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9화
9화. 전국체전(5)
“이야…….”
강지영이 1회전을 승리로 마무리하고 경기장 밖으로 나가자, 그걸 카메라에 담고 있던 김선욱이 다시 녹화를 중지시키고는 얼굴을 떼며 감탄을 흘렸다.
“누님. 보셨습니까?”
“응? 뭘?”
“누님이 찍었던 강지영 저 친구요. 저 친구, 다른 애들이랑은 역시 확실히 다릅니다.”
“그래? 뭐가 다른데?”
실실, 이선영은 억지로 희열을 내리누르는 눈빛으로 모른 척 되물었고, 그걸 알면서도 김선욱은 그녀가 원하는 답을 해줬다.
“달라요. 확실히 달라. 카메라에 담기는 게, 얘는 그냥 타고났어요.”
“탤런트가 확실하지?”
“네. 웬만한 아이돌보다도 더 잘 담기는데요? 아니, 심지어 저 친구는 메이크업도 안 했잖아요? 그런데 마치 보정이라도 받은 것처럼 이목구비가 아주 선명하게 나옵니다.”
“흐흐, 나도 그렇게 보였다.”
이선영은 기대하고 있었다.
황금세대. 연희중, 연희고 아이돌이라 불리는 저 황금세대가 싸고돌고, 언제나 중심에 선 것처럼 보이는 강지영이란 선수가 실제로는 어떤 외모고, 실력은 어떻고, 행동은 어떤지 정말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 기대감 속에 나온 강지영.
강지영은 그런 그녀의 기대를 충분히, 넘치게 충족시켜 줬다. 일단 외모. 황금세대는 전원이 다들, 너어무! 잘생겼다. 구멍이 하나도 없고, 심지어 가장 체급이 높은 황석마저 선이 굵직해서 남자다움이 뭔지, 정말 잘 보여주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쪽 취향인 여성들에게는 아주 꿈에 그리던 남자의 외모가 바로 황석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강지영도 사진 정도만큼은 생겼겠지.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경기에 들어서는 강지영을 본 이선영은, 이 아이가 요 근대 데뷔한 그 어떤 아이돌보다도, 그 어떤 배우보다도 빛이 난다는 걸 보는 순간 확신할 수 있었다.
수려한.
단아한.
남자의 얼굴에서 이런 느낌을 받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지만 그녀가 본 강지영이란 선수는 정말 이름처럼, 여성스러움이 있었다. 하지만 시합장에 들어간 강지영은 마치 군왕(君王) 같았다.
상대 선수는 자세를 바짝 낮추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강지영은 그러지 않았다.
여유.
차분함을 잃지 않고 마치 왕이 신하를 대하듯, 아니면 프로가 아마를 대하듯 그냥 가볍게 받아주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진지함이 느껴졌다. 거기에 움직이는 자세, 선 자체가 너무 살아 있어 마치 무용을 본 것처럼 유려함도 있었다.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그것보단, 강렬함이 먼저였다.
누가 봐도 실력의 차이가 났다.
그리고 그 실력의 차이를 여실히 보여준 경기.
유도 경기 직관은 오늘이 처음인 이선영이 봐도, 강지영과 구혁이란 선수의 실력 차이는 명확하게 보일 정도였다.
사실 이는 다른 황금세대가 보여준 경기력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1회전을 어려움 없이 올라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선영의 눈엔, 그중에서도 강지영만 달랐다.
‘이 애는 확실히 탤런트가 있어.’
흔히 ‘재능’이라고 부르는 것.
연기하는 배우, 노래하는 가수들을 연예인, 탤런트라고 부르는데, 요즘은 ‘끼’라고 말하기도 했다. 오랫동안 닥치는 대로 이곳저곳을 쑤시고 다녔던 10년 차 기자인 이선영에게는 그런 게 확실히 보였다.
확실하게 다른 무언가.
아우라라고도 하는 그 무언가가, 이선영의 가슴에 쿡 박혔다. 그럼 왜?
그녀는 정말 잘나간다는 연예인도 만나봤다. 이곳저곳 들쑤시다가 연예부까지 밀린 적도 있으니까. 그렇게 만난 연예인 중에 저 청년처럼, 아니, 그보다 더 빛나는 연예인들도 많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전부 완숙의 경지에 들어선 배우고, 가수였다.
데뷔 10년 차를 넘어서, 20년 차 근접하면서 ‘탤런트’ 그 자체가 되어버린 인간들.
다른 말로는 이들을 장인(匠人)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닐 거다. 하지만 그들은 앞서 말했듯 이미 오랫동안 그 길에 종사했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저 강지영의 나이는 고작 17살이다.
