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43화
43화. 선발전 대비 훈련(8)
반전이라면 반전인데, 사실 이것도 지영의 입장에서는 좀 유치한 편이었다.
적어도 지영의 기준에서는 그랬다. 하지만 친구들은 아직 어린 편이었다. 그래서 대번에 감탄사가 나왔다.
“와…… 빌드업 지린다.”
“그러게, 대박이네.”
이성진과 임효중의 말에 전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없이 유치했던 관찰카메라가 갑자기 다큐로 변한 뒤 끝났다.
“멋지네, 진짜. 특히 흑백으로 바꾼 게 엄청 멋있다.”
황석도 음음, 고개를 주억거리며 감상평을 내놓았다.
“잘 뽑힌 것 같은데? 뭔 영화 예고편 같았어.”
강한결도 만족스러운 미소로 영상을 칭찬했다.
하지만 지영이 보기엔 그저 좀 유치했다. 이런 쪽으로는 경험이 없어서 자신의 모습을 저렇게 표현하는 것에 내성이 없기 때문이었다.
“오, 부끄러워한다, 부끄러워해!”
“시끄러. 난 그만 들어간다. 오늘 복습할 부분 있어서.”
“도망? 도망가는 거임?”
이성진이 옆에서 촐싹거렸지만 지영은 깨끗이 무시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후…….”
설마하니, 저걸 저렇게 편집했을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한 지영이었다. 사실 유치하긴 했지만, 내일 2화를 기대하게 만드는 힘은 차고 넘쳤다.
그래서 방에 들어온 지영의 입가에는 조금은 즐겁고 뿌듯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전화가 왔다. 액정을 보니 어머니라서 지영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네, 저예요.”
-지영아, 방송 봤다. 우리 아들, 정말 잘 나왔던데? 아들 너무 멋있어서 엄마가 너무 좋았어!
평소에도 통화를 할 때면 좀 텐션이 높긴 하신데, 오늘은 유난히 높았다.
지영은 이게 방송의 힘이구나…… 하고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저렇게 나온 건 창피하지만 어머니가 좋아하시니 지영은 마음이 놓였다.
“엄마 아들이잖아요?”
-호호! 그렇지. 엄마 아들이지. 엄마가 그래도 있잖아? 옛날에는 한 미모 했었어! 네 아빠도 한 얼굴 했었고.
“알아요. 결혼식 사진도 봤잖아요.”
지영의 미모가 어디서 나왔겠나?
바로 부모님에게서 나왔다. 두 분의 젊으실 적 사진을 보면 확실히 동네 처녀 총각들 가슴 설레게 했을 만한 외모를 가지셨었고, 지영은 그런 두 분의 장점을 아주 잘 흡수하고 태어난 케이스였다.
“내일이랑 모레 이틀 나온다니까, 엄마 아들 챙겨보세요.”
-그래야지! 엄마 녹화도 하고 있어. 두고두고 봐야겠지, 이런 건.
“에이, 그런 건 제가 영상 받아드릴게요. 그게 오래가고 좋아요. 폰에 넣어두면.”
-그래도 엄마는 비디오가 좋더라. 이건 이것대로 해놓을게.
“네, 그러세요. 그럼. 저녁은요?”
-이제 먹어야지. 엄마 요즘 잘 챙겨 먹으니까, 잔소리하기 없기!
“하하, 네.”
지영이 또 잔소리를 할까 봐 얼른 전화를 끊으시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행동에 웃음이 나오려는 찰나, 전화가 또 왔다. 이선영 기자였다.
“네, 누나.”
-어때? 마지막에 좀 괜찮았지?
“어…… 애들은 좋다고 하더라고요. 저희 어머니도 좋아하셨고요.”
-후후, 다행이네. 그래서 넌?
“저요? 저도 좋았어요.”
좀 유치했지만, 어머니도 좋아하고 친구들도 좋아했으니, 지영도 좋았다.
-좋았다는 것치고는 덤덤한데?
역시 눈치가 빠르다.
“그냥, 얼떨떨해서 그래요.”
-그래? 일단 그렇게 믿어줄게. 연석이 번호 알지? 연석이한테 연락 좀 넣어줘. 걔가 진짜 영혼을 갈아 만든 거니까.
“하하, 네. 알겠어요.”
고맙긴 했다.
내가 뭐라고. 이런 마음이 있긴 하지만 사실 지영은 자신이 특별한 인간임을 안다.
‘나는 무려 회귀를 했으니까.’
이 세상에 그것만큼 특별한 게 또 어디 있을까.
하지만 그건 자신 혼자만 품고 있는 비밀이다. 그 누구도 지영이 회귀자라는 걸 모르니, 그것 때문에 그를 특별하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그것 외인 외모, 유도 실력 등을 보고 자신을 특별하게 만들어준 거다.
사실 유도는 마이너한 운동이다.
