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1화
21화. 시합이 끝나고 난 뒤(6)
어머니는 왜 주식계좌가 필요한지, 진짜 주식을 할 건지, 그런 이유를 묻지 않으셨다.
그리고 상금으로 받은 오백만 원을 주식에 쓰겠다고 한 간땡이 부은 말에도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러면서, 만약 잘되지 않더라도 자신이 이번 기회에 큰 교훈을 얻을 거라며, 그냥 믿어주셨다.
아들을 향한 맹목적인 믿음.
그리고 신뢰.
이게 예상했던 장벽을 너무나 쉽게 허물었다.
주말 간 어머니의 일을 돕고, 집 청소를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다시 청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지영은 여러 가지 상념에 젖어 있었다.
‘많은 걸 바꿨어.’
정말, 정말이지 많은 걸 바꿨다.
일단 사고를 피했고, 회귀 전에는 이맘때쯤 다들 병원에 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외박을 받아 각자 주말을 보내고 있었다. 이 두 가지가 사실 가장 큰 변화였다. 그리고 이 두 가지가 변한 것만으로도, 지영은 이제 더는 바랄 게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기왕 회귀까지 한 거, 황금세대와 그 가족, 우리 가족 전부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고 싶어졌다. 겪지 못했던 것들을 겪고, 남들처럼 여행도 다니고 연애도 하고, 나중에 좀 더 크면 아이도 낳고 싶고, 그래보고 싶어진 지영이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숙소에서 황금세대를 설득해야 했다.
지영은 황금세대 전원에게 코로나바이러스 치료제를 만드는 영세한 제약회사의 주식을 사길 권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게 첫 번째 난관이었다.
황금세대 간에 우정은 황석만 봐도 알겠지만, 더없이 끈끈한 상태였다. 그래서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는 게 황금세대였다.
하지만 이번 일은 돈이 걸린 문제였다. 그리고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매우 시끄러운 주식에 관한 문제였다.
지영은 여기에 모아뒀던 용돈 70만 원에 이번에 받은 상금 500만 원까지 합쳐서 570만 원을 전부 넣을 생각이었다. 아마 이 돈은 수십 배 이상으로 불어날 거다.
제대로 기억은 안 나지만 신약 발표가 있는 직후, 그 영세한 제약회사의 주식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거대한 금액으로 불어났다는 얘기는 전설 같지만 실제로 전 세계가 방송에서 다룬 얘기였다.
그때 아주, 정말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 제약회사의 주식을 초기에 샀던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TV를 볼 때마다 이 얘기가 나오니 잊고 싶어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영은 이번엔 그 부러움의 대상 속에 끼어 있고 싶었다. 그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어느새 청주에 도착했다.
터미널에서 내려서, 다시 버스를 타고 학교에 도착한 지영은 바로 먼저 와있던 임대성을 찾았다.
그리고 그에게 방송에 대한 얘기를 꺼내자, 그는 잠시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애들도 한다고 하고, 학교에서도 허락하면 하는 걸로 하자. 어차피 시합도 끝났고, 선발전도 안 나가니 여유도 있고.”
선발전은 안 나가기로 주말간 다들 결정했다.
지영도 어차피 4년 뒤에야 있는 게 올림픽인데, 벌써부터 선발전에 나가서 힘을 빼고 싶지 않아서 거절 의사를 밝혔다.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쩐 일이냐? 네가 먼저 이런 얘기를 다 하고?”
임대성도 이게 신기했는지 지영에게 물었고, 지영은 그냥 웃음으로 넘겼다. 남은 황금세대들이 집합 시간인 8시 전에 다들 모였다. 각자 챙겨 온 짐을 풀고 나오자, 지영은 바로 용건부터 꺼냈다.
“생각들 해봤어?”
“방송?”
“응.”
