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이 빙의를 숨김-200화 (200/205)

집행자 유천하 (4)

늪에 빠진 짐승의 비명이 이러할까.

──────────────!!!

헌터와 빈민, 공략자들이 어우러진 이 혼잡한 도심의 가운데선, 이젠 기어코 마수의 울음소리마저 세차게 울려 퍼지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비명 서린 외침은 다시 2km에 가까운 광산의 경사에 부딪혀 산란했고, 소란스러워진 도시의 거리 너머 곳곳으로 퍼져 나갔으니- 그 장대한 마력이 담긴 하울링에 일반 빈민들과 헌터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그 소란의 중심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거기까지 이르는 사이 벌어졌던 추격전부터 시작해, 난데없는 타천자와 집행자의 격돌, 그리고 기어코 수호자급 마수의 등장까지 겹쳐진 상황인지라 직접 다가가는 이는 몇몇을 제외하곤 아무도 없었지만 말이다.

하물며- 그마저도 뒤늦게 사태를 파악하게 된 공략자들이 달려간 것에 불과했을 뿐.

그러나.

-뭐야 저건?! 마수가 나타났대서 왔더니!

-잠깐만, 저기. 집행기관이야. 저 복장.

-집행기관? 왜 저 사람들이 마수랑···?

현장에 가까이 다가가게 된 공략자들은 이내 그 광경을 보며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황혼급 마수의 존재감도 그렇고, 그 마수를 불태우고 있는 방대한 마력의 포화도 그렇고, 그리고 그 모든 걸 거리를 두고 지켜보고 있는 두 명의 인영도 그렇고.

지금의 저 상황에 자신들의 도움까진 필요하지 않다는 것과, 이 갑작스러운 사태에는 마인이 연관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끼어들긴··· 뭔가 좀 복잡해 보이는데.

-도움이 필요한 것 같지도 않아 보여.

하여 그들은 고민해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무도 싸우는 사람이 없거나, 혹은 위급해 보이는 상황이라면 다른 걸 신경 쓰지 않고 마수와 맞서 싸우겠으나- 아무래도 무언가의 작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듯한 마당에, 전력의 차이가 확연해 보였던 탓이었다.

하니 자신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당장 집행자라면 최소한 등천자에 가까울 테고, 황혼급 마수를 농락하는 것만 봐도 랭커에 가까워 보였으니 어쩔 수 없는 부분.

-일단은, 혹시 모르니 대기만 해야겠어.

-어. 지금 상황에선 그게 좋을 것 같네.

그렇기에 현장으로 다가갔던 공략자들은 자신들이 도울 수 있는 부분을 고민해볼 수밖에 없었고, 이내 도심에서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며 대기하자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애초에 앞에서의 소동도 있었던 만큼 만약을 대비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

수호자급 마수의 마력을 소모시키기 위해 인간 마력 발전기 진시우가 빛을 쏟아내고, 그 여파에 실력이 있는 이들은 저 나름의 이유로, 없는 이들도 다시 저만의 이유로 그 상황에 관심을 기울이며 고개를 기웃거릴 때.

도시에 있던 모든 이들의 이목이 그 사건의 중심지- 빛의 근원지로 쏠리고 있었을 때.

바로 그 순간.

“후우··· 후우···!”

다른 이들과는 달리 그곳으로부터 최대한 멀어지려고만 하는 한 사람이 존재하였다.

아니, 멀어지려고 하는 건 대부분 마찬가지였으나, 그럼에도 다른 이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혼란스러운 상황을 살피며 소란의 중심지를 주시하고자 하는 시점에서, 지금의 이 남자는 그걸 구경조차도 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빠르게 도망을 치고 있는 중이었다.

이능에 가격당해 상처 입은 몸을 재생시키며, 최대한 소란의 중심지에서 멀어져, 그러니까 위험한 일에 휘말리지 않도록 말이다.

그리고 물론.

그 남자의 정체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타천자를 끌어들이기 위해서 미끼 역할을 수행했던 블랙리스트의 마인- 하오란이었으니.

“미친 새끼···! 진짜··· 때리면··· 씨발!”

