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65화 (65/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65화

65화. 새해 휴가(4)

거의 모든 나라가 그렇겠지만, 새해는 특별하다.

그런 특별한 날에는, 모든 방송사가 그렇듯 뭔가 특집을 준비한다. 그리고 특집은 국민의 정서를 건드리기 쉬운 것들로 보통 꾸린다.

그래서 패턴이 워낙에 단조로웠다.

가족영화, 스포츠 스타들의 중계, 새해에는 경제가 얼마나 좋아지고, 뭐 이런 것들이다. 새해부터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건 웬만해서는 방송에 올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걸로 꾸린다고 해도, 사실 특집에 넣을 만한 재료는 매우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던 차에, 한 격투기 선수 출신 방송인이 자신의 SNS에 동영상 링크 하나를 남기면서 국뽕을 외치고, 주모를 찾았다. 그리고 그 영상을 본 이들이 좋아요와 하트 등등을 누르면서 빠르게 이슈화되기 시작했다.

유도.

일반인은 이름만 아는 종목.

아마 길 가는 사람을 잡고 유도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하면 대답 못 하는 사람이 반이 넘을 거고, 나머지 반은 그나마 제명당한 유도선수 이름과 한판승의 사나이 이름을 대기도 할 거다. 아니면 방송도 종종 나오는 조준성 선수의 이름을 대거나.

인기 종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비인기 종목까지는 아닌 그냥 보통 평범한 종목이다.

하지만 시기가 제대로 맞물렸다.

비록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 세계선수권에 비하면 한참 떨어지는 대회지만 새해, 한일전, 거기에 처절한 혈전이란 키워드 셋이 맞물리자 영상의 조회 수는 폭발적으로 올라갔다.

한국은 중국에 지는 건 이해해도, 일본에게 지는 건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 나라다.

민족의 아픈 역사 때문이었다.

그래서 새해가 코앞인 상황에 올라온 지영의 시합 영상은 국민의 정서를 제대로 자극했다. 그리고 이를 발 빠르게 캐치한 MBS가 또 스포츠 뉴스에 내보내면서 그쪽으로 관심이 없는 지영도 모르게 화르르 타는 불길에 기름이 끼얹어버렸다.

그래서 불길은 더욱 거세졌다.

1월 1일.

실시간 검색어의 1등은 강지영. 연희고 강지영. 유도선수 강지영. 아시아 청소년 유도 선수권 대회, 강지영 혈투 등등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렇게 될 줄은 동영상을 찍어서 지영의 허락도 없이 자신의 SNS 계정에 올린 여자팀 선수도 아마 몰랐을 거다.

그렇게 지영은 하루 종일,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그런 지영을 알아보는 시민들 때문에 어머니와의 데이트가 좀 곤욕스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다행히 마스크라는 아이템 덕분에 어머니와의 데이트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지영의 인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왜?

장작이 없기 때문이었다.

불은 화르르 잘도 타는 상황이지만, 지영은 그 불에 던져줄 장작을 제공하지 않았다.

학교 측은 당연히 아예 인터뷰 제안은 듣지도 않았고, 와봐야 이선영인데 지영은 그 제안을 전부 거절했다. 그러자 1일 자정이 넘어서부터 서서히 가라앉아, 3일이 되자 순위권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4일, 지영은 인터뷰가 예약되어 있었다.

물론 영상 인터뷰가 아닌, 서울에서 내려놓은 좀 노는 언니들 작가진과의 사전 인터뷰였다. 그리고 이 인터뷰를 위해 강한결이 충주까지 내려왔다.

지영 혼자 뭔가를 결정할 수 없어서 강한결에게 도와달라고 했더니, 친구는 흔쾌히 충주까지 와줬다. 그런 강한결과 지영은 먼저 약속장소 근처로 나가 차를 마셨다.

“입술은 어때?”

“괜찮아. 거의 아물었어.”

아직 너무 뜨거운 음식이나 자극적인 음식은 좀 그렇지만, 호호 불어서 식혀 먹으면 큰 문제는 없었다. 그래서 승아와의 약속도 내일모레 지킬 생각이었다.

