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자 유천하 (3)
그건 분명, 단 한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마치 잔잔한 호숫가에 빗방울이 하나씩 떨어지듯이, 그 변화는 조용하게, 그러면서도 갑작스러운 파문을 그려내며 번져 나왔다.
끈적거리듯 휘몰아치는 잿빛의 기류.
파도가 일어나듯 터져 나오는 그림자.
그리고.
쿠드득.
한순간에 팽창하는 마인의 육체까지.
그것을 가장 먼저 깨달은 건 만상의 눈으로 계속 타천자를 응시하고 있던 유천하였으나, 연이어 마인을 얼려버리고 있던 라피냐 또한 눈치챘고, 한 발짝 늦게 진시우마저도 그러한 변화를 인지해냈으니- 그들의 본능은 상황을 이해하기도 전에 먼저 행동했다.
그들의 상식선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을지언정, 저건 분명 이변이었으니까.
하지만.
우우웅.
“······!”
이미 변이를 시작한 마인, 아니 마수의 육체는 일순간 세상의 섭리에서 벗어난 듯 일시적으로 세계에서 분리되었으니. 그림자는 유천하의 검격도, 라피냐의 이능도, 모두 무시한 채로 형상을 만들어나갔을 뿐이었다.
그 심장의 근원석에서 울음을 토해내며.
주변의 공간을 잿빛으로 물들여가면서.
그렇기에.
──────────────!!!
지금 그들의 앞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상정하지 않았던 상황이었기에, 다시 그들이 알고 있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기에.
눈 깜빡할 시간, 순식간에 폭발하듯 팽창하는 타천자의 육신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행동은 각자의 판단대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게 뭔···!”
우웅-!! 우선 그런 변화부터 멈춰 보이겠다는 듯 업륜까지 드러내며 마력을 끌어올린 라피냐라든가, 아니면 그 변화를 목격하자마자 주변에 사람이 있는지부터 확인하고서는 일념혼을 그려내기 시작한 진시우라든가.
그것도 아니라면- 갑자기 근원석에서 시작된 잿빛의 마력도, 그 마력이 낳은 결과물도, 그저 가만히 지켜보는 유천하라든가.
각자의 판단과 생각 속에 그렇게 말이다.
“······.”
물론, 그 판단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으니- 그건 유천하가 지닌 만상의 눈 속에는 지금 타천자가 일으키는 변화가, 그 변화의 과정이 똑똑히 인지되고 있었고, 그는 그러한 변화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바로.
‘마수화.’
지금 이 상황이, 4월의 끝에서 겪었던, 적원회주가 보여줬던 변화와 똑같다는 것을. 유천하는 즉각적으로 파악해낼 수 있었다.
다만 그때와 지금 이 상황에 차이가 있다면, 마율령은 타천자가 아니었으되 이상한 근원석을 통해 마인과 마수의 경계에 서 있는 무언가로 변이한 것이었다는 점이었고, 타천자는 저 스스로 변이했다는 점이었다.
아니, 그때는 인간에서부터 마수로 변해갔다면, 지금은 온전한 마수라는 점도 달랐다.
하지만 적어도 현상 자체는 동일했을 뿐.
그러므로- 그때와 마찬가지로, 침식은 자신이 어떻게 대응하든 간에 사람의 손으로 막을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었고, 그들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은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 잿빛탑의 생성과도 같은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었기에 유천하는 우선 대기했다.
현실에 고정되는 순간을 노리기 위해서.
타격이 유효해지는 순간을 기다리면서.
“실체화!”
또한, 1초가 채 지나기도 전에 라피냐와 진시우도 그걸 깨달았고, 원래부터 그 사실을 파악했던 유천하는 의념을 가다듬었으니.
그 순간- 마인의 형상이 출렁거렸다.
콰지직-!! 제 몸에 달라붙어 있던 얼음을 그대로 깨버린 채, 다시 사람의 형상을 이루고 있던 요소들을 모두 짓뭉개버리면서.
그리고 그렇게.
──────────────!!!
마수로 화해 울음을 터트리면서 말이다.
