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마음 (2)
우선- 현재 자신들이 위치한 곳은 화이트라인의 주거구역. 그것도 외곽지역이었다.
“아니면···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아, 아니에요. 그런 건!”
하물며 이하린의 반응을 보아하니 말하기 곤란한 일이라기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말해주기 민망한 주제인듯싶었고, 그렇다면 지금 이 장소와 시간, 그리고 이하린의 심리를 고려해봤을 때- 이하린이 이러고 있는 까닭을 짐작해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아리엘은 혹시나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았기에 잠시 저 너머에 있는 숙소를 향해 마력를 투사해보았다. 그리고는······
‘역시 이거네.’
이내 살며시 고개를 끄덕거렸을 따름.
참고로 이번에 치러졌던 중간고사 시험- 그 평가에서 이하린은 48위라는 뛰어나다면 뛰어난, 그러면서도 다소 모호한 성적으로 화이트라인에 입성하게 되었다. 물론 아리엘로서야 그녀의 점수에 대해서 이래저래 의아하단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이하린에게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을 테니 그런 부분까지 간섭하고 싶지는 않았다. 애초에 이하린부터가 성적에 크게 연연하지는 않았고 말이다.
그러니- 지금 중요한 건 이하린이 화이트라인이 되었다는 것이고, 다시 그녀와 마찬가지로 함께 화이트라인이 된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그렇기에 지금 신경 써야 할 중요한 부분은 바로······ 이틀 전부터 그들이 화이트라인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지금 이곳- 공원의 끄트머리에선 마침 누군가의 숙소가 시야에 들어오고 있었으니 이건 조금만 생각해봐도 정말 알기 쉬운 문제.
그렇기에 아리엘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린이 너······ 천하 기다리는구나?”
그렇게 난데없이 건네진 추측.
하지만.
“······!!”
이하린은 그녀의 말에 순간적으로 어떻게 알았냐는 듯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고, 이내 그 동그란 눈을 빠르게 깜빡거리며 다급한 목소리로 말을 둘러대기 시작했다.
“아, 아, 아니에요! 그, 그런 거 아니······!”
“천하 기다리는 거 맞구나? 그치?”
“아, 아니 그냥 혼자 사, 산책을······”
“응응. 그래서 왜 기다리는 건데?”
“······아, 아니. 그, 그런 게······”
“왜? 천하한테 무슨 일 있어?”
“······.”
물론- 아무런 소용이 없었을 뿐.
“그, 그런 거 아, 아닌데······”
손가락을 꼼지락, 눈을 데구르르- 그렇게 계속되는 아리엘의 물음에 이하린의 목소리는 점점 기어들어갔고, 그녀는 가만히 입술을 오물거리며 눈을 힐끔거리기 시작했다.
“······아닌데에······ 아닌데에······”
그리고 물론- 그 모습을 바로 앞에서 지켜보고 있던 아리엘로서는 너무나 자신의 예상 그대로 반응하는 이하린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해맑은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하···! 하린이 너 며칠 전부터 천하 걔 얘기만 나오면 완전 맥을 못 추는구나? 원래는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말이야.”
“그, 그건······ 차, 착각이에요···!”
“그으래···?”
“······넵.”
“그렇다는데 천하야?”
“···!!”
설마 이런 타이밍에 돌아왔다고?- 민망함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이하린은 그녀의 말에 황급히 팍- 하고 고개를 들어 올릴 수밖에 없었고, 이내 빠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
햇살만이 내려앉아 있는 평화로운 산책길. 그런 이하린의 시야에 들어온 건 아무도 없이 텅 비어있는 공원의 풍경이었을 뿐.
그렇게 잠시 그곳을 멍하니 바라보았던 이하린은 이내 끼긱- 거리며 고개를 돌려 아리엘을 바라보았지만, 그런 반응에도 아리엘은 그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
“역시 천하는 아직 안 돌아왔나 보네?”
“······아······ 리엘씨?”
“어젯밤에 갔으면서 왜 아직도 안 왔지.”
“······아리엘씨?”
“응! 왜?”
그렇게- 능청스레 되돌아온 아리엘의 대답에 할 말을 잃은 이하린은 잠시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고, 그런 이하린의 반응에도 불구하고 아리엘은 이내 아무렇지 않게 그녀의 옆에 내려앉아 손을 잡아왔을 뿐이었다.