“넌 뭐 하고 지냈어?”

“일단, 아무것도 안 했지.”

“진짜? 에이, 천하의 강한결이?”

“진짜야. 근데 이제부터 하려고. 인터뷰 끝나면 가족끼리 캠핑 가기로 했어.”

“그래? 좋겠다.”

“같이 갈래?”

“됐다, 나는 쉴 때 아무것도 안 하는 스타일이라.”

“알아.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거야.”

찰칵.

강한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옆에서 사진 찍는 소리가 들렸다. 뭔 소린가 싶어 고개를 돌렸더니 한 1미터쯤 떨어진 테이블에 앉은 여자 손님이 자기가 찍어놓고도 소리에 화들짝 놀라 어쩔 줄 모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 여성의 모습을 본 강한결이 부드럽게 웃었다.

눈꼬리가 살짝 처지면서, 더없이 선한 느낌이 나는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괜찮아요. 그렇게 안 놀라셔도 돼요.”

“아, 그, 죄송합니다…….”

“정말 괜찮아요. 하하.”

정말 사람 좋은 웃음까지 곁들어지니, 여성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졌다. 그리고 그 앞에 있는 친구분은, 그런 강한결을 그냥 멍하니 바라봤다. 지영은 저 반응에 익숙했다. 강한결의 얼굴을 이렇게 근거리서 무방비로 보게 되면, 보통 저렇게들 눈이 풀리니까.

‘특히 웃음은 반칙이지.’

연희고 아이돌 중에 가장 잘 웃지 않는 건 당연히 지영이었다.

그리고 2위는 공동인데, 바로 황석과 강한결이었다. 웃음의 총량을 10으로 잡고, 지분을 따지자면 아마 이성진이 3, 5, 임효중이 2, 5 해서 6이고 황석과 강한결이 나란히 1, 5씩 해서 3이고, 지영이 1쯤 될 거다.

그만큼 잘 웃지 않지만, 일단 웃으면 엄청나다.

특히 오늘처럼 옷과 머리까지 세팅하고 나면, 가히 연예인 저리 가라 할 포스를 풍기는 게 바로 강한결이었다. 간단히 청바지에 니트, 그리고 패딩을 입고 나온 지영이고, 지영과 비슷하지만 패딩 대신 코트를 걸치고 나온 강한결이었다.

미친 비율에 옷과 헤어가 보태졌으니, 저렇게 넋을 놓는 게 당연했다.

그리고 심지어.

‘비비도 발랐네?’

아주 가볍게나마 비비까지 발랐으니, 그야말로 완벽했다.

지금 이대로 그냥 화보를 찍는 스튜디오에 던져둬도 충분히 비주얼이었다.

거기에 더 무서운 건, 웃으며 괜찮다고 하는 게 그냥 하는 절대 그냥 하는 빈말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강한결은 농담을 할 때도 있지만 그건 지인들 한정이었다.

이렇게 모르는 사람에게는, 절대 빈말을 던지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러니 진짜 괜찮으니까 괜찮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걸 아는 지영도 괜찮다고 웃으면서 두 사람에게 말해줬다. 그러자 이내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숙여 죄송하다고 하는 두 사람. 그래도 다행이었다. 지영과 강한결이 괜찮다고는 했지만 이렇게 사진을 찍는 건 분명 잘못된 일이다. 그런데 그걸 아는지 사과를 했다.

그게 다행이었다.

한차례 가벼운 소란이 지나자 지영은 강한결을 보다 피식 웃으며 말했다.

“대단한 놈.”

“뭐가?”

“그냥, 넌 진짜 대단해.”

지영의 뜬금없는 칭찬에 강한결은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놀리는 건가?”

“아니, 진심.”

“……그러니까 더 놀리는 것 같은데?”

“진심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다니. 의심이란 마구니가 끼었구나.”

지영이 갑자기 근엄한 척 농담을 던지니 그에 강한결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난 농담도 치면 안 되냐?”

“아니, 해도 되는데, 되는데…… 어, 음. 으음. 좋은 거겠지?”

“하.”