아니, 구태여 말하자면 정확히 마수라 하기에도 미묘했고, 조금 당황스러운 점은 여러 가지가 있었으니. 이 순간 유천하도, 라피냐도, 진시우도 동일한 생각을 떠올렸을 뿐.
우선, 가장 첫 번째로는.
“사례,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그들이 파악했던 전제가 틀렸다는 것.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림자 교단이 침식을 연구해, 그것을 자극하는 법을 알아냈다는 추측은 맞았으나, 적어도 그 연구의 결과물이 근원석을 통해 나타난다고 추측했던 점은 이 순간 완벽히 빗나갔을 따름이었다.
적어도 지금 변화한 이 타천자는 따로 무언가를 소지하고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굳이 만상의 눈으로 보는 게 아니더라도 타천자의 변화는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확인할 수 있었고, 그저 일개 마인이었던 황혼급 주교 테흘리안은 이 순간 수호자급 마수로서 완전하게 우화한 상태였다.
마율령과는 다르게, 타천자들이 오랜 시간 침식에 잡아먹히며 변이하는 것과는 다르게, 정말 한순간에 순수한 마수가 되어버린 것.
그렇기에 그는 빠르게 기억을 되새겼다.
‘···원작에 이런 게 나왔던가?’
정확하진 않지만, 적어도 그가 기억하는 내용 중에선 이런 게 묘사된 적은 없었다.
허나 세계침식 때의 현상과 에피소드 중간중간 나타났던 위험들을 생각해보자면, 그리고 그림자 교단의 영향력을 생각해보자면, 무언가 다소 미심쩍은 구석은 존재하였으니- 그는 빠르게 퍼즐을 조합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물론.
“일단 토벌하겠습니다.”
퀴이잉-! 다시금 현상이 고정된 마인, 아니 마수를 향해 참격을 쏘아내면서 말이다.
──────────────!!!
그렇게 검극이 궤적을 그려냈고, 그 선을 따라 칠흑빛의 참격이 마수의 형상을 강타했다. 비록 마력 방벽에 깎여 그 형상의 일부를 도려낸 것에 불과했지만, 그의 검격은 마력의 흐름까지 정확하게 끊어내 버렸을 뿐.
일격에 방벽을 긁어내고, 이격에 흐름을 끊어내며, 다시 마지막으로 몸을 긁어낸다.
콰앙-!! 흩날린 마력의 잔재가 그림자로 화해 파동을 터트렸고, 마수의 입에서 고통 어린 하울링이 터져 나왔으나 유천하는 망설임 없이 마수의 마력을 빠르게 깎아냈다.
카득··· 콰과과과-!!
그러자- 사방을 향해 터져 나오는 마력.
비록 온전한 마수가 되어버린 상대의 근원석은 압도적인 마력을 바탕으로 그 몸을 재생시켰으나, 유천하는 그에 개의치 않았다.
왜냐하면- 지금 이곳에 있는 건 그 혼자만이 아니었고, 4월의 그 날처럼 시간이 촉박한 것도 아니었으며, 다시 그 무엇보다도.
‘쓸데없는 발악.’
서걱-! 변이했다 한들, 상대는 기껏해야 황혼급 마수 정도밖에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당장 이곳에 있는 세 사람은 황혼급 마수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잡을 수 있는, 아니 심지어 유천하 자신과 라피냐라면 이런 환경이라 해도 손쉽게 토벌할 수 있었다.
하니, 그로서는 다소 어이가 없었을 뿐.
고작 황혼급 마수로 화한다고 이 상황에서 빠져나갈 수도 없을 텐데 굳이 이렇게까지 한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고, 다시 라피냐가 이런 사례가 없다고 말한 이상, 이건 녀석들로서도 숨기고 있는 정보였을 텐데 갑자기 이걸 드러냈다는 게 의아했던 탓이었다.
물론 세부적인 조건은 알 수 없었으나, 이것만 해도 분명 중요한 정보였을 테니까.
카가가각··· 콰앙-!!
그렇기에- 유천하는 폭발하듯 터져 나온 그림자의 파도를 베어 가르며, 계속해서 마력을 토해내는 녀석의 상태를 관찰해보았다.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었다.
