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53화
53화. 1차 수확기(2)
완벽한 코로나 치료제?
사실 그런 건 이미 포기한 지 오래였다. 저명한 박사들이, 전문가들이 말하기를 앞으로 코로나가 없는 세상은 없을 거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완벽한 백신은 이미 코로나가 터지고 2년이 넘어가는 데도 없는 상태였고, 예방접종을 형태로 나온 것도 아직은 완벽한 게 아니었다.
밤에 터진 베가 제약의 코로나 치료제는, 그래서 처음엔 시큰둥했다.
사실 이런 식으로 나오는 기사는 이미 지겹게도 겪어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이 설레발 기사로, 효과가 있다 정도뿐이지 완벽한 궤멸은 어렵다. 이렇게 다시 기사들이 나왔다.
그래서 시큰둥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주가는 움직였다. 게다가 새벽 사이 계속해서 나온 추가 보도로 인해, 시선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베가 제약은 그래도 전통이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전통마저도 위협받는 수준이었고, 그 위협의 수준은 주가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지영이 살 때 고작 원화로 13,000원 정도였다는 걸 보면, 언제 상장 폐지되어도 이상할 게 없던 제약회사였다.
하지만 밤사이 쏟아진 기사들로, 이미 주가는 오르기 시작했다.
밤 11시를 기준으로 나스닥에 상장된 베가 제약의 주가는 빠르게 치솟기 시작했고, 이성진은 잠 못 이루고, 반대로 일을 벌인 지영이 푹 자고 일어났을 땐 이미 200%를 돌파했다. 그리고 그 수치는 특별히 엄청나게 오른 것도 아니었다.
한국만 해도 코로나 치료제 임상시험 기사가 나간 뒤 몇백 배씩 주가가 뛴 회사들도 있었고, 세계로 범위를 넓히면 더더욱 많았다. 그러니 신기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영을 포함한 친구들은 달랐다.
지영이 넣은 돈은 550쯤이었다.
본래는 있던 돈을 다 넣을 생각이었지만 계좌를 트는 날 옷을 좀 사서, 딱 550을 넣었다. 그 550이 자고 일어나니 벌써 1,600을 넘겨버렸다.
이 정도면, 200% 이상 주가가 뛴 셈이었다.
하지만 지영은 이게 단순히 임상시험 발표로 인해 뛴 거고, 2차, 3차를 거치며 더욱더 오를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심지어 단독이다. 지영은 이 치료제가 오직 베가 제약만 개발에 성공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지영아, 이거 팔아?”
이성진이 들뜬 얼굴로 물어왔다.
아침을 먹다 말고 던진 질문이라 다른 친구들이 전부 지영을 바라봤다. 그 시선을 받으며 지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들고 있으면 돼.”
코로나는 인류의 적이다.
인류가 작정하고 천연두를 조졌던 것처럼, 전 세계가 합심해 코로나를 조지기 위해 덤벼드는 진풍경이 발생한다. 그때까지 베가 제약은 계속해서 오른다. 정확한 수치는 모르지만 지영의 기억에 대여행시대가 오기 전까지 베가 제약 주가가 떨어졌다는 얘기는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대박. 그럼 여기서 더 오른다는 거야?”
“응.”
지영은 이번엔 확신을 담아 얘기했다.
그런 지영을 다들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다. 아침이라 안경을 써 한없이 이지적인 느낌을 주는 강한결이 그 말을 받았다.
“설마 거기서 치료제 만들어? 임상 전부 성공하고?”
역시, 날카로운 놈이다.
지영은 강한결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잠깐 고민했는데, 그게 이미 답이 되어버렸다.
“진짠가 보네? 와, 그럼 진짜 대박 터지는 건데?”
“진짜? 그럼 얼마나 떠? 나 나중에 독립할 수 있나?”
아마, 충분히 가능할 거다.
부모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이성진에게 지금은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사실 만약 다들 반대했다면, 이성진만큼은 실패해도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각오하에 끌고 들어갈 생각도 있었었다. 강한결이 분위기가 주식으로 달아오르려는 것 같자, 바로 제동을 걸었다.
“저건 그냥 가만히 두면 된다니까, 이제 신경 끄자. 특히 이성진 너 폰에서 앱 지워. 확인한다.”