어제저녁 지영은 5인이 있는 톡방에 이선영에게 받은 방송제의를 꺼냈다. TV에 얼굴이 나오는 일이라 모두의 허락이 필요하다고, 그렇게 톡을 남기자 이성진은 숨도 쉬지 않고 하겠다며 답했지만 신중한 임효중과 강한결은 하루 생각해 보겠다는 답을 남겼다.
“음, 나도 찬성. 뭐 우리가 연예인은 아니지만 그래도 재미는 있을 것 같은데? 관찰 예능? 그렇게 찍는다며.”
“나도 찬성. 뭐 어차피 우리는 곁다리로 나오는 거고, 거의 지영이 너 위주로 찍을 거 아냐.”
다행이다.
방송 문제는 이걸로 오케이. 지영은 두 사람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곤 이선영에게 다 허락 맡았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걸로 산 하나는 넘었고, 이전의 산보다 더 큰 산을 넘을 때였다.
“다들 모여봐. 성진이랑 석이도.”
“또 뭐가 있어?”
“응. 방송보다 더 중요한 일.”
“오, 더 중요한 일이라. 지영이 네가 이럴 정도면 진짜 큰일이겠네. 자, 다들 모여봐.”
주창 강한결이 황금세대를 모았다.
모두가 나와서 앉자, 지영은 조용히 본론을 꺼냈다.
“자, 나한테 아주 중요한 정보가 있어. 그런데 그 정보는 돈이 돼. 그래서 나는 이 정도에 이번 체전 상금을 전부 걸 거야.”
“정보? 뭐, 무슨 주식 같은 거 하려고?”
“응.”
강한결의 말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중에서는 가장 신중한 강한결이다. 게다가 어머니가 증권사에 다니고 계셔서, 그런 쪽으로는 이미 어린 시절부터 얼추 교육을 받은 친구였다. 실제로 강한결만 지금 증권계좌를 가지고 있을 거다. 그의 어머니가 그의 계좌로, 주식을 조금씩 해주고 있으니까.
어쨌든 그래서 주식이 얼마나 위험한지 아는 강한결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고, 임효중도 비슷하게 변했다. 황석은 표정에 변화가 없었고, 이성진은 지금 이 상황이 즐거운지 얼굴에 한가득 호기심을 담고 있었다.
“주식 위험해, 지영아.”
그래서 강한결은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지영을 만류했다.
하지만 지영은 확고했다. 아니, 확고할 수밖에 없었다.
“알아. 근데 확실해서 그래. 정보의 출처는 당연히 얘기할 수 없어. 하지만 너희들이 나를 믿는다면, 나는 이 기회를 너희가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
좀 더 성숙했다면, 아마 더욱 가능성이 없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철없음의 치기, 우정 등이 공존하는 상태라 우정을 건드리면 설득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 지영이었다.
그런 마음에서 나온 지영의 말에 강한결의 표정은 그 말에 좀 풀리긴 했지만 여전히 신중했다. 친구가 잘못된 길로 빠지는 걸 막고 싶은 딱 그 표정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지영은 좀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자신은 회귀라는 걸 통해 얼마 후에 그 회사가 어느 정도로 커다랗게 성장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것 말고도 굵직한 사건 몇 개를 알아서, 거기에 투자만 해놔도 앞으로 돈 걱정 없이 평생을 살 수 있었다.
돈.
회귀 전에도 부상이 가장 문제였지, 돈은 그다음이었다. 하지만 고생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지영은 생각을 바꿔먹었다.
‘적어도 돈 걱정 없이.’
어머니에게 투자한 돈을 드린다고 해도, 어차피 어머니는 평생을 일해오신 분이라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진 않으실 거다. 다만, 이 돈이 있으면 그래도 사람을 써서 조금은 편하게 일을 하실 순 있으실 거다. 그렇게 설득하려면 적어도 돈은 무조건 필요했다. 그래서 지영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다만, 혼자 이 기회를 독식하고 싶진 않았다.
어젯밤에 잠시 그 회사의 주식을 알아본 결과 당연히 지금은 엄청나게 쌌다. 그걸 지금 사두면 수십 배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이 기회를 지영은 황금세대와 나누고 싶었다.
