙에 큰 키, 그리고 유명함에 두 사람이 얼어붙자 그런 둘 사이로 파고들어 어깨동무를 한 한유진의 말에 지영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말이지, 참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한유진이었다.

그렇게 예상을 벗어나지 않은 한유진에게 지영은, 나름의 소심한 복수로 한우를 배 터지도록 얻어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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