“아 그냥 보면 안 돼? 더 막! 막 동기부여가 되고 그럴 것 같은데?”
“네가 그걸 계속 보면 지영이를 안 믿는다는 말이 되는 건데?”
강한결의 대답에 이성진의 눈이 흔들렸다.
눈빛부터 참 솔직한 친구였다. 강한결이 제대로 이성진의 성격을 저격해서, 다들 피식피식 실소를 흘렸다. 당연히 지영도 마찬가지였다.
“아, 그건 또 좀 별로네. 오케이! 지운다! 지워! 대신 기사는 보게 해주기?”
“그건 인정. 기사도 못 보게 하면 너 풀 죽을 게 또 빤하니.”
“야 나 그 정도는 아니거든?”
“아니기는. 자, 다 먹었으면 수업 들어가자.”
강한결이 빠르게 대화를 종료시켰다.
지영은 먼저 일어나는 강한결에게 감사의 눈빛을 보냈다.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물으면 솔직히 난감했다. 뭔 말도 안 되게 아는 사람에게 정보를 받았다는 말로 넘어가긴 했지만 이제는 다들 그걸 믿지 않을 거다.
워낙에 조용하던 자신이 뭔가를 해보자고 해서 그냥 분위기에 휩쓸려서 다 같이 하긴 했지만 솔직히 반신반의였을 거다.
‘아니, 아마 잊고 있었겠지.’
워낙 정신없이 달려오기도 해서, 주식을 했다는 사실도 잊긴 했을 거다.
이성진 빼고.
그런데 지영의 호언장담대로 주식이 대박이 날 조짐을 보이자, 이전에 지영이 던진 변명이 되게 궁금해졌을 거다. 황석도 몇 번이나 입을 달싹였던 걸 보면 확실했다. 그걸 강한결이 미연에 방지했다.
그러니 안 고마울 수가 없었다.
숙소로 올라가 교복으로 갈아입고, 시간을 확인하고 슬슬 나갈까 하는데 강한결이 방으로 들어왔다.
“어, 한결아. 왜?”
“우리 엄마가 너 바꿔 달래.”
“어머님이? 응.”
김지영 여사님.
여사님이란 호칭보단 당연히 어머님이란 호칭만 쓴다. 그런 강한결의 어머니가 왜 자신을 바꿔 달라고 했는지, 당연히 감이 딱 왔다.
“네, 어머니.”
-지영이니?
“네, 저예요.”
-어젯밤 사이에, 뭔가 큰일이 터졌는데 당연히 알고 있지?
“네. 알고 있어요.”
-지금 200% 넘었고, 계속 상승 중이야. 이거 어떻게 할래?
관리를 해주는 건 김지영 여사님이시다.
그러니 지영이 팔아달라면 팔고, 그대로 두라고 하면 당연히 그대로 두게 될 거다.
“그냥 계속 두면 될 것 같아요.”
-그래. 그렇게 할게. 휴. 엄마가 이거 때문에 어젯밤부터 한잠도 못 잤어. 나는 사실, 이번에 너희들이 크게 손해를 볼 거라 생각했거든? 이번 기회에 주식이 얼마나 위험한지, 제대로 깨닫기를 바랐어. 그래서 말리지 않은 거고. 실제로 13,000원쯤에 샀던 주식이 저번 주만 해도 11,000원 대로 떨어졌거든.
아 그랬나?
시합 준비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지영은 주식은 아예 까맣게 잊고 있었다. 어제 이성진이 말해줄 때까지도 아예 관심도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지영이 주식에 목을 매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미래가 지영이 알던 것과 다르게 흘러도, 지영은 크게 상관이 없었다.
친구들 돈이 날아가는 문제가 생기겠지만 그거야 자신이 어떻게든 갚을 자신이 있었다. 회귀까지 했는데 그 정도 못 갚을까.
어쨌든 그런 이유 때문에, 지영은 주식을 아예 생각조차 안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제 자신이 회귀 전 겪었던 대로 미래가 흘러간다는 사실에 잠시 안도했고, 다시 그걸로 또 끝이었다.
거기다 애초에 지영은 주식으로 어마어마하게 돈을 벌 생각이 없었다.
