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7화
7화. 전국체전(3)
오케이.
황금세대의 2명이 모두 1회전을 통과했다.
“성진이 나이스.”
주장 강한결이 땀도 안 난 이성진이 들어오자 손을 들어 올리며 축하하자, 이성진이 씩 웃으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김성한 정돈 껌이지.”
김성한은 좀 전에 이성진과 맞붙었던 제주도 대표 선수 이름이었다. 그런 이성진의 대답에 다들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오직 지영만 그저 빙그레 웃으며 친구의 1회전 통과를 축하해 줬다.
“너는 다 좋은데, 겸손이 없어, 겸손이.”
임효중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지적했지만 이성진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겸손이 밥 먹여주냐? 밥 먹여줘?”
“그래도 인마. 저기 제주도 선수들도 다 듣는데.”
“흥, 억울하면 이기라고 해. 난 딱 실력만큼 내보이고 살 거야. 지면 겸손하고, 이기면 우쭐하고, 그렇게 살 겨.”
“이성진답다, 이성진다워.”
“그럼, 그게 나다운 거지. 다음은 누구지? 한결인가?”
“응.”
강한결이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다시 풀기 시작했다.
사실 이성진보다 강한결이 먼저였다. 그런데 이성진이 하필이면 재일교포가 출전한 체급이라 똥통 시드에 빠지는 바람에 먼저 하게 됐다.
한 경기장에서는 55부터 73까지, 다른 경기장에서 81부터 +100까지 경기가 진행되니까, 다음 경기는 연희고의 주장 강한결 차례였다.
강한결은 서울 선수와 맞붙는데, 이미 중학교 때부터 강한결에게 수도 없이 졌던 선수라 다들 걱정하지 않았다. 그 선수도 1학년인데 체전에 나온 걸 보면 실력이 정말 대단한 거지만, 같은 나이의 선수들에게 황금세대의 아성은 높고도, 높았다.
잠시 뒤, 강한결이 호명을 받고 시합 준비를 하러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강한결이 빠지자, 이성진이 지영의 옆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우리 지영이, 오늘 엄청 예민하네? 평소보다 더 예민한 것 같은데?”
“나? 그 정돈 아니고.”
“에이, 우리가 하루 이틀 보냐? 척하면 척이지.”
이성진의 말에 지영은 피식 웃었다.
그의 말이 사실 맞았고, 그걸 귀신같이 꿰뚫어 보는 이성진의 눈치에 감탄도 했다. 사실 지영은 긴장한 상태가 맞았다.
더 자세히 설명하면, 지금 이 순간이 사실 믿기지가 않는 상태였다.
지난 일주일, 지영은 자신이 회귀를 했다는 현실에 확실히 적응했다. 아니, 적응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말 오랜만에, 경기장에 들어가는 순간이 다가오자 긴장이 안 될 수가 없었다.
기대로 인한 흥분.
이게 지금 딱 지영의 상태였다.
지영은 사고 이후, 단 한 번도 경기장에 들어갈 수 없었다. 고장 난 어깨와 발목, 무릎으로 인해 제대로 걷는 것조차 힘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유도계를 등지려다가, 방과 후 특별활동 코치가 되어 다시 유도계로 돌아왔다.
특별활동이라 사실 엘리트 체육을 하는 애들처럼 제대로 훈련시키고, 시합에 나가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1년에 세 번 정도는 충북 소년체전이나 청주 시장배, 회장기 등 대회를 나갔었다.
그때마다 경기장을 보면, 그 옛날이 떠올라 진저리가 났었다. 하지만 진저리가 나는 이유가 그리움에 기인한다는 것을 지영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소망했었다.
‘시합에 나가고 싶다…….’
유도를 좋아했었다.
