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52화
52화. 1차 수확기(1)
쾌거라면, 쾌거였다.
이우진의 기권으로 지영은 결승전 없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런 지영의 뒤로 임효중이 한판, 강한결도 한판, 황석이 절반으로 우승을 거두며 연희고 황금세대 전원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니 분명, 쾌거였다.
축하받을 일이 분명했다.
지영은 짐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와 약속대로 이선영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리고 지영을 시작으로 황금세대 전원이 인터뷰를 했다. 그렇게 인터뷰를 하고, 승아에게 인사를 하러 가려는데 누가 앞을 막았다.
이우진이었다.
“미안하다.”
“미안은 무슨. 근데 그렇게 시합 포기해도 괜찮겠어?”
“하, 욕 좀 먹었는데, 그까짓 욕이야 뭐.”
“고생이 많다, 너도.”
지영의 위로에 이우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다시 밝게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오늘 일 정말 미안하고 다음엔, 진짜 제대로 붙어보자. 갈게.”
“그래, 고생했다.”
“응.”
손을 흔들고 떠나는 이우진.
이우진은 스포츠맨십이 아주 제대로 장착된 좋은 선수였다. 그런 좋은 선수가 조부의 고집에 저렇게 본 실력을 내지도 못한다는 게 지영은 안타까웠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지영은 다시 승아한테 가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또 누가 앞을 막았다.
고급스러운 정장을 입은 40대 사내였다.
“강지영 군?”
“네. 누구세요?”
“아,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고급스러운 명함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주는 사내. 명함에는 JJJ 엔터테인먼트 1팀 팀장 김명수란 이름이 적혀 있었다. 오, 엔터 회사다. 사실 이런 명함은 또 처음 받아봐서 좀 신기했다.
“저, 지영 군. 잠깐 얘기 가능할까요?”
“어, 음. 죄송합니다.”
하지만 신기하다고 이쪽 일을 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지영이 이선영의 제안을 받은 건 어디까지나 흥미, 재미였지, 연예계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즉, 직업적으로 연예인은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뜻이고, 그런 지영의 마음은 확고했다.
“아이고, 잠깐이면 됩니다. 제안이라도 들어보면, 좀 더 흥미가 생길 겁니다. 하하!”
사람 좋게 웃기는 하지만 지영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영은 이번엔 좀 더 확고한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죄송합니다. 지금은 운동에만 전념하고 싶어요.”
꾸벅.
그러고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그러자 허, 참! 하는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얘기도 꺼내 보지 못하고 까였으니 뭐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반응이었다. JJJ 엔터. 지영도 사실 몇 번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엔터 회사였다.
‘아이돌을 꿈꾸는 친구들이라면 꼭 들어가고 싶은 엔터겠지만…….’
실제로 JJJ는 아이돌 업계에서는 거의 정상급 회사였다.
걸그룹 두 팀, 보이그룹 두 팀이 있는데 전부 최고의 성적을 내놓고 있는, 업계에선 말 그대로 탑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끌리지는 않았다. 애초에 그쪽에 관심이 있었다면 회귀한 직후 바로 문을 두들겼을 거다. 그런데 그러지 않은 건, 유도가 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이선영의 제안을 받아 다큐 아닌 다큐를 찍은 건 크게 운동에 방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연예계 생활을 하게 되면,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게 분명했다. 그건 결코 지영이 원하는 그림이 아니었다.
“오빠! 금메달 축하해!”
승아가 지영이 다가오자 폴짝 안기며 축하를 해줬고, 지영은 그런 승아를 고맙다고 답해주면서 안아 들었다. 여전히 지영의 품을 좋아하는 승아였고, 승아 엄마 선미 씨는 그런 승아 때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셨다.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휴, 감사는요. 지영 군에게 폐만 끼쳤는데. 그리고 금메달 정말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이제 충주로 가세요?”
“네. 내려가야죠. 지영 군은요?”
“저희도 숙소로 갈 것 같아요.”
“어머, 시합 끝났는데 휴가, 그런 것도 없이요?”
보통 운동부들은 시합이 끝나면 휴가 개념으로 며칠씩 쉬게 해준다. 선미 씨 동생 선아 씨가 운동선수다 보니 그런 것도 역시 잘 알고 계셨다.
“네. 이번 선발전 끝나고 본 대회가 이주 뒤에 있어서요. 가서 또 준비해야 되거든요.”