지영은 그냥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런 반응일 거라고 예상은 했다만, 반응이 너무 극적이라 그냥 앞으로 이런 농담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사실 이런 농담을 할 정도로 지영은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만족스러운 시합. 어머니와의 데이트 등등이 지영의 날 서 있던 마음을 엄청나게 풀어줬기 때문이었다.

답답하던 것들이 해소되고, 준비하던 것들이 아주 잘 풀려나가는 상황.

그러니 천하의 지영도 마음이 풀릴 수밖에 없었다.

“좋네, 그런 모습.”

“종종 보여줄게.”

“할 때 예고 좀. 특히 석이 앞에서는. 걘 잘못하면 심장마비 온다.”

“아하하…….”

뭘 또 심장마비까지야…….

아니, 그럴 수도 있겠다. 지영이 좀 변한 것 같단 이유로 주말에 충주까지 내려왔을 정도로 섬세한 친구니까 이런 농담은 어쩌면 심장에 안 좋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간만에 농담도 하고 시간을 보내다 보니 미팅 시간이 다 됐다.

“슬슬 가자.”

“응.”

자리에서 일어나자 시선이 다시 주르륵 달려들었다.

강한결도 강한결이지만, 머리 손질을 제대로 하지 않아 앞머리가 살짝 눈을 가린 지영도 강한결만큼의 시선을 받았다.

카페를 나서서, 미팅 장소로 잡아둔 다른 카페로 향했다.

도착하니 한 10분쯤 시간이 남았다.

폰을 꺼내 보니, 다 도착해간다는 연락이 와 있었다.

그리고 몇 분 뒤, 문이 열리며 작고 아담한 체구의 여성 셋이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선 세 사람은 바로 지영을 발견하곤 다가왔다. 지영은 작가들이 다가오자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지영 씨, 아니, 군. 아니아니, 저기 제가 호칭을…….”

“편하게 해주세요.”

“그럼 씨로. 쉽게 호칭하기 힘드네요. 호호, 반가워요. 좀 노는 언니들 메인 작가 송보경이에요. 여긴 서브, 임하나, 막내 임두리. 둘이 자매고요.”

송보경의 말에 반짝이는 눈으로 자신을 보는 둘을 보니, 확실히 닮았다. 다른 게 있다면 콧등에 점 하나 정도?

“안녕하세요. 강지영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강한결이 일어나 차를 주문하러 갔다. 작가들이 사겠다는 걸 한사코 만류하고는 본인이 직접 갔다. 그런 강한결을 보는 세 사람의 눈빛이 살짝 몽롱하게 풀렸다.

“와, 잘생긴 줄은 알았는데…… 직접 보니 더 엄청나네요?”

강한결의 뒷모습에 시선을 고정한 채 송보경이 한 말에 지영은 피식 웃었다.

“아, 지영 씨도요.”

“감사합니다.”

“참, 다치신 곳은 어떠세요?”

송보경은 정중하게 지영의 부상에 대해서 물어왔다.

방송을 한다고 거들먹거리는 느낌도 없고 해서 대하기가 편했다.

“이제 많이 아물었어요.”

“다행이네요. 참, 저희도 그 영상 봤어요. 정말 엄청났어요. 유도가 그렇게 막, 피 튀기는? 그런 종목인 줄은 저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니까요?”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이런 부상을 입는 경우도 많아요.”

“그래요? 올해…… 아니, 작년 여름에 여자유도 국가대표 분 게스트로 보실 때 시합 영상 찾아봤는데 그 정도는 아니던데요?”

“그래서 종종이죠.”

“아하? 그렇구나. 종종. 어쨌든 정말 대단했어요. 새해부터 막 한일전에 그렇게 싸우는 지영 씨 영상 보니까, 괜히 막 뿌듯해지는 거 있죠? 호호!”

송보경의 너스레에 지영은 그냥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지영의 모습을 자매 작가님들이 반짝이며 바라봤다.

차를 주문하고 강한결이 옆에 앉았다.

그러자 다시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참 감정에 충실한 시선 처리였다.

강한결이 앉자, 송보경이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러자 자매 작가들이 얼른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서 지영과 강한결에게 건네줬다.