그는 조금 전까지 같이 연기하던 집행자가 사람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사라져버린 뒤부터는, 곧바로 로브까지 뒤집어쓴 채 최대한 사람이 없는 곳으로 도망치고 있었을 뿐.

물론- 그렇다 한들 금제에 당한 상태였기에 유천하로부터 도주하려는 건 아니었으나, 하오란은 다른 이들과는 달리 이번 작전의 개요를 어느 정도 들은 바였고, 그렇기에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는 것에 불과했다.

왜냐하면.

“저기 있다 뒤져봤자 나만 손해지···!”

어차피 저들 중엔 그 자신의 안위까지 신경 써주는 이가 단 하나도 없었으니, 제 몸은 자신이 알아서 챙겨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이건 그로서는 당연한 선택.

솔직히 말해서 진짜로 나타난 교단의 타천자에, 수호자급 마수에, 저러한 규모의 마력 파동이라니- 저 상대는 그 그림자 교단의 주교급 마인이었고, 그걸 상대하는 이는 집행기관의 하이랭커였으니, 저 같은 게 저런 거물들의 판에 끼어들어서 무엇을 하겠는가?

괜히 기웃거리다가 휘말려선 포화 한 방에 죽어버려도 할 말이 없을 만한 전장이었다.

하물며- 당장 미끼 역을 한 것만으로도 그림자 교단에 찍히기엔 딱 좋은 행동이었고, 저가 되돌아갈 곳이 집행기관의 감옥일지언정 인생의 앞날은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었으니 그는 거물들에게 찍히고 싶진 않았다.

그가 중요시하는 건 편안하고 쉬운 삶이었지, 좆같고 위험한 삶이 아니었으니까.

그런 만큼- 사태가 정말 아예 정리된다면 알아서 저쪽에 합류해야겠으나, 아무리 봐도 저런 일에 끼어드는 건 위험해 보였기에 하오란은 일단 몸을 숨기고 있을 생각이었다.

심지어 조금 전 그런 것까지 목격해버린 마당인지라, 더욱더 그러하였고 말이다.

“아니, 근데 씨발! 어떻게 마수가···!!”

비록- 그때 다른 이들은 이미 대부분 도망친 이후였기에 제대로 그 모습을 목격할 수 없었겠지만, 적어도 자신은 멀리서나마 타천자가 마수로 변이하는 것도, 그리고는 이능을 사용하는 것도 똑똑히 보지 않았던가?

타천자를 낚기 위해 저를 괴롭히던 집행자는 하마터면 타천자의 손에 죽을 뻔했고, 그런 타천자는 순식간에 유천하에게 농락당했으며, 그러다가 갑자기 저 미친놈은 수호자급 마수가 되어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타천의 마인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수에 가까워진다는 것 정돈 알고 있었으나, 아예 수호자급 마수가 되어서는, 이능까지 사용한다는 건 듣도 보도 못했던 일.

그건 분명 상식이 무너지는 듯한 광경이었고, 그렇기에 하오란은 자신이 위험한 일에 끼게 됐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유천하에 의해 어거지로 이 판에 끼어들게 된 그의 처지에선 굉장히 안타까운 상황.

“대체··· 어쩌다가 이런 일에 내가.”

그러한 까닭에 하오란은 거리를 내달리면서도 속으로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고, 자신 같은 잔바리가 끼어들기에는 너무 위험해 보이는 판도에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다른 놈들도 충분히 많은데, 굳이 자신을 다시 끄집어낸 게 꽤나 억울했던 탓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유천하에 의해 이런 상황에 끼어들게 된 상황이 불만스러운 하오란이었으나,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의 머릿속엔 몇 가지 궁금증 또한 떠오르게 되었다.

그러니까.

“진짜······ 그 괴물 새끼는 도대체······.”

도대체 유천하 저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이길래 저런 위험하고, 은밀한 일에까지 끼어들고 있는 걸까- 바로 그러한 생각이 말이다.

물론 일반 각성자들과 공략자들의 전투력에는 차이가 있고, 그런 공략자들 중에서도 등천자급 이상으로 가면 갈수록 격차가 크다는 것쯤은 솔직히 대부분 아는 이야기였다.