“아. 내가 너무 짓궂었나? 그렇지만······”
벤치에 나란히 앉아 겹쳐지는 작은 두 손.
그리고 그 순간.
“솔직히 말해서 신경 쓰인단 말이야.”
고개를 들어 올려 그녀의 코앞으로 얼굴을 들이민 아리엘의 눈빛은 무척이나 진중한 빛을 띠고 있었고, 그 염려 어린 시선에 이하린은 멍하니 두 눈을 끔벅거릴 수밖에 없었다.
“얼굴은 피곤해 보이고, 걱정은 많아 보이고, 혼자 여기서 쪼그려 앉아서 아무 일 없다 하면 내가 어떻게 생각하겠어······ 그치?”
“······.”
“우리 하린이 다크서클 내려온 거 봐봐. 안 그래도 피부가 새하얘서 엄청 티 나잖아.”
그러니까- 아리엘은 그 말과 함께 자신의 손을 들어 올렸고, 그렇게 이하린의 눈 밑에 자신의 손가락을 조심스레 툭- 갖다 댔다.
그리고.
“피로는 멀리멀리 날아가라··· 얍!”
“······!”
후우웅-! 명랑하게 흘러나온 목소리는 마법이 되어 이하린의 몸으로 스며들었고, 이내 그 부드러운 기운은 이하린의 몸에 남아있던 피로를 조금씩 녹여내기 시작했다.
무언가 기분이 노곤노곤해지는 느낌.
“걱정한다고 걱정 끼치면 안 되지. 그치?”
“······."
그렇게 난데없이 베풀어진 친절에 이하린은 당황스러움과 묘한 감동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이내 한순간에 녹아내리는 긴장 속에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이내- 속삭이듯 입을 열어왔다.
“······정마알······ 너무하세요.”
“그치만 말했듯이 너무 눈에 띄었는걸? 그래서 하린이는 내가 이러는게 싫어?”
“······그, 그렇지는 않아요!”
“그렇지는···? 뭔가 미묘한데?”
“아, 아니에요! 가, 감사합니당···!”
“그치? 고맙지? 아구 착하다.”
“······.”
일부러 분위기를 풀어주려고 저러는 건지, 아니면 그냥 놀리는 게 재밌어서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장난스레 옆에서 볼을 쿡쿡- 찔러오는 아리엘의 행동에 이하린은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로서도 자신에게 이렇게 신경 써주는 아리엘의 행동이 고맙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었다. 자신이 설정을 써내려간 아이가 이렇게 자신의 눈앞에서 저를 걱정해준다는 게 행복했고, 그걸 떠나서 한 명의 사람으로서도 이렇게 자신을 상냥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이 그녀에겐 정말 큰 감동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
“······.”
이하린은 당황스러움과 감동이 뒤섞인- 그러니까 순식간에 글썽거리기 시작한 눈망울로 그녀를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고, 그리고 그런 이하린의 얼굴을 마주 보며 아리엘은······ 그저 귀엽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조금 심했나···?’
아리엘의 시야로는 그런 이하린의 모습이 그저 몇 번 짓궂게 놀렸다고 울먹거리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아리엘은 순간적으로 조금 미안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이하린의 볼을 누르던 손가락을 다시 슬그머니 내려놓으며 빠르게 화제를 돌려보았을 따름이었다.
“······그건 그렇고! 그래서 뭐가 그리 걱정되길래 이렇게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아··· 그건······”
“혹시 하루 못 봤다고 그러는 건 아······”
“제가··· 무슨 어린애에요?”
“······니지! 우리 하린이는 애 아니야. 응!”
하지만 아리엘은 그 말과는 반대로 마치 어린애를 달래주듯이 이하린을 껴안고는 부드럽게 그녀의 등을 토닥거리기 시작했다. 물론 아리엘로서는 방금 전 느꼈던 미안함도 있어서 호의를 표시해주는 것이었지만, 이하린의 입장에서야 그저 어이가 없었을 뿐.
“그래서 그럼 뭔데?”
“······.”
휴- 그렇게 아리엘의 품속에 휘감긴 이하린은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며 몸을 꼼지락렸고, 그렇게 팔을 빼낸 그녀는 이내 자신의 손으로 워치를 똑딱거리기 시작했다.
