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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81화 (81/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81화

81화. 야나기가우라(9)

일요일.

지영은 거실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그런 지영 옆으로 이성진이, 머리 위에 가로로 황석이, 옆에 벽에 임효중이, 강한결은 황석의 뒤에 누워 있었다.

할 일이 없는 백수들.

편한 차림에 그렇게 누워 있으니 영락없는 백수들의 모습이었다.

전구욱! 노래자랑!

빰빰빰 빰빰 빰빰!

TV에서 한국 최고의 장수 프로그램의 인트로 음악이 흘러나왔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거기에 시선을 주고 있지 않았다. 다들 그냥 누워 있었다.

“심심하다.”

그때 이성진이 툭 던진 말에, 다들 그냥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심심하네.”

“맞아. 심심해.”

역시 체력이 남아도는 청춘들.

솔직히 지영은 그렇게 심심하지 않았다. 지영은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것도 휴식의 하나라 생각하는 편이었다. 애초에 쉴 때는 또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주의이기도 했다. 하지만 친구들은 18살의 정신을 가진 친구들. 이런 무료함이 어쩔 땐 특별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아직은 알지 못하는 친구들이다.

아, 강한결 빼고.

“심심하면 나갔다 와.”

“너는?”

“난 쉴래. 패스.”

“아 왜! 가려면 다 같이 나가야 재밌지!”

“뭐 언제부터 그렇게 붙어 다녔다고 그러냐? 그냥 효중이랑 PC방이라도 갔다 와.”

“아 치사…….”

강한결도 쉴 때는 제대로 쉬는 편이었다.

지영은 속으로 친구에게 나이스. 엄지를 척 들어줬다. 지영은 가끔은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좋다. 특히 이번 주 훈련도 훈련이지만, 이선영과의 일로 머리가 아직도 좀 복잡한 상태였다.

물론 어느 정도 방향성은 잡아놨지만, 그래도 그게 완벽하진 않았다. 사실 이걸 생각하면 이미 제대로 된 휴식도 아니었다.

‘에휴, 자꾸 마음이 딴 데로 가네.’

지잉, 지잉.

그때 누군가의 폰이 울렸다. 강한결이었다. 일어난 강한결이 방으로 들어갔고, 이성진은 그런 강한결을 보며 입이 댓 발 나왔다. 지영은 그런 이성진에게서 시선을 슬그머니 돌렸다.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어제처럼, 세상일이 전부 뜻처럼 돌아가지는 않는 법.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밖으로 나온 강한결이 지영을 불렀다.

“지영아. 얘기 좀 할까?”

“응? 어, 그래.”

“답답하니까 밖으로 나가자.”

“응.”

지영은 일어나서 방으로 들어가 옷을 챙겨 입었다. 오늘 날씨는 매우 좋지만, 그렇다고 괜히 반바지 차림에 패딩만 입고 나갔다가는 감기에 걸릴 수도 있으니 긴 바지에 양말까지 제대로 챙겨 입었다. 밖으로 나갔는데 강한결은 보이지 않았다.

“한결이는?”

“먼저 나갔어. 뭔데? 무슨 얘기하는데?”

“아직 얘기하기도 전인데?”

“갔다 와서 꼭 얘기해 줘!”

“봐서.”

“아 강지영 너까지!”

심심함에 몸부림치는 이성진을 무시한 지영은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오자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는 강한결이 보였다.

“뭐야, 뭔 일인데 밖에서 얘기하재?”

“일단 좀 걸을까?”

“……그래.”

무게를 잡는다.

괜히 무섭게시리.

세상 차분한 친구지만 그래서 화를 낼 땐 무섭다. 엄한 아버지 같은 느낌. 강한결은 그런 모습도 갖추고 있는 친구였다. 같이 보폭을 맞춰 걷다가 트랙에 올라섰을 때였다.

“주식 팔아달라고 했다며.”

“응? 어.”

“어머니가 걱정하셔서. 가만히 내버려 두면 계속 오른다는데, 왜 뺀다고 하는지 이유를 알고 싶으시대.”

이는 순수한 걱정에서 나온 말.

지영은 그래서 조금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지영은 사실 이런 순간이 있을 거라는 걸 예감하고 있었다. 한은정의 문제로 따로 ‘투자’를 하는 건 이미 정해졌다. 지영이나 이성진은 여유가 없는 편이지만, 임효중이나 황석, 그리고 강한결은 아니었다. 실제로 강한결은 제법 많은 용돈을 받고 있고, 그간 받은 상금도 차곡차곡 모아놓았다.

애초에 황금세대 전체가 거의 숙소에서만 살다 보니 돈을 쓸 곳도 없었다.

저번에 베가 제약에도 전부를 투자한 게 아니고 여유 자금을 남겨뒀기 때문에 이번에도 충분히 투자할 수 있는 돈이 있었다. 황석이나, 임효중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이성진의 경우는 임효중과 함께한 주식을 담보 개념으로 돈을 조금 빌리기로 했다. 지영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한은정 문제가 아니다.