본 대회라 할 수 있는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대회는 12월 29일, 3주가 좀 안 되게 남은 상태다. 그러니 휴가는 꿈도 못 꾸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영은 거기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
“에구. 힘들겠네요 그럼.”
“그래도 해야죠. 운동선수 업이잖아요, 이게.”
지영의 말에 선미 씨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시합 일정이 나오면 선수는 그 시합에 철저하게 맞춰 생활하게 된다는 걸 잘 아는 탓이었다.
“새해에는 그럼 충주에 와요?”
“네. 그땐 집에 있을 것 같아요.”
“다행이네요. 어머니가 지영 씨 그때 대접하겠다고 한 거 아직도 못 했다면서 마음 쓰고 계시거든요. 그때 내려오면 저희 식당에 꼭 들러주시겠어요?”
선미 씨의 말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체전 끝나고 가기로 했었던 건데, 미뤄지다 보니 아직도 가지 못했다.
“네, 그럴게요.”
“오빠! 꼭 와야 돼?”
승아까지 그렇게 합세하자, 지영은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선미 씨는 그 대답 이후 승아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인사 후 먼저 떠났고, 지영은 한선아와도 인사를 나눈 뒤 일행에게 돌아왔다.
“갔어?”
“응. 기다렸지? 미안.”
“미안은. 자, 타자.”
하암.
차에 타서 출발하기 무섭게,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시합은 긴장을 끝없이 유발한다. 내 시합이 아니더라도 친구들 시합을 보면 심장이 쫄깃하게 마련이었다.
그렇게 긴장하던 육체가 차에 타자마자 턱 풀렸고, 다들 스르륵 잠에 빠져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청주였다.
* * *
일요일은 쉬고, 다시 똑같은 월요일이 시작됐다.
“자, 13세기 후반 고려는 몽골과…….”
하암.
오전 수업 중에 지영은 하품을 하며 꾸벅꾸벅 졸았다. 시합이 끝나고 이틀이나 지났지만 아직 바짝 조여놨던 육체 때문에 그런지,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었다.
평소에는 열심히 수업을 받는 이성진은 1교시부터 그냥 책상에 엎어져서 3교시인 지금까지 자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 지영도 마찬가지로, 오전 내내 제대로 들은 수업이 하나도 없었다.
가장 좋아하는 과목인 한국사 수업도, 끔뻑끔뻑 졸고 있었다.
그렇게 4교시까지 그냥 비몽사몽 한 정신으로 보냈다. 이런 상태는 지영뿐만이 아니라 전부 그랬다.
강한결, 임효중도, 황석도 피곤함이 가득한 얼굴로 식당에서 마주쳤었다.
식판에 적당히 밥을 담아 앉자, 반 친구가 물어왔다.
“이번에 그럼 국제대회에 나가는 거야?”
“응. 엊그제 시합이 선발전이었어.”
“그럼 홍콩으로 가는 거야?”
“그럴걸?”
“와! 드디어 세계 무대로! 아, 맞다. 방송 봤는데 지영이 너 결승전 때 상대 기권했잖아? 그거 왜 기권한 거야? 어디 다치지도 않은 것 같던데?”
친구의 물음에 지영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걸 설명하려면 편파 판정부터 시작해서 전부 설명해 줘야 하는데, 그건 또 너무 길었다. 그런데 다행히 그걸 알아본 친구가 있었다.
“그거 커뮤에 올라온 거 보니까, 이우진? 그 선수가 현 유도회장 손자라서 그렇다던데? 그래서 지영이한테 막 판정 이상하게 했잖아? 그거 미안해서 시합 기권한 거라고 다들 그랬어.”
“아 진짜? 와, 그 선수는 그래도 매너 있다.”
“손자는 그런데, 그 회장이란 사람 진짜 나쁘다.”
“맞아. 시대가 어느 시댄데 아직도 와…….”
지영이 대답하지도 않았는데 정답을 누가 말하자 다들 북 치고 장구 치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래서 지영은 그냥 듣고만 있었다.
점심시간이 그렇게 소란스럽게 지나가고, 오후 수업을 오랜만에 끝까지 다 받은 뒤 나온 지영은 도복을 챙겨 훈련장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시합의 여파가 아직 남아 있어서, 가볍게 기술 연구만 하기로 했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스트레칭 후, 각자 부족한 기술을 보완하기 위해 더 푹신한 매트를 깔아 놓고 기술을 연습하는 걸 보통 기술 연구라고 했다. 그리고 이 기술 연구는 그냥 운동을 쉬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지영아, 나 소매꽂이 연습 좀 받아주라.”