──────────────!!!
하지만 놈의 마력량은 분명 타천자였던 순간에 비해선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으나, 그래 봤자 황혼급의 수준이었고, 일반적인 황혼급보단 강해 보였을지언정 솔직히 말해서 멸화급의 기준엔 한참을 못 미쳤다.
지금 이 인원이라면 5분이면, 아니 혼자 사냥하더라도 20분이면 죽일 수 있을 정도.
당장 위치가 위치이었기에 제대로 전투에 돌입한 건 유천하 저밖에 없었으나, 장소만 제공되면 진시우도, 타이밍만 생긴다면 라피냐도 바로 전투에 참여할 터였고, 그렇다면 상황은 순식간에 정리가 될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녀석은 결국 이지 없는 마수에 불과한 걸까- 유천하는 다시 검격을 뻗어내며 지금의 상황을 그리 판단해보았다.
하지만 그 순간.
[─부─족──]
그런 유천하의 판단을 비웃기라도 하듯, 마수로부턴 이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왔으니.
[──위대──심연───람을─!]
카가각-! 무언가 노이즈에 섞인 말을 내뱉은 마수는 그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한줄기 그림자가 되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타천자가 특성을 사용했던 것처럼, 그렇게.
그리고는 이내.
[──하여─!]
퍼어엉-!! 마치 물풍선이 터져 나가듯 사방으로 그림자를 쏘아낸 채, 제 모습을 감춰나갔으니- 그 갑작스러운 상황에 마수를 지켜보고 있던 이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
“······.”
그건 지금 자신들의 눈앞에서 펼쳐진 광경이 의미하는 바가 명확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바로.
“마수가······ 특성까지···?”
온전한 수호자급 마수로 화했음에도 원래의 특성을 사용했다는 것. 하물며, 어정쩡한 변화도 아닌 온전한 변화였음에도 말이다.
게다가 지금의 저 행동은 단순히 강제로 타천을 한다든가, 마수화를 한다든가, 혹은 난데없이 수호자급 마수가 나타난다든가 하는 것과는 분명 차원이 다른 일이었고, 이제껏 따로 목격된 적 없는 특이한 사례였을 뿐.
이건 정말 중요한 변수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유천하와 진시우가 라피냐를 바라보았고, 그녀 또한 그들을 바라보았으니.
“다시, 생포하겠습니다.”
“예. 가능하면, 무조건.”
이 순간 그들은 따로 상의하지 않아도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
난데없이 시작된 도심에서의 추격전.
──────────────!!!
쾅-!! 차원 단면의 틈새로 녹아든 녀석을 쫓아 유천하가 대지를 박찼고, 한순간에 검은 잔향으로 늘어지는 그를 뒤쫓으며 라피냐는 빠르게 지금의 상황을 판단해보았다.
그리고는, 혹시나 해 다시 입을 열었다.
“불가능하면 만류할 텐데···! 저건···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니잖아요? 지금··· 저 정돈!”
“예. 장소만 바꾼다면 괜찮습니다.”
유천하는 제 뒤편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그리 대답하며, 순식간에 위치를 바꿔나가는 마수의 본체를 간파해나가기 시작했다.
또한 그러면서도 다시금 생각해보았다.
‘성가셔. 하지만 위험하진 않아.’
물론, 이능을 사용하는 수호자급 마수라는 존재는 쉽게 볼 수 없는 개체였고, 하물며 생포라는 페널티가 달렸다면 결코 방심할 수 없는 상대였으나, 그건 별개의 문제였다.
애초에 싸움에서 쉬운 적과 위험한 적을 고를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가능하냐 불가능하냐의 영역이라면 문제는 단순했을 뿐.
유천하는 제 역할을 깨달을 수 있었다.
“추적은 제가, 대신 마력 방벽은···.”
“공터까지만 간다면 내가 맡지.”
“예. 아니어도 제가 깎아낼게요.”
비록 이능의 종류가 종류이기에 쫓아가는 게 간단하진 않았으나, 다행인 점이 있다면- 이곳에는 바로 저 자신이 있다는 것이었다.