한은정의 문제로 투자는 결정되었어도, 지영이 따로 장세리를 보고 느낀 바를 지금 조용히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다. 아는 사람이 있다면 이선영밖에 없었다.

그래서 갑자기 주식을 처분하니 그에 김지영 여사님이 의문을 품은 건 당연했다.

그리고 그게 돌아서 강한결에게 온 거고.

‘얘기하는 게 낫겠지.’

혼자 안고 가겠다고는 했다.

하지만 그것도…… 그때의 짧은 생각이었다. 숨길 변명이 일단 없었다. 어머니 빚 있는 거 갚아드리려고. 하는 변명을 대도 그건 이성진에게도 먹히지 않을 거다. 거기에 자신의 집에 대해서는 이 친구들도 얼추 알아서 그렇게 돈이 궁하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만약 이런 상황이 오면, 솔직하게 얘기해야겠지, 하는 생각을 어젯밤에 했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조용히 지나갔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하루도 지나지 않아 역시, 오픈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

“나도 궁금하고. 갑자기 왜? 너 돈 그렇게 안 필요하잖아. 밝히기 좀 그러면 그냥 넘어가고.”

“나도 세리 선배님처럼 해보려고.”

“세리 선배님?”

“응. 돈이 없어서 운동을 제대로 못 하는 애들, 후원해 보려고.”

“…….”

지영의 말에 강한결은 잠시 침묵하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진심으로?”

“응. 안 될 것 없잖아?”

지영의 반문에 강한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안 될 건 없지. 그럼 이렇게까지 나오는 걸 보니 이번에 알고 있다는 그 정보, 그것도 확실한 건가 보네?”

“응.”

미래에서 보고 왔다.

지영이 아는 서너 개의 기회 중에 하나기도 했다. 사실 지금 기회가 지나면 앞으로 5년 안엔 아예 기회가 없다.

“궁금하네. 그걸 대체 어떻게 아는지.”

그리고 역시나 이선영처럼 강한결도 궁금해했다.

하지만 지영의 얼굴을 빤히 보던 그는 그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정확하게 어떻게 돕겠다는 건데? 재단이라도 만들게?”

“그건 나중 일이고. 그냥 적당히 필요 용품 정도만 돕고 싶은 정도? 그 정도지 뭐.”

실제로 이선영과 틀어지면서 지영은 완전히 정석적인 후원 말고, 가장 필요한 것만 지원하는 형태로 바꿨다. 그리고 이 정도는 혼자서도 어떻게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야구 유망주면 배트나 글러브, 공. 축구를 하는 꿈나무라면 축구화, 볼, 이 정도? 이 정도는 지영이 이선영에게 의뢰 형식으로 부탁해 혼자서도 해결할 수 있었다.

‘직접 찾아가지 않아도, 요즘 택배 시스템이 워낙에 잘되어 있으니까.’

더 나아가서라면 생필품도 가능하고.

일단은 그런 생각이었다.

“그걸 혼자 하려고?”

“응.”

“왜?”

강한결이 정말 궁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래서 지영도 되물었다.

“왜라니? 당연하잖아?”

“뭐가 당연한데? 너 혼자 그런 일을 하는 게 왜 당연한데?”

“그거야…….”

하여간 진짜, 말로는 못 이길 놈이다.

“졌다. 미안.”

“역시 강지영. 눈치는 진짜. 지영아, 그거, 꼭 너 혼자 해야 하는 일이야?”

“그건…….”

아니긴 하다.

지영이 이 일을 혼자 하려고 마음을 먹은 이유는 부담 때문이었다. 지영은 그래도 친구들보다 10년은 머리가 더 여물었다. 후원. 이건 쉽게 생각하고 결정할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단기간 한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도 아니었다.

그냥 한 번 후원하고 말 거면 하지 마라.

이런 말도 들어본 적이 있지만 지영은 개인적으로 그 말은 틀렸다고 생각했다. 그냥 기분 내려고 한 번?

‘그 한 번으로도 누군가는 도움을 받아.’

그게 중요했다.

내가 그냥 선행 좀 했다! 하고 기분 내려고 기부를 했어도 그 한 번으로 누군가는 아주 분명하게 도움을 받는다. 그러니 그건 욕먹을 짓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영은 이걸 좀 오래 해보고 싶었다.

애초에 회귀를 한 이유, 라는 거창한 목적을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하면 오랫동안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자체가 부담일 수도 있지.’

지금은 분명 마음이 서로 너무 잘 맞아 이렇게 친하게 지내지만, 좀 더 크면 성향이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었다. 누군가는 지원보단, 아예 사업적인 일을 해보고 싶을 수도 있을 거고 말이다. 그때 이런 정기적 후원 시스템에 발을 들였다는 건 매우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래서 섣부르게 이 말을 친구들에게 하지 않은 거다. 대신 언제든지 갈라져도 큰 문제가 남지 않는, 이선영에게는 얘기한 거고.

