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47화
47화. 청소년 선발전(3)
짖던 개가 사라졌지만, 황금세대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지영아, 판정 이상했지?”
황석의 물음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발목받치기 그거, 제대로 던졌는데 절반 주더라.”
“우린 판정 제대로 나온 거 같은데, 왜 너만 절반 줬지?”
용인대 부적 효과가 발동한 거라면 지영뿐만이 아닌 황금세대 전원, 아니면 오늘 시합하는 경기 전체가 그랬어야 했는데 유독 지영의 경기만 심판 판정이 이상했다. 그걸 황금세대도 알아본 것 같았다.
“지영아. 너 오늘 경기 긴장해야겠다. 성진이보다, 네가 더 위험하겠어.”
강한결의 말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호석이 든든한 빽이 있어서 그런 판정이 나온 건 아닐 거다.
‘뒷배가 든든했으면 음주운전 사고도 어떻게든 무마했겠지.’
그러니 이호석은 그런 건 아닐 거다.
그렇다면 왜? 단순히 용인대에게 우세한 판정을 내려준 걸까?
그렇게 따지기엔 자신의 경기를 제외한 모든 경기가 그런 식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아직, 아직은 확신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었다.
“연희고 임효중 선수! 경기 준비해 주세요!”
“네!”
그때 진행요원이 임효중을 호명했다.
“효중이 파이팅!”
“오케이!”
순번이 다가왔으니 이제는 시합에 집중하기로 하고, 각자 다시 몸을 풀기 시작했다.
대기실 온도는 딱 적당하지만 그래도 몸은 쓰지 않으면 조금씩 예열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임효중이 강한결을 잡고 부딪치기로 빠르게 몸을 푼 뒤 경기를 하러 나갔고, 지영은 매트에 앉아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임효중은 대기실을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장 시합을 시작했다.
상대는 한체대 1학년 선수.
작년에 3등만 세 개나 한 실력자였다.
다만 올해는 아직 성적이 없었고, 그래서 요주의 선수는 아니었다.
시합은 역시 임효중의 우세였다. 기술, 체력, 임효중이 전부 우세했다. 특히 임효중의 엄청난 밸런스는 잠시 방심했는지 제대로 기술에 걸렸는데도 무슨 55㎏의 날렵한 선수처럼 탄력적으로 빙글 돌아 기술을 피하는 모습도 보였다.
“어!”
“저저! 방심했네, 방심했어!”
놀란 황석이 탄성을 질렀고, 이성진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도리어 임효중을 놀렸다. 아마 들어오면 신나게 갈궈댈 게 분명했다.
그렇게 잠시 위기 모습을 보인 임효중은 신중해졌고, 4분이 지났을 때 시원하게 허벅다리 한판을 거두고 돌아왔다.
짝.
하이파이브를 하기 무섭게 이성진이 임효중 옆에 달라붙어 깐족거리기 시작했다. 그에 임효중도 평소라면 맞받아치며 놀았겠지만 지금은 민망했는지 머리만 긁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황금세대의 2회전이 진행됐고, 이성진, 황석이 2회전을 돌파하자 지영의 차례가 됐다.
한체대 1학년 조현준.
지영과 인사하는 조현준의 표정엔 긴장을 넘어, 비장미가 느껴졌다. 져서는 안 된다는 표정. 마치 뒤에 배수의 진을 친 그런 선수의 느낌이 났다.
보통 이런 느낌은 뭔가 간절함이 있는 선수에게나 보여 지영은 살짝 고개를 갸웃하곤 경기장에 들어갔다.
하지메!
심판의 경기 시작 선언에 지영은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툭, 툭툭.
수비적 자세.
표정에서 비장함이 느껴지는 것과는 반대로 조현준은 조금도 적극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굉장히 수비적으로 시합을 운영해 나갈 생각처럼 보였다.
잡기 싸움을 안 하는 지영이 먼저 손을 뻗어야 할 정도로 극단적인 수비 시프트.
특히 지영의 허리기술을 경계하는 티가 확 나는 자세였다. 그래서 몇 번 손을 뻗다가 지영은 한 걸음 물러났다.
‘심판 반응부터 보자.’
이 경우, 수비적인 조현준에게 지도가 들어가는 게 맞다. 그걸 보려고 지영은 다시 몇 번 손을 뻗어 잡기 싸움을 시도했다. 조현준은 그걸 전부 쳐내고, 빙 돌아 지영에게서 다시 거리를 벌렸다.
마데!
심판의 그쳐 사인.
시도! 시도!