그러니 저러한 실력을 갖춘 유천하가 중요한 일을 맡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터.

하지만,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오란에게 유천하는 불가해한 무언가였고, 다시 그 실력과 정체 그 무엇하나 정확히 알 수 없는 신비한 존재였을 뿐이었다.

“원래 집행자였던 건가···? 그런 건가?”

바로- 이러한 생각마저 들었을 정도로.

물론 이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으니- 저 자신을 데리고 마인 사냥을 다닐 때부터 무언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이젠 아예 집행기관하고 어울리며 저런 일을 벌여대니 하오란으로서도 그 점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 유천하가 회랑의 생도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봐도 납득은 안되었다.

차세대 승천자라는 소리야 웹에만 접속해도 보이는 소리긴 했으나, 확실히 실제로 꾸준히 옆에서 지켜봐 온 실력이나, 행동 양상이나, 저를 대하는 태도나- 하오란이 생각하기에 유천하는 평범한 생도가 아니었을 뿐.

도대체 무슨 생도가 밤마다 접경지를 돌아다니며 마인을 썰어대고, 아무렇지 않게 타천자급의 마인을 농락해댈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자연스레 저를 고문까지 해대면서?

하오란은 그 눈을 잊을 수가 없었고, 그렇기에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

물론 어떻게 생각하든 진실을 알 방도 따윈 아예 없었기에 소용없는 의문이긴 했다.

하지만, 적어도 일단 유천하는 그가 이제껏 좆같이 뒹굴며 만나왔던 사람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두려운 이라는 건 확실했고, 또한 하오란은 아무래도 저가 앞으로 저 괴물 덕분에 이런 위험한 일에서 구르게 될 거라는 점 정도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저에게 걸린 금제는 고통스러웠고, 그 어떤 수를 써도 풀 수 없는 저주와 같았으니까.

그러므로.

“······씨발. 그게 중요한가 지금.”

하오란은 이내 그 호기심을 털어냈을 뿐.

물론 마수로 변한 마인이라든가, 그림자 교단과의 상황이라든가, 유천하의 정체라든가, 모두 의아하긴 했으나 전부 위험해 보이는 요소들이었기에 이건 당연한 선택이었다.

조금이라도 위험해 보이면 도망치는 것. 그게 이제껏 그가 살아온 삶의 방식이었고, 다시 앞으로도 선택할 방식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애초에 그건 마음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현실적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였으니, 그렇기에 그는 거리를 내달리는 것이었다. 최대한 격전지에서 멀어지도록, 만약의 사태라도 위험한 일에 휘말리지 않도록, 그러면서도 잠시 몸을 숨길 곳을 찾기 위해서.

그런데 그 순간.

열심히 골목을 누비고 있던 그의 시야에는 소란이 일어나는 중심지를 향해 다가가는 무리가 엿보였으니, 그에 하오란은 몸을 숨기면서도 저도 모르게 코웃음을 쳐버렸다.

“······저기··· 응······ 하필 겹쳤······.”

“도울······ 아, 혹시 모······ 그러자.”

태평해 보이는 발걸음, 마력이 깃든 옷.

아무리 봐도 저 여유나 복장을 보면 공략자들 같았으나, 척 봐도 위험해 보이는 곳으로 다가가는 게 다소 우스웠던 탓이었다.

뒷세계의 인간이었던 하오란에게 공략자란 제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멍청한 이들이었고,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목숨에 오지랖을 부리는 이해할 수 없는 놈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아?”

최대한 기척을 숨긴 채 그들이 지나가길 기다리던 하오란은, 그 순간 스쳐 지나가는 이들을 바라보곤 눈을 깜빡거릴 수밖에 없었고, 그대로 그늘 속에 몸을 숨긴 채 저가 본 게 맞나 다시 확인해볼 수밖에 없었으니.

그 이유는.

“일단, 자격은 있으니까. 괜찮겠지?”

“예. 혹시 모르니까 가봐야겠어요.”