그런데 이 날카로운 친구는 지영의 속내를 정말 짧은 순간 이미 파악한 것 같았다.

“너 설마, 우리가 나중에 마음 바뀔까 봐 그래? 돈 때문에?”

“……넌 진짜, 와…….”

“맞나 보네.”

음음.

강한결은 피식 웃고는 앞을 보면서 걷다가 음음,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어, 하고 혼잣말을 했다.

“인정. 네가 그런 걱정할 만하지. 우리 아직 고등학생이니까.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고. 솔직히 우리가 갑자기 돈 문제로 크게 싸울 수도 있지.”

강한결은 현실적인 친구였다.

미래가 장밋빛으로만 가득 차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그는 제대로 알고 있었다.

“꼭 그런 것까진 아니고. 그냥 부담 주기 싫었던 거야. 그래서 시작은 하더라도 나 혼자 하려고 했고.”

“그러니까. 그런 것 같더라고. 그런데 어차피 하더라도 너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잖아. 너도 우리랑 똑같이 공부하고 운동하고, 시합 준비하고 할 건데 언제 그런 걸 하게.”

“대충 투자 성공하면 지원자는 선영 누나한테 부탁하려고 했지. 그럼 나는 지원 결정만 하면 되니까.”

“얼씨구. 그런다고 그게 쉽게 혼자서 되냐. 너도 참. 너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거야, 그거.”

“인정.”

지영은 강한결의 말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은 진짜 너무 쉽게 생각했다. 장세리 때문에 불쑥 든 목표 때문에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너무 무턱대고 지르고 말았다.

뭘 어떻게 지르던, 그건 일이다.

일은 당연히 정신적, 육체적으로 피로감을 동반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알려지면 그건 또 그것대로 귀찮은 일에 휘말릴 거고.

“그렇다고 고등학생끼리 장학재단을 만들 수도 없고. 복잡하네. 일단 지영아. 네가 말한 투자, 그건 그것대로 진행해. 그리고 이 문제는 나도 좀 생각해 볼 테니까 여지를 좀 두자.”

“그래.”

지영은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한결이 네가 도와주면 그게 제일 베스트긴 하지.’

이 세상에서 어머니 빼고 누굴 제일 믿냐고 누가 만약 물어보면, 지영은 큰 고민 없이 강한결이라고 할 거다. 강한결은 정말 모든 부분에서 믿을 수 있는 친구였다. 그래서 그냥 툭 던져봤다.

“결아.”

“응?”

“둘이 해볼래?”

“……이제야 말하냐.”

씨익.

지영의 말에 시원하게 웃으며 지영을 바라봤다. 그런 친구의 반응에 지영은 그냥 헛웃음을 터뜨렸다. 말로는 생각해 본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지영이 먼저 말을 꺼내기를 기다렸다. 이 친구는 정말, 이런 부분에서 확실히 이길 수 있는 친구가 아니었다. 10년은 더 산 자신보다 더 어른 같은 친구. 가끔 이렇게 속내를 숨길 때면 정말 알아차릴 수가 없는 친구.

그래서 비밀이 확실히 보장되는 친구.

“고맙다. 늦지 않게 말해줘서. 솔직히 서운했거든.”

“……미안하다.”

“그리고 나도 너한테 하나 말하지 않은 게 있는데. 나 애들 몰래 보육원에 후원하고 있어. 용돈 아껴서 조금씩.”

“…….”

지영은 그 말에 걸음을 멈추고 친구를 돌아봤다.

놀랍다 못해, 이제는 솔직히 좀 무섭다.

“야, 너…….”

“하하, 미안. 솔직히 부담되잖아. 같이 하자고 하면. 후원이 장난도 아니고.”

“너, 와, 너어…… 야.”

이건 진짜 놀라워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고등학생이 후원? 할 수 있지.

할 수 있는데.

“얼마나 했냐?”

“음, 3년쯤 되나?”

“…….”

“중2 때 소체 상금 받았을 때부터 조금씩, 몇만 원 수준이지만 그래도 그 정도면 노트랑 연필 정도는 살 수 있으니까.”

“와…….”

이 무서운 놈…….

지영은 이번엔 진짜로 놀라서 제대로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만큼 친구가 준 충격은 컸다.

“아. 그리고 봉사활동도 가고. 이건 가족들이랑 같이.”

“…….”

“나 아는 복지사분도 있거든? 좋은 분인데 그분한테 부탁하면 지영이 네가 하고 싶은 일에 도움도 많이 될 거야. 내가 연락해 볼게.”

“…….”

하…….

‘굼벵이 앞에서 주름을 잡아도 유분수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얼굴이 화끈거려서, 들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지영의 머릿속에서 이선영은 빠지고, 그 자리에 강한결이 스윽 들어와서 섰다.

역시, 내 친구는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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