재능이 있었고, 유도 선수로 성공해 부모님을 편히 모시고 싶었다. 국가대표가 되고, 실업팀에 들어가고,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고……. 그럼 적어도 어머니와 자신은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고로 모든 게 끝났기 때문에, 경기장을 볼 때면 소망하는 걸 넘어서서, 갈망했었다. 당연하게 내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사라지자, 그 갈망은 더더욱 배가 되었다.
지영이 회귀 전, 박한솔을 마지막으로 코치를 그만두려고 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아무리 갈망해도, 이룰 수 없는 꿈이기 때문에. 꿈이 꺾였다는 건 곧 그에게 매일같이 좌절감을 선사했다.
그 좌절감에 진저리는 치는 건 이제 그만하고 싶었기 때문에 유도계를 떠나려고 했는데, 회귀라는 기회가 왔고 지금은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이게, 지영을 긴장시켰다. 그리고 점점 그게 커져서, 한 번도 경기를 앞두고 흥분한 적이 없는 그를, 흥분시켰다.
“후우…….”
“했네, 했어.”
하긴 뭘 하는데.
이성진의 놀림을 웃음으로 무시한 지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몸을 풀었다. 저 끝에서, 첫판 상대인 구혁이 자신을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지영은 그 시선을 알면서도 무시했다.
지금은 그 시선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한결이 시작한다.”
황석의 말에 대기실 한쪽에 있는 큰 TV로 시선을 돌리자, 막 시합에 들어가기 전인 강한결의 모습이 잡혔다.
연희고 유도부 주장 강한결.
-90체급인데도 손기술과 허리기술은 물론, 발기술까지 능한 올라운더형 플레이어. 축구로 따지면 공격수, 수비수는 물론 골키퍼까지 할 수 있는 미친 재능을 타고난 게 강한결이었다. 이 중에서 재능으로만 따지면 가장 뛰어난 게 바로 강한결이었다.
올 초에 있었던, 국가대표 선발전에 유일하게 4위를 한 실력파이기도 했다.
고1이 선발전에 4위를 했다는 건, 사실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성인으로 갈수록 힘, 체급, 경험 등이 녹아 있어 고등학생은 솔직히 비벼보기도 힘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강한결은 4강에서 현 국가대표 1진 곽동형에게 절반 하나로 아깝게 패한 강한결이었다.
그래서 다들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이성진이나 임효중은 경기력에 기복이 조금 있는 편이지만, 강한결은 언제나 한결같은 경기력을 보여주는 친구였다.
인사를 하고,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는 강한결.
강한결의 상대는 서울이다.
유도계에서 서울은 언제나 강자였다. 선수촌이랑도 가깝고, 수도권이라 타 팀이 전지훈련도 자주 와서 항상 높은 수준의 실력을 보유하고 있는 게 서울이었다.
상대, 김창진도 그런 서울의 엘리트 유도를 고스란히 배운 친구였다.
서울 보성중을 나와 보성고로 진학한 김창진은 강한결이 등장하기 전까진 최고의 유망주였다. 그는 중1 때 이미 입상권에 들었을 정도로 타고난 실력을 보여줬었지만…… 중2, 황금세대가 적응기를 마친 순간부터, 유도계에서 받던 기대감을 모조리 빼앗기고 말았다.
강한결과의 전적은 중고 전부 합쳐서 5전 5패였다.
반대로 강한결이 출전하지 않은 대회에서는 마치 화풀이라도 하듯이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자신보다 더한 천재의 등을 언제나 바라봐야 하는, 비운의 천재였다. 그사이 경기가 시작됐다.
막 잡기 싸움을 시작한 강한결을 보며, 이성진이 혀를 찼다.
“김창진 쟤는 진짜 불쌍하다. 어떻게 중요한 대회는 죄다 통곡의 벽을 만나냐.”
통곡의 벽.
넘을 수 없는 벽.
김창진에게 강한결은,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이제는 굳어져 버렸다. 실제 회귀 전에도 황금세대가 다치고 나서 김창진은 국가대표가 되었고, 올림픽에서 2위까지는 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 미래는 이제 바뀌었다.