이맘때쯤 집에 있는 빚은 삼천 정도였다. 이 빚도 어마어마한 건 아니다. 일반 서민은 거의 다 그 정도는 빚이 있으니까. 그래서 그 빚만 정리해도 사실 지영은 충분히 만족했다. 그리고 돈 욕심이 없는 지영이다.
지영이 원하는 건 아주 확고했다.
유도.
가족의 평화.
친구들과의 우정.
그리고 일상.
조금 더 나아가면 흥미가 이는 것들에 대한 경험? 그 정도가 전부였다.
그래서 베가 제약의 주식이 자신에게 어마어마한 돈을 안겨주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어제 기사가 떠서, 지영이 너 덕분에 네가 평생 이 바닥에서 가지고 있던 가치관이 흔들렸지 뭐니.
주식이라.
데이터, 증시의 흐름, 현실의 사건 사고. 이런 걸 판단하는 능력이 제일 중요하다. 뭐 이런 가치관일 거다. 그래서 지영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어쨌든, 덕분에 나도 어제 밤새 달려서 제법 좋은 결과 얻었는데 여기서 더 기다려도 된다니. 이번에도 지영이 네 말 한번 믿어볼게.
“제 말을 너무 믿진 마세요.”
여지를 두고 싶었다.
하지만 김지영 여사님은 그럴 생각이 없으신 것 같았다.
-내 개인 고객들에겐 이미 동의 얻어 놨어. 그러니 나중에 잘못되더라도 크게 문제는 안 될 거야. 그리고 내 덕분에 이미 충분히 버신 분들이라 이번에 조금 실패해도 크게 손해 볼 사람도 아니고.
“어깨가 무거워지기 시작하는데요?”
-후후, 걱정 말라니까. 아, 수업 들어갈 시간이지?
“네.”
-그래, 상황은 내가 아침저녁으로 보고해 줄게. 그러니 이건 신경 쓰지 말고 지금처럼 열심히만 하자. 알았지?
“안 그러셔도 되는데.”
-후후, 이제 너 포함해서 내 아들들도 전부 고객인데, 어떻게 신경을 안 쓸 수가 있겠니. 이건 고객의 당연한 권리야. 돈을 빼기 전까지는 말이지. 그러니 네, 하고 받아들여.
“네.”
-그래. 착하네. 그럼 공부 열심히 하고!
“네, 어머니.”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와서 폰을 강한결에게 줬다.
통화야 열린 문으로 친구들 전원이 들었으니 굳이 내용을 설명해 주지 않아도 됐다. 숙소를 나와 교실로 가는데 이번엔 지영의 폰이 울렸다.
이번엔 이선영이었다.
“먼저 가. 나 전화 좀 받고 갈게.”
“그래.”
친구들을 보낸 지영은 근처 벤치에 앉아 전화를 받았다.
“네, 누나.”
-수업 시간 아직 아니지?
“네, 지금 막 들어가고 있었어요. 무슨 일이세요?”
-아, 별건 아니고, 연석이한테 너 임스테이 찍은 거, 방송 스케줄 전달받아서.
“아 그거요? 그거 올해 말 아니었어요?”
-그랬는데, 편집으로 너희 쪽을 앞으로 당겼나 봐. 너희가 1, 2화로 나갈 거래.
“아…….”
지영이 알기로 임스테이 게스트로 갔을 때, 이미 이전 팀이 촬영을 했었다고 들었다. 지영이 갔던 때는 순서상으로 보면 3번째 게스트였다. 그럼 보통 5화나 6화쯤에 나와야 하는데, 그걸 앞당긴단다.
그런데 왜?
당연히 바로 물어봤다.
“왜요?”
-이번에 너희 시합 중계로 MBS가 재미 좀 본 거 알고 있지?
“아 거기까진 잘. 저희 오자마자 뻗어서 쉬느라 정신없었거든요.”
좀 괜찮아진 어제는 주식 때문에 정신없었고.
이 뒷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아 그렇긴 했겠다. 너랑 친구들, 실검에 또 올라갔어. 아이돌 씹어먹는 유도선수라는 타이틀로. 우리가 재미 봤으니 본사 쪽에서도 기사 많이 나갔을걸?