하물며 장소는 가릴지언정 화력에 특화된 진시우가 있었고, 조금 더 범용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는 라피냐가 있었으니, 몇 가지 조건만 클리어한다면 생포 또한 가능했다.
솔직히 말해서- 생포를 해도 그걸 어떻게 처리햐나가 다시 문제긴 하겠지만, 그건 일단 이면 순례자가 처리할 일이었기에, 지금 중요한 것은 오직 저 마수를 처리하는 것.
그러므로- 그 순간.
“먼저 가겠습니다.”
콰앙-!! 유천하는 건물의 외벽을 박차고선 그대로 도심의 지붕 위를 내달렸고, 그와 동시에 그의 손등에 있던 업륜으로부터 막대한 마력이 빛과 함께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지붕을 내리찍으며 1차로 가속, 자세를 숙이며 2차로 가속, 마지막으로 내력을 뿜는 순간 다시금 가속이 발현되었으니.
후웅······ 콰아아앙-!!!
그 순간- 막대한 내력이 터져 나오며 유천하의 몸이 빛살처럼 쏘아져 나갔고, 그가 나아가는 길을 따라서 바람이 휘몰아쳤다.
단번에 가속된 움직임에 묶어놓았던 끈이 풀려버렸는지 허공에 흩날리는 머리카락.
바람이 그를 감싸고 궤적을 그려낸다.
이미 일곱 갈래의 매듭을 모두 풀어낸 유천하의 신형은 풍결의 가호를 통해 공기의 저항까지 없애며 순식간에 마수가 있는 곳을 향해 나아갔고, 그에 사방에 펼쳐지던 그림자의 실이 그를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으나 유천하는 아무렇지 않게 허공을 박찼을 뿐.
허공에 만들어지는 바람의 길이 그를 인도하였고, 그 속에서 그는 검을 들어 올렸다.
만상의 눈이 그대로 세계를 관조하였다.
─────────────······
느려진 세계 속에서 유천하의 눈은 저를 향해 휘둘러지는 그림자를 인지했고, 그러면서도 제 주변을 감아치듯 맴도는 그림자의 핵을 놓치지 않고 그대로 바라볼 수 있었다.
쏘아져 온 그림자의 채찍은 총 일곱.
마수의 본체와의 거리는 대략 50m.
그러므로.
‘우선은 멈춰 세운다.’
콰앙-!! 순식간에 뭉쳐진 대기를 짓밟고선 기동을 시작한 유천하는 칠흑빛의 궤적이 되어 그대로 별자리를 그려냈으니, 허공에서 순식간에 여섯 번 몸을 튕긴 그는 공세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그대로 손을 뻗어냈다.
그러자 검신으로 스며드는 1획의 업륜.
손을 떠나 허공으로 뻗어진 칠흑의 검.
그리고 그렇게.
쉬익······.
동심원을 그리듯 터져 나온 검은 파문.
콰아앙-!! 손에서 쏘아진 검극은 그대로 하나의 화살이 되어 순식간에 마수의 본체가 있던 그림자를 강타했고, 그대로 차원 단면 너머의 마수와 격돌하며 파란을 자아냈다.
콰과과과과과과-!!
잿빛과 흑색이 자아내는 짙디짙은 마력의 잔재가 마치 눈처럼 사방에 흩날리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주변에 자리하던 빈약하게 지어진 건물들까지 일제히 크게 흔들거렸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에서도 유천하의 몸은 자유로웠기에, 그는 계속해서 달려나갔다.
어차피 반쪽짜리 어검술로는 마수를 멈춰 세우는 게 고작이었으니, 결국 근원석의 마력 흐름을 끊어내 현실로 패대기치려면 직접 손으로 베어낼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쿠루룩-! 그런데 그 순간.
[──증───거라───여──!!]
유천하와 마수의 거리가 채 5m도 안 남은 시점에서, 갑자기 현실로 튀어나온 마수는 그대로 입에 마력을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바로, 유천하를 향해서 말이다.
물론,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수호자급 마수의 포화를 이야기하는 것이었으나, 유천하는 마력을 끌어모으기까지 걸린 시간과 저 자신의 내력, 그리고 어검에 남아있는 업륜의 마력과 암야의 방어력까지 계산하였고.