아니, 바뀔 거다.
회귀한 자신이 사고를 막고, 체전의 시합이 시작된 지금 이 순간부터 말이다.
“걸렸다.”
조용한 황석이 강한결이 순식간에 가랑이 사이로 파고 들어가 업어치기를 걸자, 짧게 이건 못 피하는 기술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 확신처럼, 경기 시작한 지 1분도 안 되었는데 소매꽂이에 김창진의 몸이 그대로 말려서, 강한결과 함께 데굴 굴러버렸다.
큰 임팩트는 없어도 완벽한 한판. 효율을 중시하는 강한결다운 깔끔한 소매꽂이였다.
심판의 한판을 확인한 강한결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일어나 도복을 고쳤고, 이번에도 강한결을 넘지 못한 김창진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린 채, 일어나지 못했다.
“좌절했네.”
“흠…….”
이번이 벌써 6번째다.
이렇게까지 천적 관계가 형성되면…… 저렇게 좌절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만약 그냥 실력이 없어서 지는 것도 아니고, 강한결만 없으면 우승할 실력인데, 그를 만나서 우승을 못 하니…… 저러는 것도 이해가 됐다.
결국 심판이 다가가 일어나라고 주의를 주고 나서야, 눈가가 붉어진 김창진이 일어났다.
악수를 하고, 서로 물러나는 승자와 패자.
강한결은 어쭙잖은 위로 따위는 건네지 않고 그냥 평소처럼 경기장 밖으로 나왔다. 카메라가 그런 강한결을 잡자마자.
“이거 방송이었으면 난리들 났겠네.”
“한결이가 출구 없는 얼굴이긴 하지.”
하지만 이 방송은 그냥 대기실에서 시합을 보라고 주최 측에서 해준 걸 뿐, 경기 중계는 준결승부터 시작이었다. 그렇게 황금세대 3인이 1회전을 전부 통과했다.
경량급에 비해 중량급이 시합이 원래 빨리빨리 끝나서 황석이 다음 타자로 나가서, 3분 만에 시원하게 되치기 한판승을 거뒀고, 남은 1회전은 지영이 전부였다.
이때부터, 지영은 다시 눈을 감았다.
지영이 눈을 감자 황금세대가 움직여 지영을 조용히 감쌌다. 마치 보호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영은 그런 것조차 느끼지 못했다.
후…….
고양감이 올라왔다. 이제 곧 시합이 시작될 거고, 그렇게도 갈망하던, 실전 경기를 치르게 된다. 그런 고양감을 느끼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던 중.
“충북 강지영 선수! 부산 구혁 선수! 대기해 주세요!”
드디어 기다리던 호명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차분하게 눈을 뜬 지영은 일어나서 도복을 고쳐 입었다. 그런 지영에게 황금세대는 파이팅이란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저 씩 웃으며 시합에 나가는 지영을 바라봐 줄 뿐이었다.
그런 친구들에게 고개를 끄덕여준 지영은 진행요원을 따라나서, 경기 대기석에 섰다.
후…….
다시 길게 한숨을 내쉬고, 눈을 뜬 지영의 눈빛이 좀 전과는 다르게 마치 굶주린 맹수처럼 변했다. 이전과는 다른, 매우 공격적인 눈빛. 아마 이성진이 이 눈빛을 봤다면 이렇게 말했을 거다.
염병, 사자가 우리를 탈출했네.
혀를 차면서 말이다.
그만큼 지영의 눈빛은 사납게 빛나고 있었다.
* * *
“할머니! 안녕하세여!”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경기장을 보고 있던 이선옥은 갑자기 들려온 인사에 화들짝 놀라며 옆을 돌아봤다. 그러자 일주일 전에 봤던 꼬마 아가씨 승아가 서 있었다.