기사 얘기는 안다.
그건 이성진이 톡방에 링크도 걸어줬으니까.
하지만 자신의 시합 장면이 담긴 기사를 봤어도 이상하게 지영은 그냥 덤덤했다. 아마도 시합 내용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란 개인적인 진단을 내린 상태였다.
-어쨌든 그래서, 종석 오빠도 그 이슈를 최대한 이용해 먹기로 했나 봐. 이번 주가 스타트니 금요일 바로 나오겠지?
“아아, 네. 알겠습니다.”
-꼭 챙겨보고! 그럼 첫 번째는 끝났고.
“또 있어요?”
-응. 이번엔 윤호 오빠 건.
“윤호?”
-신윤호 PD.
“아…… 그건 석이 건이겠네요?”
-응. 석이 정말 잠깐 출연할 생각 없대?
“어…….”
지영은 바로 답하지 못했다.
그때 이후로 그 건으로 황석과 대화를 나눠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윤호 오빠가, 딱 그림이 맞는다고 생각했나 봐. 근데 지영아. 이거 기회야. 유도선수 수명 알아봤는데 30대면 은퇴각 잡는다며?
“네. 보통 그렇죠.”
30대도 한창일 수는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폼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유도는 축구나 야구만큼이나 부상이 심한 운동이다. 특히 무릎. 하도 매트에 무릎을 찍다 보니 관절과 연골에 큰 문제가 생긴다. 손목, 어깨는 뭐 말도 못 한다.
당장 고등학생 중에서도 무릎이 아작 난 선수가 있고, 고질적인 습관성 탈구가 있는 선수도 있다.
그만큼 부상이 심한 게 바로 유도다.
-그걸 생각하면 이런 쪽으로 길을 조금 열어두는 것도 나쁜 방법은 아닐 거야. 일단,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이라도 할 수 있잖아? 그것도 윤호 오빠 작품으로. 이거 진짜 기회거든. 넌 잘 모르겠지만 그 오빠 조연 몇 신 안 나오는 조연 뽑을 때도 엄청 깐깐하게 뽑아. 진짜, 욕 나올 정도로 깐깐하다니까? 근데 석이는 그냥 다이렉트로 출연이야.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모르지? 모르면 그냥 설득해. 이 누나가 보기에, 이건 정말 석이한테는 기회니까.
따다다다.
따발총 랩을 하는 것처럼 나온 이선영의 말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지영도 그렇게 생각하던 차였다. 요즘 예능을 보면 운동선수 출신들이 정말 많이 나온다. 예전과는 예능의 흐름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그런 걸 생각하면, 확실히 기회는 맞았다.
‘그리고 누나 말처럼 재능이 있나 없나 확인하는 것도 나쁜 건 아니지.’
어차피 재능이 있다고 해도 당장 전업으로 할 것도 아니니까.
은퇴 전까지, 본업은 유도다.
이는 지영뿐만이 아니라 친구들 전부 확고했다.
하지만 이선영의 말도 옳았다.
“저녁에 설득해 볼게요.”
-그래, 잘생각했어. 그 신 촬영 다음 주래. 대본 받고 미팅하고 하려면 오늘내일 안으로 답 줘야 한다고 했으니까, 최대한 빨리. 알았지?
“네.”
지영은 그렇게 답하고, 통화를 마무리했다.
기회.
기회는 자신만 얻는 게 아니라.
‘모두가 동등하게 얻어야지.’
지영에겐 이게 당연했다.
괜히 주식에 친구들을 끌어들였겠나? 아니다. 다 같이 이전의 삶과는 다르게 살고 싶어서였다. 그걸 생각하면 주식은 이성진에게 기회를 준 거고, 이번 연기는 황석에게 기회를 준 셈이 된다.
그런 마음으로 수업을 받고, 오후 운동을 하고, 저녁을 먹고, 야간 운동을 하고.
씻고 나와서 거실에 모였을 때 지영은 황석을 불렀다.
“석아.”
“응?”
과일을 먹다 고개를 돌려, 순진무구한 눈빛으로 왜 불렀냐며 송아지처럼 눈을 끔뻑이는 황석.
그런 황석에게 지영은 곧장 직구를 던졌다.
“너, 연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