이제 고1.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걸 넘어, 아예 민증조차 나오지 않은 새파란 애송이였다. 그런데도 이선영의 눈엔 뭔가가 달랐다.
특히 경기에서 이겼을 때의 표정, 한판? 그걸 따낸 뒤에 매트에 누워 좌절 중인 상대를 내려다볼 때 보인 무심한 눈빛 등은, 그 나이대의 아이들이 가진 뭔가를 아득히 넘어선 것처럼 보였다.
외모는 여성스러운 이름처럼 수려하고, 단아하지만 행동과 눈빛, 실력이 가진 남성스러움이 이름과 얼굴이 가진 여성스러움을 중화시켜, 중성적인 느낌이 물씬 나게 만들기도 했다.
“누님.”
“응? 왜?”
“쟤 키워볼 생각입니까?”
“내가 쟤 엄마냐? 키우긴 뭘 키워?”
“흐흐, 왜 이러십니까? 누님 사람이든 사건이든, 뭐든 필 받으면 키워서 크게 터뜨리잖아요. 흐흐.”
“넌 나에 대해 너무 많이 아는구나. 안 되겠다, 이제 그만…….”
“철 지난 드립은 그만하시고요. 하실 거면, 제대로 해보시죠? 임산부와 아이 둘, 배 속의 아이까지 넷이나 구한 천재유도선수. 스토리가 살짝 빈약하긴 하지만 저 실력, 외모까지 합치면 나름 키우기 좋을 것 같은데. 하시죠? 딴 애들이 먼저 쏙 빼먹기 전에.”
“흐음…….”
그건 그렇다.
저 정도 탤런트가 있는 아이라면 자신이 개입하지 않아도, 알아서 스스로 떠올라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일 거다.
최소한 저 실력이 계속 유지되어 아시안게임만 나가게 되어도, 그게 중계만 되어도 어머! 이렇게 잘생긴 남자가 있었어? 하며 여성들이 움직일 게 빤했다.
하지만 그래서야, 자신이 재미를 느낄 수 없었다.
“일단 오늘 경기 보고. 1회전만 반짝 잘한 거일 수도 있으니까.”
“흐흐, 알겠슴다. 이거 좀 더 신경 써서 찍어봐야겠는데요?”
“응, 다른 애들은 평소처럼 찍고, 지영이 쟤는 좀 신경 써서 담아봐. 나중에 써먹을 일 있을 것 같으니까.”
“넵!”
그렇게 황금세대를 놓고 이선영과 프리랜서 김선욱이 떠드는 사이, 황금세대의 임효중이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시원하게, 2분 만에 한판을 내던지며 동메달을 확정 지었다. 황금세대의 메달을 향한 항해는 지극히 순조로웠다.
* * *
나이스!
“3등 축하한다.”
강한결이 웃으며 손을 들어 올리자, 지영을 포함한 3인도 함께 손을 올렸다. 그러자 수건으로 나지도 않는 땀을 닦으며 들어온 임효중이 순서대로 짝, 짝짝. 하이파이브를 했다.
처음으로 3등을 확정하고 들어온 강한결을 대기실에 있던 선수들이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전국체전.
대한민국 스포츠계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대회였다.
각 종목마다 대학에 가기 유리한 메이저 대회가 분명 있긴 하지만, 모든 종목에서 전국체전은 A급 대회로 분류가 된다.
그렇기에 선수들은 전국체전에 정말 필사적이었다. 이는 많은 이유가 있는데, 일단 기본적으로 전국체전은 시도에서 지원할 정도로 관심이 많은 대회였다. 그러니 당연히 학교도 전국체전은 필사적으로 준비했다.
학부형 또한 마찬가지고, 선수 또한 당연히 마찬가지였다.
특히 선수들 중 고3은 이 대회가 마지막 기회였다. 아직도 메달이 없거나, 아니면 30% 70% 장학인 학생들은 대학에 가거나, 더 좋은 조건으로 바꿀 수 있는, 그런 마지막 기회 말이다. 거기에 체전은 입상하기가, 다른 대회보다도 수월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보통 체급에 100명 정도 나온다면 체전은 딱 16명 정도였다.
특별시, 광역시, 그리고 도.
그 지역의 대표 1명만 나오다 보니, 딱 2판만 이기면 입상이 결정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가장 먼저 입상을 결정한 임효중을 부러운 눈으로 보는 게 무리도 아니었다.
“다음은 성진인가?”
“나랑 아마 비슷하게 들어갈걸?”
“한결이야 뭐 걱정 안 하는데, 성진이 넌 긴장 좀 해라. 오면서 들었는데 경민 심건호 진짜 이번에 빡시게 준비했댜.”
