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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22화 (22/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2화

22화. 합동훈련(1)

당장 넘어야 할 산들은 전부 넘었다.

그래서 월요일 아침, 지영은 기분이 매우 좋았다. 방송이라는 문제가 하나 있긴 하지만 어차피 그건 이제부터 이선영 기자가 알아서 할 일이지, 지영이 신경 쓸 문제는 아니었다. 지영에게 방송은 나가도 그만, 안 나가도 그만이었다.

물론 조금은 아쉬운, 그런 정도긴 했다. 그리고 어머니도 기대하는 것 같으시니, 이선영이 학교를 잘 설득해 주기를 바라기는 했다.

연희고.

사실 연희고는, 어쩌면 소설이나 드라마에 나올 법한 독특한 학교였다.

충북지역에서는 알아주는 만석꾼이었던 연희(延禧) 박종선 선생의 호를 따라 만들어진 재단으로, 초, 중, 고, 그리고 대학교까지 이어지는 네 개의 학교가 청주에 있고, 또 충분 전역에 몇 개의 학교를 더 가지고 있는 사학재단이었다.

그런데 보통 이런 사학재단은 문제가 많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연희 재단은 그런 문제에서 아주 자유로운 편이었다. 박종선 선생의 이념인 ‘아이를 바르게 교육해야 나라의 미래가 산다’는 말을 따라 학생의 학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인성과 실력을 겸비한 선생님들을 천만금을 쥐여줘서라도 모셔야 학생을 가르치고, 교정, 급식, 기숙사 등등, 정말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학교가 연희 재단의 학교였다.

그런 연희 재단이라, 사실 지영은 이선영이 난관에 부딪힐 거라고 예상했었다.

그리고 실제로 난관에 부딪혔다.

-어, 음……. 일단 학교로 가고 있어요. 그런데 교장 선생님 목소리가 그렇게 호의적이진 않네요. 보통 학교는 방송에 관대한 편인데, 지영 군 학교는 지영 군처럼 뭔가 좀 다르네요. 호호.

2교시 끝나고 쉬는 시간, 학교 뒤편 연못 근처에서 연락을 하자 이선영은 청주로 올라오고 있다는 말과 생각보다 교장 선생님이 방송이란 말에 부정적이란 말까지 전해줬다. 그럴 만도 했다.

방송.

학교는 방송을 좋아한다. 교육과 학교 방침 등을 방송에 내보이면서 학부모들에게 자연스럽게 어필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연희고는 달랐다. 방송을 결정하고 촬영이 시작되면, 아이들은 반드시 들뜨게 되어 있었다.

이제 고작 고등학생인 아이들이었다.

이런 아이들 앞에 카메라를 들이대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빤했다. 게다가 지금은 수능도 남아 있는 상태. 학교에서는 당연히 방송을 허락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보통 학생이라면 이런 이유들을 알아차리기 쉽지 않겠지만 10년이란 시간을 더 살았던 지영이기에, 이선영이 난관에 부딪힐 거라고 예상했다.

“아마 쉽지 않으실 거예요.”

-호호, 그래도 잘 설득해 봐야죠. 수능이 문제가 되면 그거 끝나고 찍어도 되고. 그런데 수능 끝날 때까지는 못 기다리겠어요. 지금 함께 가는 제 친구도 호기심을 보이고. 점심시간에 시간 좀 남죠? 그때 잠깐 볼 수 있을까요? 어떻게 됐든 지영 군은 찍을 거니까, 미리 인사도 할 겸요.

“네. 연락 주세요.”

-호호, 알겠어요. 가서 봐요.

이선영과 전화를 끊은 지영은 폰을 집어넣고 다시 교실로 향했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지영은 거기에 흔들리지 않고 학업에 집중했다. 가장 잠이 많은 이성진도 수업 시간만큼은 졸지 않고 공부를 하니, 여기서 새벽 운동 좀 했다고 책상에 엎어져 자는 건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그렇게 집중해서 수업을 듣다 보니 벌써 점심시간이었다.

점심시간은 굳이 황금세대 전원이 모여 밥을 먹진 않았다. 각자 반도 다르고, 줄을 서는 것도 달라서 그냥 알아서 반 학생들과 밥을 먹었다.

“지영아 나 애들이랑 먼저 간다!”

“응.”

반에서는 핵인싸인 이성진이 반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식당으로 먼저 향했다.

지영은 교과서를 정리한 뒤, 가장 마지막으로 반을 나섰다. 보통 급식은 전쟁이지만, 연희고는 그런 전쟁에서 자유로웠다. 딱 정해진 급식 시간. 반별로 돌아가며 급식 시간을 조정하기 때문에 미친 듯이 뛰지 않아도 별로 줄 서지 않고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동그란 구장 형태의 식당을 딱 삼등분으로 나눠 유리를 설치하고, 학년마다 공간을 나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학년 별로 배식도 따로 했다.