그들, 아니 그녀들이 뒤집어쓴 로브의 사이로 드러난 얼굴이, 정확히는 누군가의 얼굴이 그에게도 상당히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사실 익숙하다고 하기에도 미묘했지만, 일단 실제로도 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고, 그때의 상황이 조금 숨이 막혔었기에 하오란은 그 날의 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다만, 그로서는 대체 왜 저 사람이 이곳에 있는 건지가 이해가 가지 않았고, 그는 의아함 속에 그녀를 바라보았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물론.

“······.”

“······.”

그 순간- 그 익숙하면서도 차가운 눈동자 또한 숨어있던 하오란을 발견하였고 말이다.

***

폐광산을 내리찍으며 타오르는 빛.

──────────────!!!

마치 당장에라도 마수의 방벽을 모두 긁어내 근원석을 불태우겠다는 듯이, 잿빛의 그림자를 모두 백색으로 칠하겠다는 듯이.

그렇게 벌써 10분 가까이 타오르고 있는 진시우의 마력 포화는 녀석을 중심으로 수백 미터를 그대로 하얗게 물들인 채 조금씩, 마수의 마력을 점차 소모시켜 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물론- 효과가 영 없진 않았는지 마수의 기세도 아까보단 확연히 약해진 상황.

나는 마수의 마력량을 확인해보았다.

“이대로라면 10분 안에 고갈될 겁니다.”

“10분··· 10분, 10분, 조금 미묘하네요.”

내 대답에 라피냐는 무언가 계산해보는 듯 구덩이의 중심- 마력을 뿜어내는 진시우와 그 속에서 발버둥 치는 마수를 바라보았는데, 아무래도 조금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물론, 그 걱정이 내겐 진시우의 마력 고갈이 아니라 다른 이유로 느껴졌지만 말이다.

“예. 화력이 점점 올라가고 있습니다.”

“······역시 아직 제어를······ 아, 일단 그러면 슬슬 제가 교대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마력량은 괜찮으시겠습니까?”

“마력량은 부족해도, 제 능력은 지속성이 좋아서 괜찮아 보이네요. 솔직히 시우 씨가 저렇게 갉아낸 양만 해도 상당하니까요.”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사실 애초에 수호자급 마수가 지닌 근원석의 마력량과 회복력을 생각해보자면, 저런 무식한 방법으로 서로 마력을 소모한다는 것 자체가 정말 말도 안 되는 방법이긴 했다.

하지만 수호자급 생포라는 미친 짓을 위해서는 그 정도는 해줘야 했고, 다행히 이곳에는 걸어 다니는 마력 발전기가 있었을 뿐.

정확한 원리까지는 모르겠으나, 진시우의 영혼에 그려지는 원이 늘어날 때마다 녀석의 마력은 폭발하듯이 늘어났고, 그 마력은 녀석의 특성 <광휘의 세례>와 만나 거의 제로 코스트에 가까운 효율로 공격을 퍼부었다.

덕분에 원래라면 상당히 고생했을 작업도 녀석으로 인해 쉽게 넘어가고 있는 상황.

다만, 방금 라피냐가 언급했던 것처럼 진시우는 여전히 저 이상한 기술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듯해 보였고, 그래서인지 녀석의 화력은 점점 높아져만 가는 중이었다.

물론 우리의 목적이 토벌이라면 문제없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게 아니었고 말이다.

“역시··· 생포하기가 참 까다롭군요.”

“수호자급이니까요. 어쩔 수 없지요.”

솔직히 말해서- 만약 저 녀석이 단순히 마수화한 타천자에 불과했다면 그냥 죽이면 그만이었으나, 역시 마수가 이능을 다룬다는 사실은 분명 그냥 넘길 수 없는 변수였다.

그러니 번거롭지만, 우리로서도 저 녀석을 잡아다 확인해 볼 필요성이 있었을 따름.

마수화의 조건이 근원석 자체인지, 아니면 무언가의 조건이 있는 건지, 혹은 저 상태에서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는가도 중요했고, 저런 식의 마수화가 아무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인지도 무척이나 중요했다.

당장 그 내용에 따라서 교단의 위험성이 지금보다도 몇 배는 더 증가할 테니 말이다.