그리고는- 그대로 계속 나아갔을 뿐.
──────────────!!!
그러자 순식간에 휘몰아친 마력의 결집은 그대로 그림자의 포화가 되어 그에게 쏘아졌으니, 유천하는 그대로 제 손을 휘저음과 동시에 그 손짓에 따라 검이 포화를 강타했다.
콰앙-!! 허공에서 맞부딪힌 두 개의 궤적.
콰직···! 콰과과과과과-!!!
마력 방벽을 뚫어내고 있던 반쪽짜리 어검이 그대로 포화의 중심과 마주했고, 이내 그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막대한 마력의 불씨만을 토해낸 채 세차게 뒤로 튕겨 나갔다.
슈룩-!! 하지만 유천하는 그에 개의치 않고 손을 뻗어냈고,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검은 외투는 그대로 장막이 되어 소용돌이치듯 제 손을 휘감으며 수렴되기 시작했으니.
그리고는 마치, 마력의 포화를 그대로 집어삼키듯. 그 중심을 고스란히 빗겨내듯. 암야는 잿빛의 포화 속에서 어둠을 발하였다.
나선을 그려내며 교차하는 칠흑의 선.
그에 반발하며 흔들리는 잿빛의 포화.
우웅-!
그리고는 다시.
콰지직-!! 별빛을 머금은 유천하의 손이 그대로 수강을 휘둘러 그 포화의 중심을 꿰뚫어냈고, 그 순간 포화를 이루던 마력의 결집이 깨져 나가며 허공을 향해 흩날렸다.
그에 마력을 토해내던 마수의 입에선 당황한듯한 하울링이 울려 퍼졌으나, 그 순간엔 이미 유천하가 그 앞에 당도한 뒤였을 뿐.
그와 동시에 포화에 튕겨 나갔던 검 또한 다시금 그의 손으로 되돌아왔고 말이다.
찰나의 찰나- 서로의 시선이 교차한다.
[······.]
“······.”
그리곤 이내, 그 신형이 흐릿해졌으니.
──────────────!!!
콰아앙-!! 패와 강의 묘리를 머금은 그의 검신이 그대로 마수의 안면을 내리찍었고, 마력 방벽과 검강이 마주한 극점으로부터 막대한 거력을 머금은 파동이 터져 나왔다.
당연히 그에 따라 그들이 있던 건물의 지붕이 그대로 산산이 조각나는 건 물론이고, 주변에 자리하고 있던 유리창이 일제히 콰직거리며 깨져 나갔으나- 유천하는 그런 것 따윈 신경도 쓰지 않고선 공세를 이어갔다.
풍결의 가호로 바람의 결을 만들어내며.
7성의 내력을 단번에 팔로 밀어 넣으며.
다시, 남아있던 업륜까지 활성화하며.
천마신공 天魔神功
일천검결 一天劍結
파천패력 罷天覇力
그렇게 허공을 짓밟고선 검을 뻗어냈다.
그리고 그 순간- 패도적인 기세가 점으로 수렴되며 막대한 예기를 그 검신에 세워냈으니, 한계까치 수축된 유천하의 팔은 찰나를 가로지르며 한순간에 마수를 강타했을 뿐.
그러니까.
카득··· 콰아아아앙-!!!
그대로 20m에 달하는 마수의 체구를 제 검으로, 그대로 땅에 패대기치면서 말이다.
──────────────!!!
그렇게 마수의 입에서 다시금 고통 어린 외침이 터져 나왔고, 마수는 그림자 속으로 녹아들려고 하였으나. 그 순간- 저 멀리서부터 쏘아진 빛의 기둥이 마수를 후려쳤다.
세로데파스코에 나타난 백색의 광원.
븨이이잉··· 콰아앙-!!
푸른 하늘을 가로지르며 내리꽂힌 순백의 포화는 그대로 마수의 몸을 강타해버렸고, 그 압도적인 마력 방출에 그림자로 변해가던 마수의 몸 또한 순식간에 튕겨져 나갔다.