마지막으로 줄을 서서 식판에 급식을 받는 지영. 연희고의 영양 만점에, 맛도 만점인 식단은 별스타에서도 인기가 있을 정도로 화려했다.

“지영이 밥 맛있게 먹어!”

“응, 선아 너도.”

지나가며 인사하는 친구들에게 웃으며 답을 해주곤, 남는 자리에 앉아 식사를 했다. 밥을 먹는데 이선영 기자에게 기숙사 앞에 벤치에 있다는 연락이 와 밥 먹고 가겠다며 답장을 보내곤 식사에 집중했다.

“와, 너네는 진짜 많이 먹는다. 아까 이성진도 진짜 엄청 퍼가던데.”

앞에 있던 반 친구 서종석의 말에 지영은 입에 있던 음식물을 삼키고는 답했다.

“우린 워낙 기초대사량이 높잖아. 이 정도 안 먹으면 힘없어서 운동 제대로 못 해.”

“그래도 그렇지. 와…….”

친구가 놀랄 정도로 지영의 식판도 어마어마했다.

일단 밥의 양도 엄청났고, 반찬도 어마어마하게 펐다. 거의 보통 학생의 두 배는 되는 양. 그런데 진짜 이 정도는 먹어줘야 운동할 때 제대로 힘을 쓸 수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운동, 웨이트로 다져진 육체가 워낙에 기초대사량이 높아서 어쩔 수 없었다.

지영이 회귀 첫날 삼겹살 두 근을 가볍게 작살 낸 것도 사실은 그냥 평범하게 먹은 축에 속했다. 만약 그때 지영의 지갑에 삼겹살 두 근 값이 아닌 세 근 값이 있었다면, 그만치 다 사서 먹어치웠을 거다.

“참, 지영아. 너 국사 잘하지?”

“국사? 아니, 그냥 평범할걸?”

“에이! 거짓말! 국사는 네가 우리 반에서 짱이잖아! 저번 시험 때도 국사는 1등 했고.”

“그런가? 근데 왜?”

“나 노트 좀 다시 만들어 보고 싶은데, 참고하게 좀 빌려주면 안 돼?”

“노트? 알았어. 오늘 거 아직 정리 못 했는데 다 하면 줄게. 근데 나 점심시간에 약속 있어서 바로는 힘들고, 음…… 내일 줘도 될까?”

“그럼 당근 괜찮지! 오예! 나이스!”

“뭘 그렇게까지 좋아하냐? 그런데 나 그렇게 특별하게 안 만들어. 아마 네 거랑 별 차이 없을걸?”

“그래도! 아 국사가 난 진짜 넘나 힘들어. 일단 어떻게든 좀 배워서 올려보려고. 그래도 너가 우리 반 탑이니까.”

“그래. 잘해봐. 다른 애들이 빌려달라고 하면 줘도 되는데, 다음 수업 때까지 가져와야 된다?”

“오케이! 땡큐! 진짜 땡큐! 내가 오늘 치킨 쿠폰 보낼게! 어디 거 좋아해?”

“음…….”

원래는 안 받으려고 했는데, 마냥 퍼주는 건 너무 호구 같으니까 받기로 했다.

“역시 난 고촌. 근데 우리 입 몇 갠 줄 알지?”

“알지! 이 정도 비법 노트면 일인일닭 정돈 쏴야지! 어차피 너 노트 빌려 갈 애들 많으니까 걔들이랑 돈 모아서 하나씩 날릴게.”

“음, 아니다. 그건 너무 장사 같잖아. 너만 보내, 너만. 너가 나한테 치킨 한 마리로 사고, 생색내, 그냥.”

“오, 그것도 괜찮다. 흐흐, 어쨌든 고마워. 진짜.”

친구의 감사에 지영은 그냥 웃었다.

그런데 사실 비법 노트라고 할 것도 없었다. 지영의 한국사, 국어 쪽 성적이 좋은 이유는 단순히 읽는 걸 남들보다 훨씬 좋아해서였다. 그리고 그걸 좋아하는 이유는, 상상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과학과 수학은 어떻게 해도 총천연색 같은, 오감을 덧입힌 상상이 불가능하지만, 국어나 국사 같은 글자로 이루어진 얘기들은 지영에겐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해주기 딱 좋았다. 그리고 이게 운동에도 도움이 됐다.

그것도 아주 많이.

운동선수들이 보통 머리가 안 좋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정보였다.

정상급 선수들은 결코 피지컬 하나로 그 자리에 선 게 아니었다. 재능, 피지컬, 노력, 환경, 운.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이 중 재능의 영역에 아주 중요한 게 하나 있었다.

바로 상상하는 재능이었다.