그리고 여지없이 반칙이 들어왔다.
지영과 조현준, 양쪽에게 전부 말이다.
‘이거…… 저격이네.’
선수 죽이기.
그 타깃은 연희고 전체가 아닌, 오직 강지영 한 사람.
강지영이란 선수 하나만 죽이는, 그런 방향으로 모종의 결론이 난 상황 같아 보였다.
이렇게 되면, 모든 경기가 지영에게 극단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영은 오히려 웃었다.
‘회귀했으니, 이 정도 핸디캡은 받아야 된다는 건가?’
지영의 존재 자체가 반칙이니, 그에 따른 리스크가 있다는 거라면? 지영은 그냥 그렇게 이해하기로 했다.
하지메!
심판의 시작 사인.
지영은 짧게 기합을 지른 뒤, 이번엔 빠르게 상대를 압박했다. 애매한 포지션은 무조건 같이 반칙을 먹는다. 수비적 유도는 뭐 말할 것도 없으니 무조건 상대를 압박하거나, 아니면 한판을 던지는 수밖에 없었다.
지켜보는 눈이 있으니 너무 티 나게 지영을 죽일 수는 없다.
한판을 던지면, 이견 따위가 없게 던지고 나면 그래도 점수를 줄 수밖에 없었다. 축구 경기에서 아무리 주심, 부심이 매수됐다고 해도 골을 넣으면 골 판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처럼 말이다.
다행이라면, 유도 경기는 그라운드가 매우 작아서 도망칠 공간이 없다는 점이었다.
압박, 잡기, 다시 압박.
도망가도 라인까지 물러나면 그 밖으로 나갈 수는 없었다. 그건 곧 시합을 포기하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누가 나를 찍었는지는 대충 예상이 가네.’
예상은 가는데…….
그 인간의 마음대로 이루어지게 해주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건드리지 않으면 순한 양이지만, 건드렸으니 늑대로 돌변하는 게 또 강지영이란 인간의 본성 중 하나였다.
조현준의 가슴 깃을 잡아 확 잡아당겨 등, 가슴 깃을 잡은 지영은 허리기술 모션을 툭 넣었다. 그러자 움찔하는 조현준. 지영은 그런 조현준을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하. 진짜…….’
조현준은 딱 보니 이미 심판의 판정이 지영에게 불리하게 내려질 거라는 걸 알고 시합에 들어온 게 분명했다. 아마 코치나 감독이 사인을 이렇게 줬을 거다.
‘버텨라. 버티면 이길 수 있다.’
그런 사인에 맞춰, 조현준은 이렇게 수비적으로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이렇게 뒤로 빼기만 하면…….’
유도는 더 넘기기 쉬워진다.
기술을 걸 생각이 없어서 몸에 힘을 잔뜩 주고 버티기만 하니, 밸런스는 이미 경직됐다. 유도는 중심 운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렇게 몸에 힘을 꽉 주고 있으면 오히려 뻣뻣한 통나무처럼 쓰러지는 경우가 많았다.
헤비급들이 괜히 중심이 약해 뒤로 통나무처럼 쿵! 하고 나가떨어지는 게, 아니라는 소리였다.
움찔!
허리기술 모션을 한 번 더 넣자 또 움찔하면서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중심을 낮추는 조현준. 이런 상태에는 업어치기가 제격이지만, 이렇게까지 방어하고 있는 와중에 업어치기는 불가능했다. 게다가 지영의 신장이 더 커서 파고 들어가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그래서 빙글, 지영은 역방향으로 자세를 바꾼 뒤, 그대로 깔리며 안다리를 걸었다.
툭. 거의 앉아 있듯이 했던 중심이고, 앞으로 체중까지 실어 버텼지만 지영의 역모션에 제대로 걸려 움찔하는 순간 이미 안다리가 들어간 상태였다.
게다가 지영은 아예 상대를 끌어안아서 상체로 머리를 찍어 눌러버렸다.
‘버틴다고 안 넘어가면, 그게 유도겠어?’
어떻게든 상대를 넘기는 게 가능하니까 스포츠가 된 거다. 상대가 기를 쓰고 버티는 걸, 어떻게든 넘기는 게 유도라는 경기다.
애초에 유도는 상대를 던지는 것에 특화되어 있었다. 그러니 이런 한순간의 타이밍이면, 힘을 꽉 주고 있어서 버티기만 하는 포지션은 더욱 넘기기가 쉬웠다.
쿵.
데굴. 구르듯이 넘어간 조현준.