물론 출력이 출력이었던 만큼, 저 멀리서 마력을 쏘아낸 진시우의 주위는 그 여파로 인해 박살이 나는 중이었지만 인명피해만 없다면야 다른 것은 전혀 상관없었던 모양.
“구덩이로···! 떨어트려!”
그리고- 그 추측을 뒷받침하듯 진시우는 이번엔 하늘이 아니라 저가 위치한, 그 자리에서 그대로 일직선으로 빛을 쏘아냈으니- 그에 마수의 거체가 밀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격하게 요동치는 마수의 마력.
하지만, 수호자급 마수의 마력량은 일개 개인이 논할 수준이 아니긴 하였으나, 그렇다 한들 진시우 또한 평범한 이가 아니었다.
하물며- 집중도의 차이는 명확했을 뿐.
게다가 유천하가 마수를 내리찍는 동안 따라잡은 이도 그뿐만은 아니었고 말이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네요.”
콰지직-!! 지면에서 솟구친 거대한 얼음기둥이 그대로 마수의 다리를 꿰뚫었고, 그에 무게중심을 잃어버린 마수의 육체를 다시금 빛이 강타하며 계속 그대로 굴려나갔다.
물론 마수도 일반적인 마수는 아니었기에 계속 이능을 사용하려고 하였으나, 유천하의 검이 참격을 그어내며 그것을 끊어냈다.
마수가 아무런 이능조차 발현할 수 없도록,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듯이.
그렇기에- 마수는 이내 분노를 토해냈다.
[──러운──자들───여──!!]
다만,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없었을 뿐.
애초에 타천자였던 순간하고만 비교해도 마수의 이지는 흐려진 상태였으니 저건 당연한 결과였고, 단순히 마력만으로 어떻게 해볼 만큼 이 구성이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그건 그저 당연한 이야기.
공략자의 입장에서 힘의 규모가 뒤처지는 건 항상 당연한 일이었고, 하여 그들은 이제껏 각자가 쌓아 올린 업을 통해 싸워왔다.
마법이든, 이능이든, 무공이든- 단순히 힘만 믿고 생사를 거는 멍청이가 어디 있을까.
세월 속에 쌓인 경험과 단련 속에 만들어진 기예, 그 모든 것이 사람이 쌓아 올린 업이었으니, 갑자기 마수로 변해버린 입장에서는 이능을 사용할 수 있다 한들 원래만큼 제대로 응용해내기는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타천자가 이렇게 황혼급 마수가 돼버린 이상, 이 상황도 정해진 것이었다.
──────────────!!!
물론 그렇다 해도 마력의 규모 자체는 무시할 수 없었기에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그림자의 파동에 거리가 박살 나고 있었지만, 그건 세금이 처리해야 할 일이었지 그들이 신경 쓸 일이 아니었기에 진시우는 공격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마수를 밀어붙였다.
이 버려진 도시- 세로데파스코의 중심에는 오래된 흔적이 자리하고 있었기에. 거대한 인적 없는 장소가 자리하고 있었기에.
수호자급 마수를 생포하기 위해선 먼저 근원석이 뿜어내는 저 방대한 마력을 먼저 고갈시킬 필요가 있었으므로, 그로서는 제대로 힘을 발휘할 공간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지금 해야 할 건 토벌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개──같은───석들──!!]
처음 교전이 시작된 장소로부터 대략 200m가량을 아무것도 못 하고 굴러버린 마수가 분노 속에 말을 깨우치며 토해내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과열된 진시우의 일념혼이 다음 원을 그려내기 직전까지 내몰렸을 때.
드디어- 바로 그 순간.
“도착했군.”
마수의 거체가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그리고는 광산 구역에 진입하여 움푹 패인 언덕 아래로 수십 미터의 거체가 굴러가기 시작했으니, 그와 동시에 경사가 바뀌어 진시우의 공격 또한 닿지 않게 되었기에- 마수는 다급히 이능을 발현했다.
아니, 정확히는 발현시키려고 했을 뿐.
“그대로 처박히거라.”