임효중의 말에 이성진이 씩 웃었다.
“걱정 마. 자신감은 있어도, 자만은 안 하니까. 방심 안 해. 그러다 쪽팔리게 황금세대에서 처음으로 떨어질 일 있냐? 으으, 만약 떨어져 봐. 니들이 나 얼마나 놀리겠어?”
딱 봐도 미소년인 이성진의 앓는 소리에 다들 피식피식 웃음을 흘렸다. 가장 기가 막힌 가정사를 가지고 있지만, 그래서 가장 밝게 큰 이성진.
“알면 잘해라. 괜히 깝죽거리다가 날아가지 말고.”
“아 알았어. 잔소리 좀 그만해! 넌 한결이도 가만있는데!”
“한결이가 안 하니까 내가 이러지. 하여튼 지기만 해. 진짜 평생 놀린다.”
“알았다고……. 어후, 잔소리 잔소리. 지가 시어머니야 뭐야?”
말은 그렇게 하지만 이성진은 조금도 임효중의 잔소리를 귀찮아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렇게 모여서 떠드는데, 같은 충북 대표들이 다가왔다. 청주 명문 청석고 선수들로 –55, -60, +100, 그리고 무제한 체급을 뛰는 선수들이었다.
자주 만나서 합동훈련도 해서 나름 다들 친했다.
“효중이 3등 축하한다. 시원시원하던데?”
“재석이 형. 감사합니다. 형도 1회전 시원하던데요?”
-55 김재석.
고3이고, 이번 년도 2등만 2개인 선수였다. 작지만 야무지다 못해 악바리 근성으로 가득한 선수가 김재석이었다.
-60을 뛰는 김원중도 비슷한 스타일의 선수였다.
옛날에는 도사 유도를 구사했다고 들었는데, 감독코치가 바뀌면서 굉장히 공격적인 유도로 변한 청석고의 선수들이었다.
“고맙다. 이런 기세로, 단체전도 부탁할게.”
“맞아. 진짜 부탁한다. 난 메달 없어서 대학 가기 지금 힘들거든.”
+100 심석만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황금세대의 장점 중 하나가, 바로 자만하지 않고, 성적 가지고 우쭐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저희가 부탁드려야죠. 단체전, 잘 부탁드립니다.”
강한결이 대표로 답하자, 심석만이 세상 순박한 웃음으로 고마워, 하고 답했다.
같은 지역팀과의 대화는 진행요원이 들어와 강한결과 이성진을 동시에 부르면서 끝났다. 청석 팀이 다시 돌아가고, 지영은 다시 자리에 앉아 계속 몸을 풀면서 TV에 집중했다.
잠시 뒤, 이성진이 먼저 경기장에 들어섰다.
이성진의 상대는 경기도 경민고의 심건호.
현재 고2로, 이번 년에 전국대회 2등, 2등, 3등을 한 실력자였다. 애초에 경기도 쪽 선수들은 전부 강했다.
경기도, 서울은 학교도 많아서 일단 체전에 선발되는 게 정말 힘들었다. 오죽하면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서울경기 선발자가 체전 우승자라는 말까지 있었을 정도였다.
그러니 아무리 이성진이라고 해도, 방심은 금물이었다.
심판이 입장하고, 이성진이 입장했다. 벼르고 나온 것처럼 단단한 표정의 심건호와 입매를 살짝 비틀고 누가 봐도 건방진 표정을 한 이성진.
“저저…… 에휴.”
“괜찮다. 저 정도는.”
임효중이 혀를 차자, 황석이 그런 임효중을 위로했다. 지영도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이성진이 저런 표정을 지어도, 상대를 얕잡아 보거나 하진 않을 거라는 걸 알아서였다.
이윽고 시작된 시합. 소란스럽던 대기실이 일시에 조용해졌다.
이성진은 전통적인, 업어치기 선수고, 심건호는 그와 반대로 허리기술 선수.
그러니 잡는 자세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맞잡이라, 극히 까다로우면서도, 아차 하면 그대로 한판이 나오기 좋은 자세였다.
하지만 이성진은 역시, 이성진이었다.
시작과 동시에 잡은 소매, 그리고 그 소매를 슬쩍 들어 올리며 그 사이로 쏙 파고들어 간 이성진이 벼락같은 소매꽂이로, 그대로 심건호를 말아서 내리꽂았다.
그러곤 굳히기도 안 하고 그대로 일어난 이성진은 세레머니도 생략하고 곧장 도복을 고쳤다.
잇폰!
경기 시작 고작 10초.
오늘 경기 중, 최단 시간 한판은 이성진의 몫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