메이저한 축구, 야구, 배구, 농구에 비교하면 인기 자체를 논하는 게 부끄러운 운동이었다. 올림픽 때나 반짝하고 마는 게 유도다.
이전에 예능 때문에 잠깐 인기가 올라온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다시 그저 그런 상태다.
그런데도 자신에게 이렇게 관심 가져주고, 조명해 줬다.
그게 지영은 솔직히 정말 고마웠다.
“고마워요. 누나.”
-고맙기는.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근데 선욱이가 나한테 너 매니저 같다고 막 놀린다. 하하하!
“하하, 그렇긴 하네요. 그럼 진짜 제 매니저 할래요?”
-어이구, 강지영 학생. 이 누나 월급은 챙겨줄 수 있고?
“무보수 어때요? 누나는 재미, 나도 재미. 그러면 서로 윈윈 아닌가?”
-미안하지만 강지영 군? 이제 이 누나는 너에 대한 호기심이 어느 정도 채워졌단다. 남은 건 네가 어디까지 가는지, 그것만 궁금해.
“어디까지 가긴요.”
정상까지 가야지.
지영은 그 뒷말을 삼켰다.
좀 더 대화를 나눈 지영은 몇 분 뒤 전화를 끊고, 나연석과 김선욱에게 고맙다고 메시지를 보낸 뒤에, 노트를 펼쳤다. 운동도 중요하고, 출연했던 방송도 중요했지만 공부도 중요했다.
황금세대.
연희고 아이돌.
이런 타이틀이 붙은 데에는 짬짬이 공부도 열심히 해서 성적을 유지한 것도 이유 중의 하나였다.
40분쯤에 걸쳐 복습을 끝낸 지영은 일어나 다시 옷을 갖춰 입었다.
야간운동 시간이었다.
옷을 챙겨 입고 웨이트 장에 들어간 지영은 몸을 풀고 러닝머신 위로 올라갔다.
감량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뭘까?
땀을 빼는 거다.
그럼 땀을 가장 빠르게, 많이 뺄 수 있는 운동이 뭘까?
지영은 러닝만 한 건 없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 * *
지영은 솔직히 방송의 힘을 좀, 얕보고 있었다.
연예인.
요즘 시대는 옛날처럼 방송을 업으로 삼는 연예인만을, 연예인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열광의 대상은 방송인이 아닐 때도 많았다.
예를 들면, 현역에 있는 스포츠 선수들이 그렇고, 의사, 한의사, 변호사나 정치, 경제 전문가, 요리 전문가들이 그랬다. 게임이나, 아니면 말을 재밌게 하는 일반인도 인기를 얻는 세상이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도 이제는 대중의 인기를 받을 수 있는 시대, 지금이 그런 시대였다.
그런 걸 생각하면 학생 또한 직업이고, 인기를 얻을 자격 자체는 충분했다.
특히 지영은, 잘생겼다.
잘생기고 예쁜 사람은 어린아이도 좋아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지영은 이미 화제를 이끌 자격 자체를 외모만으로 갖춘 셈이었다. 거기에 운동 실력과 공부, 인성, 마지막으로 넷의 생명을 구했던 일까지 알려졌으니 주목받기엔 충분했다.
방송이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충주 MBS 게시판에서부터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지영아. 너 어제 충주 MBS 게시판 터뜨렸더라?”
수업에 들어가자마자 옆자리 친구가 한 말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뭔 소리야?”
그에 궁금함을 느낀 이성진이 잽싸게 끼어들며 묻자, 옆자리 친구 이지혜가 폰을 잠시 조작하고 나서 보여줬다.
“이거. 너 빨리 더 보여달라고 난리인데?”
“어디? 와, 오오! 진짜다! 우리 지영이 성공적인 데뷔 축하!”
엄지를 척!
이성진의 반응에 지영은 피식 웃고는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확실히 얼른 더 방영해 달라는 말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건 사실 아침에 이미 확인한 지영이었다. 새벽 운동이 끝나고 들어왔더니 이선영에게서 게시판을 확인해 보란 말이 있었고, 들어가서 확인하자 어떻게 알았는지 방송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게시판에 글을 남겨놨다.
지영은 그게, 인터넷의 힘이라는 걸 보고 나서야 자각했다.
각종 커뮤니티에 퍼진 지영의 영상을 보고, 충주 MBS에서 플랫폼에 걸어뒀던 영상을 사람들이 와서 찾아보면서, 영상이 인기를 얻었다.
이미 몇 개의 커뮤니티에서는 지영의 영상이 편집된 짤이 인기 순위까지 올라갔을 정도였다.
“자고 일어났는데 세상이 변했다는 말이 이런 거구나?”
지영의 능청에 이성진이 씩 웃었다.
“이제는 그냥 즐기기로 했나 보네?”
“뭐 숨긴다고 달라질 것도 없잖아?”
지영이 그렇게 쿨하게 받아쳐 버리자, 이성진은 입맛을 다시면서 갑자기 아쉬운 얼굴이 됐다. 더 놀리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쉬워하는 게 분명했다.