지영은 심판의 점수 판정은 듣지도 않고 곧장 상위 포지션으로 올라타 어깨로 조현준의 목을 압박했다. 반사적으로 조현준이 지영의 발을 꼬았지만, 이번에도 지영이 빨랐다.
“크윽!”
목을 어깨로 꽉 압박한 다음, 자신의 발을 꼰 상대의 하체를 남은 다리로 쭉 밀어낸 다음 그대로 어깨누르기.
메치기 한판은 안 줄 수 있어도, 누르기 한판은 절대 안 줄 수 없다.
결국 심판은 누르기 선언을 했다. 조현준은 꼼짝도 하지 못했다. 지영이 제대로 어깨로 목을 찍어 누르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든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20초가 지나고, 한판이 선언됐다.
삐! 하고 점수판에서 한판을 알리는 소리가 났으니 당연히 줘야 했다.
일어난 지영은 무표정한 얼굴로 도복을 고치고, 자신의 자리에 가서 섰다. 띠를 고쳐매며 앞을 보자 비척거리며 일어나 도복을 고치는 조현준이 보였다.
‘차라리 제대로 했으면, 이런 창피한 결과는 안 나왔겠지.’
어떻게든 버티라는 오더만 없었어도 실력을 좀 더 제대로 발휘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럼 좀 더 재밌는 경기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지영은 그게 아쉬웠다.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오며 지영은 힐끔, 단상 쪽을 바라봤다.
입장 전에는 없었는데, 경기가 끝나고 나니 보였다.
현, 대한유도회 회장 이석도.
아마 이번 일을 일으킨 장본인일 것이다.
그런 이석도 회장이, 자신을 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고생했다.”
“네, 코치님도요. 우진이 올라갔죠?”
“어, 근데 너랑 붙으려면 이번에도 결승이다.”
“…….”
아따, 피곤하겠네.
지영은 이석도 회장의 의도가 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의 손자가 지영과 실력으로 붙어서 안 될 것 같으니까 애초에 지영을 못 올라오게 할 작정이었다.
이건 아주 옛날에, 추성훈 선수가 당했던 것과 아주 흡사한 방식이라서 딱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지영은 개의치 않았다.
아무리 못 올라가게 막아도 올라갈 자신이 있어서였다.
“지영아. 내가 정식으로 이 건 이의제기할 거니까, 시합 때 티 내지 마라.”
“네.”
임대성의 말에 지영은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그럴 생각도 없었다. 이호석이나 조현준처럼 실력으로 찍어누를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3회전 상대, 허벅다리 특기. 이번에도 용인대다. 역시 고등부 선수들은 대학생 선수들을 만나 기를 못 펴고 있었다.
73체급 한정으로 보자면 이우진, 구혁, 그리고 지영만 살아남은 상태였고 다른 체급도 비슷했다. 1회전은 어찌 올라가도, 2회전에서 거의 대학생 선수들에게 져서 탈락한 상태였다. 고등부가 압도적으로 강한 55만 빼고.
그리고 황금세대와 괴물 장대호는 살아남았다.
아니, 살아남은 정도가 아니라 압도적인 실력으로 쭉쭉 올라가고 있었다.
대기실로 들어와 친구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황석이 내준 이온 음료로 살짝 마른 입을 축였다.
“지영아. 너 찍힌 것 같더라.”
강한결의 말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스윽 훑어봤다. 다들 시합 준비로 지영을 주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석도 회장 짓 같던데?”
그다음 조용히 그렇게 말하자, 전원 고개를 끄덕였다.
기본적으로 머리가 좋은 친구들이다 보니 지영의 판정이 왜 이따위로 나는지 다들 이미 파악한 것 같았다.
“괜찮겠냐?”
“괜찮아. 어차피 그렇게 위협적인 선수도 없고. 한판 안 주면 그냥 오늘 경기는 아예 다 굳히기로 끝내려고.”
“그거 좋네. 일단 혹시 모르니까 점심시간 되면 방법 좀 생각해 보자.”
“응.”
3회전이 끝나면 점심시간이다.
그다음 준결, 결승이 점심시간 이후 치러진다.
선수가 많이 없다 보니 내려진 결정이었다.
3회전이 시작됐다.
임효중, 강한결, 황석, 이성진, 지영 순으로 시합에 들어갔고 역시나 이변 없이 3회전까지 다들 무사통과했다.
점심시간 1시간 시작이라 관중석으로 올라가자.
“오빠!”
승아가 쪼르르 달려와 폴짝, 지영의 품에 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