“아, 승아? 여긴 어떻게 왔니. 아휴, 어머님, 안녕하세요.”
그런 승아의 뒤에는 승아의 어머니 선미 씨와 선미 씨의 어머니가 서 계셨다. 어떻게 알았는지 세 모녀가 경기장까지 찾아왔다.
“승아가 하도 지영 군 시합을 보고 싶다고 해서, 염치 불고하고 찾아왔어요.”
“아니에요. 염치가 없다니요. 여기 앉으세요.”
“고마워요.”
쪼르르, 폴짝.
이번에도 승아는 자기 할머니나 엄마 말고, 지영의 엄마인 이선옥의 품에 가서 앉았다. 그래서 놀랍다는 겨를을 표출할 사이도 없이 제법 승아를 품에 안아야 했다.
“또또 승아, 버릇없이 군다!”
“호호, 아니에요. 괜찮아요. 제가 안고 있을게요.”
이선옥의 말에 승아 어머니 선미 씨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반대편에 앉았다. 자리에 앉은 승아의 할머니, 심순이 여사가 이선옥을 향해 물었다.
“지영 군 시합은 시작했나요?”
“아니요. 이제 곧 나올 거예요.”
“늦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승아가 며칠 전부터 자기도 지영 군 시합 보러 가고 싶다고 하도 노래를 불러서…….”
“아 그렇군요. 승아가 지영이를 잘 따라주니 고맙네요. 호호.”
“생전 안 그러던 앤데, 이상하게 지영 군을 잘 따르네요. 그래도 시합 중인 지영 군 귀찮게는 안 하게 할 테니 그건 걱정하지 마셔요.”
“괜찮아요. 저도 긴장하고 있어서 숨도 제대로 못 쉬었는데…… 다행이죠. 호호.”
어! 지영 오빠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승아가 갑자기 한 말에 고개를 돌려보니 정말 지영이 저 멀리 보였다. 앞에 한 팀이 있으니, 지금 진행 중인 경기까지 포함하면 2경기 뒤였다.
“그때는 체육복을 입고 있어서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까 정말 헌앙하네요.”
“호호…… 그렇죠? 제 아들이라서가 아니라…… 어머, 주책이게 정말.”
아들 칭찬에 남아 있던 긴장감이 쏙! 씻은 듯이 사라져 저도 모르게 그 칭찬에 반응해 버릴 뻔했다. 그래서 이선옥은 얼린 주제를 돌렸다.
“따님도 대회에 나왔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아 우리 애는 내일 경기예요. 그래서 지영 군 경기 보고, 저녁에 안동으로 넘어갈 생각입니다.”
“아아, 꼭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랄게요.”
“후후, 제 실력만큼만 하면, 잘할 텐데, 시합 복이 참 없네요, 우리 애는.”
“호호…….”
시합 복이 없다는 말에 이선옥은 위로해 줄 말이 마땅치 않아 난감한 웃음을 흘렸다.
“엄마! 할머니! 오빠 들어가요!”
응?
벌써?
고개를 얼른 시합장으로 돌렸더니, 벌써 2경기가 끝나 있었다. 유도란 경기가 10초에도 한판이 나오는 경기다 보니, 이런 일이 없는 건 아니었다.
“으으, 오빠 눈 무서웡. 힝…….”
“…….”
바로 아래를 스쳐 시합장으로 들어서는 아들의 눈은, 승아의 말처럼 확실히 살벌했다. 차갑게 굳은 것도 같고, 마치 번들거리는 것도 같은 눈빛. 저런 아들의 눈빛은 본 적이 없어서 낯설었지만, 그래도 이선옥은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성찬 씨. 우리 아들 지영이, 지영이 다치지 않게 잘 부탁해요.’
종교가 없는 이선옥이 기도할 곳은, 먼저 떠난 남편밖에 없었다.
그렇게 기도를 하는 사이 하지메! 심판이 우렁찬 목소리로 경기 시작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