“응, 알았어.”
허벅다리의 귀재 임효중이 이제는 업어치기도 제대로 해볼 생각인지, 지영에게 파트너를 부탁했다. 그리고 이는 나쁜 생각이 아니었다. 임효중처럼 허벅다리 쪽에 치중된 선수는 당연히 모든 상대가 그쪽 기술만 경계하게 된다.
그럴 때 카운터가 되는 게 업어치기다.
보통 주 베이스가 업어치기나 허리기술이라고 해도 웬만한 유도선수는 거의 모든 기술을 다 할 줄은 안다. 하지만 시합 때 써먹는 기술은 가장 자신 있는 기술 몇 개로 한정된다.
그러니 그와 비슷하게 임효중도 업어치기는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이성진처럼 날카롭지 못해서, 시합 때는 거의 타이밍을 칼같이 재서 들어가는 허리기술로 승리를 따냈다.
“이때 넣는 게 좋나?”
지영이 뻗는 손을 막으며 소매 아래를 말아쥐고, 그대로 빙글 돌아앉으며 기술을 걸어보지만 역시나 좀 어색하다.
“툭! 추어올리는 느낌이 부족한 것 같은데? 당기지 말고 받쳐 올린 다음, 그 틈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해 봐.”
“오케이. 다시.”
지영이 손을 뻗자 두 번에 걸쳐 막으며 소매 아래를 쥐고 툭 받쳐 올린 다음, 그대로 업어치기 이 경우 소매 깃과 가슴 깃을 잡고 정반대로 들어가게 된다. 거기에 임효중의 업어치기는 날카롭지는 못하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는 거의 걸릴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그런 카운터 형태로 업어치기를 연마할 생각이니, 이 정도면 충분히 괜찮았다. 그리고 지금부터 좀 더 갈고닦으면 나중에 카운터로 써먹기도 충분할 것 같았다.
그렇게 한 시간 가까이 파트너를 해주고, 5시가 되자 다시 스트레칭을 한 후 운동을 정리했다.
숙소로 가서 씻고 오랜만에 평범한 저녁을 먹고, 방에서 오늘 못한 공부를 이어가는 지영. 오늘은 야간 운동도 없어서 9시까지는 공부 시간이었다.
그렇게 공부를 하고 있는데, 진동으로 돌려놨던 휴대폰이 격렬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황금세대 다섯 명만 있는 단톡방이었다.
-대박!
-베가 기사 떴어!
-1차 임상! 성공했다는데?
-바로 2차 들어갈 거래!
뭔 소린가 하다가, 아 하고 깨달았다.
주식이다.
지영이 회귀 전 봤던 미래를 바탕으로 샀던 베가 제약의 코로나 임상 기사였다. 지영은 펜을 놓고 이성진이 보낸 주소로 들어가 봤다. 영어가 아닌 한국에서 나온 기사였다. 확실한 코로나 치료제라는 타이틀이 붙은 기사였다.
기사를 읽어보니 베가 제약에서 내놓은 치료제가 1차 임상을 마치고 2차 임상에 들어간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고작 A4용지 한 장 정도밖에 되지 않는 짧은 내용.
하지만 파급은 만만치 않았다. 왜냐하면, 코로나를 완벽하게 궤멸시킬 수 있는 100%짜리 치료제 타이틀이 붙었기 때문이었다.
벌컥!
참지 못한 이성진이 지영의 방문을 열었다.
그러곤 달려와서 지영을 격하게 끌어안았다. 지영은 이성진의 가정사를 알기 때문에 이러는 이유가 이해됐다. 다른 친구들도 나와서 지영을 정말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왜 그런 눈들이야?”
“음, 그냥 이게 되네? 이런 마음 때문에?”
임효중의 대답에 지영은 그냥 피식 웃었다.
사실 지금까지 좀 마음이 졸리는 것도 있었다. 미래처럼 일이 흘러가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이 분명히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 같이 좋자고 일단 친구들을 강력하게 설득해 주식을 사긴 했지만, 혹시나 안 되면 어쩌지? 하는 불안함이 있었는데 그게 지금 깨끗이 사라졌다.
그가 기억했던 건 12월 중순 경이었고, 12월 11일 시합이 끝나고 이틀이 지난 오늘은 12월 13일, 12월 중순이 맞았다.
다행히, 미래는 지영이 알던 것과 똑같이 흘러갔고.
그에 지영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다행이다.’
미래가 변하지 않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