“이게 뭔가요?”

“일단 기본적인 콘셉트예요. 첫 장에 보시면 알겠지만 원래는 게임이나, 아니면 종목 자체를 배우는 시간을 가져요, 보통은요.”

“…….”

지영은 가만히 경청했다.

그러면서 첫 장을 넘기자 시간별로 오프닝, 게스트 입장, 장소 이동, 이런 스케줄이 보였다. 1박 2일. 스케줄은 생각보다 빡빡했다.

이것대로 해도 피곤하겠는데?

하는 생각이 스쳐 갈 때쯤.

“그건 처음 잡았던 기획인데, 영상 보고 생각이 바뀌었으니 무시하셔도 돼요.”

“네? 그럼요?”

뒷장을 넘겨봤는데, 뒷장에도 앞장과 이어져 다음 날 점심까지의 일정이 적혀 있었다.

착, 서류를 내려놓으며 앞을 보자, 송보경이 지영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알아봤는데, 다들 시합 전에 감량을 매우 심하게 한다고 들었어요.”

“네, 아무래도 그렇죠?”

“그래서 게임이고 뭐 이런 건 전부 뺐어요. 가뜩이나 시합도 정말 힘들게 하고 왔는데 또 게임 같은 승부를 기획에 넣는 건 아닌 것 같아서요.”

“아…….”

“이번에 오시면 컨셉은, 그냥 인사와 놀고먹고, 얘기하고. 그게 전부입니다.”

그 말에 지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강한결이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렇게 해서 방송 분량이 나오나요?”

지영이 생각한 의문도 이거였다.

그러자 송보경이 아닌, 자매 중 첫째 임하나가 대답했다.

“그, 저희는 원래도 다른 예능처럼 엄청 빡빡하게 하는 편이 아니에요. 보통은 운동을 배우고, 게임 조금 하고, 그리고 밥 먹으면서 얘기하고. 주변에 유명한 곳 있으면 가서 구경하고. 이 정도가 주요 플롯이거든요.”

그건 당연히 알고 있었다.

경쟁이 없는 예능. 게임을 하긴 하지만 그게 주요 플롯이 아니었다. 그래서 편히 볼 수 있는 예능이라서 좋아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기본에 충실하려고 해요. 오프닝하고, 인사하고, 간단히 소개하고, 힘든 시합 보냈으니 몸에 좋은 걸 먹으면서 원기보충하고, 틈틈이 얘기도 하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거라 생각하고 있어요.”

“아…….”

굉장히 단순한 기획이다, 그럼.

지영은 이게 자신들을 엄청 배려해 준 결과라는 걸 바로 깨달았다.

“감사합니다.”

그래서 고개를 꾸벅 숙여 감사 인사를 하자, 송보경이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이건 저희가 짠 게 아니라, 왕언니가 부탁해서 이렇게 된 거예요.”

“네, 왕언니가 안 그래도 시합 힘들게 하고 온 애들인데 여기 나와서 막 구르게 해서 되겠냐고, 그냥 마음 편히 먹고 얘기하다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셨거든요.”

왕언니.

지영은 그 사람이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전 골프 선수 장세리.’

장세리.

대한민국의 영웅이라 불렸던, 올 타임 레전드인 골프 선수.

국가가 정말 시름에 빠져 있을 때, 역사에 길이 남을 아주 인상적인 투혼을 보여줬던 선수.

그래서 말이, 설명이 필요 없는 선수.

스타라는 단어를 넘어서, 영웅이란 칭호가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 바로 장세리 선수다.

지영은 강한결을 힐끔 바라봤다.

역시, 강한결의 표정이 조금은 변해 있었다.

강한결이 과거, 현재를 통틀어서 가장 존경하는 선수 중 한 사람이, 바로 장세리 선수였다.

지영이 아는 한, 좀 노는 언니에 대한 팬심도 장세리 선수에게서 비롯됐다. 그러니 왕언니로 추정되는 장세리의 얘기에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게 당연했다.

그럼 지영이 가장 존경하는 선수는?

지극히 개인적인 주관이지만 대한민국 스포츠 선수 중 가장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한, 연아 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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