그러니 다소 귀찮고 위험할지언정 수호자급 마수를 생포하려고 근원석의 마력을 한계치까지 고갈시키려 이러는 것이었고, 그렇게 근원석의 마력을 고갈시킨 다음 라피냐의 이능으로 얼리기까지가 우리가 할 일이었다.

그 이후에는 따로 여러 이능의 처리가 추가될 예정이라는데, 라피냐가 따로 지원을 요청했다고 하니 신경 쓸 부분은 아니었다.

그러니-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

“그래도 마력은 제대로 계측해주세요.”

“예. 일단 계속 관측하고 있습니다.”

바로, 정확한 시점을 잡아내는 것이었다.

애초에 지금의 과정에서 제대로 마력을 고갈시키지 않는다면 생포를 해도 언제 포획을 풀고 뛰쳐나올지 몰랐고, 그렇다고 라피냐가 더 강하게 얼려버리면 근원석까지 파괴될 위험이 있었으니 이건 분명 중요한 일이었다.

하물며- 이 중에서 마력의 측정을 가장 정확하게 해낼 수 있는 건 나뿐이었고 말이다.

다만 생포를 기준으로 계산해본 적은 없었기에 마력량이 엿보일지언정 어느 정도가 적정선인지는 다소 애매하기도 했고, 녀석의 이능을 생각해본다면 방심할 순 없었다.

물론 다시 또 그림자에 녹아들어 도주한다 해도 그대로 쫓아가 아까와 같은 짓을 해주면 그만이었으나, 솔직히 조금 번거로웠다.

그리고- 그건 나만 그런 것도 아닌 모양.

“쯧. 속박 능력자도 한 명 데리고 왔으면 편했을 텐데,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참.”

“······.”

옆에서 들려온 라피냐의 투덜거림에 내 머릿속으로 누군가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마침 적절한 사람이 있었던 탓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능력이 이럴 때는 적절하게 쓰일 수 있을지언정, 마력의 격차를 생각해보자면 미묘하기도 했고, 여기에 올 일 없는 사람이었기에 나는 그 생각을 털어냈다.

그와 동시에 슬슬 아슬아슬한 지점까지 도달해가는 진시우를 바라보면서, 다시 워치의 수신 목록까지 잠깐 확인하였고 말이다.

물론 아직도 돌아온 답장은 없었으나, 나는 그냥 수업을 듣고 있겠거니 여겨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다시 입을 열었을 뿐.

──────────────!!!

“지금 마력이 한 번 더 증폭됐습니다. 이제는 위험한 것 같군요. 조금 더 있으면··· 아예 근원석까지 파괴해버릴 것 같습니다.”

“그럼 바로 교대하러 가야겠네요.”

“예. 제어가 흔들리는 모양입니다.”

나는 더 거세게 터져 나오기 시작한 진시우의 마력을 바라보며 그리 덧붙였고, 내 말에 라피냐는 대답과 함께 망설임 없이 빛이 터져 나오는 중심부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애초에 이미 다 계산을 해보았던 상태였기에 딱히 거리낄 이유가 없었던 탓이었다.

그러자 진시우가 쏘아내는 마력의 여파가 티딕- 거리며 반발을 일으켰지만, 라피냐는 그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바닥을 얼리면서 밑으로 쭉- 미끄러져 나갔고, 그러면서도 멀어지는 목소리 속에 말을 덧붙였다.

“분명 교체 타이밍에 또 도망갈 테니까. 구덩이 내에서만 못 벗어나게 해주세요. 저도 시우 씨 때문에 범위 조절이 힘드니까요.”

“예. 그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믿음직하네요- 어느새 거의 맨 아래까지 내려간 라피냐의 목소리가 작게 되돌아왔고, 그와 동시에 그곳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몰아치는 마력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시우···! 교대······ 멈춰 그······.

빛의 포화와 마수의 울음소리가 자아내는 굉음 속에 그 목소리가 섞여서 흘러나온 순간, 서서히 마력을 강타하던 진시우의 마력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라피냐의 마력이 일어나며 겨울이 휘몰아쳤다.