취급이야 조금 미묘했지만 어쨌든 이렇게 자신을 걱정해주는 아리엘의 태도에 그녀로서도 마냥 입을 다물고 있기는 힘들었던 탓.
그렇게 허공 위로 디스플레이가 떠올랐다.
“그냥··· 이거 때문이었어요.”
“······응?”
그리고 그곳에서 재생되기 시작한 풍경.
[크르륵··· 키햐아아아아악!!]
[콰아아아아아앙-!!!]
매스껍다- 그게 저 모습을 본 순간 아리엘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잿빛의 마수들. 그렇게 해안가를 뒤덮은 그림자의 해일이 일제히 그 몸을 꿈틀대는 게 그녀의 눈에 들어왔고, 다시 전환된 화면 속에선 어마어마한 규모의 폭발과 이능이 계속 터져 나왔다.
그리고 또한.
“진짜··· 포상을 받으러 가셨다는 분이 갑자기 저런 곳에 뛰어들었다는 뉴스가 들려오니······ 제가··· 어떻게 걱정을 안 하겠어요.”
화면 속에선 공략을 시행했던 이들의 모습이 짤막하게 스쳐 지나가고 있었는데, 그중 한 장면. 그 속에 얼굴을 내비친 한 사람은 그녀에게도 무척이나 익숙한 사람이었다.
밤하늘 같은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다시 칠흑 같은 검을 휘두르는 한 남자.
[지난밤, 스페인 현지 시각으론 오후 6시 30분경에 발생했던 대규모 침식역류 현상에는 새롭게 랭킹에 이름을 올린 등천자 유천하 또한 참여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유천하.
그는 수백 마리가 넘게 몰려들어 있는 마수의 군집으로 뛰어들어, 다시 십여 미터에 달하는 수호자급 마수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
그리고 그 화면의 구석에는 흩날리는 붉은색의 머리카락이 엿보였으며, 한 여성이 주먹을 휘두름과 동시에 거대한 마수의 몸체가 휘청거렸고, 바로- 그 순간 유천하의 신형은 허공을 박차며 마수를 향해 뛰쳐나갔다.
그리고 순식간에 벌어진 회피기동.
드론의 카메라로는 미처 담을 수도 없을 만큼 초속의 속도로 이루어진 교전은 화면 속에선 순식간에 생략되어 넘어가 버렸고, 그렇게 유천하가 허공을 박찼을 때는 이미-
[콰아아아아앙-!!!!!!]
-반으로 베어져 나간 수호자급 마수의 거체가 한줄기 파동으로 화해버렸을 뿐이었다.
대체 저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쟤. 저기서 뭐해?”
“그러니까······ 제 말이 바로 그 말이에요!”
그 순간- 이하린은 답답하다는 듯 저 자신의 다리를 작은 두 손으로 팡팡 내리치며 그렇게 외쳐왔고, 아리엘은 이제서야 이하린이 왜 그렇게 울상을 짓고선 유천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조금 이해가 가는 기분이었다.
아니, 솔직히 이건 그녀도 당황스러웠다.
등천의 구도자에 물건 좀 받으러 간다던 애가 왜 저기서 수호자급 마수를 잡고 있는 걸까?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시차를 생각했을 때 지난밤부터 새벽 사이에 벌어진 일일 터였다. 하지만 분명 유천하는 그녀 자신과 통화했을 때까지만 해도 등천의 구도자 본부에 가 있었고, 제시된 시각을 고려해보면 그때는 이미 스페인에서 상황이 발생한 뒤.
그런데 뜬금없이 저게 무슨 상황인 걸까?
하지만 아리엘은 의아함과, 조금은 얼떨떨한 심경 속에서도 멍하니 뉴스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유천하가 뜬금없이 왜 저런 대규모 전장에 참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전 유천하가 마수를 상대로 보여준 한 수가 너무나 압도적이었기에 이성과는 별개로 멍하니 화면을 응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녀가 잠시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고 있자니, 옆에 앉아있던 이하린은 다시 인상을 찌푸리며 스마트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차라리 단순히 토벌을 도우러 간거면 말을 안하죠···! 근데 정말······ 이거 보세요!”