지영은 이성진이 자리로 돌아가자 1교시 교재를 꺼내 놓고, 친구들이 다가와 질문하는 거에 성심껏 대답해 줬다.
좋은 친구들이다.
질투, 시기를 할 법도 한데 그러지 않는.
지영이나 친구들이 입상하면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시합 때문에 수업이 밀리면 자기 노트도 보여주는, 그런 친구 착한 친구들이었다. 그래서 이전과는 달리 좀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다.
그렇게 즐겁게 얘기를 나누다 보니 9시가 됐고, 수업이 시작됐다.
5교시가 끝나자 지영은 다시 숙소로 돌아와 도복을 챙겨 체육관으로 향했다. 경기장 두 개의 작은 체육관이지만 이 정도면 스무 명 정도는 충분히 운동할 수 있는 크기였다. 그 체육관에서 다시 훈련이 시작됐다.
오늘도 자유 연습보단, 선수에 맞춰 개별연습에 중점을 뒀다.
그러다 4시부터, 땀을 빼내기 위한 체력훈련에 들어갔다.
밀어 올리기 30회. 팔 벌려 뛰기 30회, 버피 테스트 30회, 쪼그려 앉아 뛰기 30회.
총 10회.
상체부터 시작해 하체까지.
각 동작 이후 1분 휴식.
진심, 토 나오는 인터벌이다.
하지만 땀을 빼는 데 이만한 것도 없었다.
다들 도복 상의만 벗어놓고, 대신 땀복을 걸쳤다.
기능성 래시가드 위에 비닐 재질의 땀복, 그리고 그 위에 두꺼운 후드를 입어서 열이 빠져나가는 걸 완벽히 막은 다음에 인터벌이 시작됐다.
준비가 끝나자, 임대성이 호루라기를 챙겨 목에 걸고는 크게 외쳤다.
“자 밀어 올리기 준비!”
준비!
시작!
하나. 둘. 셋.
시작은 슬로우 템포다.
30회를 마치고.
“팔 벌려 뛰기 준비!”
준비!
시작!
하나! 둘! 셋!
마찬가지로 슬로우 템포고.
“버피 준비!”
버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쪼그려 앉아 뛰기까지 1세트가 끝나고, 다시 밀어 올리기부터 돌아간다. 그리고 속도가 조금 올라간다! 아주 조금, 미세하게 조금. 하지만 이제 고작 2세트째다. 하지만 2세트, 3세트까진 수월했다.
그러나 4세트에 들어설 때쯤엔…….
후욱, 후욱.
허억, 허억.
거친 숨이 조금씩 황금세대 전원의 입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지영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흔히 입에서 단내가 난다고 하던가?
그건 5세트부터였다.
5세트가 넘어가자, 가슴이 기복이 눈에 띄게 보일 정도로 다들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이때가 지옥이었다.
아직 4세트나 남았다는 압박감은 때론 절망감으로 변할 때도 있었다.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인터벌은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 해본 사람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거나, 이를 깨물고 그 말을 한 사람을 노려볼 수도 있었다.
그만큼 악명이 자자한 게 바로 인터벌이다.
새벽 인터벌도, 이런 체력 인터벌도 그냥, 사람의 피를 말려버린다.
9세트에 들어섰다.
“헉! 허억! 허억!”
“흐윽! 흐윽!”
다들 무릎에 손을 대고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지영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1분! 59! 58!”
카운트하는 임대성 코치의 입을 막아버리고 싶었다. 진짜 농담이 아니라 절로 그런 욕구가 일어났다.
야속하게도 1분이 지났다. 그리고 다시 밀어 올리기 30회 시작. 이때부턴 천하의 지영도, 힘과 체력이 가장 좋은 강한결도 전신이 부들거리기 시작했다.
“열여섯! 열일곱! 이성진 일어나! 안 일어나? 밀어 올리기 처음부터 다시!”
“아악!”
팔에 힘이 빠져 부들거리던 이성진이 엎어지자 임대성은 일어나기를 강요했다. 하지만 팔 힘이 빠진 이성진이 일어나지 못하자, 결국 카운트가 처음으로 돌아갔다.
이때는 진짜 친구고 뭐고…….
“이성진!”
“성진아 힘내자! 두 세트 남았어!”
허억! 허억!
이해해야 한다.
남들보다 체중도 더 빼서, 여기서 아마 가장 힘든 게 이성진일 거다. 그러니 이성진을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 어디 그렇게 고울 수만 있나?
지영은 엎어져 있는 이성진의 목을 잡아서, 강제로 일으켜 세웠다.
“너만 힘들어? 나도 힘들어. 그리고 여기 다 힘들어.”
“흐윽, 흐윽…….”
“그러니 피해 그만 주고 일어나라…….”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도, 땀을 비 오듯이 쏟아내고 있는 지영을 본 이성진의 눈빛이 독하게 변하더니, 다시 자세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