콰아앙-!! 허공을 박차고 낙하한 유천하의 몸이 한순간에 가속, 다시 의념과 천근추의 묘리를 통해 무게 중점을 한곳에 집중시키면서 그대로 마수의 머리를 검으로 강타했다.
그것도 마치- 공을 튕겨내듯이, 사선으로. 이능을 발현할 틈은 주지 않겠다는 듯이.
[이 개 같은··· 크륵··· 식들···!!]
당연히 그 와중에도 정확히 무게가 쏠리는 중심을 끊어치면서 강타하였기에 관성이 붙은 마수는 더 빠르게 굴러 내려갔고, 수십 미터의 거체를 자랑하는 질량은 그대로 흙먼지와 돌조각을 일으키며 떨어져 내려갔다.
어느새 자욱해진 모래바람이 마치 개미지옥처럼 잿빛의 마수를 그대로 집어삼킨다.
쿠구구구구-!!
물론 실질적인 피해 자체는 전무한 수준이었기에 마수는 계속 이능 발현을 시도하고 있었으나, 흙먼지 속에서도, 구르는 마수의 몸 위에서도 유천하는 칼을 휘둘렀을 따름.
우우웅-!! 그러자 마수는 폭주하듯 파동을 일으켜 유천하를 떨어트리려 하였지만, 그 정도 여파만으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왜냐하면- 터져 나오는 그림자 파동에 맞춰, 포화를 막아내며 소모됐던 암야의 형상이 다시 순식간에 유천하를 감싸며 변화하더니 그대로 파동을 방어해냈기 때문이었다.
비록 제대로 심상을 구현할 시간이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중원의 복장이 되어버렸지만 유천하는 신경 쓰지 않고 마수를 짓밟았다.
어차피 여파만 막아내면 상관없었던 탓.
다만, 그러자 저 멀리서 열심히 내리막길을 얼려가며 빙판을 만들어내던 라피냐가 그 모습을 보곤 어이없다는 듯 소리쳐왔다.
“누가 전투 중에 멋 부리래요!”
하지만 장난을 칠 상황이 아니었기에 유천하는 당연히 그 말을 무시했고, 그대로 크게 출렁거려오는 마인의 근원석을 들여다보며, 다시 남아있는 업륜을 모두 일깨웠을 뿐.
반항이 통하지 않자, 마수가 마지막으로 발악하려는 듯 마력을 토해냈던 탓이었다.
그렇기에, 그대로 가볍게 뛰어오른 그는 삽시간에 터져 나온 그림자에 맞춰 지근거리에서 그대로 칠흑의 참격을 그려냈으니.
──────────────!!!
그 막대한 규모의 마력 충돌에 광산이 자리하고 있던 지반에서 일제히 먼지가 피어오르면서, 마수의 몸은 그대로 이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밑으로 굴러 내려가기 시작했다.
콰과과과과과-!!!
그것도 충돌의 여파로 인해 불규칙한 마력 파동까지 고스란히 쏟아내면서 말이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마수의 몸이 벽에 부딪히며 쾅-! 멈춰졌으니, 비록 조금 타격을 입긴 했으나 유천하의 방해에서 벗어나고, 흙먼지 속에 몸을 숨긴 채로 멈춰 설 수 있었기에 마수는 그대로 빠르게 몸을 재생시켰다.
마수에겐 간신히 찾아온 빈틈이었던 탓.
그렇기에 드디어 찾아온 자유의 시간에 마수는 잔뜩 분노한 채 이능을 발현시키려고 하였고, 그렇게 마력을 끌어올리던 순간 마수는 뒤늦게나마 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젠 시우 씨한테 맡길게요.”
“50m 이내로는 접근하지 마.”
저 자신이 멈춰 선 이유가 벽에 부딪혀서가 아니라, 지면에 부딪혀서였으며, 맨 밑바닥에 도달해서 더 이상 굴러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어느새 구덩이의 제일 중심부까지, 그러니까 아무것도 없는 언덕의 맨 아래로 내몰렸다는 사실을, 그와 동시에 하늘에서 빛이 내려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
타오르듯 저를 내리찍는 거대한 빛의 기둥을 바라보며,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