그러자 다시 바뀌는 화면의 풍경.
화면에 표시된 시각을 보아하니 방금 전 장면보다 조금 더 이전으로 보였는데, 화면 그 어디에도 유천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내 정신을 차린 아리엘은 대체 어디를 말하는 거냐 물어보려 하였지만······
바로 그 순간.
[쉬이익······ 콰아아아아아아아앙-!!!!!]
하늘에서 번쩍인 붉은 궤적이 전장을 강타함과 동시에 녹화된 화면 너머까지 그 충격이 고스란히 느껴졌을 정도로 소름 끼치는 힘의 여파가 그곳을 중심으로 터져 나왔다.
그리고.
[콰과과가가가가가-!!!! 콰아아앙-!!]
다시 한 번 더 터져 나온 굉음과 동시에- 하늘에선 연이어 흑색의 궤적이 쏘아졌다. 그리고는 그 검은 궤적은 순식간에 허공을 몇 번 박차더니 마수의 머리 위에 올라섰고, 그렇게 마수를 향해 자신의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다시- 뿜어져 나오는 칠흑의 참격.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아무리 방금의 충격이 어마어마했어도 그렇지 저게 무슨?! 하늘에서 떨어진 그는 단 일격만으로 수호자급 마수를 격살했다. 심지어 황혼급 마수로 추정되는 개체를 말이다.
그렇기에 아리엘은 그 광경에 순간적으로 경악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제정신인가? 저게 말이 돼?”
“그쵸? 대체 왜 저렇게 무모하냐구요···!!”
“······그래! 저렇······ 응?”
아리엘이 경악한 부분은 그게 아니었으나, 이하린은 다시 한 손으로 자신의 팔을 팡팡- 내리쳐가며 답답하다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
“저게 어디서 뛰어내린 건 줄 아세요? 3km래요. 3km! 아니, 무슨 비행능력이 있으신 것도 아닌데 하늘에서 맨몸으로 뛰어내렸다는 거 있죠? 제가 진짜 갑자기 새벽 뉴스에서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는······ 정말 진짜.”
“······.”
“아무리 천하씨가 실력에 자신 있다 해도 저건 다른 거잖아요··· 대체 누가 맨몸으로 저 높이에서 뛰어내리냐구요!! 티르유씨는 특성이 있어서 괜찮다지만, 천하씨는 도대체 왜······ 누가 무슨 마법을 걸어준 건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위험하잖아요······ 그렇잖아요!”
“······어, 어. 그, 그렇긴 하지.”
“자려고 하는데 저 뉴스를 보고······ 정말 걱정이 돼서 진짜. 심지어 새벽 내내 기다려도 뉴스에선 토벌이 끝났다고만 나오지, 누가 다쳤고 그런 건 하나도 안 나오니까······”
휴- 이하린은 말을 하다 호흡이 가빠졌는지 잠시 한숨과 함께 호흡을 들이마셨고, 이내 복잡한 심경이 담긴 두 눈을 깜빡거렸다.
“진짜··· 걱정된다고 말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갑자기 뉴스에서 이름이 들려오구···.”
“······.”
“물론 멀쩡하실거란건 아는데······ 요새 별거 아닌일로 계속 도망다니기만 했어서, 만약 다치셨으면 그게 너무 신경 쓰여서······”
“······.”
그리고.
“······아휴. 그랬구나?”
그런 이하린의 모습에 아리엘은 경악스러웠던 감정도 빠르게 털어낸 뒤, 다시 한 번 부드럽게 그녀를 껴안아 주었을 뿐이었다.
그러자 이하린이 순간 움찔하는 게 느껴졌지만, 아리엘은 개의치 않고 천천히 그녀의 등을 토닥거려주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아리엘은 지금 이하린이 어떤 기분을 느끼고 있는지 충분히 잘 알고 있었고, 그녀는 저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이해에는 다 이유가 존재했다.
“그래서 밤까지 샌 거야? 걱정돼서?”
“일부러는 아닌데······ 어쩌다 보니······”
“괜찮은지 보려고 여기서 기다린 거고?”
“조금 걱정됐단 말이에요······.”
“응응. 이해해. 이해해. 나도 그랬으니까.”
“······아리엘씨도요?”