“그런데 그 정보 출처, 정말 말 못 해줘? 우리한테도?”
“응. 약속했거든. 그리고 이런 거 함부로 얘기하면 나도 문제지만 그 사람 잡혀갈 수도 있어.”
“아, 내부정보 유출, 뭐 이런 거로?”
“응.”
“그러니까 더 궁금하긴 한데, 안 된다니 뭐 참아야지.”
이성진의 말에 지영은 준비해 뒀던 변명을 자연스럽게 풀었다. 물론 당연히 구멍이 송송 난 변명이고 거짓말이었다.
‘회귀해서 알고 있는 정보라고 했다가는, 아무리 얘들이라도 날 미친놈으로 보겠지.’
이성진을 빼면 지극히 현실적인 놈들이라, 아마 지영에게 정말로 진지하게 정신과 치료를 권할 거다. 특히 강한결은 어떻게든 지영을 설득해서 치료를 받게 하고도 남았다. 그래서 생각한 변명이었다.
내부거래자.
다만 문제가 될 소지가 있으니, 이 정보를 준 사람은 밝힐 수 없다는 것.
이 정도면 이 문제는 넘어갈 수 있겠다 싶은 지영이었다.
하지만 그 정보의 출처만 그 이상 캐묻지 않을 뿐이지, 강한결과 임효중은 아직 설득되지 않았다. 이성진도 싱글싱글 웃고는 있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어려웠다.
지영의 단호한 표정에 그런 그를 빤히 보던 강한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상하네. 저저번주엔 갑자기 울고. 그다음엔 사람이 변한 것 같더니 이젠 갑자기 주식을 하자 그러고. 너 내가 아는 강지영 맞지?”
눈치 빠른 것들.
강한결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응응, 끄덕였다. 지영이 변한 걸 이들 모두가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뭐래. 석이도 그러더니. 그냥 어머니 때문에 좀 변하려고 하는 것뿐이야. 그래서 어쩔 거야? 나 믿어볼래. 아니면 그냥 없던 얘기로 할까? 말했지만 난 너네가 안 한다고 해도 혼자 할 거야.”
“……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서. 후우. 내가 널 알고 나서, 오늘이 제일 당황스럽다. 원래 이런 캐릭터 아니잖아, 너?”
“변할 계기가 있었을 뿐이라니까. 그래서 어쩔 거냐니까? 너희가 싫다고 하면 이 얘긴 두 번 다신 꺼내지 않을게.”
제발, 친구들아.
같이 좀 잘되어보자. 응?
이런 기회, 쉽게 오는 게 진짜 아니라고……!
지영은 어머니보다 이 친구들을 설득하는 게 더 힘들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벽이 단단할 줄은 또 몰랐다. 특히 현실적인 강한결이란 벽이 제일 단단했다. 그리고…….
“난 해볼래.”
이성진이란 벽이 가장 약해서 제일 빨리 허물어졌다.
“성진아. 주식은 쉬운 게 아니야.”
그런 이성진을 강한결이 잠시 만류했지만 그는 오히려 씩 웃으며 지영을 향해 말했다.
“솔직히 우리 조용하던 지영이가 이렇게 얘기를 꺼낸 거면, 진짜 뭐가 있긴 있는 거 아닌가? 난 그럼 내 친구 한번 믿어보려고. 뭐 어차피 돈 있어봐야 우리 당장은 금방 쓸데도 없잖아?”
“…….”
“그리고 너네와는 달리 난 돈이 좀 필요하거든? 빌어 처먹을 잡년놈들한테서 스무 살 되자마자 벗어나려면, 난 돈이 좀 필요해. 그러니 지영이 한번 믿어볼래.”
이성진.