이를 다른 말로는 이미지 트레이닝이라고 하는데, 이 이미지 트레이닝은 운동선수에게는 정말 중요했다. 특히 투기 종목은 상대와 맞붙기 전까진 어떻게 경기가 흘러갈지 예상 자체가 힘들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자신이 생각한 방향으로 경기를 풀어가려면, 경기 이전에 단단한 이미지 트레이닝이 끝나 있어야 했다.

실력 차이가 크다면 굳이 이런 이미지 트레이닝이 필요 없겠지만, 비슷한 실력이라면 상대의 정보를 토대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거친 뒤, 다시 연습에서 그 선수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갖추어야만 경기를 유리하게 풀어갈 수 있었다.

지영은 이런 이미지 트레이닝 능력이 아주 뛰어났다.

상상 속에서 상대와 붙고, 그 안에서 자신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적용시켜 기술을 걸고, 방어하고. 이런 능력이 원체 뛰어났다.

그리고 그런 이미지 트레이닝이 가능한 건 지영이 워낙에 상상 자체를 좋아해서였다.

그래서 회귀 전에도 유일한 취미가 바로 책 읽는 거였다. 영상이나 소리보다는, 고요한 환경에서의 독서. 그게 회귀 전에도, 회귀 후인 지금도 유일한 지영의 취미였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비법 노트라고 할 것도 없다는 이유는 상상에, 지영의 기본적인 촉이 더해져서였다. 중요할 것 같은 문단, 내용들을 비상하게 찾아내는 그의 감. 그게 그냥 노트에 담겨 있을 뿐이었다.

‘말해줘도 뭐 절대 안 믿겠지.’

회귀 전이었다면 아마 자신도 믿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자신에게 별 가치가 없는 노트를 치킨 한 마리로 빌려주면서 점심을 먹은 지영은 바로 숙소로 향했다.

숙소 앞 벤치에 3명이 보였는데 두 사람은 이미 본 적이 있는 이선영과 김선욱이었고, 한 명은 당연히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아, 지영 군 왔네. 점심 잘했어요?”

“네. 저희 학교 급식 맛있어서 엄청 먹고 왔어요.”

“호호, 한창 먹을 나이인데 잘 드셔야죠. 어떻게, 제가 커피라도 하나 뽑아올까요?”

“에이, 여기까지 오셨는데. 저희 숙소 냉장고에 음료수 많거든요. 그거 가져다드릴게요.”

스포츠음료 말고, 황석이 가끔 마시는 차 종류도 있으니 지영은 얼른 올라가서 네 개를 들고 내려왔다.

“호호, 고마워요.”

벤치가 서로 마주 보고 네 개가 있는 형태라, 나란히 앉지 않고 서로 마주 보고 앉자 이선영이 바로 본론을 꺼냈다.

“점심시간 얼마 안 남았을 테니 빨리 말할게요. 일단, 촬영은 허가받았어요. 3학년 교실과 3학년 촬영, 인터뷰는 절대 금물이고, 다른 것도 점심시간만 이용할 수 있게끔요. 그리고 딱 세 번 지영 군이 수업하는 모습을 찍을 수 있고요.”

“…….”

역시 연희고.

이런 부분에서는 굉장히 단호하다.

방송보단 학생을 위하는. 불의의 사고로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자신을 위해 충주의 재단 소속 학교에 유도부를 만들어 맡게 해줄 정도로, 학생을 위해 정말이지 최선을 다하는 학교.

‘참 동화 속 학교 같다니까.’

황금세대보다도 어쩌면 연희고가 더 드라마틱하단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일주일에 3회, 편당 1주.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어때요?”

주에 3일. 그렇게 다시 3주.

부담되는 정도는 아니었다.

“네. 그런데 그때 말씀드렸던 것처럼, 저 공부하고 운동하는 게 정말 방송에 내보낼 만한 그림이 돼요?”

“그거요? 그건 걱정 마세요. 연석아.”

이선영이 그때까지 조용히 자신을 관찰만 하던 남자를 부르자, 그는 지영을 향해 빙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선영이 동기, 나연석입니다. 하하.”

“네, 강지영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가볍게 악수를 하고 놓자, 이선영이 씩 웃으며 지영을 향해 말했다. 아니, 경고했다.

“저 웃음에 속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쟤 그 유명한 나종석 피디 사촌이니까.”

“……네?”

“유명한 PD인데 몰라요?”

“아니요. 아, 아아…….”

“저렇게 선하게 웃어도, 출연자 뒤통수쳐서 곤란한 모습을 보는 걸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아주 변태 PD니까, 후후. 지영 군도 이제 좀 긴장해야 할걸요?”

“……이상한 걸 시킬 건가요?”

“…….”

으쓱.

그에 이선영은 그냥 어깨를 으쓱했고, 나연석은 그냥 지영을 향해 웃음 섞인 낯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지영은 그런 둘의 반응에 저도 모르게 김선욱을 바라봤고, 김선욱은 지영의 시선을 받자 저 멀리, 먼 산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거 어째…….’

잘못 걸린 느낌이, 풀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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