그래- 그 순간 아리엘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이하린이 순간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하지만 아리엘은 그런 이하린의 의문에도 그저 상냥한 미소를 지어주었을 따름이었다.
그리고는.
“이제는 내 기분을 좀 알겠니?”
“···?!”
그대로 껴안아주고 있던 팔을 들어 올리며 한순간에 이하린의 양 볼을 움켜잡았다.
“······아, 아히헬히?!”
“지난번 위타극때 기억나? 응?”
“위하···? 흑!”
그 순간. 쭉- 잡아 당겨지는 하얀 볼살.
“그때 갑자기 뉴스에서 너희 이름을 봤을 때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는 이미 한번 말해줬었지? 응. 분명 그랬어. 회랑에 있어야 할 하린이 너가 갑자기 위타극이랑 싸우다 중상을 입었다 하질 않나, 며칠간 보이지도 않던 설아랑 천하도 위타극이랑 싸우다 다쳤다 하질 않나······ 아주 똑같네 똑같아. 둘 다.”
“······흐, 흐헌 하 히휴하···!”
“뭐 이유가 있다고? 나도 그때 뉴스 보고 잠이 안 와서 온종일 수련도 팽개치고 얼마나 심란했는지 알아? 내가 정말··· 걱정되는 마음에 하루종일 기도해서 축언까지 쌓아갔더니··· 뭐? 하린이 그때 네가 뭐라 했더라?”
“······흐, 흐헌···”
“뭐? 이럴 필요는 없다고? 별거 아니야?”
그렇게- 갑작스레 시작된 아리엘의 하소연에 이하린은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사정없이 자신의 볼을 쭉- 잡아당기는 아리엘의 손길이 아프기도 했지만, 지난번 혼나놓고 다시 또 혼나게 된 상황에서 오는 억울함에 저도 모르게 눈물마저 핑 도는 기분을 느꼈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천하 걱정은 이렇게 밤새 해주면서, 내가 너희 걱정해준 건 그렇게 쓸데없는 걱정 취급하고······ 그때 내 기분이 어땠을 것 같아?”
“자······ 잘홋햏흫미하.”
아프고 억울하기는 한데, 막상 이 상황에 저런 말을 들으니 할 말이 없었기에 그저 얌전히 사과를 오물거릴 수밖에 없었을 뿐.
“······하, 하파형.”
“······.”
휴- 그렇게 찌푸린 얼굴로 이하린의 볼을 잡아당기고 있던 아리엘은 다시금 글썽거리기 시작한 이하린의 눈을 보더니 이내 한숨을 쉬며 손을 놔줄 수밖에 없었고, 그리고는 조금 착잡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다시 아까처럼 그녀를 꼭 껴안아주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다시 달래주듯 부드러운 손길로 그녀의 등을 천천히 토닥거려주기 시작했다.
“너희는 정말 걱정을 너무 잘 시켜.”
“······.”
“갑자기 뭐라 해서 미안해. 근데 천하 걱정한다고 울먹거리는 걸 보니까 너무 억울했단 말이야. 너도 그렇게 걱정을 끼쳐놓고······”
“······죄, 죄송합니다.”
“정말 너희는 애들이 왜 그러는 걸까? 주변에 너무 걱정을 잘 끼치는 것 같지 않아?”
“저, 저는 그래도 한 번밖에······”
그런데.
“특히 유천하. 바로 너 말이야.”
“······?”
그 순간- 갑작스레 흘러나온 한마디.
그렇게 아리엘의 말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이하린은 순간적으로 두 눈을 깜빡거렸다. 하지만 이내 그 의미를 깨닫고선······ 그 즉시 아리엘의 품에서 고개를 빼 들었다.
“······!!”
그러자.
“너는 특히 더 잔소리를 좀 들어야 해. 이렇게까지 애를 걱정시키면서 맨날 자기는 상관없는 척, 괜찮은 척이나 하고 말이야.”
“······.”
“안 그래?”
그곳에는 익숙한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다소 당황스러운 표정을 그 얼굴에 지어 보이고선, 그러면서도 대체 그녀들이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고선, 양손에 검은색의 케이스를 든 채로.
“······그래서 무슨 상황인 건데 지금?”
그렇게- 유천하가 그곳에 서 있었다.