이성진의 부모는, 부모라고 부를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여태껏 이성진이 시합 나가서 1등을 해 받은 돈을 전부 빼가는 건 기본이고, 그래놓고 학비나 용돈조차 주지 않았다. 연희고에 장학생으로 들어오지 못했으면 학업을 이어가지도 못했을 거다. 그래서 별명은 귀공자인데, 가장 귀공자스럽지 못한 복장으로 다니는 게 이성진이었다.
그런 이성진의 말에 임효중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성진이 넌 정말 할 거면, 네 이름으로 하지 말고 우리 걸로 해. 괜히 지영이 말대로 주식 샀다가 잘되면 그것도 내놓으라고 할 게 뻔하니까.”
“야 씨! 당연하지! 미쳤냐? 내가 그 새끼들한테 계좌 만들어달라고 하게?”
부모를 향한 최소한의 존칭조차 하지 않는 이성진이고, 다들 친구의 사정을 알아서 아무도 그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 솔직히 이성진에게 그런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다들 열 받아서 부르르 떨었다. 황석은 그 큰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때의 지영도 화가 나서, 주먹을 꽉 쥐고 울분을 참았었다.
그만큼 이성진의 부모는 진짜 답이 없었다.
방임, 방치를 넘어 아예 자식처럼 여기지도 않았을 정도였다. 그런 인간들인데 만약 이성진의 이름으로 계좌를 튼다? 백이면 백, 그 돈을 어떻게든 먹으려고 수작 부릴 거다. 거기에 지영은 전 재산을 걸 자신이 있었다.
“뭐, 성진이는 할 것 같고. 석이는?”
강한결이 황석에게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영을 바라봤다.
“난 이미 한다고 했다.”
“뭐야. 그럼 둘이나 벌써 하겠다는 거네? 효중이 넌. 너도 이번에 받은 돈 네가 관리한다고 했잖아.”
강한결의 물음에 임효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근데 뭐 상금은 다 각자 관리하는 거잖아. 너도 그렇고. 나도 그냥 돈 700만 원. 없는 셈 치고 지영이 믿어볼까 생각 중이긴 해. 성진이 말대로 지영이가 없는 얘기 꺼낼 애는 절대로 아니잖아?”
“그래? 그건 그렇지. 흠…….”
임효중의 대답에 강한결도 결국 고민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런 모습을 보며 지영은 주먹을 꾹 쥐었다.
‘됐다. 다 넘어왔어.’
이 정도면 이제 거의 넘어왔다고 보면 된다.
이제 문제는 정말 그 회사가 신약을 진짜로 개발하느냐지만, 지영은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만약 안 되더라도, 지영은 자신 때문에 손실을 잃으면 그건 다 메워줄 생각이었다. 잘되어도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생각이고.
황금세대.
강한결, 임효중, 이성진, 그리고 황석.
이 친구들에게는 그렇게 해도 조금도 아쉽지 않았다.
“그래, 그거 뭐 까짓거…… 해보자. 우리 지영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믿어봐야지, 친구 한번.”
강한결이 그렇게 결단을 내리면서, 지영의 제안을 모두가 받아들였다.
“잘생각했어.”
“뭐,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어차피 주식은 다들 친구 때문에 한다더라. 우린 그걸 좀 일찍 겪는다고 치자. 대신, 지영아. 잘 안되면 다음엔 절대 주식 얘기 꺼내지 않기. 이건 약속하는 거다?”
“할게, 약속. 만약 내 정보가 틀렸다면 두 번 다시 꺼내지 않을게.”
“그래. 그럼 그건 언제 하면 되는데?”
강한결의 말에 지영은 바로 대답했다.
“가능한 한 빨리.”
조금이라도 쌀 때.
그때 최대한 사둬야 했다.
‘고맙다, 다들.’
이번 생은, 꽃길만 걷자.
고생 없이, 고통 없이.
No pain, no gain이라 하지만.
‘나도, 너희들도 그만큼 힘들었으니까 이번에는 좀…….’
쉽게 가도 괜찮잖아?
자신을 믿어준 친구들을 보며, 지영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