하지만- 역시나.

[───의 비틀────온───!]

슈루룩-! 사전에 예상했던 대로 범위계 이능인 두 사람이 서로를 배려해 이능을 조절해나가는 순간, 그대로 마수 또한 틈을 놓치지 않고 그림자로 녹아내리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그 모습을 감춰버렸을 따름이었다.

물론, 녀석이 모습을 감추자마자 라피냐의 손을 따라 수십 미터 반경이 얼어붙기 시작했지만, 위치를 특정하긴 어려웠던 모양.

진시우만 없었어도 그녀의 마력을 생각하자면 그냥 100m쯤은 통째로 얼려버렸을 거란 생각이 들었으나, 서로가 범위에 들어와 있는 상황에선 저런 부류의 이능은 화력은 감탄스러울지언정 다소 불편한 감이 있었다.

그러니- 지금은 내가 나설 수밖에.

─────────────······

그러므로 나는 느려지는 시야 속에서 빠르게 이곳의 전역을 훑어보았고, 순식간에 뻗어 나가는 녀석의 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빠르긴 했으나 문제 될 건 없는 수준.

비록 지금은 업륜을 모두 소모한 상황이라 아까처럼 어검을 사용할 순 없었지만, 그래도 진시우 덕분에 녀석의 마력도 거의 바닥에 가까워진 참이었기에 문제없이 다시 구덩이 밑바닥으로 처박아 줄 수 있을 듯했다.

그렇기에 나는 바로 발을 박차보았고, 다시 풍결의 가호로 바람의 발판을 만들어내면서, 또한 7성의 내력을 모두 풀어내며 그대로 녀석이 움직이는 경로를 향해 나아갔다.

우웅-!

아니, 정확히는 그곳으로 가려고 했다.

그 순간, 저 멀리서 날아온 마력이 아니었다면, 아니 더 정확히는 그 마력이 내게는 무척이나 익숙한, 그러면서도 이곳에서는 볼일이 없는 사람의 것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그러니까 바로.

[혹시, 도움이 필요한 상황? (๑❛ᴗ❛๑)+]

그 마력이 이러한 형상이 아니었다면.

이럴 사람이 한 명뿐이지만 않았다면.

“······.”

하지만 만상의 눈으로 엿보이는 세계 속에서 그건 명백한 현실이었고, 그렇기에- 허공을 박차고 뛰쳐나가려던 나는 찰나의 세계 속에서, 그대로 잠시 허공에 멈춰 선 채로 빠르게 이 상황을 파악해볼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만약- 지금 내가 환각이나, 또 이상한 무언가에 당해버린 상태가 아닌지, 말도 안 되는 가정이지만 과연 그 말괄량이가 난데없이 이곳에, 그것도 하필 이 시점에 나타날 확률과 내가 아무런 전조도 없이 환각에 당할만한 확률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아니, 일단 다른 그 무엇보다도.

-······천··· 씨!

만약, 만약 정말로 내 눈 앞에 펼쳐진, 그러니까 만상의 눈에 정확하게 파악되고 있는 이 마력의 문자가 정말 저 멀리서, 반짝거리는 금발의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그녀가 쏘아 보낸 것이라면, 그 옆에 서 있는 자그마한 검은 머리카락의 소녀는 그녀가 맞는 건지.

정 반대편의 고지에서 이곳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어내는 저 풍경이 과연 현실인지.

대체 하오란은 왜 저기에 껴있는 건지.

“······.”

바로- 그러한 것들에 대해서 나는 한순간에, 빠르게 상황을 정리해보기 시작했고, 만상의 눈은 이내 그 모든 것을 긍정해주었다.

지금 내 시야에 들어온 광경이 모두 현실이며, 그녀들이 지금 이곳에 왔다는 사실을. 차마 부정할 수도 없이 선명하게 말이다.

그리고는- 다시 그것을 뒷받침하듯이.

-어··· 일단 빨개져라!

우웅-!! 저 멀리, 아리엘의 입에선 지극히 그녀다운, 엉뚱한 말이, 그 엉뚱함과는 반대로 강한 마력을 품고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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